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은 건강식? 심장까진 안지켜준다

[의사 이호준의 심장, 진실 혹은 대담]

한식당을 찾아 김치를 즐기고 있는 고독한 미식가.
한식당을 찾아 김치를 즐기고 있는 고독한 미식가.
  • 평생 한식을 먹어도 혈관이 막힌다면 흔히 밥과 국 위주의 한식을 완벽한 건강식으로 믿지만, 한식 식단 자체로는 수십 년에 걸쳐 혈관 속에 축적되는 LDL 콜레스테롤이나 만성 염증, 대사증후군 같은 심뇌혈관 위험인자들을 완벽히 방어하기 어렵다.
  • 단백질 중심으로 식단 짜야 밥에 탄수화물 위주의 반찬이 겹치는 한식 특유의 구조는 혈당 상승과 인슐린 저항성을 유발하므로, 백미를 줄이고 매 끼니 양질의 단백질과 불포화지방을 먼저 확보하는 형태로 식단의 질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 임상의학적 식사 처방과 약물치료 병행 평균적인 한식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개인의 대사 상태에 맞춘 맞춤형 식단(채소 50%, 단백질 25%, 통곡물 25%)을 실천해야 하며, 이미 혈관 노화가 진행된 고위험군이라면 식단 개선과 함께 적극적인 약물치료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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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식생활의 결과

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은 여전히 우리나라 사망원인의 상위를 차지한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은 흔히 갑작스러운 불행한 사고로 여겨지지만, 사실은 수십 년에 걸쳐 혈관 속에서 진행된 혈중 지질 이상, 혈관 내피 기능 저하, 만성 염증, 대사 이상이 축적된 결과다.

진료실에서는 “평생 밥과 된장국, 김치와 나물 위주의 한식을 먹었는데 왜 관상동맥이 막히고 뇌졸중까지 생겼느냐”며 억울해하는 환자를 자주 만난다. 그렇다고 한식이 몸에 해롭거나 국가 식생활지침이 죽상경화성 심뇌혈관질환의 원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심장질환은 LDL 콜레스테롤, 복부비만, 고혈압, 당뇨병, 만성신장질환, 흡연 등 여러 위험인자가 오랜 시간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국가 식생활지침은 건강한 대다수 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선이다. 그러나 이미 복부비만이나 지방간이 있고 혈당이 상승하기 시작한 대사증후군 환자에게는 동일한 기준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평균적인 국민에게 무난한 식사라도 특정 개인에게는 개선의 여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공중보건 차원의 일반 원칙을 넘어 개인의 대사 상태와 심혈관 위험도에 맞춘 ‘임상의학적 식사 처방’을 고민해야 한다.

제1원칙: 비율보다 더 중요한 것

심장 건강을 위한 식사에서는 탄수화물과 지방의 비율을 따지는 것보다 먼저 이 음식이 자연식품인지, 원래 식재료의 형태를 대부분 유지한 음식인지, 아니면 초가공식품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초가공식품은 현대 사회에서 비만과 당뇨병, 심혈관질환 위험 증가에 가장 중요한 환경적 위험인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이러한 식품은 대개 에너지 밀도가 높고 식이섬유는 적으며, 맛과 식감을 극대화하여 자신도 모르게 과잉 섭취하게 만든다.

실제 연구에서도 초가공식품을 많이 섭취한 사람들은 최소가공 식품을 중심으로 식사한 사람들보다 체중 증가와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더 높게 나타났다.

가당 음료, 가공육, 시판 과자, 냉동 튀김, 즉석 면류처럼 영양 밀도는 낮고 열량만 높은 식품을 줄이고, 채소, 과일, 콩류, 견과류, 생선, 달걀처럼 본래의 형태를 유지한 자연식품(Whole foods)을 식사의 중심에 두는 것이 건강한 심장대사를 위한 첫걸음이다.

제2원칙: 정제 탄수화물이 겹치는 식사를 줄여라

한국인의 식사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정제 탄수화물이 반복적으로 겹치는 식사 구조다. 예를 들어 쌀밥에 잡채와 전을 곁들이거나, 짜장면에 탕수육을 먹고 후식으로 믹스커피를 마신 뒤, 간식으로 떡과 식혜까지 먹는 식이다.

이러한 식사는 인슐린 분비 부담을 높이고 지방간과 인슐린 저항성을 악화시켜 대사증후군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인다. 그렇다고 쌀밥 자체를 악마화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양과 조합이다.

밥의 양을 적절히 줄이고, 채소와 단백질을 먼저 먹은 뒤 탄수화물을 섭취하며, 백미의 일부를 현미, 보리, 콩으로 대체하는 것만으로도 혈당과 체중, 지방간 등 여러 대사 지표를 의미 있게 개선할 수 있다.

제3원칙: 단백질은 매 끼니, 지방은 질을 따져라

근육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큰 포도당 소비 기관이다. 중년 이후 근육량이 감소하면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혈당은 더 쉽게 상승한다. 따라서 단백질은 밥에 조금 곁들이는 반찬이 아니라, 매 끼니 가장 먼저 확보해야 할 기본 식품이다.

일반 성인은 하루 체중 1㎏당 약 1.0g의 단백질 섭취를 기본 목표로 삼을 수 있다.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거나 근육량이 부족한 중장년층은 개인의 운동량과 건강 상태에 따라 1.2~1.6g까지 늘리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달걀, 생선, 살코기, 두부 등 양질의 단백질 식품을 매 끼니 빠뜨리지 않는 식사 습관이 중요하다. 다만 만성신장질환 등 특정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주치의와 상의해 적절한 섭취량을 정해야 한다.

지방도 무조건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핵심은 ‘포화지방을 무엇으로 대체하느냐’이다. 버터나 고지방 육류를 줄인 자리를 정제 밀가루 빵 같은 탄수화물과 과도한 당분으로 채운다면 심혈관 위험은 거의 개선되지 않는다.

반대로 견과류, 생선, 올리브유와 같은 불포화지방산으로 바꾸면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근거가 일관되게 축적되어 있다. 반복해서 사용한 튀김기름과 정제 전분이 함께 들어 있는 튀김류와 배달 음식은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이 좋다.

식물성 식단의 모습.
식물성 식단의 모습.

머릿속에 그리는 ‘심장 건강 식판’

매 끼니 복잡한 영양소 계산이 어렵다면, 가상의 ‘식판’을 하나 그려보자.

절반은 채소: 식판의 50%는 다양한 색깔의 채소로 채운다. 단, 감자나 고구마 같은 전분성 뿌리채소는 채소가 아니라 탄수화물로 취급해야 한다.

4분의 1은 단백질: 생선, 달걀, 살코기, 두부로 채운다. 이때 대두, 렌틸콩, 병아리콩 등 콩류(Legume)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식물성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동시에 섭취한다.

나머지 4분의 1은 통곡물: 백미나 밀가루 대신 현미, 보리, 귀리 등 정제되지 않은 곡물로 채운다.

건강한 지방은 올리브유나 들기름을 샐러드에 두르거나 약간의 견과류를 곁들이는 방식으로 섭취한다. 과일은 채소처럼 마음껏 먹어도 되는 음식이 아니다. 생과일을 섭취하되 썰어 놓았을 때 기준으로 작은 밥공기 하나 분량을 넘지 않도록 제한해야 중성지방 상승과 지방간을 막을 수 있다.

생활습관 교정과 의학적 개입의 조화

지중해식 식단을 비롯한 다양한 대규모 연구는 탄수화물과 지방의 비율보다 자연식품 중심의 식사 패턴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생활습관 교정도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식사는 심혈관질환 예방의 토대이지만, 이미 죽상경화가 진행됐거나 심혈관질환 위험이 높은 사람에게는 식사와 약물치료가 함께 갈 때 가장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유전적 요인으로 LDL 콜레스테롤이 높거나 이미 혈관에 동맥경화가 진행된 사람은 식단 개선과 함께 LDL 콜레스테롤과 ApoB를 목표 수준까지 낮추기 위한 적극적인 약물치료가 권고되어야 한다.

당뇨병, 만성신장질환, 조기 심혈관질환 가족력이 있거나 이미 심혈관질환을 앓은 고위험군이라면 일반 혈액검사 외에도 ApoB(아포지단백 B), Lp(a)(유전적으로 결정되는 지단백), hsCRP(혈관의 만성 염증 정도를 반영하는 고감도 C-반응성 단백) 등을 측정해 자신의 위험인자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간헐적 단식(시간 제한 섭식) 역시 맹신할 필요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총 섭취 열량을 줄이고 늦은 밤 식사를 피하도록 도와주는 생활 전략으로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여기에 주당 150분 이상의 유산소 운동과 주 2회 이상의 근력운동이 더해질 때 심장대사 건강은 더욱 향상된다.

“약은 독이니 자연식으로 해독하겠다”며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식사는 치료의 기초이고, 약물은 중요한 방편이다. 둘은 경쟁과 배타의 사이가 아니다. 상호 보완적 관계이다.

맺음말

심장을 지키는 식이요법의 우선순위를 꼽는다면, 첫째는 초가공식품을 자연식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둘째, 정제 탄수화물을 줄이고 셋째, 매 끼니 충분한 양질의 단백질과 식이섬유를 섭취해야한다.

아울러 야식과 과음을 피하고 꾸준히 운동하며, 질 좋은 수면과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늦지 않게, 적극적으로 위험인자들을 색출하고 치료하는 것이 심뇌혈관질환 예방의 가장 현명한 전략이다.

식탁 앞에서 “탄수화물이 더 나쁜가, 지방이 더 나쁜가”를 놓고 하릴없는 논쟁을 벌일 상황은 지났다. 이미 명확한 결론이 내려졌다. 오늘부터 스스로에게 묻고 실천해 보자.

“오늘 나는 초가공식품보다 자연식품을 선택했는가? 근육과 혈관 그리고 심장과 뇌를 지켜줄 식사를 했는가?”

이 칼럼을 영상으로 · 1:56 의사들이 절대 안 먹는 혈관 망치는 최악의 탄수화물 조합은?
글쓴이

이호준 더베스트내과 대표원장

이호준은 심장학을 전공한 내과전문의로, 심장대사의학(cardiometabolic medicine)을 연구하고 진료하는 임상의사다. 안산 더베스트내과 대표원장으로서 동료 소화기내과 전문의들과 함께 일상 진료에 충실하며, 질병을 사건이 아닌 시간과 구조의 문제로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메디칼업저버에 「역사 속의 심장」을 연재하며, 의학과 역사, 사회를 잇는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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