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스테롤? 좋은 놈, 나쁜 놈, 신비한 놈
[의사 이호준의 심장, 진실 혹은 대담]
- 좋은 콜레스테롤(HDL)의 배신 혈관 청소부로 알려진 HDL 콜레스테롤은 높을수록 좋다는 기존 상식과 달리, 인위적으로 이 수치를 높이는 약물들이 심혈관 질환 예방에 실패했다. 이는 질병의 ‘원인’을 해소하는 치료가 아닌, 대사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에 불과함이 밝혀졌다.
- 진짜 범인인 나쁜 콜레스테롤(LDL) 반면 혈관벽에 플라크를 형성해 심근경색과 뇌졸중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은 LDL 콜레스테롤이며, 이를 낮추는 것이 심혈관 위험을 줄이는 핵심이라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로 일관되게 증명되었다.
- 신비한 존재 ApoB 중심의 패러다임 전환 최근 의학은 화물의 무게(LDL-C)보다 혈관을 파고드는 트럭의 대수(ApoB 입자 수)에 주목하고 있다. 인위적인 수치 높이기를 골자로 한 판타지에서 벗어나 운동·체중 조절 및 실제 혈관을 손상시키는 ApoB 누적 부담을 줄이는 것이 심근경색과 돌연사를 막는 진정한 예방법인 것이다.
좋은 콜레스테롤은 없다
우리는 건강검진 결과표를 받아 들고 숫자들을 하나씩 확인할 때면 누구나 긴장하게 될 것입니다. 혈압이 높은 것은 아닐지, 혈당은 괜찮은 건지, 혈중 콜레스테롤은 안전 범위에 들어가 있는 건지, 이러저러한 걱정들이 마음을 어지럽힐 것입니다.
그런데 ‘수치가 높을수록 이롭다’고 알려진 항목이 있었습니다. ‘좋은 콜레스테롤(The Good)’이라는 별명을 가진 HDL 콜레스테롤(HDL-C)이 바로 그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한 번쯤 다음과 같은 설명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HDL-C는 높을수록 좋습니다”, “나쁜 콜레스테롤 LDL-C가 좀 높아도 HDL-C가 높으면 어느 정도 상쇄됩니다.”
마치 인생의 실수를 덮어주는 ‘면죄부’처럼, 혹은 어떤 충격에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HDL은 심장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뭔가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과거의 직관적인 상식과 이별해야 할 시점이 왔습니다. 한때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모두들 믿었지만, 결국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듯이 말입니다.

HDL 청소부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금물’
왜 HDL에 그렇게 큰 기대가 걸렸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너무나도 완벽해 보이는 이론과 기전 때문입니다.
심장병과 뇌졸중의 뿌리가 되는 ‘죽상’동맥경화증은 혈관벽에 콜레스테롤이 쌓이고 그로 인한 염증이 유발되며 시작됩니다. 그렇게 형성된 플라크(plaque)가 어느 날 갑자기 파열되면 혈전이 생기고, 심근경색과 뇌졸중 같은 치명적인 혈관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HDL은 혈관벽 주변에 남겨진 콜레스테롤을 다시 간으로 되돌려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역콜레스테롤 수송(reverse cholesterol transport)’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혈관 곳곳을 돌아다니며 찌꺼기를 치우는 ‘청소부’ 같은 역할입니다.
그렇다면 청소부 숫자를 늘리면 혈관이 깨끗해지지 않을까? 청소부들이 쓰레기를 많이 운반하면 할수록 찌꺼기 제거 상태는 더 양호한 것 아닐까?
자연스럽고 당연한 질문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 유수의 제약회사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HDL-C 수치를 높이는 약을 개발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약물은 HDL-C 수치를 두 배 가까이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결과는 기대와 정반대였습니다. 수치는 올라갔지만 심근경색은 줄지 않았고, 심혈관 사망도 감소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약들은 오히려 부작용만 늘렸습니다.
원인과 지표를 혼동 말아야
이 거대한 실패가 남긴 메시지는 충격이었습니다. HDL-C는 심장병을 막아주는 ‘치료의 원인’이 아니라 몸 상태를 가리키는 ‘지표’였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HDL-C 수치가 낮은 사람은 대개 복부비만, 높은 중성지방, 인슐린 저항성 같은 대사 이상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HDL-C가 낮아서 위험했던 것이 아니라 이미 몸속 환경 자체가 나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의학에서는 이를 ‘원인(causal)’과 ‘지표(marker)’의 차이라고 부릅니다.
자동차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졌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경고등이 거슬린다고 전구를 없애 버린다고 해서 엔진 고장이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계기판이 아니라 엔진 자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약물을 통해 HDL-C 수치만 억지로 올리려 했던 시도는, 고장 난 엔진은 그대로 둔 채 계기판 숫자만 좋아 보이게 만들려 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짜 주목해야 할 ‘나쁜 놈(The Bad)’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LDL 콜레스테롤입니다.
LDL은 혈관벽 안으로 파고들어 혈관벽에 플라크 형성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지목되어 왔습니다. 실제로 LDL-C를 낮추면 심근경색과 뇌졸중 위험이 줄어든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일관되게 확인되었습니다.
드디어 등장한 신비한 녀석 ‘ApoB’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같은 LDL-C 수치라도 어떤 사람은 심장병이 생기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ApoB(아포지단백 B)라는 다소 낯선, 그래서 ‘신비한(The Mysterious)’ 이름입니다.
혈관에 플라크를 만드는 모든 유해한 지단백 입자 표면에는 예외 없이 ApoB라는 이름표가 하나씩 붙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LDL-C 수치 검사가 ‘전체 화물의 무게’를 측정하는 저울이라면, ApoB 측정 검사는 실제로 혈관벽을 드나드는 ‘화물 트럭의 총 개수’를 세는 스캐너입니다.
무게는 비슷해도 작은 트럭 수백 대가 몰려오는 것과 큰 트럭 몇 대가 지나가는 것은 죽상동맥경화와 그에 따른 염증, 그리고 치명적 혈관사고 발생에 대한 위험이 크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최신 심장대사의학과 예방심장학이 ApoB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심장병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혈관은 수십 년 동안 우리가 먹고 움직이고 잠들고 스트레스를 견디는 방식의 영향을 천천히 받아들여 기억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평생에 걸쳐 혈관이 얼마나 많은 위험에 노출되었는가 하는 ‘누적된 부담’입니다.
오늘날 심장병 예방에 있어 인위적으로 HDL-C 숫자를 올리는 방법은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체중을 조절하고, 운동하고, 혈압과 혈당을 관리하며, 실제 혈관을 손상시키는 ApoB 입자의 위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좋은 콜레스테롤’이라는 판타지에 안심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이제 ‘좋은 놈’과 ‘나쁜 놈’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 누가 진짜 원인이고 누가 사후 결과에 해당하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 통찰이 필요합니다.
‘신비한 놈’ ApoB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관리하는 것, 그것이 뇌졸중, 심근경색 그리고 돌연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내 몸과 내 건강의 ‘주권자’가 되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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