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너머 한국 기업의 명예회복이다
노태우 집안의 비사속 최태원 회장 한니발을 이긴 로마군 뒤의 ‘기업들’ 기업의 사익추구, 자본주의의 근간 사법부, 우리 기업의 명예를 지켜줘야 우리 사회는 어떤 기업상 가질 것인가
노태우 대통령 집안의 독특함
노태우 전대통령은 새해가 되면 전임 장관과 장군들을 맞았다. 새해 인사하러 오는 이들이었다. 세배를 받고 나서 그는 덕담에 보태 세뱃돈 봉투를 일일이 건넸다. 당시에 전두환 전대통령은 세뱃돈으로 수천 만 원씩, 또는 억대로 준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노 전대통령의 세뱃돈은 수백 만 원 수준.
그마저도 옆에서 같이 세배를 받던 김옥숙 여사가 가로챘다. 김 여사는 이미 건너간 세뱃돈 봉투에서 돈을 꺼내면서 “당신이 뭐한 게 있다고 이렇게나 세뱃돈을 받아?”하며 얇아진 봉투를 돌려줬다. 그 행동을 노 전대통령은 제지하지 못했다. 그저 “허허. 이 사람이...” 그러고는 끝이었다. 노 전대통령도, 장군도 민망해 할 뿐이었다. 이런 민망한 일이 잦았다.
노 전대통령은 왜 김 여사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했을까. 그는 유복자로 태어났다. 어렵게 자랐고, 김 여사와 결혼해선 오랫동안 처가살이를 했다. 김 여사의 집안은 어떤가. 오빠 중에 김복동, 동서로 금진호가 있는 대구의 유력 집안이었다.
노 전대통령은 이런 집안의 사위로 들어가 오랜 처가살이를 하면서 기가 눌려버렸다. 저런 장면을 지켜봤던 지인은 “김옥숙 여사는 노 전대통령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했다. 다만 어떻게 사랑하는 것을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고 말했다.
반면 사위가 된 최태원 회장은 노 전대통령처럼 주눅든 것 없는, 사업가 집안의 젊고 자유분방한 청년이었다. 그는 김옥숙 여사를 닮은 노소영 씨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최 회장은 결혼 후에 처갓집 왕래가 적었다. 얼마 되지 않아 별거에 들어갔고 이혼하겠다는 생각도 갖게 된다. 사위인 최 회장은, 장인의 후광을 언제 느꼈을까.
지인은 “문제는 노소영 씨는 그렇게 도와줬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여느 재벌가에 흔한 쇼윈도 부부의 이야기일 뿐이지만, 있었는지도 모르는 장인의 후광이 한 기업을 국내 2위 그룹으로 성장시킨 배경이 되었다는 한국 기업 성장사(史)의 어두운 해석으로 자리하게 될 줄이야.
한니발로부터 로마를 지킨 ‘기업’
인류가 상거래를 하고 조개 같은 화폐를 만들었으니 기업도 그즈음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졌겠거니 추측하겠지만, 기업이라는 조직은 기원전 218년 카르타고-로마간의 포에니 전쟁때 태어났다고 한다.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 장군에 의해 패망 직전에 몰렸던 로마. 이때 로마 원로원은 마지막 희망,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장군의 군대에 보급품을 대줄 것을 로마 시민들에게 호소한다. 국가재정이 나아질 때 보상을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러자 총 19명의 로마상인들이 호응해 세 개의 회사, 라틴어로는 ‘소치에타테스’(societates)가 군을 돕겠다고 나섰고 보급을 책임졌다. 역사가 리비우스는 『로마사』에서 “사기업이 이익을 취하기 위한 저열한 욕망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의무감에서 로마군에게 물자를 공급한 이 사건은 시민정신의 승리”라고 했다. 보급품이 공급되자 한니발은 자마전투에서 패한다. 로마는 끝내 이겼고, 세계사에서 로마의 승리와 함께 기업의 탄생이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한국 기업들은 ‘공공선’이 없었나
일제로부터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한국도 1960년대이후 경제개발기에 ‘정경유착’ 등 다양한 배경과 동인, 장벽으로 기업이 성장했고, 또 명멸했다. 어떤 기업은 창업자가 도굴한 유물이 자본금이 됐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어떤 기업은 고속도로 닦아주고 해마다 보수하게 만든 노하우가 성장을 시켰고 창업주의 불굴의 의지는 없었을까. 또 어떤 기업은 정부로부터 독점적 사업을 불하받아 국내에 앉아 재미를 보며 즐겼는데도 대기업이 됐을까.
기업들의 역사에는 명과 암이 있을 것이고, 의와 불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기업이 키워온 것은 공공선은 아니었던가. 장하준 교수는 『쾌도난마 한국경제』에서 박정희식 경제발전모델은 당시에는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 경험이 없고, 자본 축적이 없는 상황에서 경제를 일으키는데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2차세계대전이후 독립한 나라 중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는 한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몇개국뿐이었다. 그런데 그 성장과정에서 우리 기업에게 악착같은 돈벌기 정신만 있고, 공공선은 없었을까.
한국 육군사에 가장 존경받는 장군 중 한 명인 고(故) 채명신 장군의 일화는 한국 국적의 기업이 왜 있어야 하는지를 웅변해준다. 어느 날 파월 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장군은 병사들로부터 항의를 받는다. 조국에서 공수되어온 김치 통조림이 속에 온통 녹이 슬어 김치를 먹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여러분이 이걸 안 먹으면 2주 뒤엔 일본에서 김치 통조림이 올 것이다. 이 김치값은 일본으로 간다.’’ 그러자 군인들은 “핏물이라도 먹겠습니다. 고국의 부모님에게 돈이 가게 해달라”고 하자 채 장군도 병사들도 다 눈물을 흘렸다. 채 장군은 이 사연을 적어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기술이 개발되어, 질 좋은 김치 통조림과 군화, 군복이 공수되기 시작했다. (이광재 전 국회의원, 중앙선데이 ‘원로에게 묻다’에서)
김치 통조림, 군화, 군복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정부패도 있었을 것이고 악용한 기업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기업들은 국가의 요청을 받아 기술을 개발하고 제대로 된 군수품을 생산해 공급했다. 우리나라의 자본주의와 기업은 큰 흐름을 잃지 않고, 직간접적인 자정과 규율을 통해 커졌고 현재는 한국의 경제시스템의 근간으로 자리잡게 됐다.

한국 모든 기업의 명예회복을
엊그제 최태원 SK회장은 직접 나서서 SK그룹의 명예회복을 위해 대법원에 상고할 것이라고 했다.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SK그룹을 노 전대통령의 비자금과 후광으로 일으킨 역사라고 평가한데 대한 우회적 불만이었다.
필자 역시 항소심 재판부의 이같은 평가는 사법부가 한국 사회 경제 시스템의 근간을 흔든 것으로 불쾌하다는 생각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사익’이라는 작은 악(惡)을 추구하면서 ‘자본주의’라는 큰 선(善)을 일궈왔다. 그야말로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말한대로 ‘작은 악이 모여 큰 선’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다. 그렇기에 녹슨 김치 통조림만이 아닌, ‘메이드 인 코리아’상품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사법부는 이같이 큰 선(善)인 자본주의의 근간이 된 기업의 성장과 역할에 대한 부정적이고, 단선적인 시각이 사회에 자리잡는 것을 막을 중요한 책무가 있다. 사회의 안정을 위한 것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때문에 최 회장이 말한 명예회복은 SK만의 명예회복이 아니라 한국 모든 기업의 명예 회복과도 연결된다는 점을 사법부가 알아야 한다. 한국의 기업은 한국 자본주의를 성장 발전시켜온 근간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업시스템을 갈고 닦아갈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떤 기업상(像)을 가져야 할 것인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