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막으려면, 첫 번째를 막아라
[의사 이호준의 심장, 진실 혹은 대담]
- [예방]
- 화재 예방과 같은 심혈관 관리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은 발생 후 치료보다 애초에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 중요하다. 혈관 내 죽상동맥경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되므로 아직 사건이 없다는 것이 건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 첫 번째 사건의 치명적 파장 첫 번째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은 단순한 경고를 넘어 생명을 위협하거나 전신 쇠약과 심부전 등 회복 불가능한 후유증을 남겨 마지막 죽음을 앞당기는 계기가 된다.
- 사건 전 적극적인 예방과 실천 고위험군이라면 아직 첫 사건이 발생하기 전이라도 생활습관 개선, LDL-C 적극 관리, 정기 검진을 통해 잠재적 위험 요소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불행은 일어나지 않는 게 더 중요
“Si vis pacem, para bellum.(If you want peace, prepare for war)”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뜻의 라틴어 경구다. 승리를 원한다면 훈련의 노고를 아껴서는 안 되며, 성공을 희망한다면 행운만 바라보고 싸울 수 없다는 해석이다.
질병의 예방 또한 다르지 않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발생한 뒤에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첫 번째 사건이 애초에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해야 한다.
화재가 난 다음에 출동할 소방관과 소방장비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불이 난 다음에 제아무리 완벽하게 수습한들, 아예 화재가 일어나지 않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인명 피해가 없더라도 영업은 중단되고 삶의 터전은 망가진다. 복구에는 오랜 시간과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가게든 식당이든 공장이든, 직접 사업장을 운영해 보면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소방서는 세무서 뺨치게 무섭다. 소화기의 비치 상태와 유효기간, 비상구 앞의 장애물 유무, 유도등과 방화문, 전기배선과 가연성 소재의 사용 여부까지 하나하나 점검받는다. 너무하다는 원망이 나올 만하다.
그런데도 온 국민이 대체로 군말 없이 따른다. 왜 그러겠는가? 성공적인 진화보다 예방이 훨씬 좋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불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소방 점검을 미룰 이유가 되지 않는다. 화재의 위험 요소를 찾아 시정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기는 아직 불이 나지 않았을 때다.
첫 번째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왔다면
심근경색과 뇌졸중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을 겪은 사람에게 혈중 LDL 콜레스테롤(LDL-C)을 훨씬 더 낮추도록 치료해 왔다. 한 번 불이 난 건물에는 더 엄격한 안전기준을 적용하는 셈이다. 이미 심혈관사건을 겪은 사람은 재발 위험이 더 높기 때문에 당연한 조치다.
그러나 첫 번째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발생한 뒤에야 비로소 LDL-C 저하 치료를 강화한다면, 불이 난 뒤에 본격적인 화재 예방을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의 혈관에서는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죽상동맥경화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을 처음 겪게 된다면 그동안의 예방이 충분했는지 반드시 되돌아볼 일이다. LDL과 VLDL 잔여 입자, 그리고 Lp(a) 같은 apoB 함유 지단백 입자들은 혈액을 따라 흐르다가 동맥벽 안으로 들어가 머무르며 염증반응을 일으키고 죽상경화반을 만든다. 그 영향은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된다.
현재의 LDL-C 수치가 같더라도 젊은 시절부터 높은 상태가 지속된 사람과 최근에야 높아진 사람의 혈관 상태가 같을 수 없다. 높은 LDL-C은 오랜 세월 건물 안에 쌓여 온 가연물과 같다. 흡연, 고혈압, 당뇨병, 비만, 만성신장질환 같은 위험요인은 낡은 전선이나 과열된 기계처럼 발화 가능성을 더 높인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이 곧 혈관이 건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아직 불이 나지 않았다는 것과 불이 날 위험이 없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다.
마지막이 되지 않으려면 첫번째가 되지 않아야
첫 번째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은 단순한 경고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에게는 첫 번째 사건이 곧 마지막 사건이 되기도 한다.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하거나, 치료를 받더라도 심장이나 뇌의 일부가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
살아남았다고 해도 모두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심근경색 후에 손상된 심장은 변형되고 기능이 떨어져 심부전이 생길 수 있다. 신장 기능이 악화되고 입원이 반복되면 근육은 줄고 몸의 예비력(reserve)이 약해지기도 한다.
뇌졸중 뒤에는 마비뿐 아니라 연하장애와 보행장애가 남을 수 있다. 움직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근육이 줄고,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 흡인성 폐렴이 생길 위험도 커진다. 처음에는 심장이나 뇌에서 시작된 사건이 시간이 지나면서 전신의 쇠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몸의 예비력이 줄어들면 폐렴이나 감염, 암과 같은 다른 질병도 견디기 어렵다. 사망진단서에 기록될 마지막 사인(cause of death)은 심혈관질환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죽음으로 몰아간 계기는 수년 전의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었을 수 있다.
첫 번째 사건은 삶과 질병의 경로를 바꾸고 마지막을 앞당긴다. 마지막 사건을 막으려면 첫 번째를 막아야 한다.
최근 VESALIUS-CV 연구는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한다. 이 연구에는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을 겪은 적은 없지만, 이미 혈관에서 죽상경화증이 확인되었거나 당뇨병으로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은 사람 1만 2천여 명이 참여했다. 스타틴과 같은 지질저하 치료를 받고 있는데도 LDL-C가 충분히 낮아지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절반에게 기존 치료와 함께 에볼로쿠맙(evolocumab)이라는 주사제가 투여되었다. 에볼로쿠맙은 혈액 속 LDL-C를 크게 낮추는 PCSK9 억제제라는 약이다. 나머지 절반은 기존 치료를 계속하면서 위약(placebo)을 투여받았다.
약 4.6년 동안 관찰한 결과, 첫 심근경색이나 허혈성 뇌졸중 또는 관상동맥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에볼로쿠맙 투여군 336명, 위약군 443명에게 발생했다. 5년 발생률로 환산하면 각각 6.2%와 8.0%였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까지 함께 고려해 분석했을 때 에볼로쿠맙 투여군의 위험은 비교군보다 25% 낮았다. 전체 사망도 20% 적게 관찰되었다.
적극적인 예방을 해야
이 연구의 메시지는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생기기 전이라도 심혈관질환의 위험이 높다면 LDL-C를 적극적으로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모든 사람에게 값비싼 주사제 치료를 감행하라는 뜻이 아니다.
생활습관 개선과 스타틴 같은 기본 치료에서 시작하되, 여러 위험요인과 동맥에 진행된 죽상경화증의 정도를 감안하여 치료 강도를 정해야 한다. 핵심은 첫 번째 사건이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미 확인된 위험을 방치하지 말라는 것이다.
소방서는 화재가 났던 건물만 관리하지 않는다. 불이 날 가능성과 불이 났을 때 예상되는 피해를 함께 살핀다. 전기설비를 점검하고, 가연물을 치우고,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며, 비상구를 확보한다. 아직 불이 나지 않았을 때 하는 일이 화재 예방이다.
심혈관질환 예방이 그러하다. 혈압과 혈당, 비만을 관리하고 담배를 끊으며 LDL-C를 적절히 낮추는 일은 아직 눈에 띄지 않은 불씨와 가연물을 줄이는 과정이다. 위험성 높은 사람을 미리 찾아내는 검진은 소방점검과 화재경보기에 해당한다.
화재가 발생하면 모든 장비와 인력을 총동원하여 일단 불을 꺼야 한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발생한 뒤의 응급치료와 재발 방지 역시 소홀히 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소방관도 잿더미를 되돌려 놓을 수는 없다. 아무리 성공적인 중재시술도 일단 죽은 심장근육과 뇌세포는 완전히 되살리지 못한다.
첫 번째 사건은 예방이 시작되는 시점이 될 수 없다. 그것은 피할 수도 있었던 재앙을 예방 못한 결과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 마지막 사건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4대 실천 지침]
1. 자신의 LDL-C를 확인하십시오. 당뇨병이나 비만, 높은 중성지방 등으로 위험을 자세히 평가해야 할 때는 apoB 측정이 필요합니다.
2. 지금 이 순간의 수치뿐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이어진 혈중 콜레스테롤의 경과와 심혈관질환의 가족력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주치의와 관상동맥 칼슘CT 그리고 경동맥 도플러 검사를 상의하세요.
3. 혈압과 혈당, 체중을 관리하고 담배를 끊어야 합니다. 간과 콩팥의 상태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4. 장기간에 걸친 심혈관 질환 위험의 변화를 추적하고 생활과 치료를 함께 조정할 주치의를 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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