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예방의 ‘팩트’와 ‘내러티브’ 오해

[의사 이호준의 심장, 진실 혹은 대담]

구글 AI 제미나이 생성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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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팩트와 그럴듯한 이야기의 혼동 콜레스테롤이 세포막을 만든다는 사실 등은 팩트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수치를 억지로 바꾸면 병이 나을 것이라 믿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내러티브(이야기)’에 불과합니다.
  • 지질 치료의 유일한 표적은 ‘ApoB 입자’ HDL-C 수치나 중성지방, 염증 수치를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이 심장병 예방으로 직결되지는 않으며, 평생에 걸쳐 혈관 벽을 파고드는 ‘ApoB 입자(LDL-C)’의 수를 낮추는 것이 진실된 원인 치료입니다.
  • ‘그러므로’라는 함정 경계 관찰된 통계적 사실(팩트)을 성급하게 인과관계로 연결하는 “그러므로”의 오류를 경계하고, 철저한 과학적 검증에 기반한 단단한 내러티브를 분별하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진료실의 흔한 질문과 그럴듯한 ‘이야기’

진료실에서 콜레스테롤 검사 결과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핏속의 콜레스테롤을 너무 낮추면 몸에 안 좋은 것 아닙니까?”

콜레스테롤은 세포막과 호르몬을 만드는 필수 물질이 맞습니다. 그래서 이 당연한 질문은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의 이야기(내러티브)로 발전합니다.

“아무리 나쁜 콜레스테롤(LDL-C)이라도, 너무 낮추면 세포에 결핍이 생길 것이고 그 결과로 건강에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라는 우려입니다.

참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의학의 세계에서 ‘그럴듯한 이야기’와 ‘진짜 사실’은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의학에는 관찰과 측정을 통해 얻어낸 ‘팩트(Fact)’가 있고, 이들을 엮어 병태생리를 설명하는 ‘내러티브(Narrative)’가 존재합니다.

LDL-C 수치가 얼마인지, 어떤 약을 먹었더니 심근경색이 몇 퍼센트 줄었는지는 ‘팩트’입니다. 반면,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를 묶어서 설명하는 모델이 바로 ‘내러티브’입니다.

복잡한 생물학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은 이야기를 필요로 합니다. 문제는 그 이야기가 너무 매력적이다 보니, 어느 순간 그것이 ‘설명을 위한 도구’라는 사실을 잊고 그 자체를 ‘진리’라고 믿으면서 발생합니다.

첫 번째 오해: 숫자의 함정

피검사로 확인하는 LDL-C 수치는 내 몸 전체에 비축된 콜레스테롤의 총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검사 수치가 떨어졌다고 ‘몸 전체의 콜레스테롤이 부족해진다’고 해석하는 것은 팩트가 아닌 상상, 즉 틀린 내러티브입니다.

죽상동맥경화성 심장병을 예방하는 관점에서 진짜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 몸 전체에 콜레스테롤의 ‘양’이 얼마나 있는지는 애초에 따지지도 않습니다. 오직 얼마나 많은 수의 지단백 입자(ApoB입자)들이 나의 온 생애에 걸쳐 혈관 벽을 파고들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 같은 화물은 혈액 속을 바로 떠다닐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지단백’이라는 화물차에 실려 운반됩니다. 이때 화물차의 번호판 역할을 하는 핵심 구조 단백질이 바로 ‘ApoB’입니다.

즉, 이 번호판을 붙인 화물차들을 ‘ApoB 입자’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불필요하게 오래 혈액 속에 머물러 그 수가 과잉되게 늘어나면 혈관 벽으로 파고들어 독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랫동안 작용했는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유전자 연구와 대규모 임상시험들을 보면, 약의 종류와 작용 기전이 다르더라도 결국 이 ApoB 입자들의 숫자를 줄였을 때 심장병 위험은 일관되게 감소했습니다. 콜레스테롤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입자에 실려, 얼마나 오랜 세월 혈관 벽 속으로 들어가 쌓였는지가 심근경색과 협심증, 그리고 뇌경색을 일으키는 진짜 원인입니다.

두 번째 오해: 착한 콜레스테롤(HDL-C)의 배신

팩트와 이야기를 명확히 구분 못해 혼란에 빠졌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착한 콜레스테롤’로 불렸던 HDL-C입니다.

과거 수많은 연구에서 “HDL-C 수치가 낮은 사람일수록 심장병에 잘 걸린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팩트’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아주 단순하고 설득력 있게 들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LDL-C(나쁜 놈)는 낮추고, HDL-C(착한 놈)는 억지로라도 높이면 심장병을 예방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약을 써서 환자들의 HDL-C 수치를 획기적으로 올렸음에도, 심장마비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 대규모 임상 시험들을 통해 반복적으로 밝혀졌습니다. “HDL-C가 낮으면 위험하다”는 단순한 연관성(팩트)을, “수치를 올리면 병이 낫는다”는 인과관계(이야기)로 성급하게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혈액검사지에 찍힌 숫자는 현상일 뿐, 그 숫자를 억지로 바꾼다고 해서 몸의 본원적 기능이 좋아질 리는 없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 오해: 중성지방과 염증의 딜레마

건강검진에서 자주 보는 중성지방(TG)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중성지방이 높은 사람이 심장병 위험이 높다는 것은 오랜 팩트입니다.

하지만 최근 1만 명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대규모 다국적 임상 연구(PROMINENT)에서 신약을 사용해 중성지방 수치를 무려 26%나 뚝 떨어뜨렸음에도, 심혈관 질환 발생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중성지방이라는 ‘화물’의 양만 줄였을 뿐, 그 화물을 싣고 다니는 ‘잠재적 불량 트럭(ApoB를 포함한 입자들)’의 총 대수는 줄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HDL-C 수치를 억지로 올리는 것이 혈관 청소부의 기능을 보장하지 않듯, 중성지방 숫자만 낮추는 것 역시 심장병을 일으키는 진짜 원인(ApoB 입자의 수)의 감소를 뜻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혈중 중성지방 숫자가 정상이 되었으니 이제부터 안심이다”라고 단정 짓는 것은 위험합니다.

최근 심장병의 원인을 ‘혈관의 염증’에서 찾는 내러티브도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염증 수치(hsCRP)가 높은 사람이 위험하다는 것은 사실이고, 특정 염증을 약물로 가라앉혀 심장병 발생을 줄인 성공적인 임상 연구(CANTOS)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진행된 또 다른 대규모 위약 대조 연구(ZEUS)에서는 염증 수치를 성공적으로 낮췄음에도 추가적인 심혈관 이득이 없었습니다. 염증이 심혈관 위험과 관련된다는 사실(관찰)과, 혈액검사지에 찍힌 염증 수치를 약으로 낮추면 심장병이 예방된다는 주장(개입)은 서로 다른 명제입니다.

현재까지의 방대한 과학적 근거를 종합할 때, 심혈관계 죽상동맥경화질환의 예방과 치료를 위해 철저한 생활습관교정에 더하여 반드시 낮추어야 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지질 치료의 표적은 오직 LDL-C와 ‘ApoB’뿐입니다.

생물학은 우리가 칠판에 그리는 화살표들로 이루어진 명쾌한 그림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가장 조심해야 할 단어, “그러므로”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오류는 ‘맞는 팩트’들을 성급하게 이어 붙이면서 시작됩니다.

∙ HDL-C수치가 낮은 사람에게 심장병이 많다. (팩트)
∙ 그러므로, HDL-C을 인위적으로 높이면 심장병이 줄 것이다. (오류가 된 내러티브)

과학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단어는 어쩌면 “그러므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관찰된 숫자가 진짜 원인인지, 그 원인을 약으로 조절할 수 있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환자가 덜 아프고 덜 고통받으며,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지 모든 단계마다 냉철하게 검증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질문까지 통과해야만 비로소 ‘임상 의학’은 완성됩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현대의학은 그런 길고 지루한 가시밭길을 통과하여 이룩된 것입니다.

“과잉의 ApoB 입자들이 혈관 벽에 침투하고, 변성되어 염증을 일으키며 평생에 걸쳐 누적된 결과로 심혈관질환이 일어난다.”는 설명은 수많은 팩트들이 단단하게 이어져 실증적으로 확립된 훌륭한 ‘과학적 내러티브’입니다.

좋은 과학은 새로운 팩트가 발견되었을 때 언제든 기존의 이야기를 고칠 용기를 가집니다.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어디까지가 변치 않을 ‘팩트’이고, 무엇이 지어낸 ‘이야기’인지 알아보는 안목을 우리 자신이 갖는 것입니다.

팩트 없는 이야기는 헛된 ‘신화’입니다. 물론 이야기 없는 팩트 역시 그저 나열된 ‘숫자’와 다름없습니다. 의학에는 팩트와 내러티브 둘 다 필요합니다. 단, ‘팩트’에 기반한 강건한 ‘내러티브’여야 합니다.

매혹적인 ‘이야기’와 입맛에 맞는 ‘사실’만을 취사선택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글쓴이

이호준 더베스트내과 대표원장

이호준은 심장학을 전공한 내과전문의로, 심장대사의학(cardiometabolic medicine)을 연구하고 진료하는 임상의사다. 안산 더베스트내과 대표원장으로서 동료 소화기내과 전문의들과 함께 일상 진료에 충실하며, 질병을 사건이 아닌 시간과 구조의 문제로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메디칼업저버에 「역사 속의 심장」을 연재하며, 의학과 역사, 사회를 잇는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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