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을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②
[이영균의 말이란 말야] 억울함 푸는 것도 전략 필요하지만 감정은 자기 내부에서 푼 다음, 외부에 취할 태도 고민하는 것이 현명한 프로세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사람들이 억울한 상황에 처했을 때 왜 그토록 괴로워하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인간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속성과 연결이 돼 있는 것 같다. 앞의 다른 칼럼(2024.04.23 “지적질의 전략, 충고의 테크닉”)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대부분의 인간은, 심지어 감옥에 갇힌 죄수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실제 잘못을 했어도 인정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오해나 모함에 의해 죄를 뒤집어쓰게 됐다면? 그렇게 보면 억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심지어 목숨을 던질 정도로 분노를 표출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난 번 칼럼에서 우리는 이렇게 억울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억울함을 호소하는 방법에 대해서 살펴봤다. 그런데 전술했듯이 때로 어떤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도 모든 의혹과 혐의가 해소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육참골단’, 즉,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을 택해야 하는 때도 있다. 자칫 다 얻겠다고, 다 회복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억울함만 더 커지는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철 : 뭐라구요? 살인을 인정하라구요? 전 안죽였다구요!
변호사 : 이게 최선입니다. 지금 임경철님은 정황적으로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요. 당시 집안에 두 분 밖에 없었고 두 분이 크게 다투는 소리가 이웃에 들렸는데다가 보험 수혜 등 객관적 살인 동기도 있고 심지어 아내분 옷에 경철님 지문까지 있었으니 어떻게 빠져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경철 : 아! 미치겠네. 그날 좀 다툰건 사실이지만 방에서 자다가 나왔는데 마누라가 땅바닥에 누워 있길래 깨우려고 몸을 흔든 것 밖에 없다구요!
변호사 : 네. 저는 믿지요. 부인 분께서 혼자 미끄러져서 사망하셨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를 입증할 방법이 없어요. 인정을 하지 않으면 고의로 살인을 한 것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것보다는 인정을 하고 형량을 줄이는 것이 현명합니다. 다툼 중 몸 실랑이가 있었는데 아내 분이 미끄러지셨다고 말씀하시는 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고의성이 없는 과실치사가 돼서 형을 줄일 수 있어요. 몸에 다른 물리적 상흔은 없으니 받아들여질 겁니다.
경철 : 아! 정말 미치겠네. 짓지도 않은 죄를 인정해야 한다구요?
변호사 : 죄송합니다…
아마도 실제로 이런 누명을 쓰게 된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황 증거, 살인 동기만으로 이런 누명을 쓰게 된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피해자 몸에 지문까지 남아 있다면 이건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세상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수없이 많은 사건들이 존재하니 그 중에 억울한 경우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하여간 많은 경우 검사와 변호사는 형량을 가지고 ‘거래’를 한다. 억울한 입장에서 생각하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만 신이 아니고서야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진실을 100%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그 일이 있을 ‘확률’을 가지고 거래를 하는 것이다. 만약 정황 증거에 살인 동기, 심지어 물리적 증거까지 있다면 실제 살인이 벌어졌을 확률이 매우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경우 당연히 검사쪽이 유리해진다. 그러므로 피고 변호사측은 유죄를 인정하고 대신 형량을 줄이는 방식을 모색한다. 증거상 범행 확률이 적다면 당연히 무죄를 받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극단적인 억울함의 케이스이기 때문에 공감이 적을 수 있다. 일상에서 쉽게 마주치는 경우는 아니니까. 그런데 의외로 우리 일상에서도 이렇게 빠져나갈 수 없게 억울한 케이스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억울함을 최소화하는 전략
방 청소를 했는데 그 방에 있던 귀중품이 사라졌다든지, 체육시간에 교실에 혼자 남아 있었는데, 학우 중 누군가가 돈이 없어졌다고 해서 의심을 받게 됐다든지,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와 연관된 일까지 내가 한 것으로 오해받는다든지… 억울함을 풀고 무혐의를 입증하기가 어려운 상황들이 의외로 많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 지난 번 칼럼에서 이야기한 대로 ‘팩트파인딩 & 솔루션 찾기’를 통해 본인의 억울함을 풀 방법을 찾아봐야겠지만 어떻게 해도 실마리를 찾지 못할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어쩔 수 없다. 무언가를 희생할 수 밖에…
귀중품이나 돈이 없어졌다면 도둑으로 몰리는 것보다 차라리 경찰에 신고를 하라. 경찰 조사를 받는 수고를 자처하는 것이다. 그것이 도둑으로 오해받고 두고두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는 것보다는 나을 수 있다. 사소한 잘못 때문에 그와 연관된 일까지 범인으로 몰렸다면 다 부인하는 것보다는 사소한 잘못은 인정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나중에 사소한 잘못을 내가 저질렀다는 것이 밝혀지면 전체 문제의 범인으로 확정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때로는 억울하더라도 그 억울함을 최소화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얼핏 듣기에 말이 좀 이상하지만 ‘억울함을 최소화한다’는 것이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법정 다툼이라면 형량을 최소화하는 것이요, 일상에서도 최소한 ‘나쁜 놈’이나 ‘파렴치한 놈’으로 몰리는 것만은 막자는 정도의 느낌이겠다.
준성 : 미치겠다. 어제 지윤씨랑 그냥 집이 같은 방향이라 함께 귀가한 것뿐인데… 와이프가 난리야. 난 정말 그 여자랑 아무 관계도 아닌데…
영진 : 왜? 제수씨가 안믿어?
준성 : 안 믿는 정도가 아니야. 내가 그 여자랑 사귀는 사이라고 단정짓고 울고불고 이혼한다고 소리치고 난리야.
영진 : 아이고…
준성 : 나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야. 심지어 어머니 이름 걸고 맹세한다고 해도 안믿네…
영진 : 아니, 어쩌다 그렇게까지 불신이 쌓인거야? 제수씨가 의부증이 있나?
준성 : 사실… 예전에 바람 피우다 걸린 적이 있거든…
영진 : 아이고, 못믿는데 이유가 있었네. 오해할 만하다!
억울한 사람에게 건네기 어려운 조언이긴 한데, 사실 억울함이 느껴질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일단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책임을 돌아보는 것이다. 상대가 왜 이렇게 나를 믿지 못하는 건지, 이런 억울한 상황에 처해진 것에 내 책임은 없는지 등을 돌아보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과 연관된 억울함
예외적인 몇몇 상황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억울함에는 과거에 연관된 무언가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나의 과거 잘못이 이유인 경우도 있고 내가 던진 말이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온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어찌 되었건 이 억울한 상황에서 내 책임이 무엇이고 얼마만큼의 내 잘못이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일종의 자기 반성을 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자기 반성만으로 상당 부분의 억울함이 풀리게 된다. 내 잘못을 깨달음으로써 못믿는 상대를 용서하게 되는 것이랄까?
물론, 매우 어려운 얘기이다. 이 정도를 할 수 있을 정도면 굉장히 성숙한 사람일 것이고 자기 수양의 깊이가 상당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억울하다는 것은 어찌 되었건 자기 방어기제가 작동한 감정이다. 따라서 짓지 않은 범죄에 범인으로 몰리는 등의 상황이 아니라면 자신을 다스리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누그러뜨릴 수 있는 감정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억울한 감정이 솟아오른다면 일단은 자기 내부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상당 부분을 해결한 다음 외부에 취할 행동과 말을 고민하는 것이 현명한 프로세스이다.
필자도 그렇고 독자들도 그렇고 억울한 상황에는 빠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내 맘대로만 살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인생이니 우리가 언제 어떻게 이런 상황에 처해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두 차례에 걸친 칼럼에 나온 내용 정도는 미리 습득하고 있다면 훨씬 수월하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삶의 평안이란, 힘들고 어려운 일이 전혀 없는 상황이 아니라 난관을 맞더라도 담대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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