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중인 러시아, 이란전 중재 나선 ‘아이러니’
자국 전쟁 지속하며 중동 평화 제안 트럼프 “푸틴, 이란 사태 돕고 싶어 해” 중·프 등 국제사회 중재 가속
4년 넘게 우크라이나와 유혈 전쟁을 치르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이란 전쟁의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자국 전장의 포성은 멈추지 않은 채 타국의 종전을 논하는 푸틴의 행보에 대해 ‘지독한 아이러니’라는 평가가 나올만하다. ’
글로벌 외교안보 세계에서는 아이러니(반어적 상황)와 파라독스(역설)이 흔하다. 다급한 상황이 다가오면 전쟁하던 적국과도 언제 그랬냐는 듯 공동이익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단극체제에서 글로벌 다극체제로 바뀌는 중에 그만큼 이해관계가 복잡해졌다는 반증이다.
러시아 크렘린궁과 외신 보도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약 1시간 동안 전화 회담을 갖고 이란 전쟁의 조기 종식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했다.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담당 보좌관은 “두 정상이 이란전 상황을 심도 있게 논의했으며, 푸틴 대통령이 신속한 정치·외교적 해결책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9일 마이애미 기자회견을 통해 “푸틴 대통령과 아주 좋은 대화를 나눴으며, 그는 (이란 사태에) 건설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이란 전쟁이 매우 곧 끝날 것”이라며 조기 종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이번 중재 행보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법을 위반하고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낸 당사자가, 역시 중동에서 국제법을 위반하며 이란을 공격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평화의 사도’ 역할 공연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친분이 깊고,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러시아에 초청해 우호 관계를 다지기도 했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 중에는 이란에 군사적 지원을 지속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푸틴의 이 같은 행보가 철저한 실리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과 미사일을 공급받는 등 전략적 파트너인 이란 체제의 붕괴를 막는 동시에,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 채널을 강화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의 지분을 챙기려는 ‘패키지 딜’의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한편, 이란 전쟁의 출구를 찾으려 하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푸틴의 제안이 싫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는 이날 전쟁 종식과 관련한 발언을 잇달아 내놓았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이란이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최고지도자로 선출한 데 대해 불만을 드러내던 그는 갑자기 발언 수위를 낮췄다.
그는 CBS 인터뷰에서 “전쟁이 마무리 수순”이라고 했고, 공화당 행사와 기자회견에서는 “매우 빨리 끝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러시아 외에도 중국, 프랑스, 튀르키예 등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도 본격화되고 있다. 카젬 가리바바디 이란 외무차관은 이날 국영 TV를 통해 “러시아와 중국, 프랑스 등 여러 국가로부터 휴전 제안을 받았다”며 외교적 접촉 사실을 시사했다.
다만 이란 측은 “휴전을 위해서는 미·이스라엘의 침략 재발 방지 약속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조건을 내건 상태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갖고 튀르키예가 전쟁 종식을 위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 중이라고 전했다.
이라크는 적대 행위 중단을 목표로 중동지역 국가들과 유럽연합(EU)이 참여하는 외교연합 구성을 촉구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도 카타르 군주(에미르)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와 전화 통화를 갖고 중동 분쟁 확대를 피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의 중요성을 논의했다.
이란도 국제사회의 접촉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며 휴전 가능성에는 문을 열어뒀지만, 협상을 위해서는 자국에 대한 추가적인 공격 중단이 필요하다며 조건을 제시했다.
가리바바디 외무 차관은 이란 TV를 통해 “유엔 헌장에서 규정한 자위권 행사 종결 조건 중 하나가 그런 행동이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휴전이 이뤄진다면 당연히 침략은 재발돼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6개월 뒤 또다시 공격으로 이어질 휴전은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영구 종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해 6월 이란의 핵시설 등을 공습해 12일간 전쟁이 이어진 뒤 휴전에 합의했지만 지난달 말 재차 공습을 한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