저항하지 못한 삶, 저항한 삶, 부역한 삶

구글 AI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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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항하지 못한 삶에 대한 이해 일제강점기나 독재 정권 같은 억압적 시대에 평범한 사람들이 가족의 생계와 현실적 두려움 때문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고 침묵하거나 순응하며 살았던 것은 인간의 나약함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 저항한 삶의 위대함 목숨과 미래를 건 체포, 고문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불의에 맞서 저항한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독립과 민주주의가 가능했으며, 이들의 용기는 영원히 기억되고 존경받아야 한다.
  • 침묵한 삶과 부역한 삶의 구분 단순히 생존을 위해 체제에 순응하며 침묵했던 평범한 이들과 달리, 억압적 권력에 적극 가담해 민족과 공동체의 고통을 발판 삼아 출세와 영달을 누린 부역 행위는 시대 탓으로 면죄할 수 없다.

역사 속 세가지 모습의 삶

최근 배우 하영 씨의 발언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논란이 일고 있다. 한쪽에서는 역사 인식의 문제를 지적하고, 다른 쪽에서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과거의 모든 행위를 오늘의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반박한다.

나는 여기서 특정 배우의 발언 관련 갑론을박 논란 자체에 뛰어들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광복절을 앞두고 벌어진 이번 논란을 보며 우리가 역사 앞에서 반드시 구별해야 할 세 가지 삶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다.

저항하지 못한 삶, 저항한 삶, 그리고 억압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삶이다.

일제강점기 35년은 일본 제국주의의 강압적 통치 아래 우리 민족이 살아야 했던 시대였다.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에게 영웅적 저항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무리다. 사람은 먹고살아야 한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고 자식을 키워야 한다.

일제의 행정체계 안에서 직업을 가졌거나 당시의 제도에 어느 정도 순응하며 살았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사람을 ‘친일’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 버리는 것은 역사에 대한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다.

나는 이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그래서 더 위대하게 다가오는 삶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욱 분명해지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 시대에 저항했던 사람들은 그래서 더욱 위대했다는 사실이다.

독립운동은 안전한 곳에서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일이 아니었다. 체포와 투옥, 고문을 각오해야 했고 가족까지 고초를 겪을 수 있었다. 재산과 직업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선택이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저항했다.

그들이 두려움을 몰랐기 때문일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 역시 두려웠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을 것이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은 욕망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보다 더 큰 가치를 위해 두려움을 넘어섰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독립운동가들에게 ‘존경’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다.

나는 이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나 자신의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1980년대 권위주의 통치 아래 대학을 다니던 시절, 주변에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잡혀가면 고문당할 수도 있고 자신의 미래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리로 나간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무엇이 옳은지 몰랐던 것은 아니다.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하면서도 무서웠고, 그만한 용기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나약함에 관한 솔직한 고백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일제강점기를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쉽게 돌을 던지고 싶지 않다. 마음속으로 독립을 바라면서도 가족과 생계를 생각하며 침묵했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저항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평범한 사람의 침묵을 이해하는 것과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상대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오히려 평범한 인간의 두려움을 인정할수록 목숨을 걸고 저항한 사람들의 용기는 더욱 빛난다.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만약 일제강점기에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독립운동도 없고, 3·1운동도 없고,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의 항거도 없었다면 일본 제국주의는 훗날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조선인들도 일본의 통치를 받아들였다. 그들도 그 체제 속에서 살아갔고 일본이 가져온 근대화를 누렸다. 그러니 일본의 조선 지배가 그렇게 부당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그때 우리는 무엇으로 대답할 것인가?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원하지 않았다는 가장 강력한 역사적 증거는 바로 끝까지 저항한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독재시대도 마찬가지다. 만약 아무도 독재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독재자는 경제성장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국민들도 별다른 반대 없이 살지 않았느냐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감옥에 가면서도, 고문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걸면서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의 존재 때문에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억압을 억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영달을 추구한 삶은 인정돼선 안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세 번째 삶의 문제가 등장한다. 두려워서 저항하지 못한 사람과 억압하는 권력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자신의 영달을 추구한 사람을 동일하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일제강점기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주어진 체제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간 사람과, 일제의 권력을 등에 업고 같은 민족을 탄압하면서 부와 지위를 누린 사람은 다르다.

독재시대에도 마찬가지다. 두려움 때문에 침묵했던 사람과 독재 권력의 핵심으로 들어가 그 권력을 적극적으로 돕고 그 대가로 출세와 부를 누린 사람은 같지 않다. 전자는 인간의 나약함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는 공동체를 희생시켜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도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따라서 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는 적어도 세 가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저항하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이해할 수 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저항했던 사람들에게는 깊이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러나 억압하는 권력에 적극적으로 부역하며 공동체의 고통을 자신의 출세와 영달의 수단으로 삼았던 행위까지 ‘시대가 그랬다’는 말로 면죄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것이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을 넘어 용기를 발휘했던 이들

광복절이 다가온다.

우리는 매년 광복을 기념하지만, 광복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선물이 아니었다. 오늘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독립된 주권국가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가장 암울했던 순간에도 독립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민주주의와 자유를 당연한 일상처럼 누릴 수 있는 것도 독재 앞에서 침묵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었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그들은 감옥에 갔고 우리는 자유롭게 말한다.

그들은 자신의 현재를 희생했고 우리는 그들이 열어 놓은 미래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광복절을 맞으며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과거의 모든 평범한 사람을 손쉽게 단죄하는 것도, 반대로 시대의 불가피성을 앞세워 모든 행위의 책임을 지워 버리는 것도 아닐 것이다.

누가 두려움 때문에 침묵했는지, 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억압에 부역했는지, 그리고 누가 그 모든 두려움을 넘어 우리를 대신해 저항했는지를 기억하는 일이다.

특히 마지막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자유에는 먼저 용기를 냈던 사람들의 희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언어학 박사(화용론 전공). 언어와 문화의 밀접성 관련 주제를 주로 연구하며 영어교과서와 학습교재와 일반 인문 교양서 집필 활동도 하고 있음. 최근 <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 (사람in 출판) 책을 출간함 Facebook에서 언어학자로서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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