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할 수 없는 ‘악마’ 오지 오스본

[오지 오스본을 추모하며] ‘헤비 메탈’의 시작이자 완성 ‘미친 존재감’으로 80년대 최고스타 천재 일렉기타 ‘랜디 로즈’와 전성기 마약, 불성실, 욕심과 기행 저질렀지만 단순하며 강한 중독성의 무서운 우상

'헤비메탈의 대부' 오지 오스본이 지병인 파킨슨병이 악화해 지난 7월22일 7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팬들은 그가 평소 그렇게 그리워하던 동료 랜디 로즈를 하늘 나라에서 만나게 됐다며 추모했다.
'헤비메탈의 대부' 오지 오스본이 지병인 파킨슨병이 악화해 지난 7월22일 76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팬들은 그가 평소 그렇게 그리워하던 동료 랜디 로즈를 하늘 나라에서 만나게 됐다며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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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의 사망은 ‘메탈 키즈’의 세계에서나 큰 뉴스려니 했다. 의외로 많은 추모의 글들에 좀 놀랐다. ‘오지형, 고마웠고 덕분에 행복했어’ 같은 애틋한 게시글부터 ‘헤비메탈은 이제 정말 끝났다’라는 격한 댓글들까지. 그 고마움과 행복은 언제까지였을까. 그들의 헤비메탈은 정말 이제야 끝난 것일까.

소년공들의 검은 안식일

블랙 사바스의 1집 Black Sabbath
블랙 사바스의 1집 Black Sabbath

오지 오스본이 활동을 시작한 밴드 ‘블랙 사바스’의 고향은 영국 버밍엄이다. 레드 제플린의 멤버 로버트 플랜트와 존 본햄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철강공업지대라 헤비메탈이 여기서 탄생.....은 아니고.

블랙 사바스 음악의 주축이었던 기타리스트 토니 아이오미와 오지, 둘 다 15세에 학교를 중퇴한 소년공들이었다. 핑크 플로이드 같은 실험적인 음악은 돈 많은 대학생들이나 하는 거지, 우리 같은 중퇴 노동자 출신은 그런 거 하지 말자, 일찌감치 마음먹고 헤비메탈의 시조새가 되어 이제까지 쭉 같은 길을 걸어왔다.

블랙 사바스의 1집은 1970년 2월, ‘13일의 금요일’에 발매되었다. 좋은 작전이다. 음산한 음반 커버와 파워풀한 연주, 검은 안식일이란 다크한 이름까지 완벽하게 이목을 끌며 대히트한다.

2집 <Paranoid>에는 ‘War pigs’, ‘Iron man’등 헤비메탈의 원형을 제시한 곡들로 가득찼다. 타이틀곡 ‘Paranoid’는 강렬한 리프와 단순하고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헤비메탈 그 자체라고 불린다.

Paranoid
Black Sabbath

1978년 8집 <Never say die>까지 오지 오스본은 그 특유의 암울하고 사악한 보컬 톤과 강렬한 무대 매너로 ‘블랙 사바스’를 장악한다. 말 그대로 톤과 매너뿐, 작곡 등엔 관여한 바 없다. 오지의 후임 보컬 로니 제임스 디오나 이언 길런에 비하면 가창력도 한참 처진다. 술과 마약에 빠져 연습은 물론 공연까지 펑크내며 결국은 밴드에서 쫓겨날 정도로 성실성도 제로다.

오직 카리스마와 존재감의 승리다. ‘존재감이 재능’인 사람들은 도대체 이길 수가 없다. 블랙 사바스의 마지막 퍼즐은 어쩔 수 없이 오지 오스본이었다.

광란의 열차

오지 오스본의 솔로 1집 Blizzard of Ozz
오지 오스본의 솔로 1집 Blizzard of Ozz

‘블랙 사바스’로부터의 퇴출은 오지에게 큰 충격이었지만 전화위복이기도 했다. 1980년 솔로 앨범 <Blizzard of Ozz>에서 그의 존재감은 이제 거칠 것이 없어졌다. 기이한 퍼포먼스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했던 오지에게, 마침 시작된 음악전문채널 MTV는 행운의 열쇠였고, 그렇게 오지 오스본은 80년대 ‘메탈의 시대’의 문을 활짝 열었다.

Goodbye to romance
Ozzy Osbourne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오지 오스본 곡이 이 앨범에 들어있다. 국내에선 아련한 발라드 ‘Good bye to romance’가 많이 알려졌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은 곡은 역시 ‘Crazy Train’ 일 것이다.

Crazy Train
Ozzy Osbourne

일렉 기타를 잡아본 사람이라면 도전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고, 그중 대부분은 또 ‘어우, 이거 뭐야’ 바로 포기한다는 바로 그 곡. 영미권에선 스포츠 경기장에서 응원가로도 많이 쓰인다는데 안 봐도 그 흥분된 분위기가 눈에 선하다.

70년대의 헤비메탈과 좀 더 대중적이어서 일반에게도 후련함을 제공해 주는 80년대의 메탈을 구분 지어준 상징적인 앨범이다.

악마와 천사: 오지 오스본과 랜디 로즈

‘블랙 사바스’에 토니 아이오미가 있다면 ‘오지 오스본 밴드’에는 랜디 로즈가 있었다. 오지 오스본에게 존재감 이외 다른 재능이 있다면 그건 바로 천재를 알아본 ‘안목’.

랜디 로즈 (Randy Rhoads)
랜디 로즈 (Randy Rhoads)

어린 시절 앓았던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한데다 매우 왜소한 체격 (키 170㎝에 48kg)이었던 랜디 로즈는 거친 메탈의 세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린 소년처럼 보였다. 이미 거물급이었던 오지는 이 무명의 기타리스트를 한눈에 알아보고 채용한다. 오디션 때 랜디의 기타 튜닝 소리만 듣고 바로 합격을 외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라이브에서의 두 사람을 보면 마치 ‘악마와 천사’ 같다. 클래시컬하면서 화려한 멜로디를 그려내는 랜디의 옆에서 오지는 더 무시무시해 보였다.

1982년 비행기 사고로 천재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가 사망한다. 그의 죽음은 록 역사상 손꼽히는 비극적인 사건이다. 그렇게 보면 랜디의 실제 활동 기간이래 봐야 2년도 채 안 되는 셈인데 업적이 대단하다.

오지 오스본은 이후 멤버들을 바꿔가며 계속 앨범을 내고 공연을 다녔지만 2025년 고별 공연까지도 랜디와 함께 했던 1, 2집이 항상 주 레퍼토리였다. 랜디를 친형제와 같이 아꼈고 여전히 그린다고 오지는 말해왔다. 오스본의 사망 뉴스에 ‘드디어 랜디를 만나겠군요’라는 댓글이 여기저기 달리는 이유다.

미워할 수 없는 자의 죽음

가창력이 별로라든가 아티스트로서 성실성이 없었다든가 위에 얘기했지만, 오지에 대한 비판은 아직 시작도 안한 셈이다. 한 시대의 우상이었던 그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산타 할아버지는 없었다’ 류의 귀여운 동심파괴 수준이 아니다.

곡은 멤버들이 만들었는데 저작권은 본인이 가져가며, 그저 자신의 들러리 취급했던 걸로 유명하다. 말도 안 되는 부조리에 항의하면 해고 또는 소송으로 협박했고. 심지어 랜디 로즈와의 우정, 오디션의 전설도 사실이 아니며 상업적으로 이용했을 뿐이라는 지점에서 난 완전히 고개를 돌렸었다.

난 2022년까지 계속 앨범을 내며 파킨슨 투병 중에 공연을 지속한다는 소식에도 돌아보지 않았고, 지난 7월 버밍엄에서의 역사적 ‘블랙 사바스’ 재결합 공연조차 외면했다. 사실 헤비메탈에 대한 애정이 이미 오래전 식은 탓이 컸다.

그러다 들려온 그의 부고. 그 모든 게 허망하고 쓸쓸해져서 바로 3주 전 공연을 뒤늦게 찾아보았다. 이런, 울컥하네.

Back to the beggining 공연중
Mama I’m coming home

Back to the 청춘

블랙 사바스의 원년 멤버들이 다 모였고 게다가 장소는 그들의 전설이 시작된 버밍엄. 메탈리카, 건즈 앤드 로지스, 슬레이어 등 거물들이 기꺼이 참여한 이 공연에 4만 명의 관중이 울며 웃으며 떼창했다. 랜디 로즈의 연주 영상이 흘러나왔고 파킨슨으로 거동이 어려운 오지는 검은 왕좌에 앉아 노래했다. 영감님들의 연주는 바래지 않았고 이젠 예전만큼 무섭지 않았으나 오지의 카리스마도 여전했다. ‘오지형, 고마웠고, 어쩌고’가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오래 잊고 있었다. 위악과 객기의 청춘. 6, 70명이 한 교실에서 한밤중까지 부대끼던 숨 막히는 학창 시절, 숨통을 트여준 음악. 음악 잡지로만 겨우 전해 들을 수 있던 기괴한 소문.

박쥐를 물어뜯었다며? 악마를 숭배한다던데 천사 같은 기타리스트는 그렇게 아꼈다며? 수군수군, 우리를 설레게 했던 무서운 우상. Crazy Train까지는 몰라도 얌전한 어쿠스틱 연주곡 Dee까지는 어떻게 더듬더듬 쳐봤던 기억.

나는 이미 떠나왔는데 당신은 계속 거기 있었구나.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작별 인사를 전하는구나.

귀여웠던 둘리도 어른이 되어보니 천하의 악동인데, 박쥐 건 악마 건 이제 와 다 가짜라 한들 뭐. 어쨌든 그때의 나에겐 고마웠다고 말하겠어, 기꺼이.

Times have changed and times are strange
세상은 변했고, 낯설어졌어
Here I come but I ain’t the same
난 돌아왔지만 예전의 내가 아니야
Mama, I’m coming home
엄마, 나 집에 가고 있어

-1991년 < No More Tears> 앨범, ‘Mama, I’m Coming Home’ 중에서

Mama i’m coming home
Ozzy Osbourne

이 칼럼을 영상으로 · 7:54 [더칼럼니스트] ‘존재감이 재능’이었던 남자, 헤비메탈 황제 오지 오스본의 두 얼굴!
글쓴이

김효진 팝 칼럼니스트

김효진은 팝 칼럼니스트 입니다. '아직도 안 망했냐'는 말을 4년 가까이 들으며 잠실에서 LP 바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시집 한 권과 여기저기 써낸 음악 에세이가 자꾸 늘어가는 무명작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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