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실험은 그 자체로 생명이 있다”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을 추모하며] 잊어선 안될 과학철학의 대가 ‘표상과 개입’등 명저 남겨 부인 잃은 후 상심으로 힘들어 해
실험의 중요성 강조...’실험적 실재론’ 제창
한 달 전인 지난 5월 10일, 저명한 과학철학자인 이언 해킹(Ian Hacking)이 87세의 나이로 캐나다 토론토 요양원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과학철학 분야에서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라 생각되는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그는 단지 과학철학에만 국한된 이는 아니었다. 다양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여러 분야에 걸친 활동으로 주목받은 전형적인 유형의 연구자였다.
그는 1965년에 출판된 ‘통계 추론의 논리’로 그가 속한 집단 내에서는 이미 알려진 학자였지만, 그를 국제 과학철학계에서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83년에 쓴 <표상과 개입(Representing and Intervening)>이라는 저서였다.
간략히 그의 활동을 살펴 본다면, 과학철학에서 그의 ‘실험적 실재론’(experimental realism)은 이론 중심의 전통적 과학 실재론에 대한 ‘반과학적 실재론’(anti-scientific realism)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노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를 통해 과학지식에 있어서 이론 위주의 전통을 넘어 실험과 이론 사이의 관계를 조명했다.
그는 과학 연구에서 ‘실험’의 독립적인 지위를 정의하기 위해 “실험에는 그 자체의 생명이 있다(experiment has its own life)”라는 명제를 제안한다. 실험은 아이디어나 이론이 아니라 특정 도구로 개체에 개입하고 변형하려는 의도를 지닌다는 입장이기에, ‘개입’이라는 점에서 해킹은 어느 정도 과학적 실재론을 옹호했지만, 동시에 과학적 실재론과 반과학적 실재론 사이의 갈등을 어느 정도 제거한 셈이다. 그 점에서 신실험주의(new experimentalism)로써 그는 과학적 반실재론(anti-realism)인 반 프라센(Bas van Fraassen)의 구성적 경험주의(Constructive empiricism)와도 연결된다.
그는 객체 자체와 그 객체를 중심으로 구축된 아이디어와 범주를 구별하면서, 사회과학에서 모든 것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생각, 특히 사회과학의 모든 것이 사회적인 것으로 환원된다는 것에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가 제안한 ‘과학적 추론 스타일‘(styles of reasoning)은, 일종의 ‘역사적 인식론(historical epistemology)으로서 낡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앤드류 피커링과 브루노 라투르와도 그 비판을 공유하고 있다. 그의 과학철학 및 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과학기술학)에 기여한 바를 볼 수 있다.
해킹 교수보다 훨씬 파격적인 과학철학자 파울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의 대표적 저서인 <Against Method> 2010년도 판의 서문을 해킹 교수가 쓴 것도 흥미롭다. 과학에서 ‘뭐든지 된다‘는 입장의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철학이 일관된 방법보다는 실행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방식을 보면서, 지식 이론에서 있어서 무정부주의가 합리주의를 대체할 가능성마저 말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분류하는 행위가 인간에 다시 영향미친다”
이러한 과학철학에 대한 기여를 넘어 그는 <The looping effects of human kinds(인류의 순환작용, 1995)> 글에서 인간을 분류하는 행위가 분류 대상인 사람에 영향을 미쳐 변화를 일으키고, 이 변화는 그들의 지식 형성에 다시금 영향을 미친다는 사회과학적 주제를 다뤘다. 이처럼 과학철학 분야의 공헌으로 널리 알려진 해킹은 지난 2002년 제1회 인문학 부문 킬람 상(Killam Prize), 2008년 사회과학 및 인문학 연구 위원회 금메달, 2009년 노르웨이의 홀베르그 상, 2014년 취리히에 기반을 둔 발잔 재단의 발잔 상 등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이런 그의 자유롭고 다양한 모습은 그의 개인 생활과도 이어질 지도 모른다. 1936년 2월 캐나다 밴쿠버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나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대학 학부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1962년에 도덕과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 해 첫 부인 앤 리치(Anne Leach)를 만나 두 딸과 아들을 두었으나 헤어진다.
그 후 그는 과학철학자 낸시 카트라이트(Nancy Cartwright)를 만나 결혼해 캠브리지에서 살았는데, 흥미롭게도 첫 부인 앤 리치도 역학자인 남편과 옥스퍼드에서 살았다. 앤 리치의 남편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교수직을 제의받자, 해킹 교수와 카트라이트 박사 부부도 뒤를 이어 1974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으로 옮긴다.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이주는 해킹 교수가 아이들과 가까이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그의 딸은 회상하고 있다.

<표상과 개입> 등 과학철학 명저 남겨
허나 미국에 와 우울증에 빠지면서 재혼한 낸시 카트라이트 박사와도 헤어진다. 그 후 그는 개인적인 자구 노력과 함께 평생의 동반자이자 지지자가 되는 철학자 쥬디스 베이커(Judith Baker)를 만나 1983년 결혼한다. 그의 획기적인 저서인 <표상과 개입(Representing and Intervening, 1983)>은 이 시기에 쓰여졌다.
1995년에 다중 인격 장애에 관한 저서인 <Rewriting the Soul>로 두 개의 상을 받은 해킹 교수는 2000년에 파리의 권위 있는 콜레쥬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의 의장으로 선출된 최초의 영국인이 된다. 그의 마지막 저서인 <왜 수학 철학이 존재하는가?>는 2014년에 출판되었고, 그 해 셋째 부인인 베이커가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해킹은 사망할 때까지 그 때의 상심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딸은 그가 개인 생활에서 많은 좌절과 힘든 상황을 겪었지만 큰 기쁨도 경험했다고 말한다.
이런 굴곡 있는 개인사와 뛰어난 성취를 뒤로 하고 그는 이제 과학철학의 역사적 인물로 남게 됐다. 과학론에 있어서 동료부터도 말이 안된다고 비난받기도 했던 파이어아벤트 교수와 더불어 해킹 교수의 실험적 실재론은 지식 형성에 대한 풍성하고 다양한 통찰을 던졌다. 실험실 연구자였던 나에게도 많은 공감을 준 이들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부고가 새삼 와 닿은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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