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눈치 보지 말고 ‘주권적 용기’ 내라”

주한 러시아대사, 비공식 기자간담회

지난 11일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국내외 10여 언론 기자들을 초청해 기자간담회를 갖는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가운데). 사진= 주한러시아대사관 페이스북
지난 11일 주한 러시아대사관에서 국내외 10여 언론 기자들을 초청해 기자간담회를 갖는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가운데). 사진= 주한러시아대사관 페이스북
  • [1분 핵심 요약: “러시아가 던진 거부하기 힘든 거래”]
  • 현황 진단 지노비예프 대사는 이재명 정부의 ‘절제된 언어’는 긍정하나, 실질적인 대러 수출 제재 등 ‘행동의 변화’가 없는 것에 대해 깊은 실망감을 표명함.
  • 전략적 제안 세계 1위 조선·해운 강국인 한국을 북극항로(NSR) 개발의 ‘종합 파트너’로 초청. 이는 단순 투자를 넘어 물류 운영 노하우와 LNG 쇄빙선 공급을 포함한 ‘빅딜’ 제안임.
  • 안보적 견제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프로젝트를 ‘오커스(AUKUS)식 불투명성’이라 규정하며 강력 경고. IAEA 틀 안의 투명성 없이는 러시아가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레드라인 선포.
  • 대사 메시지 한국은 이제 강대국이며, 러시아와의 신뢰 회복을 위해 미국 주도의 제재 틀을 깨고 나오는 ‘주권적 결단’을 내릴 때가 되었음을 강조.
  • [The Insight- 행간의 재구성]
  • “나로호와 K-방산은 우리 기술의 결실” 지노비예프 대사가 과거 러시아의 기술 협력을 언급한 것은 의도적. 우크라이나에 간접 지원하는 무기(K-방산)의 뿌리가 러시아임을 상기시키며 “우리가 준 기술로 우리를 겨누지 말라”는 압박.
  • “뒤집힌 컵”과 “노련한 셰르파” 이재명 정부의 ‘국익 중심 실용 외교’ 성향을 정확히 파고들고 있음. 북극항로라는 거대한 경제적 이익을 미끼로 던지며, “미국의 허락을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결단하라”고 부추김. 이는 한국을 서방의 제재 전선에서 이탈시키고 중국의 활발한 참여도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
  • “오커스(AUKUS)식 불투명성” ‘오커스’를 언급한 것은 매우 예민한 대목임. 미국이 호주에 준 ‘고농축 우라늄(HEU)’ 예외 조치를 한국이 기대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국제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 이는 한국이 핵잠수함을 가질 경우 동북아의 전략적 균형이 깨질 것을 우려하는 러시아의 본심. 이를 위해 ‘IAEA 투명성’ 굴레를 시사함.

“북극항로의 문을 여는 열쇠는 러시아와 한국간 신뢰입니다. 한국은 미국이 대러 제재를 해제해주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권적 결단을 내려서 행동해야 합니다.”

한반도 주변 4강 중 하나인 러시아의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가 최근 행한 발언이 우리 정부와 외교가에 미묘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윤석열 정부와 달라진 대러 외교관계를 기대했으나 오히려 악화된 면이 있다는 지적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대해선 미국의 지원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과 함께 ‘핵무기 전용’가능성에 대해 강한 경계감을 드러내며 견제구를 날렸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이재명 정부이후 달라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관련해 러시아 정부도 이를 인정한다고 발언한 대목이다. 러시아 대사는 한국이 동맹을 넘어 주체적 외교를 펼칠 것을 권고했다.

러시아 대사와 국내외 언론간 비공식 기자간담회는 지난 11일 러시아대사관에서 이뤄졌다.이 자리에는 <더 칼럼니스트>의 문주용 발행인 겸 기자, 타스통신의 이고리 이바노프 특파원 등이 참석했다. (관련기사: “컵은 이미 반이 차 있다, 한국은 뒤집지만 마라”)

“한국의 성공, ‘러시아와의 협력’ 토양 위에 피어난 결실”

지노비예프 대사는 먼저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무거운 비중을 가진 행위자’로 성장했다며, 러시아도 이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사는 이러한 기술적 성취의 이면에 러시아와의 협력이 있었음을 상기시켰다.

특히 K-방산의 비약적 발전과 ‘나로호’로 상징되는 우주항공 기술의 근간에는 과거 서방 국가들이 공유를 주저했던 핵심 전략 기술을 제공한 러시아의 결정적 기여가 있었음을 언급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감사의 표시를 요구한 적이 없으나 파트너에 대한 최소한의 ‘도의적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과거의 협력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듯한 현재의 흐름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한국, 자국 국익’ 우선하는 주권 외교를 펼쳐야”

한-러 관계 경색의 원인에 대해 지노비예프 대사는 한국이 서방의 제재 체제를 그대로 수용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러시아 측은 한국이 처한 지정학적 특수성과 동맹의 압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단순히 비난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전제했다.

그럼에도 대사는 “공은 이미 한국 측에 가 있다”는 푸틴 대통령의 메시지를 인용하며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를 징벌해야 한다는 발언을 한 윤석열 정부에 비해 현 정부는 ‘언어적 절제’를 보여 는 긍정적이나, 수출 제재 확대 등 실질적인 행동은 여전히 변화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사는 ‘물이 담긴 컵’을 비유로 들어 “러시아는 협력의 물을 부을 준비가 되어 있으나, 컵이 뒤집혀 있다면 담길 수 없다”며 한국이 먼저 컵을 바로 세우는 실천적 의지를 보여줄 것을 촉구했다.

북극항로 개발, 한국을 ‘종합적 파트너’로 초청하는 전략적 제언

경제 분야에서 러시아는 한국의 조선·물류 역량을 높이 평가하며 북극항로(NSR) 개발의 ‘종합적 파트너’가 되어줄 것을 제안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단순한 자본 투자를 넘어, 세계 1위 해운 강국인 한국의 글로벌 물류 운영 노하우와 LNG쇄빙 상선의 공급, 그리고 극동 지역 내 선박 관리 허브 조성이 양국 모두에게 거대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러시아를 ‘노련한 셰르파’에, 한국을 ‘최고의 장비를 갖춘 등반가’에 비유하며 협력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특히 대사는 중국 등 역내 주요 국가들이 북극항로와 전후 복구 사업에서 보여주는 발 빠른 행보를 언급하며, 실리적 관점에서 한국의 결단이 늦어질 경우 기회의 창이 닫힐 수 있음을 완곡하게 시사했다.

핵잠수함 프로젝트 우려, “오커스식 불투명성 배제해야”

경제적 협력의 손길을 내미는 한편, 안보 사안인 핵추진 잠수함 건조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지극히 단호한 어조로 견제구를 날렸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이 프로젝트가 국제 핵 비확산(NPT) 체제에 대한 도전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모든 과정은 반드시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틀 안에서 투명하게 검증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호주 사례와 같은 ‘오커스(AUKUS) 방식’ 도입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대사는 “고농축 우라늄(HEU)을 사용하여 감시망을 우회하려는 시도는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위험한 행위”라며 “미국이 호주에게 준 예외조치를 한국에게도 허용할 것이라 보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어 “러시아는 대한민국이 이러한 ‘오커스식 불투명성’의 장막 뒤에 숨어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전후 재건사업에 대해 한국 건설업계의 시공능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면서 경제 제재의 완화 등 구체적인 관계회복 노력을 선행할 것을 한국측에 요청했다. 또 김포-블라디보스토크 간 항공운항 재개와 관련해서도 비공식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극동(원동)지역의 잠재력이 한국의 지본 및 기술과 결합하는 것이야말로 양국 모두에게 즉각적이고 실질적인 이익을 안겨줄 것”이라며 실제적 협력을 촉구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러시아는 한국이라는 소중한 파트너를 상실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전했는데, 관계 회복의 속도는 한국 정부가 보여줄 ‘주권적 용기’와 ‘실질적 행동’에 비례할 것임을 재차 확인하며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간담회 서두에서 러시아와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에 대해 “조선인민군의 위대함을 잊지 않겠다”면서 감사의 뜻을 표하고 “지난 2024년 6월 체결된 포괄적 전략동반자 관계 조약에 따라 러·북 관계는 더 높은 단계에 올라섰다”고 말했다.

주한러시아 대사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하는 문주용 '더 칼럼니스트' 발행인 겸 기자(가운데).
주한러시아 대사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을 하는 문주용 ‘더 칼럼니스트’ 발행인 겸 기자(가운데).

[데스크 노트]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가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다. 한국을 ‘헤비급’으로 인정하며 던진 그의 ‘주권적 결단’ 요구는, 역설적으로 대한민국이 더 이상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약자가 아님을 방증한다.

특히 대사가 언급한 ‘북극항로(NSR)’에 대해 한국이 북극의 문을 여는 ‘종합적 파트너’로 초대받았다는 사실은, 이재명 정부가 지향하는 ‘국익 중심 실용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음을 의미한다. 러시아라는 ‘노련한 셰르파’의 손을 잡는 것은 단순히 동맹의 틀을 깨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기술적 자산과 지리적 이점을 결합해 국가의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는 주도적 행동이 될 수 있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에 대한 주변국의 견제를 넘어서는 것은 난제다. 그러나 대사의 비유처럼 ‘물이 담긴 컵’을 바로 세우는 주체는 결국 우리 자신이고 그 방법은 ‘신뢰’다. 동맹의 가치를 존중하되, 그 틀 안에서 우리의 경제적 지평을 넓히는 ‘주권적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나로호와 K-방산의 초석을 닦았던 한-러 기술 협력의 기억을 지렛대 삼아, 경색된 관계의 얼음을 녹일 이재명 정부의 실천적 실용주의를 기대해 본다. 이제 공은 우리에게 와 있다. 한국 외교의 위상은 ‘제시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드는 용기에 달려 있다.

글쓴이

문주용 기자

문주용 대표이사 겸 기자는 31년간 언론인 생활을 바탕으로 새로운 언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힘든 세상에서 위로받고 지혜를 얻고 싶어하는 소비자들이 바라는 미디어를 만들려 합니다.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집단지성의 지혜를 쌓을 것입니다. 전문가그룹과 소비자들이 함께 하는 미디어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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