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어떻게 멸종하는가

[하영균의 진화생태경제학]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특이한 파충류 투아타라.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특이한 파충류 투아타라.
  • 유전체 내부의 반란 기생벌 나소니아의 PSR 염색체는 정상적인 염색체를 소실시켜 성비를 왜곡하고, 생명체 내부의 유전적 교란이 번식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 기후변화와 성비 불균형 파충류 투아타라는 둥지 온도 상승으로 수컷 편향이 심해질 수 있으며, 성비 불균형은 유효 집단 크기와 유전적 다양성을 감소시켜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약화시킨다.
  • 멸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암컷의 감소와 번식 성공 저하, 유전적 다양성의 상실이 서로 맞물리면 개체군은 회복 능력을 잃고 기능적 멸종에 이를 수 있다.

유전적 다양성은 얼마나 중요할까

자연계에서 유전적 다양성의 보전은 환경 변화에 대항해 종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가장 근본적인 생존 전략이다. 그러나 유전체 내부의 이기적 유전 요소나 거시적 기후 위기와 같은 교란이 발생하면, 생명체 스스로 유지해 온 균형이 무너지고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닫기도 한다.

대표적인 생물학적 왜곡 기전은 기생벌의 일종인 나소니아(Nasonia vitripennis)에서 발견되는 부계 성비 왜곡(Paternal Sex Ratio, PSR) 초수 B 염색체의 파괴적 침탈이다.

존 웨렌의 연구에 따르면 PSR 염색체는 정상적인 유전 법칙을 교란하며 오직 수컷을 통해 전달되는 전형적인 유전체의 기생체다. 초수 B 염색체(Supernumerary B chromosome)는 생명체의 유전자 설계도에 몰래 끼어든 ‘무임승차자’ 또는 스마트폰에 지워지지 않고 깔려 있는 불필요한 앱이라고 할 수 있다.

수컷의 탄생을 막는 염색체

수정란 내부로 침투한 PSR 염색체는 초기 배아 발달 과정에서 부계의 정상 염색체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하게 하고, 결국 이들을 소실시킨다. 나소니아는 반수체-이배체(haplodiploidy) 방식으로 성이 결정되는 곤충이다. 따라서 본래 이배체 암컷으로 발생해야 할 수정란에서 부계 염색체 세트가 소실되면, 해당 수정란은 강제적으로 반수체 수컷으로 발생하게 된다.

숙주 개체군이 암컷 생산을 늘려 성비 균형을 회복하려 하더라도, PSR 염색체가 부계 염색체를 소실시키는 작용을 계속하는 한 그 시도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숙주 유전체가 정상적인 성비를 회복하려는 진화적 압력을 받더라도, 유전체 내부의 기생적 요소가 그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와 대칭적인 거시 생태적 위협은 지구 온난화 속에서 파충류의 온도 의존성 성결정(TSD, Temperature-dependent Sex Determination) 체계가 교란되는 현상에서 관찰되고 있다.

온도에 따라 성이 결정되는 이상한 파충류

뉴질랜드의 고유종인 투아타라(Sphenodon punctatus)는 알이 부화할 때의 온도에 따라 성별이 결정되는 대표적인 파충류다. 투아타라는 겉모습이 도마뱀과 비슷하지만, 현생 도마뱀과는 다른 진화 계통에 속하는 파충류로 흔히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머리 위에 눈이 있어 세 개의 눈을 가졌다는 이 생물은 특별함이 외형에만 있지 않다. 투아타라는 알이 부화하는 동안의 온도에 따라 새끼의 성별이 달라지는 온도 의존적 성 결정(temperature-dependent sex determination·TSD)을 보인다. 부화 온도가 일정한 범위를 벗어나면 암수의 비율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특성은 기후변화가 생물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중요하다. 기온 상승은 서식지를 바꾸거나 먹이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의 성비 자체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화 온도가 높아질수록 수컷이 더 많이 태어나는 투아타라 개체군에서는 장기적인 온난화가 수컷 편향을 심화시킬 수 있다. 암컷이 줄어들면 번식 가능한 개체의 수가 감소하고, 개체군의 회복 능력도 약해질 수 있다. 기후변화가 생존 환경뿐 아니라 번식 구조까지 흔들어 종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이다.

투아타라를 포함한 일부 파충류는 알이 발달하는 동안 주변 환경의 온도에 따라 성별이 결정된다. 이때 암수의 비율이 1대1에 가까워지는 특정 온도를 피봇 온도(Pivotal temperature)라고 부른다.

이 온도가 달라지면 성결정의 결과도 달라질 수 있다. 특히 투아타라처럼 온도 의존성 성결정을 하는 종에서는 둥지의 온도가 높아질수록 수컷의 비율이 증가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둥지의 온도가 피봇 온도를 지속적으로 넘어서는 상황이 발생하면, 자연적인 성비 균형이 무너질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파충류의 성결정은 단순히 온도계의 숫자에 따라 성별이 기계적으로 바뀌는 과정이 아니다. 배아 발달의 특정 시기인 성결정 민감기(TSP, Thermosensitive Period)에 온도 신호가 전달되면, 세포의 신호 전달 체계와 유전자 발현 조절 과정이 달라지면서 생식기관의 발달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유전자의 발현은 DNA 염기서열 자체가 바뀌지 않더라도 조절될 수 있다. DNA 메틸화는 그중 하나로, DNA의 특정 부위에 메틸기가 붙어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후성유전적 조절 방식이다. 다만 온도에 따른 성결정은 종마다 작동 경로가 다르며, 투아타라의 성별 전환을 단순히 열이 DNA의 메틸기를 떼어내 특정 유전자를 활성화하는 과정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기후변화의 속도다. 암컷이 산란지를 선택하거나 둥지 환경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온도 변화에 대응하더라도, 서식지 전반의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면 적응에는 한계가 생긴다. 그 결과 부화 집단에서 수컷의 비율이 크게 높아질 수 있으며, 특정 조건에서는 거의 모든 새끼가 수컷으로 태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자연선택에 따른 성비 조절이 물리적 환경의 장벽에 가로막힐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나소니아의 PSR 염색체와 투아타라의 온도 의존성 성결정은 발생 원리는 전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유전체 내부의 기생적 요소가 정상적인 발생 과정을 교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 환경의 변화가 성결정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두 경우 모두 개체군의 성비가 심하게 왜곡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전적 다양성과 번식 능력의 문제로 이어진다.

성비 결정 시스템이 망가지면

집단유전학의 이론적 초석을 놓은 로널드 피셔는 양성 생식 집단에서 진화적으로 안정한 성비가 특정 조건 아래 1대1로 수렴하는 원리를 설명했다. 부모 세대의 성비가 맞지 않아 암컷이 부족하면 암컷을, 수컷이 부족하면 수컷을 생산할 때 상대적으로 높은 적합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집단의 성비는 균형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것이 이른바 ‘빈도의존적 선택 원리’의 핵심이다.

그러나 이 원리가 모든 상황에서 성비를 자동으로 1대1로 되돌리는 것은 아니다. 피셔의 원리는 특정 성별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과 번식 성공의 조건 등이 대체로 대칭적이라는 전제에서 작동한다. PSR 염색체와 같은 유전적 교란이나 기후변화처럼 성결정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존재하면 자연적인 균형 회복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성비의 극단적인 왜곡이 생태계 개체군에 가하는 가장 치명적인 타격은 번식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유효 집단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유효집단 크기가 무너질 때

집단유전학자 슈얼 라이트가 발전시킨 유효 집단 크기 개념은 실제 개체수와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집단의 규모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번식 가능한 수컷과 암컷의 수가 크게 차이 날 경우, 유효 집단 크기는 그 차이에 따라 감소한다.

전체 개체수가 외형상 일정하게 유지된다 하더라도 어느 한쪽 성별이 극단적으로 희소해지는 순간,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유효 집단 크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번식 가능한 암수의 수가 각각 10마리와 90마리라고 가정하면, 성별에 따른 번식 기여가 무작위로 이뤄지는 단순한 모델에서 유효 집단 크기는 약 36마리로 계산된다. 이는 전체 개체수 100마리보다 훨씬 작은 규모다. 한쪽 성별이 더욱 희소해질수록 유효 집단 크기는 더 빠르게 줄어든다.

이러한 유효 집단 크기의 축소는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유전적 부동은 유전자가 자연선택과 무관하게 우연에 의해 사라지거나 살아남는 현상이다. 유효 집단 크기가 작아지면 유전적 부동의 영향이 커지고, 유전자 풀(gene pool)이 빈약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유익한 대립유전자가 우연에 의해 소실되는 반면, 정상적인 큰 집단에서는 선택에 의해 제거될 수 있는 유해 열성 변이가 집단 안에 남거나 확산될 위험도 커진다.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사태

집단의 유전적 다양성이 급격하게 줄어들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가능성도 약해진다. 유전적 다양성이 거세된 개체군은 새로운 병원균의 침입이나 기후 변동에 맞설 수 있는 진화적 적응 능력을 잃을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과거 아일랜드 감자 대기근 당시 감자 재배 체계가 유전적으로 취약했던 사실은 이러한 문제를 보여주는 사례다. 감자 역병을 일으킨 병원체는 184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대규모 피해를 일으켰다. 당시 유행을 일으킨 병원체 계통은 유전적으로 매우 유사한 계통으로 확인됐다.

유전적 다양성이 제한된 재배 체계가 병원체의 확산에 취약했고, 그 피해가 대규모 식량 위기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극단적 성비 불균형으로 유효 집단 크기가 줄어든 투아타라와 PSR에 영향을 받는 곤충 집단 역시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하면 환경 변화에 대응할 가능성이 낮아지고, 번식에 참여할 수 있는 개체가 줄어들면서 개체군의 회복력도 약해진다.

수컷 편향은 폭력을 낳고, 폭력은 멸종을 낳고

수컷 편향성은 단순한 유전적 수치 왜곡에 그치지 않고 서식지 내 사회적 상호작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번식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짝짓기에 참여할 수 있는 개체들의 비율인 조작적 성비(Operational Sex Ratio)가 극단적으로 수컷 쪽으로 기울면, 짝짓기 경쟁과 영역 방어 행동이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투아타라 서식지인 뉴질랜드 북브라더 섬의 장기 생태 추적 연구는 수컷 편향 성비를 보이는 소규모 개체군이 겪는 어려움을 보여준다. 이 섬에 서식하는 브라더스섬 투아타라(Sphenodon guntheri)의 장기 자료에서는 개체들의 신체 상태가 장기간에 걸쳐 악화됐으며, 그 변화는 암컷에게서 더 두드러졌다. 연구진은 자원 경쟁과 낮은 번식 성과, 수컷 편향 성비가 이 개체군의 보전 문제를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수컷 편향 성비가 암컷에게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짝짓기 기회가 줄어드는 데 그치지 않을 수 있다. 개체군의 조건에 따라 짝짓기 경쟁과 공격적 상호작용이 증가하면 암컷의 에너지 소모가 커지고, 정상적인 채식과 휴식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암컷의 신체 상태가 악화되면 번식 성공과 생존율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번식의 병목을 쥐고 있는 암컷의 생존율과 번식 성공이 낮아지면 차세대에 유입되는 개체수도 감소할 수 있다. 게다가 태어난 새끼들마저 높은 둥지 온도에 의해 수컷 편향을 보이는 상황이 반복되면, 암컷의 희소화는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암컷의 감소가 개체군의 번식 능력을 떨어뜨리고, 번식 능력의 저하가 다시 암컷 세대의 유입을 줄이는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다층적 피드백 루프는 진화생물학에서 말하는 멸종 소용돌이(extinction vortex)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개체군이 작아지면 유전적 부동과 근친교배의 위험이 커지고, 번식 성공과 생존율이 떨어지면서 개체수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환경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유전적 다양성까지 감소하면 개체군이 회복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번식을 담당할 새로운 암컷 세대의 유입이 물리적으로 끊긴 집단은 겉으로는 성체들이 생존해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생태학적으로는 이미 스스로를 유지할 능력을 잃은 기능적 멸종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마지막 남은 개체들이 차례로 수명을 다해 사라지면 개체군은 실제 멸종에 이르게 된다. 개체수가 남아 있다는 사실과 그 집단이 미래에도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자연계의 유전적 다양성 상실과 성비 파탄이 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원리는 산업 생태계 내에서 혈연 중심의 폐쇄적 지배구조를 고수하는 ‘재벌 체제’의 취약성을 생각하게 한다. ②편으로 이어짐

글쓴이

하영균 에너지11 기술 대표

필자인 하영균 에너지 11 기술대표는 어릴적 농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독일 녹색당 강령집인 생태학이라는 책을 보고 서울대 곤충학과로 진학했다. 생태적 사고가 모든 자연과 사회현상의 뿌리가 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지역과 기업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신발 산업에 오랫동안 종사했고 글로벌 경험을 통해 산업의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살폈다. 지금은 어릴적 꿈(물로 가는 자동차)이었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위해 국내 최초 나트륨 이온 전지 회사 '에너지11'을 창업해 기술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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