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누구를 행복하게 할까?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 AI의 역설과 경쟁의 심화 인류는 기술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지만, AI는 치열한 제로섬 게임 속에서 경쟁의 강도만 높이고 있으며 딥페이크 등 부작용과 함께 소수의 거대 자본과 권력층만 배불리는 도구로 변질되고 있다.
- 산업 생태계와 환경의 위기 AI 산업으로의 무모한 자본 집중은 산업 다양성을 말살하고 있으며,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데이터센터가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 등 무한 성장의 환상이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 목적과 도구의 전도 AI 시대의 진정한 목적은 성장이 아닌 인류의 행복에 있어야 하며, 기술이라는 도구가 소수의 이익을 위해 사회 전체의 여유와 환경을 잠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는 첨단 기술이 인류를 행복하게 하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질병과 기아에 시달리던 인류가 건강과 여가를 누리는 것은 기술 발전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기술 발전은 대량 살상 전쟁을 가능하게 했고,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을 일으켜 인류 생존의 조건을 위협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기술의 무한 발전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차세대 기술이 이런 문제들도 해결해주리라 낙관하면서 신기술에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기술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탐욕이 문제라 주장한다. 하지만 욕심은 자신의 생존을 도모하는 본능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자원을 빼앗아와야 한다. 욕심꾸러기 인류 공동체가 지속가능했던 것은 “욕심을 억제하고 이웃과 나누고 공존한다”는 사회적 규칙이 오래 전 발명되었기 때문이다.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이 달라지고 있다. 어떤 첨단 기술은 욕심 많은 자가 더 많이 차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보인다. “The winner takes it all.”시대다. 이 시대의 첨단 기술은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
원자력 발전보단 핵무기가 먼저
원자핵 분열을 제어하는 기술은 원자력 발전이라는 평화적 기술(물론 문제점이 많지만...)보다 먼저 핵무기로 구현되었다. 인류 역사는 핵무기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을 기록하고 있다. 직접적 피해가 아니더라도 핵무기는 그것에 대응하기 위한 핵무기를 만들게 했고, 남들이 핵무기를 갖지 못하게 한다는 명분의 침략 전쟁도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
물질적 발명만이 아니다. 필자가 이해하기로 주식시장은, 주식을 가진 사람이 해당하는 비율로 기업의 이윤을 배분받음으로써 투자자는 이익을 얻고 기업은 자본을 조달하기 위한 도구로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금융공학 기술’이 지배하는 오늘, 배당 받기 위해 투자하는 사람은 없다. 투자자는 주가가 몇배 오를 것을 기대하면서 투자한다. 금융공학은 심지어 주가가 떨어져야 돈을 버는 방법마저 만들어 냈다. 주식시장은 기업과 투자자가 서로 돕고 공생하는 장소가 아니라 욕심 많고 똑똑한 세력이 욕심 많고 어리석은 사람들을 털어가는 도박장이 되었다.
AI도 경쟁의 강도만 높여
이제 AI 시대가 되었다. AI의 능력은 멋있게 포장되어 인터넷을 떠돌고, AI가 인류를 행복하게 하리라는 상업성 믿음이 퍼져나가고 있다. 과연 그럴까. 당장 AI는 딥페이킹 범죄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인류의 행복과는 거리가 있다.
사용자들은 AI가 경쟁에서 자신의 능력치를 향상시켰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경쟁자도 AI를 써서 같은 수준으로 능력치를 높였기 때문에, AI가 나의 경쟁력 우위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룰이 없는 스포츠계에서 나도 도핑으로 능력치를 높이고 상대방도 같은 도핑으로 능력치를 높여 경쟁하는 형국이다. AI는 제로섬 게임장에서 늘어난 변수의 하나일 뿐이다.
AI가 우리에게 무엇들을 줄지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AI가 만드는 멋진 세계’라는 비전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왜곡을 담고 있다. 필자는 다소 비판적 관점에서 AI가 사회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짚어본다.
무의미해지는 산업 다양성
AI 산업이 2026년 거두고 있는 성과가 영원할 것이라 착각(또는 호도)아래 엄청난 양의 무모한 자본이 투입되고 있다. 개별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도 AI 투자를 주도하고 정권의 업적으로 삼으려 한다.
AI가 산업 다양성을 말살하는 수준이다. 자동차 회사마저 이제는 AI 기업이 되겠다고 주장한다. 주식시장의 활황도 전적으로 AI 기업에 의존할 뿐 다른 기업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새로운 산업이 생태계에 진입해서 자기 니치를 찾고 성장하는 것은 좋은 일이겠지만, 한 산업이 다른 산업들에도 필요할 자원을 다 잡아먹고 생태계의 다양성을 말살한다면, 이 생태계는 건강한 것이 아니다. 다양성 상실은 멸종의 전조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모두 담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일자리 감소하는 노동시장
산업혁명기에 기존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지만, 새로운 생산 체계는 새로운 노동 수요를 만들어 냈다. 블루칼라 직종이 화이트칼라 직종으로 대체되었다. 더구나 이 시대는 인구가 성장하고 물자가 부족했던 시대였기에, 산업혁명으로 늘어난 생산은 다 소비될 수 있었으므로 과잉 생산 - 과잉 노동력으로 인한 대량 실업 문제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이제는 AI에 의한 일자리 감소가 현실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제미나이(Gemini)에 물어보았더니 AI 시대에도 직종의 전환이 있을 뿐, 새 일자리가 만들어지리라 대답한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적 배경은 과거와 다르다. 인구는 늘지 않고, 사람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소비하고 있다. 현재 수준의 자원 소비도 지구가 견디기 힘들 정도다.
산업혁명은 지속적 성장 시대의 사건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AI 시대에 새롭게 만들어진 직업인 AI개발 엔지니어마저 AI가 발전하면서 설자리를 잃어간다고 하니, 신산업이 새로운 고용을 창출한다는 전례도 이제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무한성장에 밀려나는 환경보호
한때 떠들썩했던 기후위기, RE100 등이 언론의 화두에서 슬그머니 사라진 것은 AI와 관계 있을지도 모른다. 환경 측면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는 AI 데이터센터는 지구온난화를 부추긴다.
원전의 위험에 대한 논의도 사라지고 이제는 AI 데이터센터의 안정을 위해 소규모 원전을 적극 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전용 발전소들은 이미 데이터센터 옆에 지어지고 있다.
첨단기업 유치라며 들떠 있던 지역민들 사이에서 드디어 환경 파괴를 이유로 데이터 센터유치를 거부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환경론자들이 던지는 핵심적 메시지는 “무한성장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AI는 무한성장을 전제로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고 있다.
멋드러진 보고서의 이면
AI의 특징은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보여준다는 점이다. 기업이 보고서를 작성할 때는 결과만 있으면 문제없다. 그러나 학생이 제출하는 보고서는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료를 검색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다.
AI에 많이 의존하는 학생은 멋있는 보고서를 쓰더라도 공부한 것이 없다. 그렇게 해서 얻은 자유시간에 학생은 챗봇과 놀면서 황당한 정보를 믿게 되고, 챗봇에 중독되기도 한다.
AI가 만들어준 화려하고 복잡한 슬라이드로 학회에서 발표하는 젊은 학자들을 볼 때 필자에게 드는 생각은 ‘이 슬라이드의 내용에 발표자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들어가 있을까?’이다. 학자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이지 잘 정리된 정보가 아니다.
이 문제는 AI 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과학이 ‘개념을 만들어내는 작업’에서 ‘데이터를 요약하는 작업’으로 바뀐 것인데, 후자는 AI가 진짜 잘 하는 분야다.
AI로 누가 행복해질까?
자기 일을 스스로 해오던 사람이 AI의 도움으로 결과물의 양과 품질을 높일 수 있다면, 그는 소박하지만 AI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AI로 큰 이득을 보는 집단들은 따로 있다.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집단은 무모한 투자를 유치하는 거대 자본일 것이다. 거대 자본은 AI를 내세우면서 초거대 자본이 된다. 그 기업을 이끄는 소수의 유명인들은 계산할 수 없을 정도의 부를 축적하였는데, 부가 고용 증가 등을 통해 사회로 환원된다는 이야기는 없다.
다음으로는 초거대 AI 기업들과 거래하는 대기업들일 것이다. 삼전닉스의 비상식적인 호황으로 얻은 부를 놓고 내부인들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그들이 성과급과 배당으로 얻은 돈이 부동산 시장에 풀리면 애꿎은 시민들은 더 힘들어질지도 모른다.
기업과 공생하는 정부는 AI 기업의 호황을 정부의 업적으로 포장함으로써 정치적으로 큰 이득을 얻는다. AI 몰빵의 위험에 대한 경계는 정책의 발목을 잡는 나쁜 것이므로 공론화되어서는 안된다. 다음 선거때까지 이 호황이 지속되리라 기대하면서 정부는 무모한 산업정책을 펼친다.
AI를 사용함으로써 생산성이 높아진 기업들도 있다. AI의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모델이다. 그런데 한 회사가 AI를 고용하여 높인 생산성의 대부분이, 인간의 고용을 줄임으로써 얻어진 것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여러 영역에서 이익을 얻는 자는 그 판에서 ‘갑’인 세력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평범한 ‘을’들의 행복과는 무관해 보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문제가 AI 개발자들이 사악하고 투자자들이 멍청해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기술 개발은 항상 인류를 행복하게 한 동시에 문제점들을 가져왔지만, 지속적 성장이라는 조건아래서는 문제들이 희석되어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는 무한 성장이 불가능한 지구촌이 되었다. 무한 성장을 전제로 개발되는 막강한 기술들이 어떤 길을 가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AI는 목적이 아닌 도구다. 도구는 아무리 멋있어도 목적에 봉사하기 위한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목적이 무엇인지 잊어버리면 도구의 지배를 받는다. 우리의 목적은 행복이지 성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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