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이냐 범죄냐...네 행동에 책임져라

구글 제미나이 생성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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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행위가 정신질환 탓일까 범죄 행위를 정신질환이나 면책 사유로 포장하여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는 인간의 자주권과 존엄성을 포기하는 도덕적 해이다.
  • 책임능력이 부족한 이들의 보호 정신질환과 면책 제도는 실제로 책임 능력이 부족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며, 명백한 범의를 가진 범죄에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 필요한 까닭 현행 촉법소년 연령 기준은 도덕 발달단계에 비해 지나치게 높아 청소년의 자주권과 양심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으므로 낮출 필요가 있다. 스스로 자주권과 존엄성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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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착증을 치료해주세요”

최근 필자에게 자신의 “성도착증을 치료해 달라”고 오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성도착’이라는 것의 개념이 애매할 뿐만 아니라, 이런 문제로 치료받겠다는 사람들이 얼마전까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성도착’인지 들어보면, ‘도촬’을 ‘성도착’이라 하는 것이었다. 관음증은 다른 사람들의 성행위를 보면서(당사자는 구경당하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성적 만족감을 느끼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정신의학적으로 질병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 몰카를 화장실에 장치해 놓거나 스마트폰으로 지나가는 여성들의 하체를 촬영하는 것을 ‘관음증’이라는 병적인 상태로 보아야 할까? 더구나 이 청년은 왜 그 문제를 병이라며 치료해달라고 온 것일까?

이유가 있었다. 이 젊은이는 도촬하다가 경찰에 검거된 것이다.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이므로 형사처벌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이 상황에서 변호사의 자문을 얻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자신의 범죄행위를 정신질환 때문이라 주장함으로써 처벌을 면제 또는 경감받을 사유를 만들려는 것으로 짐작된다. 몰카 찍는 것을 정신질환의 증상으로 포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성도착증이라는 병에 걸렸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강박적(병적)으로 스마트폰 도촬을 하는 사람도 물론 있다. 필자도 이런 사람을 진료한다. 그러나 이 청년이 성도착증이나 강박장애 등 정신질환 상태여서 그 증상 때문에, 하지 않으려는 자신의 선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불법 촬영을 하게 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도촬이 범죄임을 알면서도 한 것은 강박증상 때문이 아니라 “설마 내가 적발될까”하고 믿었던 탓이다.

경찰에는 반성문과 함께 향후 이러이러하게 치료받겠다는 계획을 제출하였을 것이다. 그 계획의 일환으로 이 젊은이는 필자에게 진료받으러 왔다. 필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지만, 그렇게 온 사람에게 “당신은 병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을 치료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기에는 부담이 된다. 나 자신이 진료거부로 고소를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신질환과 책임능력에 대하여

형법체계가 범죄자를 처벌할 뿐만 아니라 형사 책임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그러나 보호를 위한 제도가 명백한 범의(犯意, mens rea)를 가지고 저지른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도덕적 해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도덕적 해이보다 필자가 더 우려하는 점은, ‘내가 한 일에 대해 당당하게 책임질 수 있는 권리’를 가볍게 포기하고 ‘책임능력 없는 정신질환자’가 되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는 태도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정신질환이 있으면 형사적으로 면책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하여 두가지 상반된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책임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는 관점이다.(형법 10조에 이 관점이 담겨있다). 범의가 없는, 범죄임을 깨닫지 못하고 행위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처벌은 부당하다.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것은 인간 존엄성의 최소한도의 요건이다. 정신의학자는 법원으로부터 형사피고인의 책임능력 여부를 평가해 달라는 요구를 받는다(정신감정). 필자를 찾아온 도촬 청년은 정식 감정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필자에게서 도촬이 정신질환의 증상이므로 형사적 책임을 지울 수 없다는 판단을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자율성(autonomy) 또는 자주권(sovereignty)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 존엄성의 기반이라는 관점이다. 자주권의 핵심은 내 뜻대로 행위하면서 그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주인은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지만, 주인의 명령에 복종한 노예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다. 책임을 면제받음은 노예의 지위가 되는 것이다.

필자를 포함한 정신의학자 대부분은 정신질환이 면책사유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지만, 1960년대의 급진적 정신의학자 사즈(Szasz, T.)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면책은 인간의 자주권에 대한 침해라는 견해를 강력하게 표명하였다. 그는 정신의학자가 형사피고인의 책임능력을 평가하는 것도 ‘성직자가 신도의 신심을 평가하는 것’처럼 부당하다고 보았다.

상식적 판단은 어떻게 내려질까

두가지 모두 타당할 수 있다. 지능 수준이 애매하게 낮은 청소년은, 다른 사람이 시키는 제법 복잡한 일을 잘 수행하지만 그것이 ‘해도 되는 일인지’를 판단할 능력은 부족하다.

그래서 나쁜 사람들의 꼬임에 빠져서 휴대폰 사기 등의 범죄에 연루된다. 이 청소년을 아는 정신과의사는 그가 일으킨 문제에 냉랭한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가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범죄인지 잘 모르고 이용당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런 청소년들을 앞세워서 자신은 빠져나가면서 범죄 수익을 갈취하던 사이코패스가 결국 검거되었는데, 자신의 범죄를 ‘반사회적 인격장애’라는 정신질환의 결과로 인정해달라고 정신감정을 신청한다면, 기꺼이 응하는 정신과의사는 없을 것이다.

이렇듯 사안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터인데, 달라지는 판단의 배경에는 정신의학적 지식 보다는 우리 모두의 상식이 있을 것이다.

마약 사용자의 경우에는 ‘치료조건부’로 불기소하는 제도가 실행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다수는 자기 힘으로 약물을 끊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이들은 실제로 치료가 필요한 상태이며, 치료기간동안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받을 의무를 받게 된다. 치료가 잘 되면 약물을 끊거나 사용이 줄어드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반면 자발적 성도착자들은 강박적으로 도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스스로의 판단으로 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정신과 치료가 아니라 형사책임을 한번 경험하는 것이 더 좋은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도촬의 동기였던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틀렸음을 확실하게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촉법소년의 연령기준에 대하여

요사이 논란이 되고 있는 ‘촉법소년’이라는 면책사유도 같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촉법소년의 경우 연령이라는 기준이 명백하기 때문에, 범의가 분명한 경우에도 개인별 평가 없이 면책된다. 자동적으로 책임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를 이용해서 범죄행위를 반복하는 소년들도 있다고 하는데,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책임에 대한 인지능력이 아니라 도덕적 판단을 하는 능력인 양심(良心)이다(사이코패스에게 결여된 능력이 양심이다). 양심은 4-5세부터는 생기며, 만 11세면 ‘결과가 아닌 동기에 따라 행위를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도덕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이다.

지금의 촉법소년 14세라는 기준은 도덕 발달단계 이론에 비추어 많이 높다. 도덕적 판단력이 늦자라는 사람을 기준으로 삼아 충분히 여유있게 나이를 결정하는 것도 공정함의 일종이겠지만, 그 이면에서 인지적으로만 조숙한 촉법소년들은 다른 사람을 착취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반복 학습한다. 양심의 발달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특정연령 이하 청소년들에게 일률적으로 형사책임을 면제해 주는 것은, 그들이 판단력과 양심을 가질만큼 충분히 성장-발달했다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자주권과 존엄성을 무시하는 조치일 수도 있다.

일부 청소년이 이를 특권이라 생각하면서 왜곡된 도덕관을 키워나게 된다면, 그들이 자주권과 존엄성을 갖춘 건전한 시민으로 성장하는데 오히려 나쁜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이 칼럼을 영상으로 · 1:53 처벌 피하려는 범죄자들의 비열한 꼼수! 정신과에선 통할까?
글쓴이

강웅구 서울대 의대 교수

강웅구는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뇌의 유전자 발현 이상 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대표저서로 <정신병리학 – 정신병리의 개념적 접근>(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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