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우희종의 좋은 세상] 해방후 美점령군이 이식시킨 ‘양당정치’ 국가 권력은 ‘어부지리 시계추’처럼 반복된 비상계엄, 대의민주주의의 실패 이젠 시민의 ‘정치 주체화’ 강화할 때 英, 佛등이 이끈 ‘시민의회’ 관심가져야
쉽게 깨진 평안했던 일상
우리 사회에서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아니 상상조차 못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평소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일상의 평화나 편안함이 얼마나 한순간에 깨지고 사라질 수 있는 것인가를 다시 한번 체감하게 했다. 40여 년 만에 다시 겪는 비상계엄이었기에 충격이었다. 어찌 보면 그 충격은 평안한 삶의 일상성이 길거리에 버려진 유리만큼이나 깨지기 쉽다는 옛 기억을 그동안 잊고 있었던 대가였는 지도 모른다.
지금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집회에 촛불 아닌 응원봉을 든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게 된 배경에는 이처럼 평화로운 일상의 취약성을 새삼 느낀 탓일 수도 있다. 말로만 듣고 먼 과거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군인이 총검을 일반인에 들이댈 수 있는 상황이 언제 어디서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실감이다.
평안한 사회 상황에서 비상계엄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통령의 행위는 국기를 흔드는 내란 행위다. 비상계엄이 자행되던 50년 전 군사독재 시절로 회귀한 21세기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에서는 낯설다.
안정된 평화로운 민주 사회로부터, 권력자에 의해 평상시에 비상계엄이 선포되어 군인에 의한 국회 기능과 언론이 통제되는 비민주적이자 미숙하고 불안정한 대한민국으로 전락했다. 외국 인사들은 방한 일정을 취소하고 또한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작동된다. 떨어지는 원화 가치만큼 떨어진 국가 위상이 국내외 경제 사정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은 지속적으로 국내 경제에 작동하게 된다. 그동안의 경제 성장과 더불어 K-pop, K-culture 등을 통해 국제 사회 위상을 높여온 국가적 성취는 일순 땅에 떨어졌다.

왜 원래대로 되돌리지 못하는 걸까
그런데 평화로운 사회에 위헌적으로 비상계엄을 발동한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탄핵 요구는 여당 국회의원들의 선출직 의원답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불발되었다. 또한 선출로 뽑힌 대통령이 치명적 내란 행위를 했다면 규정에 따라 탄핵되어야 하건만, 현재도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는 그를 비호하면서 법에도 맞지 않게 총리와 특정 정당 대표가 국정을 대신하겠다고 한다.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법도 없이 안하무인이다.
과거 집회 토론만으로 내란 선동이란 명목으로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던 이들이자 사법부다. 그렇다면 말뿐이 아니라 구체적인 무력 내란 행동을 취한 자와 그를 감싸는 정당이야말로 해산되어야 한다. 21세기 우리 사회에서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할 ‘국기 문란’의 대통령과 여당이라는 특정 정당에 의한 ‘국정 농단’이 뻔뻔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들에게 국가나 사회는 없고, 오직 특정 성향의 정치 집단의 이해나 권력만이 목적임을 보여준다.
지난 2017년 시민들은 사회 개혁 열망이 담긴 광화문 촛불 혁명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성공했다. 민주당 문재인 정부의 행정권에 더해 2020년 21대 총선에서 180석 가까운 여당 대승으로 입법권마저 확보했다. 촛불 시민들은 이것으로 해방 이후 이어져 온 친일 적폐 기득권 구조의 해체를 포함해 사회 구조와 제도 측면에서 전면적 개혁이 이뤄질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사회 개혁은커녕 오히려 손에 왕(王검)자를 새긴 검찰총장이 이끄는 현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촛불 시민의 기대와 달리 행정과 입법의 두 국가 권력을 지니고도 사회 개혁이 불발된 것이고, 윤석열 정부의 탄생은 그 후유증으로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위헌의 비상계엄을 자행했다. 놀란 시민들이 여의도로 몰려가 계엄군으로부터 국회를 지킴으로써, 다행히 국회는 친위 비상계엄의 해제를 신속하게 선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회에서의 대통령 탄핵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여당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불발되었다. 2017년 무혈로 대통령을 퇴진시킨 이후, 사회 개혁을 통한 선진 사회로의 실패는 비상계엄 등장을 초래하고 더 나아가 위헌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실패로 이어진 것이다.

알고보면 오래된 ‘어부지리 시계추’ 정치
돌이켜보면 국내 정치 문화나 구조는 과거 일제가 남긴 제국주의적 사법검찰 제도와 해방 후 점령군으로 한반도에 들어온 미국의 양당정치 제도 영향이 크다. 양당정치 구도에서는 정당이 기존 사회 질서를 개선하는 좋은 정책을 개발하는 노력보다는 집권 정당의 잘못하거나 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에 집중한다. 어느 정부나 완벽할 수는 없고, 잘한 정책이나 부문과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보니, 투표자들에게 상대방 정당의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그들의 지지를 손쉽게 자신의 정당으로 끌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 정당의 약한 부분을 공격하면 자신들이 잘하지 않아도 어부지리로 권력을 갖게 되는 행보는 정당의 여야 입장과 상관없이 관찰된다. 이처럼 국가 권력은 양대 정당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오갈 뿐이기에 국내 양당정치는 ‘어부지리 시계추’ 정치 문화로 굳어져 있다. 구시대 정당법에 근간한 이들에게 사회 발전과 개혁은 늘 차순위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정치 문화에서는 정당 간의 정책 차이보다는 정당의 인물이 더욱 부각 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소위 팬덤 정치의 터전이 된다. 특정 정당에 대한 기본 지지는 변하지 않는 ‘정치 부족주의’가 자리 잡고, 상대방 비난의 ‘어부지리 시계추’ 정치 문화에서는 인기 있는 인물만이 정당 지지 차별성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 문화에서 상대 정당에 대한 혐오는 증폭되고, 사회 분열은 더욱 깊어져 간다. 해방 이후 우리에게 이식된 미국식 양당정치는 ‘혐오와 부정’의 정치 문화를 강화시킨다.
이처럼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나타난 시민들의 높은 정치의식은 그에 부합하지 못한 대의민주주의 정당 정치로 인해 사회 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 갈등과 분열은 개선되지 못한 채 전 세계의 국가를 놀라게 한 ‘21세기 비상계엄 선포’라는 한국 사회의 퇴행으로 나타났다. 결국 어부지리 시계추 양당 정치 문화는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국민들의 사회 개혁 열망을 실현하기보다는 국회의원 개인과 정당 이익만을 추구하는 상황이 되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준다. 대의민주주의는 선출직 엘리트 정치 문화로 전락했다.
새로운 시대, 정치문화를 바꾸려 한다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비상계엄 사태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문제도 아니며, 기본적으로 대의민주주의 형식과 양당정치 외의 정치적 상상력이 제한된 우리 정치 문화에 기인한다. 과거 낙선한 트럼프 후보자를 지지하는 이들이 백악관에 난입했던 사례도 다르지 않다. 양당정치가 빚어내는 부정적 상황에서 상식적 시민들의 정치 혐오는 필연적이고, 시민들의 정치 혐오는 결과적으로 갈등과 분열에 기반한 어부지리 시계추 정치 문화를 조장하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게 된다.
양당정치 문화의 폐단을 극복하려면 양당 구조를 바꾸거나, 사회 발전보다는 어부지리에 몰두하는 정치꾼들을 국회에서 제거해 나가거나, 아니면 시대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정치 보완책을 생각할 수 있다. 다당제로의 시도는 그동안 민주노동당 등 여러 모습이 있었고 현재 조국혁신당으로 상징될 수 있으나, 워낙 강고하게 길들여진 국내 양당 구조 속에 새로운 시도는 결코 쉽지않다.
소극적 시도이기는 하나 대의민주주의 방식에서 정당 이익만을 추구하는 어부지리 정치꾼들을 정치 현장에서 하나, 둘 제거하는 ‘국민 소환제’를 정착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 국내 정치 문화나 구조를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 지난 2020년 21대 총선 이후 위성정당 방지의 선거법 개정을 약속했던 정치인들 그 누구도, 선거법이나 소선거구제 재조정에 나서지 않았고, 올해 22대 총선은 기존 선거법으로 치러졌다. 여야를 떠나 국회의원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기득권에 영향 끼치는 법안에 대해서는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여의도 정치 문화가 그러하지만, 이제 시대가 변했다.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제도가 이제 대의 민주주의만이 대변하던 시대는 저물어 간다. 스마트폰 등 개인 통신수단의 발전으로 국민이 자신의 의견을 실시간 반영할 수 있다면, 굳이 선출된 국회의원이 국민 대변보다는 개인과 정당 이익에 몰두하는 대의민주주의 형태에 머무를 이유는 없다. 지금의 선출 국회의원 제도에 더해 시민들이 실시간 의견을 제시해 정책과 제도에 반영시키는 보완책이 가능하다. 대의민주주의에 더해 시민들의 의견이 보다 반영되는 준직접민주주의를 접목할 수 있다, 비대면 문화를 정착시킨 코로나19 사태 이후 누구나 스마트 폰을 통해 실시간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기술 및 시스템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정치 주체화’를 실현하자
이제 변화된 21세기 한국 사회와 국민들의 높은 정치의식을 반영할 수 있는 제도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할 때다. 더 이상 어부지리 시계추 정치인들에게 국민이 휘둘릴 이유가 없다. 시민들이 자신이 선출한 정치인에게 찾아가 민원을 사정하고 매달리는 문화가 아니라 스스로 정치 주체가 되어 정책과 사회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가능해지도록 제도를 안착시키고 법제화하면 된다. 시민들의 ‘정치 주체화’다. 시민들의 풀뿌리 민주주의나 숙의 민주주의를 보다 구체적이고 안정된 형태로 만들고, 그동안 정치와 분리되어 있던 시민 운동을 보다 구체적인 정책과 현장 실현으로 연결이 가능하다. 2010년 이후 국제적으로 등장한 ‘시민의회’ 움직임이다.
시민들의 정치 주체화라는 정치적 상상력과 실현에는 그동안 엘리트 정치꾼들에 의해 유도된 시민들의 정치 혐오를 넘어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정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의견과 입장을 정치 현장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고, 코로나19 비대면 상황을 통해 준비되고 경험한 바 있다. 이미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보완할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아일랜드, 영국, 네덜란드, 아이슬랜드. 벨기에, 프랑스, 핀란드, 캐나다 등 각 나라의 전통과 문화가 반영된 ‘시민의회’ 흐름으로 나타나고 있다. 엘리트 대의민주주의와 어부지리 시계추 양당정치의 폐해를 언제까지 반복해 겪어야 할 것인가.
시대는 변하고 있다. 시민이 정치 주체로 나서야 21세기에 겪는 황당한 비상계엄의 반복을 끊을 수 있다. 21세기에 겪는 국기 문란의 비상계엄이란 국내판 대의민주주의의 얼룩진 꽃이자, 양당정치의 썩은 과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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