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키델릭’은 마약인가 치료제인가?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마음을 열어준다는 의미’ 사이키델릭 의료용에서 ‘길거리’ 남용약물로 추락 제약사가 난치성 정신질환제로 격상 ‘누가 판매하나’에 따라 합법 불법 달라져
흔히 마약이라 부르는 남용 약물은 수백 가지 이상이다. 오늘도 새로운 약물이 암시장에 출시되고 있다. 남용 약물들은 효과 또는 작용 기전에 따라 크게 몇 종류로 분류된다. 최근 주목받는 약물 중에는 분류상 ‘사이키델릭’에 속하는 것들이 있다.
사이키델릭이란?
사이키델릭(psychedelics)이라는 용어는 그리스어로 ‘마음’을 의미하는 psyche(ψυχη)와 ‘보여준다’는 의미의 delon(δηλωνω)을 합성한 것으로, “마음을 보여준다”라는 뜻이 된다. 이 이름은 사용자의 체험을 잘 대변한다. 이 약물의 사용자는 시공간 감각의 변화, 새로운 세계에 온 느낌, 감각의 융합[소리가 보이고 빛이 들리는…], 생생한 환각[실제 물체나 소리가 없는데 보고 듣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자신에 대한 느낌도 달라진다. 마음이 열린 느낌, 주변 환경과 일체된 느낌, 자아 초월의 느낌 등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자신의 마음 속을 체험하게 된다. 매력적이고 고양(高揚)된 느낌이다.
과거 이 약물들은 환각 작용 때문에 “정신병을 모방하는 약물(psychotomimetics)”로 불리웠지만, ‘사이키델릭’이라는 멋있는 이름이 사용되면서 대중의 관점도 바뀌게 되었다.
사이키델릭은 고대 정신수련자나 사제가 수련이나 의식 집행을 위해 섭취했던 식물에 포함된 성분이다. 오늘날에는 자신의 작업을 위한 영감을 얻으려는 예술가나 공연자들이 사이키델릭에 관심이 높다.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1967)는 사이키델릭 LSD 체험과 관계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사이키델릭은 약리학적으로 확실하게 정의된 개념은 아니어서, 특정 약물이 사이키델릭에 속하는지는 분류하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환각제인 LSD, 실로사이빈, 메스칼린 등이 사이키델릭의 대표지만, 최근 유행하는 엑스터시나 케타민도 사이키델릭으로 간주되며, 대마초도 지각 변화를 일으킨다는 측면에서 사이키델릭과 비슷하다(환각제). 흔히 마약하면 떠오르는 필로폰이나 헤로인, 펜타닐 등은 사이키델릭이 아니다.
사이키델릭의 변신 1: 병원에서 길거리로
사이키델릭 효과를 갖는 천연물들은 고대부터 사용되었지만 의학계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LSD에서 비롯된다. LSD는 스위스의 한 제약사가 개발하였다가 사장(死藏) 되었던 약이었는데, 발명자가 우연히 자신에게 투여하면서 강력한 향정신성(向精神性)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제약사가 찾아낸 용도는 “정신치료 보조제”였다.
정신치료는 원래 전적으로 면담으로 하는 것이다. 환자는 치료자와의 지속적인 면담을 통해서 이전에는 자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봄으로써 자신의 문제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인데, 수 년에 걸친 수백 번의 면담이 필요한 과정이다. 그런데 마음을 열어주는 약물인 LSD를 사용하면 이 지난한 과정에 지름길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1950년대에 출시되어 이런 용도로 사용되던 LSD는 1960년대 반문화(counterculture)의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로 등장한다. LSD와 대마초 등이 주는 ‘자아 초월감’은 억압적인 주류(主流) 문화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상징으로 반항적 젊은이들(히피)에게 받아들여졌다. 미국에서 반문화는 베트남전 반대운동과 관계 깊었는데, 이를 미국적 가치에 대한 위협이라 느낀 주류 정치권의 영향으로 LSD는 “의학적 용도가 전혀 없는” 위험한 약물로 분류되었고 시판 금지되었다. 이후 사이키델릭들은 길거리에서 남용 약물로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 포크 가수들의 대마초 흡연과 권위주의 정부의 강력한 단속도 비슷한 맥락이었을 것이다.
사이키델릭의 변신 2: 길거리에서 다시 병원으로
그러던 사이키델릭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케타민은 혁신적 항우울제로 재정의되어 시판중이며, 다음 주자로 실로사이빈, 엑스터시 등의 사이키델릭이 우울증, 불안장애 및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의 치료제로 개발되고 있다. 길거리에서 근근이 살아오던 약물들이 난치성 정신질환에 대한 첨단 치료제로 신분 세탁을 하는 것이다. 이 약물들이 의료용으로 조명받는 것은 사이키델릭 효과, 즉 부정적 느낌이 없어지고 현실의 제약을 초월하는 체험을 한다는 것과 관계된다.
환자가 처방 약물을 복용해서 얻는 치료 효과는 환자가 아닌 사람이 길거리 약물을 사용해서 얻는 남용 효과와 실질적으로 같다. 모르핀이나 펜타닐 등 고전적 마약(오피오이드)의 경우 치료적 진통제 용량으로 사용할 때는 향정신성 효과[약물을 남용하게 만드는 짜릿함, 하이]가 없다. 반면 사이키델릭은 치료 효과와 남용 효과가 질적으로 동일한 차원에 있다. 더구나 이 상황이 기존 약물 문제와 다른 점은, 의료적으로 사용하던 약물이 암시장으로 흘러가서 남용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남용만 되던 약물에서 제약사가 의료용 용도를 “찾아냈다”는 점이다.
사이키델릭은 나쁜가?
사이키델릭이 좋은가-나쁜가의 문제는 의학적 측면과 사회문화적 측면을 구분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의 사회문화적 측면은 문제의 의학적 측면을 보는 관점에도 영향을 미친다. 의학은 주로 자연과학이지만, 의학의 대상인 사람은 사회문화적 환경 속에서 살고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문화적 측면부터 살펴보자.
사회문화적으로는 금욕주의 문화가 관건이 된다. 범죄 기사에서는 “유흥비를 벌기 위해” 범행했다는 표현이 용의자를 비난하는 맥락에서 사용된다. 같은 범죄라도 유흥이라는 말초적 쾌락 추구가 동기였다면 도덕적으로 더 나쁜 것이다. 자아를 초월하는 체험을 했더라도, 금욕적 수련-정진이 아닌 약물을 통해 속성으로 이룬 것이라면 말초적 쾌락을 좇는 부도덕한 것이 된다. 따라서 사이키델릭은 악(惡)이다. 그런데 말초적 쾌락을 즐기는 다른 행위인 번지점프는 아무도 부도덕이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초적 쾌락의 도덕적 지위 문제는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
사이키델릭은 위험한가?
사이키델릭 약물은 우리 몸에 크게 위험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대세다. 청소년기 대마초 흡연이 후일 정신병 증상이 발생할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 이슈가 되고 있지만, 대마초를 금지시켜야 할 강력한 사유가 될 수준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약물 사용후 운전 등 위험한 행위를 하는 것[미국에서는 워낙 흔해서 DUI(Driving Under Influence)라는 약어로 통함]인데, 음주운전처럼 의학보다는 사법 영역의 문제다.
중독 전문의로서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사이키델릭도 중독성이 있다는 점이다. 사이키델릭의 중독성이 낮다는 것은 금단이 심하지 않다는 의미인데, 그렇더라도 약물에 대한 심리적 의존은 발생할 수 있다. 약물에 중독되면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떤 일이라도 한다. 약물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한다기 보다는 약물에 가스라이팅 당한 상태이며, 약물에 자신의 자율성을 팔고 노예가 된 상태다. 그 과정에서 건강한 사회인으로서의 삶은 무너진다. 알코올 중독도, 도박 중독도 마찬가지다.
물론 대마초나 사이키델릭을 취미삼아 하는 젊은이의 다수는 중독에 이르지 않는다. 청년기가 지나면 약물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고 건강한 사회인이 된다. 그러나 소수는 중독된다. 더구나 중간에 사이키델릭에서 중독성이 강한 필로폰이나 헤로인으로 갈아타면 인생을 망치게 된다. 애초에 그가 사이키델릭을 몰랐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이키델릭이 강한 마약으로 향하는 관문(關門)약물이 된 것이다.
이중 잣대
같은 약물이 암시장에서 팔리기도 하고 의료시스템을 통해 공급되기도 한다는 점은 법체계에서 딜레마가 된다. 의료용 약물이 암시장으로 빼돌려진다면 빼돌리는 행위를 범죄라 할 수 있겠으나, 공급부터가 태생적으로 한쪽은 불법 한쪽은 합법인 경우, 같은 약물에 대한 선별적 법 적용을 하는 것이다. 케타민(r-, s-이성질체 혼합물)은 길거리에서 핫한 남용 약물이다. 그런데 케타민(s-이성질체)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되는 핫한 항우울제다.
한 약물이 합법인지 불법인지를 구분하는 근거는 약물 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판매하고 사용하는가”라는 사회문화적 요건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남용할 때 보다 더 안전한 방법으로 약물을 투여하지만 그렇다고 중독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더구나 불법 약물은 사용을 못하게 하면 그만이지만, 의료용 약물의 남용 문제는 대응이 더 어렵다. 우울증 환자가 응급실을 방문하여 지금 자살 충동이 심하니 케타민을 달라고 한다면, 실제 우울증상 때문인지 아니면 약물을 남용하려는 의도인지를 의사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박한 혁신
최초의 상업적 사이키델릭인 LSD 부터 문제의 경제적 측면을 보여준다. LSD는 개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 사장되었던 약이었다. 그런데 제약사는 우연히 발견한 효과에서 정신치료 보조제라는 상업적 용도를 찾아냈다. 2020년대 제약업계의 사이키델릭 부활 움직임도 이와 비슷해 보인다. 이 약물들은 이미 효과가 잘 알려진 것들로, 개발사의 과제는 약물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밝히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효과를 치료적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해서 규제 기관의 허가를 얻는 것이다. 관건은 과학적 발견이 아닌 산업화의 가능성이다. 이런 전개는 통상적인 기술 개발 과정과는 달라 보인다. 더구나 이것이 첨단 의학으로 포장되고 있다면 그 배경이 정말 과학적 진보인지를 의심해 볼 수도 있다. (이 글에 등장한 약물의 이름 중 독자가 접해본 것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평범한 시민들은 이런 이름들에 익숙하지 않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