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으로도 구원하지 못한 ‘영혼’
[의사 이호준의 심장, 진실 혹은 대담] 보이지 않는 죽상동맥경화의 위험
- 짐 픽스의 죽음 조깅의 창시자 짐 픽스의 비극적 죽음은 운동이라는 ‘선한 의지’만으로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수십 년간 축적된 ‘혈관의 업보(죽상경화)’가 존재를 상기시킨다.
- 가족력과 흡연 이력 내 몸속에 심겨진 시한폭탄은 겉으로 보이는 강건한 체력 뒤에 숨어 있으며, 혈관은 우리의 과거를 결코 잊지 않은 채 시차는 있어도 오차 없는 결과를 되돌려준다.
- 좋다는 느낌이 전부 아냐 결국 ‘몸이 좋다’는 주관적인 느낌이 아닌 ApoB, CAC 스캔 등 냉정한 데이터를 직시하는 용기에서 시작되며, 과학적 실천을 통해 자신의 인생 궤적을 스스로 수정하는 주체적인 결단에 달려 있다.
1984년 7월 20일 저녁, 미국 버몬트주의 평화로운 시골길을 한 남자가 달리고 있다. 전 세계적 조깅 열풍을 일으킨 인물, 짐 픽스였다.
『달리기에 관한 모든 것(The Complete Book of Running)』이라는 베스트셀러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구원’을 설파했던 그가 조깅 도중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겨우 52세, 아이러니였다.건장한 체격과 강인한 체력의 상징이던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온 세상에 충격을 주었고, ‘운동이 정말 건강에 이로운가?’ 라는 논란을 낳았었다.

그러나 최신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불운한 사고가 아니라 수십 년간 축적된 ‘혈관의 업보’와 치명적인 ‘증폭 인자’들의 결합이 빚어낸 필연이었고, 지금 같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무지의 비극’이었다.
지식과 기술의 부재: 무심한 포르투나(Fortuna)
짐 픽스는 달리기를 운동 그 이상, 종교적 차원의 깨달음으로 격상시켰다. 많은 이들이 그를 좇아 땀을 흘리며 심폐 지구력을 키우는 것만이 건강과 장수의 ‘만병통치약(panacea)’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달리기가 곧 건강’이라는 명제는 조건부로 유효하며, 심지어 일부에서는 틀릴 수도 있다. 운동은 신진대사를 개선하고 심장의 펌프 능력을 강화시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동맥 혈관에 ‘죽상(粥狀, 죽 같은 형태) 경화’ 덩어리(atherosclerotic plaque)가 생겼다면 그 자체를 내 뜻대로 말끔하게 지워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운동의 양적 측면에만 집착하다 보면 정작 내 몸 안에서 벌어진 ‘소리 없는 불편한 진실’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짐 픽스는 불굴의 다리 근육과 심폐 기능을 믿었겠지만, 그의 관상동맥은 그 바람에 부응하지 못했고, 사실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 혈관 내막에 콜레스테롤이 침착되어 손상과 염증이 진행된 상태였을 것이다.
당시의 의학지식과 기술로서는 불가피했겠지만 운명의 여신은 가혹했다. 겉으로 보이는 ‘체력’이라는 과목 점수에 취해, 눈에 보이지도 않는 ‘혈관’-당시로서는 중요 과목으로조차 인정 받지 못하던 ‘하찮은’ 시험 하나 때문에 ‘인생 낙제’를 당한 억울한 학생의 경우에 비할까?
짐 픽스가 전하는 살신성인의 메시지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면 오늘 우리의 인생 또한 구제 불능이 될 것이다.
건강은 그저 선한 의도를 주장하며 진력을 다했음에 위안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체적 진실을 마주하여 객관적 지표들을 합리적으로 관리하는 과정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가족력: 심혈관질환 예측하는 마법의 수정구슬
짐 픽스의 부친은 35세에 첫 번째 심장마비를 겪었고, 결국 43세에 두 번째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의학적으로 매우 강력한 ‘조기 심혈관질환 가족력’에 해당한다.
유전적 소인은 인생이란 ‘포커 게임’에 들어가서 처음 받는 카드 패와 같다. 어떤 이는 아무리 나쁜 패를 받아도 운영의 묘를 살려 이어가고 심지어 승리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짐 픽스는 얼마나 나쁜 패인지 보지도 않고 플레이한 셈이었다.
현대 의학은 의미 있는 집안 내력이 있는 경우, 일반적인 기준보다 훨씬 엄격한 관리를 요구한다. 그가 아무리 매일 10㎞를 달렸어도, 혈관 벽에 이미 시한폭탄-유전적으로 ‘체내 콜레스테롤 청소율’이 저하되는 체질이었다면 더욱더-이 심어지지 않았을까 의심했어야 했다. 더구나 젊은 시절 즐겼던 흡연과 탐식 등 나쁜 생활 습관들은 기폭장치를 작동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유전이란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큰 의학적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당시까지만 해도 상식이 아니었다. 달리기가 불리한 전세를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조커’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죽상동맥경화’라는 냉혹한 게임에서는 오로지 정밀한 의학적 데이터와 충분한 시간이 투자된 과학적 실천만이 조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흡연: 잠깐 살고 영원히 죽는 법
짐 픽스의 과거 이력 중 또 하나의 치명적인 요인은 ‘흡연’이었다. 그는 일찍 담배를 배워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 서른 다섯 살까지 두 갑씩 피우던 ‘헤비 스모커’였다.
담배는 다른 여러 위험 요인의 해악을 키우는 ‘증폭 인자(Amplifier)’로 작용한다. 담배 속의 니코틴과 수천 가지 유해 물질은 혈관 내피세포를 직접적으로 공격해 그 기능을 망가뜨린다. 비유하자면, 혈관이라는 도로의 표면에 수많은 구덩이를 파놓은 것과 같다.
이렇게 손상된 혈관 벽은 콜레스테롤을 운반하는 혈액속의 지단백질 입자(LDL)가 침투하기 좋은 장소가 된다. 흡연은 그 지단백질(LDL) 입자가 혈관벽에 틀어박혀, 보다 심한 염증 반응을 일으키도록 산화를 촉진한다.
이브 몽탕 주연의 1953년 영화 “공포의 보수(The Wages of Fear)”- 그 해 칸과 베를린 양대 영화제 그랑프리를 모두 석권해 화제가 되었던 걸작 모험영화 - 에 나오는 폭발성 강한 화물 ‘니트로글리세린’ 같이 변해 버리는 것이다.
담배를 끊은 후에도 이미 망가진 혈관의 구조적 변형과 이미 생겨버린 혈관벽의 플라크는 그대로 남는다. 폭발 위험을 부추기는 여러 증폭기 중 겨우 한 개가 꺼졌을 뿐 이미 그 결과물인 ‘혈관의 상처’와 근본적 원인(causal)로서의 ‘고지혈증’은 그대로 남았을 것이다. 마치 소멸되지 않은 업보처럼.

ApoB 입자의 업보: LDL-콜레스테롤에 대한 평생 노출
짐 픽스는 대학졸업 직후부터 약 10년간 유명 주요 잡지 편집인으로 일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주로 앉아서 생활(Sedentary Lifestyle)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몸무게는 약 100㎏에 달했었다.
조깅 시작 후 고강도 운동으로 30㎏ 감량에 성공했지만, 고지방, 고칼로리의 설탕이 듬뿍 들어간 간편식(Fast food)과 가공식(Processed food)에 대한 선호는 계속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는 흔히 LDL-Cholesterol(콜레스테롤)의 수치에만 관심 있어 하지만, 실제로 혈관 벽을 뚫고 들어가 자리잡고 염증을 유발시키며, 죽상경화와 불안정 플라크를 만들어 심각한 혈전사고를 일으키는 범인의 실체는 그 콜레스테롤을 핏속에서 운반하는 ‘화물차(carrier), 바로 저밀도 지단백 (lipoprotein) 입자들이다.
이 입자들은 ApoB라는 꼬리표를 하나씩 달고 있어 ‘ApoB 함유 지단백 입자’(Atherogenic Lipoprotein Particle)라고 불린다. 측정된 LDL-Cholesterol 수치가 ‘화물의 총량’이라면, ApoB 측정값은 그 화물을 실어 나르는 ‘트럭의 대수(Number)’에 비유될 수 있다.
혈관에 혈전 사고가 나서 ‘사람이 잘못될 것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도로를 주행하는 ‘트럭의 대수’에 달려있다. 대개의 경우는 LDL-Cholesterol 수치와 이 트럭의 대수는 상응하므로 LDL-Cholesterol 수치만 낮추어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비만이나 당뇨 등 특수한 상황에서는 LDL-Cholesterol 수치가 정상이어도 ApoB 수치가 높은 경우가 있어 ‘방심의 오류’를 범하게 되는 수가 있는 것이다.
줄담배를 피우며 잡지사 일에 몰두해야 했던 짐 픽스의 비만 시절, 그의 혈관은 고농도의 ApoB 함유 지단백 입자(ApoB containing Atherogenic Lipoprotein Particle)들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상당 기간 축적된 이 ApoB 입자들의 스텔스 공격은 훗날 담배를 끊고 살을 빼고, 진 빠지게 운동을 하더라도 이미 혈관 벽에 죽상동맥경화의 씨앗으로 뿌려져 ‘최후의 전쟁’을 기다리게 된다.
혈관은 우리의 과거를 결코 잊지 않는다. 시차는 있을지언정 오차는 없다.

현대 의학이라는 기적: 예방심장학과 심장대사의학
톨스토이는 그의 단편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능력 중 하나가 ‘자신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이라고 썼다. 사람은 미래를 알 수 없기에 그저 지금 이 순간의 인연과 사랑에 집중하며 살아야 한다고 결론내린다.
그러나 조물주는 21세기의 ‘예방 심장학’과 ‘심장대사의학’을 통해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했는데, 바로 자신의 ‘인생 궤적(Life Trajectory)’을 들여다보고 이해할 수 있는 권능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깃들어 있는 본질이 생명 유지의 근간인 대사(Metabolism) 작용이라면, 그 대사 작용이 진행되는 궤적을 읽어내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다.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를 아는 것은 신의 영역이나, 죽음에 이르는 병적 기전을 탐구하고 자신의 생애 궤적(Life Trajectory)이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가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우리에게 허용된 지혜다.
인간은 결단과 선택, 그리고 과학적으로 정합한 실천을 통해 그 궤적을 수정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 존재가 되었다.
과거의 협심증이나 심근경색과 같은 관상동맥질환 치료는 주로 ‘증상 발현 이후’에 중재 시술로서 문제 혈관을 ‘뚫거나 넓히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시술만으로는 질환의 본질적 원인 해결이 불가능하며, 재발 방지와 장기 예후 개선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반복적으로 입증되었다.
무엇보다 심근경색은 예고 없이 발생하며 갑작스럽게 치명적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통계에 따르면 심근경색 환자 중 이전에 증상이 전혀 없었거나 심혈관질환의 병력이 없다가 첫 증상이 곧 심근경색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무려 50%, 절반에 달한다.
더욱이 환자의 15~20%는 첫 증상이 돌연사로 발생하며,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망하는 수가 많다. 짐 픽스처럼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이들이 속절없이 쓰러지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고위험군의 색출과 예방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셈이다.
최근 심장내과의 흐름은 죽상동맥경화의 전신적이고 진행성인 특성을 고려하여, 관상동맥질환을 특정 혈관의 국소 병변이 아닌, 전신적 대사질환과 염증 반응의 표현형으로 이해하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죽상동맥경화는 결코 심장 혈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간에서 시작된 염증의 불씨가 콩팥 기능을 태워버리고 결국 심장까지 더 빨리 더 심하게 망가뜨리는 ‘심혈관-신장-대사(CKM) 증후군’이라는 거대한 악순환의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심장대사의학’과 ‘예방 심장학’이 있다. 이 두 분야는 한 몸처럼 기능하며 단순히 수치를 조절하는 기술적 행위를 넘어, 전인적이고 다층적인 접근을 통해 심장혈관질환 자체의 경로를 바꾸는 선제적이고 실질적인 전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심혈관 위험 요인 전체를 통합적으로 조절하는 전략이다.
둘째, 위험 요인의 누적 노출 감소 전략이다.
셋째, 죽상동맥경화의 진행을 늦추거나 안정화시키는 치료다.
넷째, 발달한 영상 기기를 이용한 정밀 위험도 평가와 맞춤형 치료 설계다.
다섯째, 고강도 지질 조절 및 심장대사 약물을 이용한 혈당 및 비만 관리다.
마지막으로, 심혈관계 잔존 위험 요소 관리로서 표준 치료 후에도 남은 염증이나 혈전, LP(a) 같은 유전적 위험까지 추적한다.
이러한 접근은 ‘수치를 조절’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삶 전체를 관리하고 예측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짐 픽스가 갈구했던 ‘달리기를 통한 구원’은, 이제 정밀의학적 데이터와 그에 따른 합리적 실천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완성되어야 한다. 기적은 나의 결단위에 가능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What is to be done?)
우리가 버려야할 고정관념은 “나는 지금 컨디션이 아주 좋다”는 주관적인 느낌이다.
냉정하게 말해, 심혈관 질환의 세계에서 ‘기분이 좋다’는 것은 어떤 보장이 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혈관의 혈전 사고가 일어날 때까지 아무 변화도 감지하지 못한다. 짐 픽스 역시 비극의 전날까지 이상한 기미를 느끼지 못했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늦는다. 첫 번째 심근경색이 곧 마지막 순간이 될 확률이 20%에 달하는 게임에서, 증상을 기다리는 것은 위험하다.
죽상동맥경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누적 과정이다. 혈압은 침묵 속에 혈관 내피세포를 망가뜨리고, 인슐린 저항성을 부채질하며, ApoB 지단백질 입자들은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상관없이 혈관 벽에 죽상경화와 염증의 ‘불안한 돌탑’을 쌓아 올린다. 설사 터지지 않고 갈라지거나 금만 살짝 가더라도 혈전이 생겨 치명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1. ApoB(아포B)를 측정하라: LDL 콜레스테롤 수치보다 훨씬 정확한 지표다. 위험한 물질을 싣고 내 혈관 속을 돌아다니는 ‘트럭의 대수’가 몇 대인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2. Lp(a)(엘피리틀에이)를 파악하라: 혹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빌런(Villain)’이 없는지, 일생에 단 한 번은 꼭 검사해야 한다.
3. 대사적 건강을 추적하라: 당화혈색소(A1c)와 혈중 중성지방 수치 그리고 미세단백뇨 나 지방간 여부를 통해 위기에 처한 나의 혈관을 가늠할 수 있다.
4. 혈압을 관리하라: 혈관 내벽을 때리는 물리적인 압력은 죽상경화의 시작이다.
5. 발달된 영상 기기(심장 칼슘 CT: CAC Scan)를 활용하라: 적절한 시기에 관상동맥 석회화 수치를 확인하여, 내 혈관 속에 쌓여 버렸을지도 모르는 ‘업보’의 총량을 눈으로 확인하라. 플라크가 이미 자리를 잡았다면, 그때부터는 ‘따라잡기’ 게임이 시작된다. 지지않을 수 있다. 지지않는 것은 대성공이다.
6. 자율신경 능력을 배양하라: 혈압도, 혈당도. 마음의 평화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고 회복능을 키우는 방법이다. 등척운동훈련과 수면위생에 신경 써야 한다
예방은 대응이 아니라 ‘선제 타격’이다. 예방의 본질은 질병이 드러나기 전 먼저 행동하는 것이다. 짐 픽스는 달리기를 통해 신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정작 자신의 혈관 속에 무엇이 쌓이고 있는지 미처 미리 보지 못했다. 아니, 볼 수도 없었다.
기적은 자신의 데이터를 직시하고 과학적으로 정합한 실천을 인생 궤적 위에 충분한 시간동안 지속 했을 때 일어난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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