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내정간섭, 한국에 도를 넘다
미국의 중간선거, 동맹국의 피까지 요구
- 미국의 주권 침해적 압박 트럼프 행정부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자국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우크라이나 정상 교체 발언은 물론, 한국에 대미투자 및 군사·정보 협력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 국내 정치적 여파 미국이 들고 나온 ‘동맹의 기준’ 등의 이슈가 국내 야당의 공세 소재로 활용되면서, 이재명 정부의 대북 및 외교 안보 정책도 위기를 맞고 있다.
- 자주적 한미관계의 필요성 정부가 미국의 일방적 압박과 종속적 관계에서 벗어나 국익과 자주권을 지키려면, 부동산과 경제, 노동·농민문제 등 민생현안, 국가보안법 철폐 등 현안 해결을 통해 회복된 민심을 바탕으로 대응해야 한다.
젤렌스키 교체발언은 ‘자주권 침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 “우크라이나에는 새로운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다른 나라의 정책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의 교체를 직접 거론한 것이다. 어느 나라의 대통령을 선택할지는 그 나라의 민의로 결정한다.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 대통령의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자주권 침해’다.
이런 발언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미국은 지난 2월 이란을 공격하기 전부터 정권교체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정권교체가 가장 좋은 일이 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실제 공격이 시작된 뒤에는 이란 사람들에게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젤렌스키 교체 발언도 미국의 이해와 직접 연결돼 있다. 미-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긴장으로 국제유가와 미국의 디젤(경유)가격이 올랐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연료가격 안정은 다급한 문제가 됐다. 그는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산 경유 공급에 합의하고 경제 제재도 일부 완화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계속했다.
트럼프는 처음에는 정유시설 공격을 멈추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젤렌스키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러-미 경유제공 합의도 비판했다. 그러자 대통령 교체발언까지 나왔다. 미국의 경제·정치적 이해와 충돌하자, 정책변경 요구가 지도자 교체 요구로 올라간 것이다.
미국은 이란에서는 적대국의 정권교체를 거론했고 우크라이나에서는 지원국 대통령의 교체를 거론했다. 미국의 이익과 충돌하면 적대국이든 지원국이든 동맹국이든 압박대상이 된다.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동맹의 이름이 아니다. 미국의 요구에 얼마나 충실하게 따르느냐이다.
한국에는 ‘동맹의 기준’을 들고 나왔다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지난 9일 한국이 “수십년간 이어져 온 양국 동맹의 기준을 준수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보와 방첩 분야를 지목했다. 불과 하루 뒤 트럼프는 젤렌스키 교체발언을 했다. 대상은 달랐지만 미국의 요구에 상대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문제 삼았다는 점에서는 같은 방향이다.
미국은 한국이 정확히 어떤 ‘동맹의 기준’을 어겼는지 밝히지 않았다. 국민의힘과 일부 언론은 이를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구성 우라늄농축시설 발언’과 연결했다. 정동영 장관과 이종석 국정원장 경질까지 요구하고 있다. 정 장관은 ‘구성’이라는 지명을 지난해 인사청문회에서도 이미 공개했다고 반박했고 미국 정보 누설이라는 주장도 부인했다.
정 장관의 발언만으로 미국이 ‘동맹의 기준’까지 들고나온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지금 한미 사이에서 가장 큰 현안은 3,500억달러 대미투자 이행이다. 투자대상과 상업성, 손실부담, 수익배분을 놓고 이견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한국에 투자이행을 서두르라고 압박해왔다.
미국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대미투자와 통상뿐 아니라 안보와 정보 문제에서도 압박을 강화해왔다. 이번 ‘동맹의 기준’ 발언은 미국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동맹 자체를 문제 삼겠다는 경고다. 지난 70여년 동안 미한 동맹은 미국의 전략적 필요가 먼저 정해지고 한국이 그 요구에 맞춰 움직이는 구조를 반복해왔다.
미국의 요구를 잘 따르면 ‘모범 동맹’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이 국익을 이유로 다른 선택을 하면 곧바로 동맹의 신뢰와 기준을 문제 삼는다. 이번 발언은 그동안 암묵적으로 작동하던 미국의 동맹관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정동영 장관은 12일 “미한동맹은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맹은 가치를 공유하지만 이해관계는 상충할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미국이 요구하는 것을 100% 수용할 수 없다”며 한국의 국익과 자율성을 강조했다. 미국은 동맹의 기준을 내세우고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미국이 가장 서두르는 것은 대미투자다
미국이 지금 한국에 가장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3,500억 달러 대미투자의 조속한 실행이다. 주한 미대사의 최근 행보도 이를 보여준다.
미셸 박 스틸 주한 미대사는 부임 뒤 외교장관에 이어 산업통상부장관을 만났다. 이후에도 외교부와 정상회담 팩트시트 이행을 논의했다. 정치권과의 접촉에서도 대미투자와 통상문제가 계속 따라다녔다. 대미투자 이행을 확인하고 독촉하는 일이 주한 미대사의 중요한 업무가 됐다.
미국의 요구는 한결같다. 사업을 빨리 정하고, 빨리 발표하며, 빨리 실행하라는 것이다. 한국이 속도를 내지 않으면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
지난 9월 2일 내각교체 분석 칼럼에서도 이 문제를 다뤘다. 8월 15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갑작스럽게 경질됐고 뒤이어 대미협상팀이 대거 교체됐다. 미국이 한국에 투자속도를 높이라고 요구하던 시기였다. 반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조현 외교장관 등 대미 외교안보라인은 그대로 남았다.
그러나 국내의 관심은 다른 장관 인선 논란으로 옮겨갔다. 성평등부와 법무부 인선 문제가 크게 부각됐다. 그 사이 대미협상팀이 왜 그 시점에 대거 바뀌었는지는 관심에서 멀어졌다. 대미투자 압박과 인사개편의 관계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개각 뒤 대미협상은 속도전으로 바뀌었다
8월 개각 이후 대미협상은 실제로 빨라졌다. 미국과의 접촉도 잦아졌다. 김정관 산업부장관은 계속 협상의 중심에 남았다. 대미협상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인사재편이었다는 판단을 뒷받침한다.
미국은 한국과 최종 합의가 끝나기도 전에 투자사업을 먼저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월 30일 한국이 미국에 최대 2,00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미국 내 원전 8기 건설과 알래스카 LNG, 텍사스 가스발전소 등을 거론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알래스카 LNG 사업의 투자 여부와 규모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미 결정된 사업처럼 발표했다. 한국은 아직 검토 단계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한국의 검토가 끝나기도 전에 투자계획을 먼저 발표했다. 중간선거 전에 대미투자 성과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미협상팀은 바뀌었고 협상은 빨라졌다. 곧이어 미국의 일방적인 투자계획 발표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미투자는 미국 국내정치의 성과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 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수십 년간 수익성과 위험을 감당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국익과 상업성을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의 요구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이 속도를 늦출수록 미국은 다른 현안까지 압박수단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지난 9월 2일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앞으로 미국이 대미투자 속도에 만족하는지, 다시 불만을 제기하며 압박하는지를 보면 이번 인사의 성격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이후 상황은 예상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개각 뒤 대미협상은 빨라졌고 미국은 한국의 검토시간과 상관없이 투자계획부터 발표했다.
미국의 압박, 한국 국내정치를 흔들고 있다
미국의 요구는 경제분야에만 머물지 않았다. 대미투자에서는 돈을 요구했고 호르무즈에서는 한국에 군함과 군사자산 파견까지 요구했다.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은 자국의 경제성과와 전략적 필요를 위해 동맹국의 자본과 군사력까지 요구하고 있다.
정보·방첩 문제에서는 미국이 ‘동맹의 기준’을 언급했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곧바로 정동영장관과 이종석국정원장 경질을 요구했다. 미국의 문제제기가 한국정부를 공격하는 국내정치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다.
미국의 ‘동맹의 기준’ 발언 이후 국민의힘은 공세 범위를 넓히고 있다. 정 장관과 이 국정원장 경질 요구를 넘어 이재명 정부의 대조선(북한) 정책과 안보 정책 전반을 공격하고 있다. 반면 이재명 정부는 미국의 문제제기에 해명하고 국내 정치공세를 방어하는 데 급급하다.
미국은 이재명 정부를 흔들고 그 취약성을 압박수단으로 이용해 대미투자에서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내려 한다.
전작권 회수와 대조선(북한)정책에서도 미국의 반응이 한국내 논쟁에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정부가 독자성을 높이려 하면 미국은 동맹과 안보를 내세워 압박한다. 국내에서는 다시 미국의 입장을 근거로 한국 정부를 공격한다. 미국의 압박과 국내 정치공세가 서로 힘을 실어준다.
9월 비무장지대 지뢰사건도 마찬가지다. 밝혀야 할 문제 가운데 하나는 미국이 주도하는 유엔사의 개입과 명령체계다. 군사분계선 가까운 지역에서 한국군의 활동에 어떻게 관여했고 사고 전후 어떤 판단과 지시를 했는지 밝혀야 한다. 그러나 논쟁은 유엔사의 책임보다 조선의 지뢰 여부와 정동영장관의 발언으로 번졌다. 유엔사의 역할과 책임은 뒤로 밀리고 이재명 정부의 대조선정책이 다시 공격대상이 됐다.
친미 사대주의적 정치세력에게 미국의 압박은 불편한 일이 아니다. 미국이 한국정부를 강하게 압박할수록 자신들의 국내정치적 입지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요구가 타당한지는 뒷전이다. 미국의 말을 근거로 자국 정부를 공격하고 미국의 압박을 동맹의 정상적인 작동으로 받아들인다.
미국의 압박을 이겨낼 힘은 민심이다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수록 이재명 정부가 의지할 가장 큰 힘은 외교적 기술이 아니라 민심이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약 14개월 전 전라좌수사로 부임했다. 그 기간 백성의 삶을 살피고 군과 관청의 횡포를 막으며 신뢰를 쌓았다. 전쟁이 터지자 그 신뢰는 군량 지원과 수군에 대한 자발적인 협력으로 돌아왔다.
이순신 장군이 백성의 신뢰를 얻었듯이 이재명 정부도 민심을 얻어야 한다. 이재명 정부도 출범한 지 16개월을 넘겼다. 미국의 압박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지만 민심을 넘어설 수는 없다.
부동산과 경제, 투자, 노동문제와 농민문제 등 민생현안, 그리고 국가보안법 철폐를 진심으로 해결하고 민심과 함께해야 한다. 민심을 얻은 정부만이 미국의 압박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미국의 요구를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의 정부 선택에까지 개입한다면 정상적 동맹관계가 아니다. 상대국의 자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지금 드러나는 것은 종속적인 미한동맹의 폐단이다. 이제는 수탈과 압박, 굴욕의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의 주권과 이익을 존중하는 수평적 관계로 바꿔야 한다. ‘미한동맹’이 아니라 ‘한미동맹’이 되어야 한다.
이 글은 윤현일 재미 칼럼니스트께서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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