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매혹적인’ 강수연이 있었다

치명적 매력으로 서사의 중심에 선 배우 “그녀가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는다니...”

영화 '그대안의 블루'에서 안성기와 함께 있는 강수연(오른쪽).
영화 '그대안의 블루'에서 안성기와 함께 있는 강수연(오른쪽).
영화배우 강수연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 삼성병원 장례식장. 사진=고 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연합뉴스
영화배우 강수연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 삼성병원 장례식장. 사진=고 강수연 배우 장례위원회/연합뉴스

전주국제영화제에 참석하던 중에 뜻밖의 비보를 들었다. 강수연 배우가 무의식 상태에 있다는 소식에 이어 곧 사망 소식까지 접했다. 아직 죽음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나이가 아니라서, 회복을 기원했으나 결국 다시는 볼 수 없는 하늘의 별이 됐다.

스타의 죽음은 늘 충격을 주지만 강수연의 죽음은 인기 절정에 있는 배우의 비보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배우 강수연 하면 아시아 배우로서는 최초로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동시대에 태어나 어린 시절 모습부터 그녀를 보아온 필자의 세대에서 강수연에 대한 기억은 그녀가 세계적인 배우로서 입지를 구축하기 이전부터 강하게 각인돼있다.

강수연은 아역배우 시절에 이미 스타반열에 들어가 있었다. 강수연이 아역 시절에 출연했던 영화들은 어른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영화들이었다. 그 시대에는 한때 그런 장르의 영화가 유행이었다. 어른들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은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과 위로를 줬다. 어린 시절부터 강수연은 한번 보면 잊기 힘든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에서 설정된 열악한 가정환경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귀티 있고 귀여운 얼굴이 영화적 상황과 묘하게 대비돼 연민의 정서를 더욱 자극했다.

하지만 아역배우들이 흔히 겪게 되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그녀가 사춘기로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됐다. 성인배우로서 입지를 세우지 못해 잊혀버린 아역배우들은 수도 없이 많고 성인배우로서 성공확률은 그만큼 낮다. 강수연 스스로도 밝혔지만 아역배우에서 하이틴배우로 넘어갈 때, 그리고 다시 성인배우로 넘어가는 시기에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성인배우로서 초기에 강수연이 택한 이미지는 ‘팜므 파탈’이었다. 팜므 파탈의 이미지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을지 모르나, 영화사나 감독은 강수연이 아니면 흉내낼 수 없는 눈빛과 미소, 표정에 초점을 맞췄다. 치명적인 매력이 서사의 중심에 있으려면 그럴만한 설득력 있는 이미지가 필요하다.

배우 강수연의 얼굴은 카메라에 클로즈업 샷으로 잡혔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강수연의 아우라가 발산되는 순간이 있다. 입을 다물고 있지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듯하며, 무표정하게 앞을 바라보는 듯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누군가를 담고 있는 듯한 표정은 아름다우면서도 냉정하다. 옆에 있는 누군가가 말을 걸어서도 안 되고, 심지어 숨소리를 함부로 내서도 안 될 것만 같은 얼굴이다. 다른 여배우들과 교류나 조합보다는 단독으로 있는 씬이 더 어울리는 배우가 강수연이었다.

<경마장 가는 길>에서 상대역을 맡은 문성근을 보며 강수연이 마치 상대를 유혹하듯이 코를 찡긋거리면서 ‘어떻게 하면 저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 도망갈 구실을 찾는 모습이나, <그대 안의 블루>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상대역 안성기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사랑과 섹스, 일에 대한 대사를 쏟아내는 강수연의 얼굴은 소유가 불가능할 듯한 매혹을 지녔기에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이미지를 발산한다.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했던 작품들인 <씨받이>나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팜므 파탈의 서사는 아니지만 강수연의 매혹적인 이미지에 힘을 받고 있음은 분명하다.

영화 속에서는 남성을 옭아매는 매혹의 화신이었고, 끊임없이 사랑을 했지만 현실의 강수연에게는 흔한 스캔들 한번 없었다. 한 TV 토크 프로그램에서 강수연이 크리스마스 때도 만날 사람 한 명 없는 자신의 외로운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는다. 강수연은 성인배우가 된 후, 한 때 슬럼프에 빠졌을 때 한 잡지사와 인터뷰에서 ‘결혼해버리고 싶다’라는 말도 내뱉었지만 그녀의 영원한 동반자는 영화였다.

이제 그녀가 출연한 영화들을 한 편씩 찬찬히 다시 보고 싶다. 아니, 분명히 다시 볼 수밖에 없을 테고 강수연이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지 않다는 생각으로 보는 영화들은 그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야 그 사람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가. 이런 느낌이 가족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음을 또 한번 실감한다.

젊은 시절부터 차곡차곡 마음속에 각인되어왔던 스타의 이미지는 팬들에게는 가족의 느낌이나 다름이 없음을. 저 하늘 위에 빛나는 별이 한 개 늘었다는 것에 위안을 받고 싶다.

글쓴이

이화정 영화심리상담사

영화심리상담사인 이화정은 영상번역작가로 일하면서 약 700편의 영화와 TV시리즈, 다큐멘터리를 번역했다. 그 후 영화이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통합예술치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예술을 통해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현재 영화와 심리에 관한 방송, <꿈꾸는 씨네 카페>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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