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일회용품 중독을 끊지 못할까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습관화된 일회용품 중독, 문명중독 약물의존 환자차럼 중독된 일회용컵 사용 못하면 불편해지는 금단 증세까지 문명의 이기들에 중독되어 환경 피해를 쾌락을 끝까지 추구않는 지혜를 가져야
이 시대의 화두 중 하나는 ‘중독’이다. 그래서 중독이라는 용어는 술이나 약물이 아닌 일상생활에도 적용되고 있다. 게임 중독도 있고 도박 중독, 쇼핑 중독, 운동 중독, 심지어 일 중독도 있다. 우리 문화의 모든 것이 중독을 일으킨다. 물질 문명의 첨단에서 전진하는 일회용품도 강력한 중독성이 있다.
일회용품은 내성과 금단을 일으킨다
일회용 컵이 세상에 나오기 이전에 우리는 카페에 앉아서 음료를 마셨다. 길거리 다니면서 커피를 마실 수 없어서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커피를 일회용 컵에 담아서 걸어다니면서 마실 수 없게 된다면 삶이 불편하다고 느낄 것이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지만 사용하다 보면 뭔가 좋은 것이 있어서, 이제는 그것이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중독(의존)의 핵심이다. 그래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고 사는 것은 약물의존 환자가 약물 없이 살아가는 것만큼 힘들다. 법적인 규제도 별 효과가 없거나 규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유명무실했던 일회용 컵 반환 제도를 생각해 보라(이 제도는 물론 일회용품을 제한하는 직접적 조치도 아니었지만).
일회용품에 중독되었다는 말은 단순한 비유 이상으로, 중독의 핵심적 양상과 관계된다. 길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이제는 편리함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일회용품이 주는 편리함에 내성(耐性)이 생겼다는 의미다. 내성과 동전의 앞뒷면인 금단(禁斷)은 사용 못할 때 느끼는 불편감으로 나타난다. 일회용품이 없던 시절에는 커피를 카페에 앉아서 마신다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걸어다니면서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느끼게 된다. 내성과 금단은 약물 중독의 주요 증상이다.
필로폰의 경우
필로폰(옛 명칭은 히로뽕)은 2차대전 중 일본과 독일에서 군수품 노동자와 병사들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했던 약이었다. 종전후 나타난 수많은 중독자를 통해 비로소 이 약물이 심각한 의존성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일시적인 효용을 위해 도입된 것이 나중에야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밝혀진 것이다. 물론 연합국 측에서는 이 약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전쟁을 문제없이 수행할 수 있었으므로 필로폰은 전쟁에 필수적 아이템이 아니었던 것임이 분명하다.

일회용품으로 대표되는 많은 문명의 이기(利器)들도 비슷하다. 처음 도입될 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중독성은 그 도구가 널리 사용됨으로써 밝혀지게 된다. 널리 사용되고 나면 더 이상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생활이 불가능해지므로, 일회용품 중독이 환경에 일으키는 폐해는 통제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다.
일회용품 대체요법
일회용품에 의한 환경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산업과 문명의 이기가 등장한다. 바다거북의 코가 플라스틱 빨대에 꿰어 있는 그림이 등장하면서 플라스틱 빨대는 ‘환경의 적’이라는 인식이 퍼졌다. 그래서 새로운 문명의 이기인 ‘종이 빨대’가 등장하였다. 플라스틱 빨대보다 품질이 약간 떨어지더라도 친환경 운동에 동참하자는 논리로 종이 빨대는 사용 범위를 넓혀갔다.

그런데 원래 음료는 빨대 없이도 마실 수 있는 것이다. 종이 빨대는 빨대를 안 쓰는 것보다는 환경에 나쁜 것이 분명하지만, 슬그머니 친환경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환경에 대한 죄책감없이 종이 빨대를 사용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일회용 컵 뚜껑은 빨대와 같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음에도 환경의 적으로 지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상적인 거북 코 같은 사진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무엇이 친환경 제품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구분하는 경계가 과학만은 아닌 것 같다. “그린워싱” 하는 기업은 이런 점들을 노려서 자기 회사나 제품을 친환경이라 포장한다.
중독성 약물 대체요법
약물 중독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알코올 의존을 치료하기 위해 한때 사용되었던 GHB라는 물질은 알고보니 그 자체가 오남용될 수 있는 물질이었다. 헤로인 의존을 치료하기 위한 표준적인 치료법은 헤로인 유사 약물인 메사돈이나 부프레노르핀을 사용하는 것이다. 요사이는 환각제인 사이키델릭(psychedelics) 약물로 다른 약물 의존을 치료할 수 있다는 주장도 학계 일부에서 퍼지고 있다.
약물 중독의 문제가 “준 중독성” 약물을 상품화하는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 이 분야의 제약 산업과 환경친화적 대체품 산업은 비슷한 점이 있다. 대체품이 기존의 것보다 건강/환경에 안전하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에 불과하지만, 상대적이라는 개념이 슬쩍 감추어진 채 ‘절대적으로’ 안전한 것처럼 주장된다.
상대적으로 더 안전한지조차 확실하지 않은 경우마저 있다. 사이키델릭 약물이 일으키는 환각상태는 그것으로 치료하려는 약물의 중독상태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종이의 원료인 나무를 벌목하는 것의 환경 비용부터 따진다면,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에 비해 실질적으로 환경 오염을 줄이는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간단히 평가할 수 없다.
일회용품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독의 문제는 일회용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의 물질 문명 자체가 중독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신상품은 새롭다는 것만으로 주목받는다. 주목받는 것은 중독성 아이템이 가져야 할 필요조건이다.
기업은 소비자의 주목을 계속 끌기 위해 계속 신상품을 만들어 낸다. 새 스마트폰의 발매 주기는 1년 미만이다. 기사를 빙자한 광고는 때를 맞춰서 신상품의 혁신을 칭찬한다. 여기 말려든 “얼리 어댑터”들이 지갑을 열고 새 소비를 하는 주기도 같이 짧아진다. 폰은 기능이 떨어져서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쿨하지 않아서 폐기된다. 일회용품이 쓸 수 없게 되어서가 아니라 씻어쓰기 귀찮아서 폐기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업으로서는 이것이 판매를 높이는 전략이다. 소비자를 자기 제품에 일단 중독시켜 놓으면, 그들은 무심코 새 종이컵에 음료를 따라 마시듯 무조건 신상품을 구입하게 되어 있다. 기업에게는 많은 사람을 중독시키는 상품이 좋은 상품이겠지만, 많은 생산과 많은 소비는 결국 환경에 부담이 된다. 스마트폰은 내구성 사무용품이 아니라 유행에 따라 소비되는 일회용품 같은 물건이 되었다.
처음부터 없었더라면?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제품이 강력한 수요를 창출한다면, 이 혁신이 환경에 부담을 지우는 것이 될 수 있다. 일회용 컵에 씌우는 플라스틱 뚜껑이 발명되었는데, 이 뚜껑은 일회용품 세계에서는 “혁신”이어서, 음료를 담는 기능과 관계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테이크아웃 음료의 컵에는 뚜껑이 씌워지게 되었다. 결국 플라스틱 소비는 그만큼 늘어났다.
수많은 벤처기업과 대기업들은 이전에는 없었던 혁신적 상품을 저마다 출시한다. 신상품은 우리 삶을 혁신적으로 편리하게 만든다고 광고된다. 광고에는 신상품이 친환경적이라는 멘트도 곁들여진다. 우리는 그 상품 없이도 별 문제없이 살고 있었지만, 친환경이라는 광고에 혹하면 “불필요한 소비를 절제해서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불편한 마음을 접어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질러버리게 된다. 결과로 소비는 하지만 그것을 소비한다고 우리의 행복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인 치료법은 없을까?
중독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처법은 현상 유지하는 것이다. 헤로인 중독 치료법은 헤로인을 못하게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헤로인 대체물을 안정적으로 투여하는 것이다. 이때 사용하는 치료제가 헤로인보다 안전하다는 것은 많은 연구와 경험을 통해 어느정도 확립되어 있으므로, 플라스틱 빨대를 대체하는 종이 빨대보다는 더 확실한 근거를 갖는 대책이다. 치료제가 좋은 약이어서 이렇게 치료하는게 아니라, 헤로인을 끊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헤로인 중독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책은 예방, 시민들이 헤로인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고 사는 것이다. 헤로인을 모르더라도 우리가 불행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텔레그램이나 다크웹을 통한 약물 거래가 일상화되기 이전에는 우리나라의 약물 중독 문제는 지금처럼 널리 퍼지지 않았다. 대개의 젊은이들은 마약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옆에 약물을 사용하는 친구가 있고 스마트폰으로 약물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호기심 많은 청년의 삶은 달라진다. 중독은 우연히 한번 해본 것이 두번이 되고 세번이 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 “우연”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중독도 발생하지 않는다. 이를 일회용품에 적용하면 “적어도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더 쓰지는 말자”가 된다. 이제 우리는 일회용품이 환경에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앞으로 새로 개발될 일회용품들도 많이 있다. 어떤 기업은 그러면서 ‘혁신’을 내세울 것이다. 혁신 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유능한 정부의 임무라는 주장마저 강력하게 퍼져 있는 세상이다. 소비자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혁신의 별 것 아닌 편리함을 즐기다가 결국 중독되어 버린다. 편리함에 중독되면, 그것이 없었을 때는 불편하지 않던 일들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진다.
이런 물건들은 환경 보호의 관점에서는 출시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이다. 편리함과 환경을 맞교환 하는 것인데, 중독이 되면 편리함의 가치 보다는 사용 못하게 되었을 때의 불편감이 훨씬 커지기 때문에, 뒤늦게 문제를 깨닫더라도 환경 보호보다는 계속 사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중독의 전형적인 경과다.
에피쿠로스의 지혜
쾌락주의자의 대표격인 에피쿠로스(Epicurus, 341-270 BC)는 최고의 쾌락이 공포로부터의 자유(ataraxia) 및 신체적 통증이 없음(aponia)이며, 세계의 작용과 우리 욕구의 한계를 깨달음으로써 여기 도달한다고 보았다. 그의 쾌락주의는 자극이 아닌 평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행복을 위해서는 최소한을 추구하는 단순한 삶이 중요하다. 예컨대 맛있는 것에 식탐을 부린다면 당장은 즐거울지 몰라도, 나중에 그 음식을 얻지 못하게 되면 더 크게 불행해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쾌락과는 차이가 있지만, 진짜 행복은 당장의 쾌락을 끝까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혜다. 일회용품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에피쿠로스의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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