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과학을 믿으라는 말의 허구성
과학은 언제나 비판과 의심하는 학문 정부, 과학적 토론· 검증없이 주장만 남발 해산물 즐기는 한국, 유럽과 비교할 수 없어 앞으로도 끝없이 비판하고 검증해나가야
일본이 후쿠시마 핵오염수를 해양투기한 사건으로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정부와 과학을 믿으라‘고 한다.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정부와 과학을 믿으라‘는 말이 성립할까?
우선 ’과학을 믿으라‘는 말은 의미론적으로 모순된 표현이다. 과학의 근본 정체성은 끊임없는 비판과 의심이다. 선행 연구의 한계와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새로운 독창적인 주장을 하려는 자세와 노력이 과학 연구를 하는 학자들의 근본 자세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학문을 발전시키고 세상의 긍정적 변화에 기여한다. 그러므로 그 어떤 순간에도 과학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는 비판과 성찰의 대상일 뿐이다.
후쿠시마 해안가에 투기된 핵오염수가 얼마나 안전한 지 혹은 앞으로 한국 해안을 비롯한 전 세계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언론에서는 핵오염수가 얼마 만에 한국 해안에 도달할 지 당장 생선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지 등의 쟁점 관련 다양한 주장과 의견을 소개하고 있는데 현재 이런 쟁점 관련 보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앞으로 바다 속 생태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핵오염수 투기 이후의 바다 생태계 변화 연구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우리는 앞으로 다양한 주장과 비판의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점진적으로 알아 나갈 것이다.
이런 과학의 불완전성과 연속성을 무시하고 한국 정부는 서슴없이 ’과학을 믿으라‘는 의미적으로 모순된 말을 남발한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은 과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핵오염수가 안전하다는 연구 결과만을 과학이라고 선별적으로 부르고 있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에 유리한 그 주장만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은 어느 순간에도 완전한 것이 없다. A라는 연구 결과를 주장하는 흐름에 맞서 ’not A’의 연구 결과를 주장하는 흐름이 맞설 수 있고 다른 시각에서 B와 C라는 주장을 하는 다른 흐름이 섞일 수도 있다. 이 다양한 시각과 측면에서의 연구의 흐름이 과학이지, 특정 주장의 지배가 과학일 수 없는 것이다.

특정 과학적 주장의 지배는 정치다
한국의 정부와 여당은 이 쟁점 관련 초기부터 핵오염수가 안전하고 IAEA 검증이 신뢰할만한 것이라는 학자들의 특정 주장들만을 설파하는 비과학적 태도로 일관했었다. 특정 과학적 주장만 신봉하고 주창하는 것이야말로 극히 정치적인 것이다. 영국의 어느 교수를 불러와서 핵오염수가 안전하다는 그의 일방적인 주장을 늘어놓게 하고 다른 학자들과 반론을 주고 받는 토론이 전혀 없었다. 이 장면은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주장을 전달하는 기자회견의 모습을 빼닮았다. 현 정부가 그토록 비판하는 문재인 정부 때는 코로나 시국에서 정기적인 관련 전문가 회의가 열렸었고 다양한 의견과 주장을 교환하고 수렴하는 노력을 했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중대한 사안임에도 현 정부가 원자력과 환경 문제 전문가와 학자들을 모아 놓고 자문 회의를 하거나 치열한 의견 교환을 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들은 그저 정부의 입지와 입맛에 맞는 학자들만을 선택해서 정부의 입장을 변호해 주는 정치적 수사만 남발했을 뿐 그 어떤 진지한 과학적 노력을 주도한 적이 없다. 그들이야말로 철저히 과학을 무시해 왔다.
핵오염수 투기 결정이 임박하고 나서야 급하게 사찰단을 꾸려 과학적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이려 했지만 사찰 후 그 결과를 두고 다양한 시각과 의견을 가진 학자와 전문가들을 모아서 그것을 검증하고 회의하는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이 또한 극히 비과학적이고 정치적인 행보였다.
전혀 과학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와 행보를 보여 온 한국 정부가 특정 과학 연구의 결과와 주장만을 설파하면서 그것만 믿으라고 하는 것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한국 언론도 정치적으로 비과학적 보도 남발
한국의 주류 언론들도 정부 여당 편에 서서 비과학적인 보도를 남발하며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 특히 다른 나라의 시각과 입장에서의 주장과 의견을 무차별적으로 보도해서 마치 핵오염수의 안전성 논란 자체가 문제라는 식의 보도까지 난무한다. 며칠 전 조선일보는 영국 BBC 아시아 특파원이 “말도 안되는 걱정”이라며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인해 일본 해산물을 먹는 것이 걱정된다면 전 세계 해산물을 먹지 말아야 한다”라고 쓴 SNS 게시글을 보도하면서, 중국과 다른 유럽 국가들의 원전에서 오히려 후쿠시마 원전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삼중수소가 방출되고 있다는 그의 주장을 근거 자료의 검증과 비판 없이 그대로 보도했었다. 놀라운 것은 그는 학자나 전문가도 아니고 언론인으로서 개인적인 주장을 한 것이고 그의 주장의 근거 자료가 일본 요미우리 신문 자료라는 점이다. 메신저의 전문성과 자료의 객관적 검증이 없이 일본 핵오염수의 안전성 논란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함축성 기사를 쓰는 조선일보의 비과학성과 과감한 정치성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이런 류의 보도 행태에는 더 심각한 왜곡과 문제점이 숨어있다. 조선일보의 보도대로 BBC 언론인의 주장이 설사 사실이고 근거가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상황을 다른 국가와 단순 비교해서 유독 한국만 유별나게 군다는 함축성 기사를 쓰는 것은 심각하게 잘못된 보도 행태다.
각국의 식문화가 다른 점을 간파해야
각국의 식문화가 다른 점을 간과한 채 단순 비교를 하는 것이 또 다른 왜곡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해물 종류와 먹는 방식에 있어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선진형 식문화를 발달시켜 온 나라다. 유럽 국가들은 한국과는 달리 주로 생선류를 소비하고 그나마 생선을 잘 먹지 않아서 어떻게 하면 육류 소비를 줄이고 해산물 소비를 늘릴까 고민하는 정도라고 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생선은 물론 (일본처럼 날것으로 먹는 회를 즐기고) 온갖 갑각류와 해초류 등 바다에서 나는 거의 모든 동식물 전체를 사시사철 먹고사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미미한 양의 방사능 양이라도 이 다양한 먹거리들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명박 정부 때 일어난 광우병 사태 때도 우리는 소의 뼈까지 우려먹는 식문화가 발달한 나라이기에 더욱더 광우병 우려가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문화 특징적인 주장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광우병 파동 때도 그렇지만 국민들이 분노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하는 정부가 주인 된 권리와 국익을 너무도 쉽게 포기하는 매국적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설사 과학이 일본의 핵오염수 해양투기로 한국의 해양 생태계와 먹거리에 끼치는 영향이 우려보다 그리 크지 않다고 증명한다고 해도 그 수십 년의 기간 동안 국가 경제가 입을 경제적 피해는 누가 보상한단 말인가? 모든 식품 소비에는 심리가 중요하며 특히 수산물 소비는 더욱 그렇다. 완전한 안전 검증이 이루어질 때까지 국내에서 수산물 소비가 위축될 것은 뻔하고 수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현재 한국산 김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과연 외국 소비자들이 앞으로도 한국산 김을 꾸준히 소비할까? 이런 경제적 피해가 우려되는데도 왜 우리는 스스로의 먹거리와 경제 주권을 남의 국가의 이익과 편리를 위해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야 하는가? 더구나 그런 불이익을 상쇄시킬 만큼 일본에게서 받는 이득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국민들은 바로 정부의 이런 어리석은 매국적 결정과 행보에 분노하고 있는 것인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핵오염수 해양 투기 이전에 과학적 접근으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이제 정부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해야 할 처지에 있다. 과학은 끊임없이 비판하고 의심하고 검증하는 노력이다. 정부야말로 과학적이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고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 일본의 핵오염수 처리 과정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의심하고 검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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