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로 빚은 ‘초정상’의 나, 진짜입니까?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 [1분 핵심 요약]
  • 현상 ADHD·비만 치료제가 병을 고치는 도구를 넘어, 남들보다 앞서기 위한 ‘일상적 도핑’이 되었다.
  • 본질 정상을 넘어선 ‘초정상’을 갈구하는 경쟁 사회가 만든 서글픈 풍경이다.
  • 경고 약물로 만든 유능함은 일시적인 화장일 뿐, 중독이라는 덫에 걸려 자율성을 잃는 순간 ‘진짜 나’는 실종된다.
  • 결론 약물에 낚여 가공된 자아로 살 것인지, 아니면 조금 부족해도 민낯의 나를 긍정할 것인지 묻는다.
  • [The Insight - 행간의 재구성]
  • 치료의 가면을 쓴 성능 개량 이제 병원은 고통을 치유하는 곳이 아니라, 더 우수한 인간으로 개조하는 ‘정비소’가 되어가고 있다.
  • 노력으로 둔갑한 도핑 우리가 실력이라 믿었던 집중력이 사실 약물의 힘이라면, 그 성공은 내 것인가 아니면 제약회사의 것인가.
  • 박제된 자아의 비극 성격과 지능을 성형할 수는 있지만, 약 없이는 일상을 유지할 수 없는 ‘기능적 노예’가 되는 대가는 혹독하다.

인공적 각성, 그 오래된 유혹의 뿌리

정신자극제(또는 자극제, psychostimulants)는 흔히 남용되는 약물 중 하나다. 이 계통 약물의 대표가 바로 무시무시한 ‘필로폰’(메스암페타민)이다. 필로폰은 각성제로 개발되어 2차 세계대전 중 노동자의 생산능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결국 엄청난 수의 중독(의존)자를 만들고 말았다.

코카나무(Erythroxylum coca) 잎에서 추출되는 코카인은 자극제 중 역사가 깊은 약물이다. 중남미 지역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코카 잎을 각성과 배고픔 감소 등을 위해 씹어 왔으니, 능력치를 높이기 위한 약물 사용은 그만큼 긴 역사를 갖는다.

코카 나무를 키우는 페루 원주민들.
코카 나무를 키우는 페루 원주민들.

아라비아 반도 및 동아프리카 지역 주민들은 카티논을 포함한 카트(Catha edulis) 잎을 코카 잎처럼 씹어왔다. 코카 잎과 카트 잎은 지역에서 문화적 전통을 갖는 기호품이지만 여기서 정제된 유효성분인 코카인과 카티논은 세계 모든 나라에서 마약으로 분류되는 불법약물이다.

이들은 같은 성분이더라도 어떤 방법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라서, 기호품이 되기도 하고 중독성 마약이 되기도 한다.

카트(Khat) 잎.
카트(Khat) 잎.

치료와 도핑 사이, 위험한 줄타기

자극제 계통의 약물은 의료현장에서도 제법 사용된다. ADHD 치료제(메틸페니데이트) 및 몇 종류의 비만 치료제(펜터민, 펜디메트라진 등)가 대표적이다. 자극제는 졸음을 쫓고, 정신집중을 높이고, 의욕을 높인다. 고용량을 사용하면 기분이 들뜨게 된다. 생각이 빨라지고 말도 많아진다.

부작용으로는 식욕부진, 불안, 초조, 자극과민성 등이 있으며 심한 경우 조증이나 조현병 비슷한 정신병적 상태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부작용인 식욕부진은 비만 치료제로 사용할 때는 치료적 작용이 된다.

멈출 수 없는 감량, 쾌락이 된 체중 조절

자극제 성분의 비만 치료제는 최대 복용량을 넘겨서는 안되며 3개월 이상 연속 사용해도 안되지만, 현실적으로는 지켜지지 않는다. 약물에 의해 체중이 줄더라도 약물을 중단하면 다시 원래 체중으로 복귀하기 때문에, 감량 효과를 체험한 사람은 약물을 중단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감량을 위해 약물을 더 많이 사용하고 싶어한다. 임의로 과량 복용해서 약물이 정신을 또렷하게 하고 기분을 띄워주는 효과까지 있음을 체험하게 되면 중단하기 더 어려워지고 중독의 길로 접어든다. 사용자는 여러 병의원을 돌아다니면서 중복 처방받아 복용량을 늘리게 된다. 이 단계가 되면 약물 사용의 목적은 더 이상 체중 감소가 아니다.

요사이 유행하는 비만 치료제(원래는 당뇨병 치료제)인 위고비, 마운자로 등은 자극제가 아니며 향정신성도 보고되지 않지만, 이 약물을 처방받는 사람들의 동기는 자극제성 비만 치료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장기적 사용의 심리적 결과는 알 수 없다.

‘공부 잘하는 약’의 함정: 초정상의 저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는 남용의 세계에서 유명한 약물이다. 집중력이 부족하고 산만해서 정상적 학교생활이 어려운 어린이 중에는 자극제 치료후 집중력이 높아지고 정상적 학교생활이 가능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어린이에서 자극제의 효과가 치료적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약물의 집중력 증진 효과는 집중력이 정상 수준인 사람에게서도 나타난다.

약물이 정상을 “초(超)정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이 약물은 “공부 잘하게 하는 약”으로 소문이 났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생부터 강남의 초중고생까지, 약물을 사용하면 집중이 잘되고 공부도 잘하고 시험도 잘 칠 것이라는 기대아래 이 약물을 스스로 복용하거나 부모가 복용시킨다. 물론 약물 사용후 느끼는 각성감이 곧 성적 향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치료적 용량으로 적절히 사용하면, ADHD 치료제는 기분 상승을 일으키지 않는다. ADHD 치료를 위해 경구 투여하는 서방정(위장관에서 천천히 흡수되도록 만든 특별한 제형)과 정맥 주사하는 필로폰은 같은 계통의 약물이지만 우리 마음에 대한 효과가 전혀 다르다. 그러나 ADHD 치료제 처방이 흔한 지역에서는, 이 약물을 처방받은 것보다 고용량 복용하거나 기분 상승을 일으키는 새로운 방법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런 사용은 또래들 사이에서 유행으로 번져 나간다. 이렇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는 왜 ‘약물 인간’이 되려 하는가

비만 치료제와 ADHD 치료제는 병원의 정식 처방으로 시작한다. 처방의 이유는 질병 치료이므로 의학적으로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이유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심한 비만은 병이다. 심혈관계 합병증이나 대사증후군의 위험도가 높은 조건이다. 체중 감량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신체 일부를 훼손하는 수술적 치료까지도 고려된다. 그런데 약물로 비만을 치료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건강상의 위험 때문이 아니라 날렵한 몸매를 가짐으로써 남의 주목을 받고 싶기 때문에 병원을 찾는다. 의사로서는 비만이라는 진단이 가능하고 치료제 처방도 가능하다면, 치료해달라는 환자를 굳이 거부할 이유가 없다.

ADHD의 경우도 비슷하다. 약물치료로 극적인 행동 호전을 보이는 어린이들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성인 ADHD로 자가진단하고 병원에 오는 청년들은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 아니다(성인 ADHD는 어린 시절 ADHD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자연치료 되지 않고 지속되는 상태를의미한다).

그동안 주어진 과제를 나름대로 해결하면서 살던 사람이 유튜브를 보고 자신이 ADHD라는 판단을 내린 뒤, 약을 먹으면 공부도 더 잘하고 업무 능력도 향상되리라 기대하며 병원을 찾는다.

이런 종류의 비만과 ADHD는 경쟁이 심한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다. 날씬한 몸매나 초집중력이 있어야 승자가 되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상태는 치료의 대상으로 간주된다.

뚱뚱하지 않은 비만 환자와 주의력이 낮지 않은 ADHD 환자가 “치료”받는 것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약물의 힘으로 능력치를 향상[치료(treatment)와 대비해 증진(enhancement)이라 함] 시키려는 것이다.

스포츠계에서는 약물로 능력치를 향상시키는 것(도핑)을 절대 금기시하는데, 자극제는 도핑 금지 약물 1호다. 물론 순위와 기록을 놓고 다투는 스포츠계에서 요구하는 공정의 윤리를 우리 일상생활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성능 향상의 청구서: 지워지는 자아

중독은 전염병과 같다. 중독성 물질을 접할 기회가 늘어날수록 많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비만과 ADHD 치료제는 합법 영역의 약물이므로 불법 약물인 필로폰보다 접근성이 훨씬 높다. 더구나 약물이 자신을 더 멋있고 능력있게 만들어준다고 믿으면, 중독성에 대한 심리적 경계도 하지 않게 된다.

성공적 결과를 얻은 사람은 약물로 이룬 자신의 변화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부러움을 산다. 친구들끼리 서로 약물 사용을 권장하는 분위기마저 만들어진다. 그러다가 중독되어 자신이 약물에 “낚였음”을 깨닫는 것은 휠씬 뒤다.

자극제 사용자중 일부는 환청과 망상을 동반하는 정신병적 상태를 겪는다. 불필요한 치료를 하지 않았더라면 겪지 않았을 심각한 부작용이다. 대개는 원인 약물만 중단하면 정상으로 돌아오지만, 필자에게 진료받는 환자 중 일부에게는 더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했다.

이때 사용되는 조현병 치료제는 부작용으로 주의력을 떨어뜨리거나 체중을 증가시킨다. 작용기전 및 효과가 자극제와 반대이기 때문이다. 중독에 이른 환자라면 자극제 중단이 불가능하므로, 자극제와 그 반대인 조현병 치료제를 같이 사용하는 이상한 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 않아도 될 치료를 했다가 겪는 비용이 너무 높다.

화장을 지운 ‘민낯의 나’를 견딜 수 있는가

스마트 약물의 원조는 자극제가 아닌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플루옥세틴)이었을 것이다. 이 약물은 비관적이고 음침했던 사람을 낙관적이고 활발한 사람으로 바꾸어 줄 수 있다. 일상적으로 보면 성격이 달라진 것이지만 의학적으로는 만성적인 우울증이 치료된 것이다. 물론 약물을 중단하면 원래 성격으로 돌아간다. 의학적으로는 치료 중단으로 병이 재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격에 가까운 만성적 우울상태가 이 사람의 민낯이고, 프로작 사용후 바뀐 밝은 상태는 마음에 “화장”을 한 것이라 보는 견해가 대두되었다. 정신과의사 크래머(Kramer, P)가 저서 “Listening to Prozac(1993)”에서 성형 정신약물학(cosmetic psychopharmacology)이라 한 것이다.

'Listening to Prozac'의 책표지.
‘Listening to Prozac’의 책표지.

그러면서 “약물의 영향으로 변화된 나를 진정한 나로 볼 수 있는가”라는 실존적 논란이 생겼다. 변화된 모습이 내가 바라던 방향이더라도, 약물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프로작 사용후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이질감(異質感)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반면 프로작은 중독성이 없으므로 약물을 사용할지 말지를 내 자유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데, 내 자율적인 결단으로 약물을 사용하기로 했다면 그 결과로 변화된 내 모습은 진짜 내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 스스로의 판단으로 성형수술한 것과 같다.

물론 자극제처럼 중독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약물을 사용한다면 그 결과는 내 자율성이 만들어낸 진짜 내 모습으로 볼 수 없을 것이다.

글쓴이

강웅구 서울대 의대 교수

강웅구는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뇌의 유전자 발현 이상 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대표저서로 <정신병리학 – 정신병리의 개념적 접근>(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이 있다.

댓글

    함께 읽을 글

    칼럼 전체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