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프’는 왜 ‘호불호의 극단’ 달릴까
[이화정의 ‘영화의 한가운데에서’]
- 서사의 빈곤과 개연성 부족 영화 <호프>를 혹평하는 관객들은 외계인 출현 배경이나 관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석연치 않은 구멍들이 존재해 당혹스럽고 실망스러웠다고 평가한다.
- 불협화음 같은 독특한 유머와 부조화 생명이 위협받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등장하는 엉뚱한 대사와 넌센스 같은 상황 설정이, 누군가에게는 ‘유쾌한 생략과 도약’으로 다가오는 반면 다른 이들에게는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직무유기로 느껴진다.
- 기존 장르의 관습을 벗어난 파격적 시도 SF 장르로서 외계인의 정체성이나 친숙한 마을 풍경이 파괴되는 과정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나홍진 감독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살린 새로운 장르적 변주로 보느냐, 아니면 허술함으로 보느냐에 따라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서사에 관심이 없어진 나홍진
영화 <호프>는 올해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고 외신에서 좋은 반응도 받았다. 매 작품마다 화제를 모았던 나홍진 감독이 <곡성> 이후 10년 만에 발표한 영화이기도 해서 국내에서는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국내에서 개봉되자마자 예매율 1위를 달렸다.
그러나 예상했던 대로 ‘호불호’가 극으로 갈렸다. 화제작에 대한 호불호는 특별한 반응이라고 할 수 없지만 <호프>는 그 격차가 너무 커서 오히려 관심을 더 끄는 특이한 현상까지 만들어냈다. SNS에서는 마치 이벤트라도 하듯이 <호프>에 대한 평이 잇달아 올라오고 호평 밑에 악성 댓글이 달리는 상황에서 <호프>에 대한 언급 자체가 조심스러울 정도다.
반면 한편으로는 <호프>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더불어 영화를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로 나누는 것이 가능한가, ‘좋은 영화’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가. 그렇다면 ‘좋은 영화’란 어떤 영화인가를 새삼스레 고민하게 한다.
혹평하는 관객은 첫 번째 근거로 ‘서사의 빈곤’을 꼽는다. 그러나 영화에서 나홍진 감독은 애초부터 치밀한 서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듯이 보인다. 그가 참고한 영화 중,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를 언급한 것만 봐도 <호프>에서 관객에게 어떤 경험을 주고 싶어 했는지 짐작된다.
기자회견에서도 나홍진 감독은 “관객이 영화 속에 들어가 같은 공간에서 주인공들과 함께 체험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감독의 그런 의도는 그런 면에서는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달라진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편하게 집에서 넷플릭스 같은 OTT 맛을 알게 된 사람들은 영화관의 관객이 될 것인지, 소파에 편하게 기댄 시청자가 될 것인지를 먼저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관객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려면 아이맥스나 스크린 엑스관 같은 대형 스크린이나 확장된 스크린에서 즐길만한 강도 높은 액션과 스케일이 큰 영화들이어야 한다는 트렌드가 지배적이 됐다.
‘블록버스터’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영화 <죠스>에는 특별한 서사가 없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대상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 지속적으로 관객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런 불안감이 관객을 매혹시킨다. 관객은 자신이 안전지대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감을 즐길 수가 있다.
빈틈이 곳곳에 숭숭...SF영화야?
하지만 영화는 유기체와 같아서 진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반복된 방식은 금방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개연성이 떨어지거나 단순한 서사는 보는 재미를 반감시킨다. 복잡하게 얽힌 서사를 풀어나가면서 해석하고 싶은 욕망을 키워온 관객은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영화를 기대한다.
나홍진의 <호프>는 그런 욕망을 가진 관객에게는 실망감을 안겨줬고 혹평으로 이어졌다. <호프>를 ‘SF쟝르’라고 부르는 이유는 마을 사람들을 공격하는 상대가 ‘외계인’이라는 사실뿐이다.
제목처럼 희망의 그림자를 찾기에는 빈 공간이 많이 보이지만, 제목이 영화의 내용과 크게 상관이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그런 이유로 <호프>를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석연치 않는 의문점이 쌓여간다.
마을을 공격하는 그들이 왜 ‘호포항’이라는 영화 제목과 발음이 비슷한 마을에 출현했는지를 비롯해 그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없다. 가상의 시공간에서 끊임없는 파괴와 추격 씬이 이어진다.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의 모습들도 일정하지 않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외계인 서사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 잠깐 나오지만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기만 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대화하는 장면은 갑자기 언캐니한(uncanny,기묘한)느낌으로 바뀐다.
그전까지 언어 사용이라는 문화적인 면을 짐작할 수 없이 무모한 폭력으로만 인식되었던 외계인이 감정을 섞어 언어를 사용하는 모습은 그 전까지 상상 속에 존재했던 ‘타자’의 느낌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호프>를 보면서 관객을 당혹하게 만드는 부분은 이런 점에 있다. 이해될 듯하면서 이해되지 않는 구멍들이 곳곳에 존재한다는 의미다. 데뷔작 <추격자>부터 시작해 나홍진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타자’는 마치 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액체처럼 어느 쪽으로 흐를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게임이 박진감 있게 이어진다.
생각해보면 나홍진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타자가 이번에는 외계인으로 바뀌어서 SF 장르가 됐을 뿐이다. 타자가 외계인으로 밝혀지기 전까지 호포 사람들은 호랑이가 저지른 짓이라고 생각했다. <곡성>에서처럼 문제의 원인인 타자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게 서사를 꼬아놓은 대신, 호랑이에서 외계인으로 단순하게 대체된 셈이다.
느닷없는 나홍진式 유머
외계인이라는 존재가 밝혀지기까지 꽤 시간을 끌었고, 그 과정은 코믹하게 묘사된다. 경찰차 추격 장면과 마을 청년인 성기(조인성)가 말을 타고 숲속을 종횡무진 달리는 장면이 나오면서 SF영화라기보다는 엄청난 속도와 파괴력으로 공격하는 괴수를 상대로 한 액션 영화가 된다.
위기 상황에 어울리지 않을 듯한 코믹한 대사에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도 만들지만 나홍진 감독의 코믹 씬은 훨씬 특이하다.
봉 감독이 <살인의 추억>에서 경찰관의 코믹한 대사와 행동으로 인해, 사이코패스 범인을 추적하기 힘든 이유를 시골 경찰의 둔하고 순박한 감각 때문이라고 해석하게 유도했다면 <호프>의 유머는 독자적이고 느닷없다.
시골 아재의 입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홀리 쉣’이라는 대사는 웃기다기보다는 엉뚱한 데서 날아오는 돌을 맞아 어이없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어떤 의도로 집어넣었든 나홍진의 유머 역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부분이다. 세대에 따라 반응이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도 지역적으로는 7,80년대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장소들이 있지만, <호프>에서 초토화되는 마을 풍경은 향수를 건드릴 만큼 낯익은 과거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 배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세대가 정겨운 마을 풍경이 파괴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드는 감정은 신세대와 다를 수밖에 없다.
유머 역시 마찬가지다. 임현식이 연기한 어르신, 해술을 이유 없이 신뢰하는 마을 사람의 대사 역시 나홍진 식 유머다. 그런 유머가 젊은 세대에게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 같이 “해술 아저씨가 한 말이면 맞아.”라고 말한다. 외부인만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집단적인 고정관념과 무조건적 신뢰가 폐쇄된 집단에서는 당연시 되는 모습을 지켜보면 이상하면서도 재미있다. 영화에서는 코믹하게 이용했지만, 이런 현상은 얼마든지 다른 영역으로 확대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홍진 감독이 정치적인 은유를 담을 의도로 이런 대사를 넣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해술 아저씨의 외계인 목격담 시퀀스를 놓고 관객의 반응이 엇갈리는 점도 흥미롭다. ‘너무 웃겨서 참느라 혼났’는데 주변이 너무 조용해 의아했다는 관객과 시대에 뒤떨어진 지루한 아재 개그라는 관객이 있다.
내게는 가장 재미있고 인상적인 장면이었기 때문에 “해술 아저씨의 목격담 시퀀스를 절대 버리고 싶지 않았다”는 나홍진 감독의 감각과 그 점에서는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생명이 위협 당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적 욕구와 싸워야 하는 설정은 우스꽝스럽지만 외계인과 대비되는 인간적인 한계를 해학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수치스러운 경험을 진지하게 구술하는 해술 아저씨의 상황과 맞지 않는 부조화가 외계인에게 정복당할 수 있다는 위기상황을 즐기는 느낌까지 준다. 부조화와 어긋남에서 나오는 대사들은 외계인의 공격으로 마을 전체가, 아니 어쩌면 나라 전체가 사라질 수도 있는 파국적 분위기를 무겁지 않게 만든다.
시골 청년인 성기 역의 조인성이 국가대표급 승마선수처럼 말을 타면서 총격을 가하는 멋진 모습을 넋 나간 듯 지켜보는 와중에 불쑥 나오는 “쟤는 말을 왜 저렇게 잘 타?”라는 대사, 시골 항구 마을과 어울리지 않게 쌓여 있는 총기들을 보고 내뱉는 “총이 왜 이렇게 많아?”와 같은 대사들.
관객의 의문과도 맞아 떨어져서 웃음을 자아내지만, 진지한 시각으로 영화를 보기를 원하는 관객에게는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을 대사 하나로 넘기려는 직무유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유쾌한 생략과 도약’으로 볼 수도 있다.
<호프>에 대한 호불호의 간극은 이런 디테일한 면을 대하는 관객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끔찍한 상태로 죽었어야 할 성기가 멀쩡한 모습으로 다리를 절뚝이며 좀비처럼 다시 나타나 전투의지를 다짐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부조화와 넌센스가 모여 오히려 나홍진 감독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감독이 특히 공을 들였다는, 추격해오던 외계인이 범석(황정민)과 눈이 마주쳤을 때 눈물 방울을 흩날리는 장면에서 타자와 경계가 잠시 흔들린다. 이런 경계는 외계인들이 섬세한 표정을 지을 줄 알고 언어를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엔딩 시퀀스에서 다시 무너진다.
그들에게는 마을을 공격해야 했던 이유가 존재했던 것이다. 여기서 “아무리 괴물이라도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라고 소리치던 경찰, 성애(정호연)의 대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인간은 그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괴수 영화가 아닌 SF영화라면 외계인으로서 정체성에 좀 더 비중을 두었어야 했다. 엔딩 시퀀스에서 외계인이 출현한 배경과 숨겨진 서사를 암시해 속편을 예상하게 만들면서 석연치 않게 마무리 된다.
거장 감독을 꿈꾸는 나홍진을 위해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호프>를 보자면 나홍진은 오히려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나홍진은 자신만의 기본적인 틀을 유지한 채 새로운 변주를 꿈꾸는 감독이다. 그 안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장난기도 들어가 있다. 거장 감독이 되려면 다른 사람이 할 수 없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과감하게 밀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호프>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나홍진 감독은 그런 배포와 담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비판보다는 응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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