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중독 음식중독...중독은 어떤 병인가?

[정신의학자 강웅구의 ‘마음의 길’] 중독은 문화의 피할 수 없는 산물 ‘삶의 즐거움’ 추구하다 얻은 부작용 박멸보다는 데리고 살아야 하는 것 삶에 필요한 일도 제대로 하는가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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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이 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러나 중독(中毒, addiction)이 어떤 현상인지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없이 중독에 대한 이야기가 유통되는 것은 우려된다. 중독은 부도덕 행위로 보기도 하고, 범죄로 보기도 하고, 질병으로 보기도 하는 현상이다. 이 글의 목적은 중독이라는 현상이 어떤 것인지, 왜 우리가 중독을 겪는지, 중독에서 무엇이 병적인지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필자는 중독이 우리 문화의 피할 수 없는 산물이라는 점을 이야기할 것이다.

중독이라는 용어

먼저 우리말에서 중독은 전혀 다른 두 경우를 의미한다는 점을 지적해야겠다. 첫째, 중독은 약물의 독성 때문에 신체적 위해가 생기는 경우를 의미한다. 농약에 중독되어 응급처치를 받았다고 할 때의 중독이다. 영어로는 intoxication인데, 학계에서는 “급성중독”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논의하는 주제는 아니다. 둘째, 중독은 필요 없는 약물(또는 행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중독자(addict)”라는 용어가 갖는 나쁜 인상을 피하기 위해, 공식적 병명으로는 “사용장애” 또는 “의존”이라 부른다. 그러나 공식 용어가 따로 있음에도 중독이라는 명칭은 학계에서 여전히 사용된다. 이 글에서도 그럴 것이다.

중독은 병인가?

중독의 전형은 알코올 중독이다. 음주는 수천년 인류 문화를 거쳐 전수된 중요한 사회문화적 관습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술의 신이 있고, 성경에는 예수님이 술을 만드는 이야기가 나오며, 이백(李白)의 시 한 수는 술 한 잔과 맞물려 있다. 물론 음주가 일으키는 문제 역시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는데, 이 문제는 의학적인 것이 아닌 사회문화적인 것이다. 술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도 사회문화적으로 평가되어 병이라기보다는 악행이거나, 의지 박약이거나, 나쁜 버릇으로 보아왔다.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조직인 “익명의 알코올중독자들(Alcoholic Anonymous, AA, http://www.aakorea.org/)”은 알코올 중독을 도덕적 결함으로 보고, 참여자가 영적인 각성을 통해 과거의 악행이나 오만함을 극복하게 함으로써 치료한다.

중독을 나쁜 버릇이라 보고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 버릇을 고치려는 시도도 있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육학적 관점에서 청소년 온라인 중독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가 오가고 있다. 이런 시도들은 의학적 접근이 아니지만 중독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니 중독을 꼭 의학적 병으로 보아야 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다.

미국 의학회는 1950년대 특정 음주 행태를 질병이라 선언한 바 있지만, 심지어 의학계 내에서도 중독을 병이라 생각하지 않는 시각이 있다. “내가 좋아서 술을 마시는 것인데, 왜 술 마시는 것을 병으로 보아야 하는가?”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 상태의 음주는 애주가가 자유로운 취미생활로서 술을 즐기는 것과는 다르다. 중독은 많이 사용하는 병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가 되는 병이다.

생존 필수적 욕구와 항상성

술, 담배, 마약, 도박, 인터넷 게임 등 다양한 것들이 중독을 일으킨다. 이들의 공통점은 첫째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즐겁지 않은 것들은 당연히 중독을 일으키지 않는다. 둘째, 이들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지 않은 잉여물이라는 점이다. 생존 욕구와 잉여 욕구는 모두 특정 대상을 추구하는 동기가 되지만, 둘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생존 욕구는 필요한 만큼 추구된 뒤에는 욕구가 사라지고, 시간이 지나 욕구가 다시 발생할 때까지 더 이상 추구되지 않는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지만 필요한 만큼 먹으면 포만감을 느끼게 되고 더 이상의 식욕은 없어진다. 배고픈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것은 먹는 행위의 즐거움이라기 보다는 결핍 해소에 따르는 안정감이다. 이를 항상성(恒常性, homeostasis) 조절이라 한다.

항상성이란 우리 몸의 정상적 상태가 자동적으로 유지되는 과정을 일컫는다. 더우면 땀 흘리고, 추우면 떨고, 혈당이 떨어지면 배고픔을 느끼고(그래서 먹게 되고) 하는 것들이 항상성 조절의 대표적 예다. 적절한 범위 내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기본적 조건으로, 진화 과정에서 다듬어진 것이다(그림 1). 항상성 조절을 통해 우리는 결핍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과잉 상태도 겪지 않게 된다.

그림1. 식욕의 항상성 조절.
그림1. 식욕의 항상성 조절.

필수적이 아닌 욕구와 점화효과

인류가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문명을 발달시켰다는 점이다. 문명은 생존 욕구를 해결하는 행위들의 효율을 높였고, 우리는 생존 문제를 해결하고 난 뒤에 남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잉여 시간을 소비하기 위해 개발된 것들이 바로 문화적 산물로, 우리 취미생활의 영역이다. 문화적 산물은 생존 욕구와 관계없고 인류 진화기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결핍 해소가 아닌 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결핍과 관계없으므로 포만감도 없고, 항상성 조절도 되지 않는다.

이런 자극들을 자주 접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그것을 적당히 추구하고 그만두는 것이 어렵게 된다. 취미생활이 중독으로 바뀌는 것이다. 자극을 추구하고 나면, 욕구가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더 증가하기도 한다. 음주자들이 “발동걸린다”고 하는 현상, 의학적 용어로 점화효과(點火效果, priming effect)다(그림 2). 이런 추구는 내가 즐기고 싶어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가 원하는지 여부와 관계없는 내적으로 강제된 것에 가깝다. “이제 그만하자”라고 결심하더라도 그것이 잘 실천되지 않는 것을 보면, 추구 동기가 오롯이 자유의지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림 2. 알콜 중독의 음주
그림 2. 알콜 중독의 음주

이 점이 중독을 병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나의 의지대로 행위하기 어려운 현상은 강박장애 등 다른 정신질환에서도 나타난다. 고혈압 환자의 혈압이 적절 범위로 조절이 안되듯이, 중독 환자의 대상 추구 욕구는 정상적인 조절 범위를 벗어나 있다.

최근에는 비만이 음식 중독이라는 개념도 등장하고 있는데, 생존 욕구에 의해 추구되던 먹는 행위가 취미생활로 추구되는 것과 관계된다. 음식 문화가 생기면서 먹는 것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맛 또는 식사와 관련된 특정 자극(친지들과 교류 등)을 추구하는 행위가 된다. 따라서 항상성 욕구 해소(포만)와 관계없이 먹게 된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실험실 쥐에게 맛없는 일반 사료를 주면 배부를 때까지만 먹고 그만두지만, 밀크초콜렛을 주면 배부른 쥐도 더 먹는다. 배고픔 해소가 아닌 맛있는 것을 추구하는 행위는 항상성이 조절되지 않는 것이다.

중독과 문화

생존에 필요하지 않으면서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우리를 중독시킨다. 중독에 대한 도덕적 시각의 일부는 여기 기인하는 것 같다. 쾌락을 위해 불필요한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금욕을 강조하는 전통적 윤리관에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존 필수적 욕구만 추구하였다면 우리는 문화를 갖지 못하였을 것이다. 문화의 본질은 기본적 생존을 넘어선 가치를 찾는 과정이다. 중독을 일으키는 모든 것들은 문화적 산물이다. 중독성 약물들은 고대 문명에서 종교 예식에 사용하여 왔다. 오늘도 가톨릭 미사에는 포도주가 사용된다. 인터넷 게임은 현대 문화의 핵심적 아이템 중 하나다. 문화가 없다면 중독도 없다. 음식 문화가 없다면 비만도 없을 것이다. 한 사회에 어떤 중독이 흔한지는 그 사회에서 어떤 문화적 자원이 널리 사용되는지와 밀접하게 관계된다. 우리나라에서 흔한 알코올 중독은 금주가 법제화된 이슬람권에서는 드물다.

그렇다고 문화를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문화를 부정한다면 우리가 지금 여기서 문화의 혜택을 누리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다만 햇살 바른 양지 뒤쪽으로는 그늘이 진다는 사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중독은 문화 속에서 삶의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부딪히게 되는 부작용이다. 중독은 박멸해야 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데리고 같이 살 수밖에 없는 무엇인가다.

병과 병이 아닌 것

“게임 중독에 걸린” 청소년과 부모들간의 견해 차이는 이 문화적 가치를 해석하는 차이라 볼 수 있다. “게임이라는 쓸데없는 것”을 추구하는 중독 증상과 “삶을 즐겁게 하고 공부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가치”를 추구하는 취미생활은 같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알코올 중독 환자들은 자신이 환자가 아닌 술 애호가일 뿐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불필요한 것을 하는가?”의 문제라기 보다는 “건강한 삶을 위해 필요한 다른 것들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여부다. 주말에 클럽에서 가끔씩 엑스터시 하는 직장인은 범법자로 체포될 수는 있겠지만, 그를 중독 환자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판단도 애매한 경우가 있다. 학교 가지 않고 게임하는 청소년은 문제가 있다고 대개의 사람이 판단하겠지만, 부모 몰래 학원 수업을 빼먹고 PC방에 가는 일탈을 건강한 삶을 저해하는 행위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것이다(이 칼럼의 내용은 필자의 책 <도파민의 배신(2025, 포르체)>의 일부에서 가져왔을 밝혀둔다).

글쓴이

강웅구 서울대 의대 교수

강웅구는 1988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수련을 받았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뇌의 유전자 발현 이상 보다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정신질환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대표저서로 <정신병리학 – 정신병리의 개념적 접근>(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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