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파병이란 무엇인가”

언어학자가 본 ‘외교의 언어로서 파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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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어학적 관점에서 본 외교적 발언의 재해석 이재명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에 대해 즉답을 피하고 ‘파병’의 범주를 재정의(범주화)함으로써, 전쟁 개입에는 선을 긋고 자국 이익 보호와 국제 협력의 여지는 남기는 정교한 화법을 구사했다.
  • 프레이밍과 외신의 서로 다른 시각 화용론적 관점과 프레이밍 이론처럼, 동일한 발언이라도 무엇을 전경에 두느냐에 따라 뉴욕타임스는 ‘미국 요구에 대한 거부’로, 로이터는 ‘거부와 제한적 협력의 공존’으로 서로 다르게 보도했다.
  • 외교에서 언어적 경계 설정의 중요성 강대국 사이에서 국익을 지켜야 하는 외교 무대에서는 단순한 Yes나 No의 선택보다, 정책의 경계를 언어로 어떻게 정의하고 정교한 정책적 공간을 만드느냐가 핵심임을 보여준다.

대통령의 파병 관련한 발언

얼마 전 나는 호르무즈 해협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군을 전쟁에 개입시키는 파병 결정이 내려진다면 강하게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적이 있다. 그만큼 이번 사안을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파병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답변을 들으면서 정치적 판단과는 별개로 언어학자로서 흥미로운 지점 하나를 발견했다.

대통령은 곧바로 “파병한다, 안 한다”라는 이분법적 답변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먼저 ‘파병’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행위까지 파병이라는 범주에 넣을 것인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어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우리가 어떤 현상을 어떤 말로 부르느냐는 그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와 직결된다. 같은 현실이라도 어디까지를 하나의 범주에 넣고, 어디에서 경계를 긋느냐에 따라 의미는 달라진다. 언어학에서 말하는 ‘범주화’(categorization)의 문제다.

무엇을 ‘파병’으로 규정할 것인가

‘파병’도 마찬가지다. 외국에 군 병력을 보내는 모든 행위를 하나의 ‘파병’이라는 말로 묶을 것인가? 아니면 전쟁에 참여하기 위한 군사적 개입과 자국민 및 자국의 상선 등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적 활동을 구별할 것인가?

이 대통령의 답변은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먼저 전쟁에 참여하거나 개입하는 형태의 병력 또는 군사자산 투입에는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전쟁에 관여 또는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모든 군사적 활동 가능성을 닫지는 않았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 상선과 원유수송로 등 대한민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역할은 해야 한다는 입장도 동시에 밝혔다. 정부는 기존 청해부대의 활동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결국 하나의 답변 속에 두 개의 메시지가 공존한다.

“우리는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국제사회와의 협력까지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은 무엇을 더 강조했나

여기서부터 이 문제는 의미론을 넘어 화용론(話用論, pragmatics)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화용론에서 중요한 것은 화자가 무엇을 말했느냐만이 아니다.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무엇을 앞에 내세우고 무엇을 뒤로 보내느냐에 따라 청자가 받아들이는 의미가 달라진다.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교수가 설명해 온 프레이밍(framing)의 관점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어떤 요소를 전경(foreground)에 놓고, 어떤 요소를 배경(background)으로 보내느냐에 따라 동일한 사실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번 발언에 대한 외신 보도에서 바로 이러한 차이가 나타났다.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는 이 대통령의 발언을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에 대한 거부라는 맥락에서 강하게 전경화했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중동 전쟁에 한국군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는 것이 기사의 중심이었다.

반면 로이터(Reuters)의 보도는 조금 다른 구조를 취했다. 한국이 중동 전쟁에 휘말릴 수 있는 군사자산을 배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원칙을 전하면서도, 동시에 한국의 상선과 원유수송로를 보호하고 역내 항행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더 큰 역할을 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점을 함께 전달했다.

같은 대통령의 발언인데도 하나는 ‘거부(refusal)’가 전경이 되고, 다른 하나에서는 ‘거부와 제한적 협력’이라는 두 요소가 함께 제시된 것이다.

한국 정부의 후속 움직임 역시 후자의 의미가 단순한 수사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거의 같은 시기에 워싱턴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을 만난 조현 외교부 장관은 한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자유로운 통항 회복을 위해 실질적으로 기여할 의사가 있음을 설명했다.

결국 이번 외교적 메시지의 구조는 비교적 분명하다.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제적 협력까지 거부하지는 않는다.

달라진 ‘파병’의 의미, 커진 ‘정책 공간’

외교의 언어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특히 강대국 사이에서 국익을 지켜야 하는 나라의 외교에서는 단순히 예스(Yes)와 노(No)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에 Yes라고 하고 무엇에 No라고 하는지, 그 경계를 어디에 설정하는지가 중요하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내가 흥미롭게 본 것도 바로 이 점이다. ‘파병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질문에 곧바로 Yes 또는 No로 답하기보다, 먼저 “우리가 말하는 파병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묻는 순간 질문의 구조 자체가 달라진다.

파병이라는 하나의 단어 속에 들어 있던 서로 다른 행위들이 분리되고, 단순했던 Yes와 No 사이에 보다 정교한 정책적 공간이 만들어진다.

물론 언어가 정책을 대신할 수는 없다. 앞으로 한국 정부가 실제로 어떤 형태와 범위의 역할을 선택하는지는 별도의 문제이며, 그 선택은 국민적 논의와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발언은 외교에서 언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였다. 외교에서는 때로 정책의 선택만큼이나 그 정책의 경계를 언어로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중요하다.

언어학자의 눈으로 볼 때 이번 ‘파병’ 논쟁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외교의 언어’였다. 이재명 대통령의 답변은 전쟁 개입에는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면서도 국제적 협력의 가능성은 열어둔, 세심하게 구성된 외교적 언어였다할 것이다.

글쓴이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

이창봉 가톨릭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Pennsylvania) 언어학 박사(화용론 전공). 언어와 문화의 밀접성 관련 주제를 주로 연구하며 영어교과서와 학습교재와 일반 인문 교양서 집필 활동도 하고 있음. 최근 <미국이라는 나라 영어에 대하여> (사람in 출판) 책을 출간함 Facebook에서 언어학자로서 언어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글도 활발히 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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