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 독식이 정답일까?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이 대통령 ‘非 승자독식’ 행보 보이는데 이런 참신한 시도 뿌리내릴 수 있을까 ‘승자 독식’은 고비용 초래해 선조들의 ‘까치밥’ 지혜 깨닫아야
The winner takes it all
‘The winner takes it all(1980)’은 슈퍼스타 아바(ABBA)의 명곡이다. 이 노래는 연애 게임에서 경쟁한 승자와 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것이 규칙이니 패자는 불만을 가질 것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winner takes it all(이하 WTA)이 군소리 없이 받아들여야 할 게임의 규칙일까?
승자 독식은 곳곳에서 논란이 되어 왔다. 코미디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화제작 ‘오징어 게임’의 주제는 승자 독식이다. 세계화는 지역별 일등끼리 경쟁해서 세계 일등만 살아남는 경기장이다. 정치판에서는 힘을 가진 세력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상대방을 완전히 제압하려 한다. 두 정치 세력 사이에서도 그렇고, 한 정당 내의 파벌 사이에서도 그렇다.
어떤 나라의 대통령은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면서 자기네 나라만 잘 나갈 수 있으면 국제 질서에 대혼란이 와도 상관없다고 주장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등 국제 분쟁들이 지속되는 것도 ‘WTA’와 관계된다. WTA하에서는 서로 양보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WTA는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당연한 규칙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WTA는 생태적인 해결책은 아닌 것 같다. 자연계에 종(種) 다양성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WTA가 일어나면 생태계는 파괴된다. 기세 좋던 황소개구리는 다행히도 WTA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나라 소하천 생태계의 다양성은 보존되고 있다. 경제에서의 WTA인 ‘독점’은 경제적 정의에 위배되고 많은 폐해를 일으킨다고 간주된다. 신자유주의가 활보하는 시대에도 세계 여러 나라는 독과점 방지법을 가지고 있다. 다양성은 건강한 생태계와 건강한 사회의 지표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WTA가 여전히 제1의 규칙인 것 같다.
승자 독식과 게임이론
WTA를 추구하는 이유는, WTA가 ‘눈앞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전략이기 때문일 것이다. 대립하는 두 세력이 단판의 제로섬(zero-sum) 게임을 하는 경우 WTA가 최선의 전략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게임이 제로섬이 아니거나 여러 판 이어지는 경우에는 WTA가 최선의 전략이 아니다. 1을 놓고 싸워서 내가 1을 갖고 상대방이 0을 갖는 것이 제로섬 게임인데, 싸움에 비용이 든다면 WTA해도 얻는 것은 1보다 적을 수 있다. 제로섬이 아니라 협조를 통해 2를 만들 수 있다면, 2를 얻은 뒤 1씩 나누는 것이 더 낫다.
또한 게임이 여러 판 이어지고 다음 판에서 승자-패자가 바뀔 수 있다면, 내가 이번 판에 상대방에 대해 WTA를 시전했을 때 다음 판에서는 상대의 WTA가 나를 말살시키는 비수가 되어 되돌아올 것임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WTA는 현명한 전략이 아니다. 물론 협조와 공정한 분배를 보장하기 위한 특별한 장치가 없다면 WTA 이외의 방법은 잘 동작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게임을 무한 반복적으로 하는 경우, 나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좋은 전략이 tit-for-tat(이하 TFT)이다. TFT는 이번 판에서 내가 받은 대로 다음 판에서 상대방에게 해 주는 전략을 의미한다. 적대적 환경에서 게임이 진행되면, TFT 전략은 번갈아 가면서 상대방에게서 빼앗아 오는 것, 즉 WTA를 주고받는 것이 된다. 내가 이번 판에 진다면 내가 얻는 것은 없다. 하지만 다음 판에 이번에 내가 빼앗긴 만큼 빼앗아 올 수 있어서 균형이 맞는다면, 괜찮은 비즈니스다. 협조했을 때보다 내 몫의 총량은 적지만 게임의 목표는 눈앞의 이익이고, 눈앞의 이익은 상대방보다 많이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TFT는 적대적 상황에서 좋은 전략이 된다.
비 WTA전략
협조한 뒤 서로 나눔으로써 모든 이가 더 많은 것을 얻는 게임은 구현될 수 없을까? 사실 WTA는 규칙이 아니라 규칙이 없는 원시적 상태에서 개인들이 활동하는 모드다. 협조와 나눔의 규칙은 문명의 산물로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시스템이 동작하려면 협조를 통해 많이 생산한 뒤 혼자 먹튀(WTA)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필자의 짧은 견해로, 사회계약론은 “권력 제도와 국가의 기원은 먹튀 방지 규정에 대한 구성원들의 합의”라는 이론이다. 그러나 정치 세력들 간의 싸움은 시민들의 일상처럼 계약에 의해 규제될 수 없는 것 같다. “여당은 집권 후 야당의 몫을 얼마만큼 남겨둔다”는 법은 만들 수 없을 것이다.
‘반복적 게임 이론’에 의하면 협조가 좋은 전략인 경우가 있다. 게임의 첫 판에서 내가 협조를 수행한 뒤 양쪽 모두 TFT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다음 판에 나에게 협조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다다음 판에도 협조할 것이다. 이렇게 협조의 선순환이 일어날 것 같지만, 유감스럽게도 선순환은 ‘마지막 판’이 없는 경우에만 유지될 수 있다. 협조는 다음 판에서 내가 받을 것을 예상하고 하는 것인데, 다음 판이 없다면 이번 판은 단판 게임처럼 WTA가 가장 좋은 것이 된다(그러다 보면 마지막 전 판, 전전 판… 에서도 WTA가 최선이 된다). 판 사이 간격이 5년씩이나 되어 한 눈에 들어오지 않는 정치판에서는 그래서 협조 게임이 어렵다. 매번 게임은 뒷날을 생각 못하고 눈 앞의 이익만 쫓는 단판 게임이 되기 때문이다. 정치인 개인에게는 실제로 단판 게임이기도 하다.
냉랭한 계산에 따라 협조가 이루어지는 수도 있다. 적대적 경쟁은 높은 비용을 치룬다. WTA로 상대방에게서 1을 빼앗기 위해 내가 지출하는 비용이 2가 될 수도 있다. 합리적인 기업이라면, <협조로 늘어나는 생산량 + 줄어드는 경쟁 비용>을 <상대방과 나눔으로써 잃는 것>과 비교하여, 남는다면 WTA가 아닌 협조를 할 것이다. 경제 신문에 ‘적과의 동침’이라는 제목으로 등장하는 사안이다. 여러 당이 병존하는 내각제 정치에서는, 국회의원 머릿수를 세서 상황에 따라 제 1당이 그동안 적이었던 군소 정당과 연합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두 거대 정당으로 구성된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우리 정치와 WTA
위에 이야기한 여러가지 이유로 우리 정치판에서는 집권세력이 WTA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집권하면 먼저 힘을 가진 모든 보직을 자기 편으로 채우려 한다. 온갖 스캔들을 무릅쓰고, 우리 편에 동조하거나 우리가 조종할 수 있으면서 별 능력 없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장관이나 언론을 규제하는 자리에 임명한다. 인사청문회는 능력 검증의 장이 아니라 이들의 임명을 밀어붙이려는 세력과 이들의 존재를 지우려는 세력 간의 혈투가 벌어지는 곳이다. WTA에서 승패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타협은 불가능하다.
파면된 대통령도 현직에 있을 때 야당을 WTA하려 했다. 그러나 국회를 장악하지 못했기에 WTA가 불가능했다. 그는 언론도 WTA하려 했는데, 민주사회에서 언론을 장악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모든 반대 세력(의료인도 포함!)을 일거에 WTA하기 위해 계엄의 칼을 빼들었다. 계엄 포고문에는 무시무시하게도 “척결”이니 “처단”이니 하는 용어가 등장했다. 그는 정치가 단판 게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정치는 반복되는 게임이다. 그의 무모한 계엄은 오히려 다음 판을 2년이나 앞당겼고, 여기서 승리한 정권은 전 정권에 대해 TFT 전략으로 대응하는 모양새다.
WTA에서 벗어나는 모양새?
그러나 뭔가 달라 보이는 모습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 정권의 장관을 바꾸지 않고 기용하거나 검찰 출신 인사를 검찰 개혁하는 자리에 기용하는, 비 WTA 행보를 보여주었다. 대통령은 대단한 결단을 한 것이겠지만 주변에서는 큰 논란이 일어났다. 적대적 TFT 게임과 WTA가 정치판의 유일한 규칙으로 굳어졌기 때문에, 전 정권의 인원을 활용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검찰은 근원적인 악이기 때문에, 거기 몸 담았던 사람들도 모두 악이므로 WTA해서 절멸시켜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라면 상대방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남겨주는 참신한 시도는 뿌리내리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가 단판 승부가 아님을 생각한다면, 이번 판에 WTA를 밀어붙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상대방의 존재를 지울 수준의 철저한 청산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그것이 통합으로 나아가는 길도 아니다.

오래된 지혜들
“쥐도 도망갈 구멍을 보고 쫓는다”는 속담은 WTA로 구석에 몰린 세력의 극단적 저항이 큰 비용을 초래한다는 것에 대한 경고다. 윤석열 대통령이 몰락한 뒤 극렬 지지세력이 벌이고 있는 황당한 저항은 그들이 퇴로 없이 ‘독 안에 든 쥐’가 되었다는 위기감에서 기원했을 것이다. 적당한 퇴로를 만들어주면(즉, 아무런 대응을 않으면) 이들은 빈 광장을 떠돌다가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다.
가을에 감을 수확할 때는 모두 따지 않고 몇 개를 남겨놓는데 이를 ‘까치밥’이라 한다. 같이 살아가야 할 주변의 생명체들과 공존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한자 성어 과유불급(過猶不及), 라틴어 격언 Ne quid nimis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나치게 추구하지 않는 것이 지혜로움이라는 경구가 있음도 명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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