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마법에서 벗어났을까?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한국, 탈마법에 성공했을까 정치·경제·문화, 마법에 사로잡힌 모습들 정치는 마녀사냥, 경제는 신자유주의에, 문화는 첨단기계로 찍어내는 상품들에. 마법에 조작당한 줄도 모른 채 살아가

2021년 12월 당시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TV토론회 당시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자를 그려놓은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사진=연합뉴스
2021년 12월 당시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TV토론회 당시 손바닥 한가운데에 '왕(王)'자를 그려놓은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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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과 탈(脫)마법

영어 단어 “disenchantment”는 긍정적 의미로도, 부정적 의미로도 사용된다. 부정적으로는 ‘환멸(disillusionment)을 느낀다’는 뜻이고 긍정적으로는 ‘각성(awakening)한다’는 뜻이다. 반대에 가까운 이미지지만, 둘 다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나에게 주어진 것을 돌이켜보는 상황을 기술한다. 미몽(迷夢)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Entzauberung(탈마법화)이라 하였다. 어원적으로 마법(Zauber)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바로 disenchantment다. disenchantment도 마법(enchantment)에서 벗어남이다. 일상생활에서 마법이라는 말은 “매력적이고 환상적인”이라는 긍정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기도 하지만, 베버가 의미한 마법, dis-enchant되는 마법은 우리를 옭죄고 있던 전통적-종교적 가치관이다.

마법에서 벗어남은, 계몽주의 이후 이성이 강조되면서, 비이성적인 종교와 관습적 제도의 힘이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마법의 빈자리는 과학, 관료체계, 법과 정책 등 합리적이라 상정되는 “도구”들이 대신한다. 어두침침한 중세의 비합리성에서 벗어나 합리성이 빛을 비추는(en-lighten-ment) 계몽된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성이 이끄는 진보에 대한 낙관적인 희망을 갖고 있다.

마법에서 벗어났을까?

그러나 다음 세대 철학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 )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대사회가 “종교적 믿음의 유령에게 쫓기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이는 탈마법화가 물질적 발전과 동일시되면서 “개인의 자율성과 책임감” 등 공동체를 유지시켜오던 가치 있는 전통이 무너지고, 이 세계에는 도구만 남아서 ‘규범적 진공(아노미)’이 되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탈마법화와 동시에 재마법화(re-enchantment)가 진행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전통 종교 쇠퇴 후에 아노미가 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교가 도입되었는데, 정신분석이나 맑시즘 등이 그것이라는 논의다. 더 근본적으로 현대사회는 전혀 탈마법화된 바 없고, 아직도 다양한 마법과 신화들이 성행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있다. 정리하면, 현대 사회가 비합리의 마법에서 벗어났는지에 대해 몇 가지 견해가 있는데 아래와 같다.

(1)계몽주의의 합리성을 통해 미망에서 벗어났다.

(2)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마법에게 쫓기고 있다.

(3)마법에서 벗어난 것이 전혀 아니다.

(4)마법에서 벗어나기는 했는데,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가치관을 찾지 못했다.

(5)오래된 마법은 벗어났지만 새로운 마법의 지배를 받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중 어디 있을까? 마법에서 벗어나 온전한 합리성으로 충만한 이상적인 사회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니 (1)은 우선 제쳐놓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선은 합리성이 기조를 이루지만, 곳곳에서 비합리가 합리성을 위협하는 (2)의 상태 정도일 것이다. 과연 우리는 이 수준에 도달했을까?

정치판의 탈마법화

우리 정치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각 정파들이 자기네 수장을 신격화해서 추종하는 모습으로 보아 (5)에 가까운 것 같다. 절대자인 왕권이나 신만큼 강력한 것이 수장의 힘이다. 그가 절대로 비판받아서는 안되는 것이 ‘종교적인 신성함’ 수준이다. 마법적 권위를 보호하기 위해서 정치적 순교가 일어나기도 한다. 절대자가 한마디 계시를 내리면 정부 관료들은 자신의 전문성과 양심을 묻어둔 채 주술에 가까운 정책을 만들어서 과학(마법이 아닌 과학, 요사이는 마법도 과학에 근거한다고 해야 사람들이 믿어줌)이라며 내놓는다. 그러다가 잘못이 밝혀지게 되면 “그분”의 계시가 아니라 미천한 “제가” 한 것이라고 헛된 신앙고백을 하면서, 죄인이 되는 것을 자처한다. 마법은 수호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에 맞서는 정파 역시 절대자에 대한 믿음으로 움직여진다. 강력한 신도 그룹이 있어서, 그들도 신앙고백을 하고 순교라도 할 것 같은 태세다. 온건한 믿음을 갖는 사람은 ‘배교자’라 조리돌림 당한다. 수장은 간헐적으로 신도들 앞에 강림하여 메시지를 전한다.

그런데 하늘 아래 절대자가 둘이 있다는 것은 싸움을 의미한다. 국회에서 길거리에서 인터넷 댓글에서 전쟁이 벌어진다. 종교적 절대를 위한 싸움이므로 전략적 고려나 타협은 없다. 상대방은 ‘절대 악’이므로 절멸시키고, ‘절대 선’인 우리 세력을 온누리에 펼치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십자군 전쟁을 연상케 한다. 이런 수준에서 험악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우리 정치는 탈마법화와 거리가 멀다. 새로운 종교가 중세의 종교와 같은 수준이므로 (3)에, 즉 ‘마법에서 벗어난 것이 절대 아니다’에 가까워 보인다.

자신들이 (3)의 세계에 살고 있음은 정치권 사람들 스스로도 알고 있는 것 같다. 정치권에서는 흔히 자기네 세력에 대한 비판을 “마녀사냥”이라고 한다. 여당 세력과 야당 세력은 서로 상대방을 마녀로 몰아붙이거나 자기네들이 억울하게 마녀로 취급받는다고 이야기하는데 마치 거울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런데 마녀사냥은 중세말에서 근대 초에 일어났던, (3)시대의 극단화된 비합리성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가톨릭 세력은 물론 이를 비판하며 새로 등장한 프로테스탄트 세력 역시 마녀사냥을 저질렀으므로, 이 측면에서 종교 개혁은 탈마법화가 아니라 구 마법을 신 마법으로 대체한 것에 불과했다. 이전 정권의 실패했던 적폐 청산, 현 정권의 실패중인 카르텔 혁파는 구악(舊惡)을 개혁하려는 시도였지만, 자신들부터 합리성이 부족했으므로 결국 탈마법화가 될 수 없었고, 마법의 세계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우리 정치가 미몽과 마법에 사로잡힌 (3)의 상태에 있음은 믿거나 말거나 한 소문, 또는 사실로 밝혀진 것들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손바닥의 왕(王)자는 불길한 전조였다. 이후 대통령실을 이전한 것이 풍수가의 조언을 따른 것이라는 소문에서 시작해서, 대통령실에 풍수가가 출입했다는 사실이 보도된 바도 있었고(특정 역술인이 아닌 다른 풍수가여서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음), 무엇보다 유튜브에 떠도는 그 역술인의 주장이 정부 정책에 선행하였던 예들이 여러 번 드러난 것을 보면, 마법 시대의 직종들이 2020년대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대활약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정치는 근대화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셈이다.

경제의 탈마법화

경제의 측면에서 우리는 어디 살고 있을까? 종교전쟁 수준의 갈등은 당장 눈에 띄지 않는다. 그 이유는 종교보다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독점적으로 강림해 있기 때문이다. 탈마법이 이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마법이 등장한 것은 분명한데 그것은 ‘신자유주의’다.

범죄만 아니라면, 우리 모두 자유롭게 창업하여 맘껏 돈을 버는 것이 절대 선이다. 훌륭한 정부의 경제 정책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돈 벌 능력이 있는 사람이 충분히 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업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노조 활동은 감시받고 억제되어야 하는 나쁜 일이다.

S전자의 법인세를 줄여주어서 외국 기업과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돌봄 예산을 줄이더라도 정부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고용을 유연화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개 노동자의 죽음으로 고용주가 처벌받는다면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담론이 퍼져 나가기도 한다. “다치지 않고 기본적 삶을 보장받고 해고당할 위험 없이 일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신자유주의와 싸우기에 너무 힘이 없다.

마법의 시대에서 근근이 살아남았던 인간적인 정, “생산성이 낮은 사람도 같이 살 수 있음”이 생산성 최우선의 사회에서 가치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4), 즉 아노미 세상이다. 그것을 대체해서 더 강력한 신자유주의가 지배한다는 측면에서는 (5), 즉 새로운 마법의 세상이다. 신자유주의는 도덕적 기초가 의심받지 않고 절대화되므로 합리성이 아닌 또다른 마법일 뿐이다. 물론 신자유주의를 가치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돈 버는 현대적 기술이 강조되고 있으므로 (3)까지 퇴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의사 2000명 증원에 대해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라 장관이 직접 결정했다고 주장하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발당했다.
의사 2000명 증원에 대해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라 장관이 직접 결정했다고 주장하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발당했다.

문화의 탈마법화

문화적으로 우리는 어디 살고 있을까? 대중문화에 국한해서, 두가지 측면을 살펴보려 한다. 먼저 문화적 “상품”의 생산구조라는 측면이다. 과거, 창작물은 “고급” 예술이 아닌 대중문화에서도 창작자의 고민이 담긴 개인 특유적 작품이었다. 반면 요사이의 드라마와 아이돌 그룹 노래는 창작 시스템을 통해서 제작된 공산품의 특성이 강하다. 첨단 기술로 제작된 첨단 상품이다.

예술적 영감이라는 과거의 개념이 타파되어야 할 마법의 일종인지는 모르겠지만, 문화적 산물이 공산품화 되면서 문화는 경제에 종속되었다. 작품의 가치는 애매하고 주관적인 예술성이 아닌 이 작품으로 얼마나 돈을 벌었는가로 평가된다. 예술가는 없고, 제작사의 가치는 회사의 주가 총액으로 평가된다. 문화가 경제 시스템에 완전히 종속되었으므로 경제와 같이 (5)의 세상이 된 것 같다.

두번째 측면은 슈퍼 아이돌의 등장이다. 이들은 대중을 매혹한다. 여기서는 탈마법화가 아니라 ‘마법화’(enchantment)가 추구된다. 아이돌에 대한 대중, 특히 팬클럽의 반응은 종교적 열정에 버금간다. 아이돌은 탈마법화 되는 순간 가치가 사라지고, 이들을 이용하는 산업도 붕괴한다. 그래서 마법성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이 동원된다. 음주운전 사고를 은폐하려는 유명 가수와, 정책이 엉터리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동원하는 정부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마법성이 붕괴, 즉 탈마법하면 끝장난다는 절박함이다. 아직 마법에 빠진 상태인 팬클럽은 범죄를 저지른 아이돌을 옹호하는 비상식적인 집단 활동을 하는데, 마법의 세계에 합리성이 없음을 잘 보여준다. 계몽주의 이전 시대다. 이렇게 되면 우리 연예계는 정치판처럼 (3)의 수준이 된다. 개인이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마법이 통하지 않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봉건주의 마법은 21세기 우리 정치판을 지배하고 있다. 경제판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마법으로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여기에 현대 기술의 마법까지 더해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무엇이 가치인지에 대한 생각할 여유 없이 무언가를 소비하면서 하루를 살아간다. 자신이 마법에 조작당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나의 자율성과 합리성을 지키는 것이 만만치 않은 원시적인 세상이다.

글쓴이

강웅구 서울대 의대 교수

강웅구는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뇌의 유전자 발현 이상 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대표저서로 <정신병리학 – 정신병리의 개념적 접근>(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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