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과 책임을 묻는 것은 다르다
[우희종의 ‘좋은 세상’] ‘차악 정치’를 넘어서자 개혁 시민들이 나설 때
‘더불어시민당’을 만든 데 대한 반성
선한 의도로 일을 추진했어도 반드시 그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런 경우, 일 추진 자체를 비난할 것은 없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 추진한 측의 책임지는 자세는 필요하다.
최근 양당 정치의 폐단을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필자는 ‘지난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어 양당 정치를 강화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지난 총선 이후 국내 상황을 보면 전적으로 공감되는 질문이자, 그동안 내게 했던 질문이기도 했다. 지난 칼럼에서 행정, 입법 권력이 다 확보된 상황에서 정권이 넘어간 현실에 대하여 문재인 전대통령의 유감 표시 등 대국민 사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남긴 이유도 기실 내 스스로에 대한 그 질문으로부터 나온 것이기도 하다.
정권 교체가 이뤄진 상황에서 전임 대통령의 유감 표시도 없는데, 미미한 역할을 한 내가 책임을 인정하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전 대통령의 유감 표시라도 있을 때 당시 상황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이들이 서로 반성하고 책임지는 모습이 구체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당시는 민주당이 사회개혁 의지나 준비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추진한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민주당은 사회개혁에 전혀 준비된 당이 아니었다. 그런 민주당이 거대 여당이 되면서 사회개혁은 커녕 오히려 내부 분열과 갈등 속에 정권마저 넘겨주었다. 민주당은 국민이 기대하듯이 군사독재에 저항하며 공적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진보 정당이 아니었다. 구조적으로 소선거구제의 양당 기득권 체제에 의존하는 정당이기도 했다.
‘상대 심판론’으로 어부지리 얻는 정치
그동안 국내 정치의 양당 기득권 구조 속에 민주당과 국민의힘당은 상대방의 실수나 부족한 문제점에 기대어 존재해 온 정당이었다. 이것의 근간이 지금도 등장하는 ‘심판론’이다. 두 정당만 있는 상황에서 상대방을 비난하고 폄훼만 하면, 즉 심판론을 들이대어 잘못한 저쪽이 싫어 이쪽을 찍어주는 ‘어부지리’의 적대적 공존이라는 기형의 정치문화를 만들어 온 것이 이들이다. 이는 ‘정치에서는 차악을 뽑는 것’이라는 시대에 뒤떨어진 말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런 사회는 언제나 ‘차악(次惡) 사회’가 된다.
이런 낡은 정치문화 속에서는 굳이 기득권 반발로 시끄러워지고, 찬반 논란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개혁을 먼저 언급하고 시도할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못한다. 심판론으로 어부지리를 챙기면 되는데, 굳이 개혁을 말해 표 잃을 상황을 만든다는 것은 구태 기득권 정치인들에겐 ‘너무 정치를 모르는’ 행위다. 이들의 입장은 정치검찰에게 정권을 넘겨준 상황에서도 다르지 않다. 정권을 넘겨준 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실망감이나 암담함과 달리, 기득권의 구태 정치인들에게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니 이들은 반성이나 내부 혁신의 필요성을 못느낀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진영 갈등이 더욱 강화되는 것도 그런 맥락 아니겠는가.
그렇다 보니 민주당은 왔다갔다 할, 소위 중도층이 볼 확률이 높은 조중동과 그들의 평가가 중요할 뿐, 지지자들의 바람이나 개혁 요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박근혜 심판론인 ‘광화문 촛불’과 지난 21대 총선 덕을 본 민주당 및 부동산 정책 실패 등 ‘민주당 심판론’으로 등장한 윤석열 정부에서도 알 수 있지만, 그동안 양당의 적대적 상생 구조 속에서 어부지리로 지지와 표를 얻어온 민주당이나 국힘당은, 지금 모습 그대로라면 솔직히 ‘양당 모두 적폐 기득권’에 해당된다. 굳이 말하면 사회 기득권에서 ‘어공’과 ‘늘공’ 차이일지도 모른다. 22대 총선을 앞둔 지금도 그들은 서로 상대방 심판론을 강조하고 또한 유도하려고 안간힘이다. 대통령 심판론, 거대 야당 심판론, 사법 위기 등등...
언제까지 ‘차악 사회’를 지켜볼 것인가
국가 삼권 중에 행정권을 지닌 촛불 정부와 지난 21대 총선 압승으로 입법권도 확보한 민주당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대승으로 끝난 총선 후 대표적 사회 개혁 사안인 국보법 폐지를 필자가 ‘상상’한다고 하자마자 민주당부터 나서서 조용히 하자면서 넘어갔고, 대국민 약속인 선거법 개정은 지금도 불분명하며, 언론 개혁 등 사회개혁 입법에 대해서도 일부 초선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용하거나 오히려 다선 의원들일수록 국힘당에 가까운 주장을 한다. 그동안 아무 것도 안하고 조용히 있으면서 상대방 비난과 심판론만 제시하면 기득권이 유지되는, 구태의 낡은 정치 언어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 정치 현장의 민낯이다.
우리사회가 언제까지나 ‘차악 사회’에 머물 것인가? 이제는 보다 좋은 자를, 보다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이며, 사회의 가야할 길을 제시하는 좋은 정당을 지지하고, 뽑아야 할 때다. 상대방 당이 모자라니 우리 쪽을 선택해 달라는 ‘뺄셈 정치’ 시대가 아니라, 상대방도 잘 하지만 우리 측이 보다 더 좋은 정책과 사회 발전을 위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선택해 달라는 ‘덧셈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는 차악을 뽑는다’는 식의 낡은 구호만 외치며 어부지리를 얻는 자들을 뒤로 하지 않으면 급변하는 우리 사회를 대변하기는커녕 사회 발전을 발목잡는 정치인이자 정당을 선택하게 된다.
대의민주주의는 낡았고, 개혁 시민들이 나서야
물론 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가 그런 무능과 무책임의 민주당을 개혁하고 뺄셈 정치를 극복했으면 하는 것이 나를 포함한 민주당 지지자들과 당원들의 최우선 바람이지만, 민주당 내 강고한 주류 기득권의 현실을 보면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다. 양당 정치 속 어부지리 지지에 길들여진 민주당이 그나마 우리사회의 진보적 의제를 수행하는 정당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이를 이끌 외부 동력 없이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일반시민 우리 스스로가 정치 주체로 나서서 바람직한 가치와 지향점을 던져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정치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정치는 차악을 선택한다는 말과 함께 우리가 익숙한 대의민주주의도 이미 낡아 버렸다. 우리를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개혁 의지를 실현시키기 보다는 다음 당선이나 당내 권력 싸움에나 신경쓰는 현실에서 더욱 그렇다. 이제 시대가 변해 대중 의사 표시와 참여가 누구나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으로도 가능한 시대다.
필자는 지난 총선 때 시민들의 열정을 기반으로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다. 국민의힘당의 의도를 막고자 한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어부지리 표만 기대하는 양당 정치에 기여한 것에 책임을 느낀다. 이제라도 개혁 시민을 정치 주체로 나설 수 있게 하는 활동을 함으로써 뒤늦게나마 그에 대한 책임을 조금이라도 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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