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 넘어 톨스토이에게...’대사적 인간’의 탄생

[의사 이호준의 심장, 진실 혹은 대담]

  • 패러다임 전환 질병을 감시·통제하던 ‘푸코적 시선’을 넘어, 스스로 균형을 회복하는 ‘호모 레질리엔스’에 주목한다.
  • CKM 증후군: 심혈관·신장·대사는 하나의 생명망이다. 건강은 취약성을 자각하고 데이터(지표)로 직시할 때 지켜진다.
  • 의학의 본질 톨스토이의 질문처럼, 의학은 단순 기술이 아니라 환자와 의료가 연대하여 ‘삶을 기르는 예술’이 되어야 한다.

병을 감시하던 의학에서 ‘대사’를 돌보는 의학으로

근대 의학은 ‘호모 아에그로투스(Homo aegrotus)’, 즉 ‘병듦으로 정의되는 인간’의 그늘 아래에서 태어났다. 미셸 푸코는 ‘임상의학의 탄생(The Birth of the Clinic)’에서 ‘의학적 시선(medical gaze)’이라는 개념을 통해, 근대 의학이 인간을 질병을 통해 읽고 분류하는 대상으로 재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병원, 통계, 검사, 그리고 돌봄의 관료적 장치들은 이러한 시선 위에 세워졌고, 의학은 건강한 인간을 대상으로 삼기보다 병든 인간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 했다. 인간의 몸은 ‘취약한 존재’(human vulnerability)이자, 계량 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어 관리와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 이해는 질병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발생한다고 여겨지던 과거 시대의 산물이다. 감염과 급성 질환이 의학의 중심에 있었던 시대에는 질병이 재난처럼 나타났고, 의학과 치료는 자연히 사후 복구의 기술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미셸 푸코. 출처= 나무위키
미셸 푸코. 출처= 나무위키

하지만 21세기의 상황은 다르다. 오늘날 문명 속에서 증가하는 질환들은 대부분 만성적이고 전신적이다.

비만, 당뇨, 지방간, 이상지혈증, 고혈압, 만성 콩팥병, 심뇌혈관질환 등은 서로 고립된 상태가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되는 대사적 교란의 연속선 위에서 나타난다.

이제 우리는 감염이 아니라 대사적 불균형과 그로 인한 신체의 장기적 변화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세계에서 인간은 더 이상 ‘병들 운명’을 기다리는 존재로만 머물 수 없다.

인간은 신체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교환과 적응, 그리고 조절의 리듬 속에서 산다. 생명의 역동적 균형을 스스로 돌보는 존재, 그것이 바로 호모 메타볼리쿠스(Homo metabolicus)이다.

한편 ‘숙명적 병자(Homo aegrotus)’와 ‘대사를 관리하는 인간(Homo metabolicus)’ 사이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단계가 있다. 바로 ‘호모 아에그루타볼리스(Homo aegrotabilis)’, 즉 ‘병들 수 있음을 자각한 인간’이다.

인간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더 큰 책임과 소명의 인식이다. 우리의 몸은 언제든지 균형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건강이 우연이나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이 아닌, 시간과 돌봄 그리고 행동과 실천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회복하는 인간’, 취약함을 자각할 때 열리는 치유

취약성을 이해한 인간은 그 한계를 회복의 힘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이를 깨달은 인간을 ‘Homo resiliens’(호모 레질리엔스, 회복하는 인간)라 부른다. 인간의 연약함을 부정하지 않고, 그 인식 위에서 삶의 균형을 다시 세우려 결단하는 인간이다.

CKM증후군 개념도(https://doi.org/10.3389/fpubh.2024.1480576)
CKM증후군 개념도(https://doi.org/10.3389/fpubh.2024.1480576)

지난 2023년, 미국 심장협회(AHA; American Heart Association)가 제안한 ‘심혈관-신장-대사증후군(Cardiovascular-Kidney-Metabolic syndrome, CKM) 개념은 현대 의학의 인간 이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심혈관, 신장, 대사가 하나의 연속된 생물학적 관계망 안에서 함께 병들고 함께 회복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별 질병은 단순히 그때마다 계량적으로 교정해야 할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검사 이상과 비정상 수치는 읽어야 할 신호이며, 더 안전한 궤적으로 방향을 전환하라는 경고이다. ‘심장대사의학’, 즉 CKM 의학이 지향하는 윤리는 반응적 치료를 넘어 예견적 관리이며, 그 기저의 철학은 사후 손상의 복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생명의 균형 회복과 유지를 위한 지속 가능한 실천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표지
톨스토이의 소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표지

레프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What Men Live By)’에서 하느님은 지상으로 유배된 천사에게 인간과 관련된 세 가지 문제의 답을 구하게 시킨다. 이 유명한 질문들은 오늘날 CKM의 현대적 질병 궤적 위에서 새롭게 변주된다.

내 안에 깃든 ‘대사적 회복력’을 깨워라

I. 첫 번째 질문: 인간 안에는 무엇이 깃들어 있는가?

-Stage 0 & 1: 평온 속에 깃든 회복의 잠재력-

천사는 인간 안에 ‘사랑’이 깃들어 있다고 답했다.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안에는 스스로를 조절하고 평형을 유지하려는 ‘대사적 회복력’이 깃들어 있다.

Stage 0 (출발점): 모든 수치가 정상인 단계다. 하지만 이는 아무 일도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인 관리가 시작되어야 할 ‘각성’의 시기다. AHA의 Life’s Essential 8(식단, 운동, 금연, 수면, 체중, 지질, 혈당, 혈압 관리)은 우리 안에 깃든 건강한 생명력을 지키기 위한 지침이다.

Stage 1 (대사이상의 시작): 내장 지방이 늘고 인슐린 저항성이 고개를 드는 시기. “아직 병은 아니다”라는 안도 대신, 생활 리듬의 회복을 통해 대사적 관성을 벗어날 ‘기회의 창’을 열어야 한다.

무증상의 장막, 나도 모르게 무너지는 내면

II. 두 번째 질문: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Stage 2 & 3: 무증상의 장막 뒤에 숨은 침묵의 붕괴-

천사가 깨달은 두 번째 답은 “인간은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을 부여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CKM의 중간 단계에서 인간은 자신의 내부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의 감각으로는 알아채지 못한다.

Stage 2 (말초장기손상): 고혈압, 당뇨라는 이름표가 붙는 시기다. 증상은 없지만 신장은 소리 없는 비명(단백뇨)을 지르며 심장에도 과부하의 흔적(심장비대)이 남는다.

Stage 3 (전임상 질병):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지만, 관상동맥 혈관 벽에는 이미 ‘시간의 퇴적물’인 죽상동맥경화반이 형성되고(관상동맥칼슘점수), 심장은 조용한 신음(NT-proBNP, 심부전 수치)을 지른다.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스스로 알 수 없기에, 의학적 ‘검사’와 ‘지표’라는 거울을 통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진실한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기술을 넘어 연대로, 삶을 기르는 예술

III. 세 번째 질문: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Stage 4: 기술을 넘어 연대(連帶)와 양생(養生)의 도(道)-

마지막 질문에 대한 천사의 답은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타인에 대한 사랑과 돌봄으로 산다”는 것이었다. CKM의 최종 단계에서 의학은 기술적 관리를 넘어 삶의 질을 보존하려는 고귀한 돌봄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Stage 4는 뇌졸중, 심부전 등 구체적인 사건이 발생한 단계다. 이제 치료는 예방을 넘어 기능을 복구하고 생명력을 보존하는 생존의 국면이다. 이 단계는 의사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환자가 자신의 필멸을 자각하고 매일 ‘회복의 훈련’에 임하는 의지, 그리고 이를 돕는 포괄적이고 정교한 의료 시스템과의 연대가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힘을 얻는다.

푸코적 Homo aegrotus가 ‘통제의 세기’를 살았다면, 회복하는 ‘대사적 인간’(Homo resiliens)은 ‘자각의 세기’를 살아간다. 인간을 취약하면서도 자기조절이 가능한 존재로 이해할 때, 의학은 질병을 관리하는 기술을 넘어 비로소 삶을 기르는 예술(cultivation of life)이 된다.

자료= AHA 홈페이지
자료= AHA 홈페이지
글쓴이

이호준 더베스트내과 대표원장

이호준은 심장학을 전공한 내과전문의로, 심장대사의학(cardiometabolic medicine)을 연구하고 진료하는 임상의사다. 안산 더베스트내과 대표원장으로서 동료 소화기내과 전문의들과 함께 일상 진료에 충실하며, 질병을 사건이 아닌 시간과 구조의 문제로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메디칼업저버에 「역사 속의 심장」을 연재하며, 의학과 역사, 사회를 잇는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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