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날’을 위한 팝송

[김효진의 팝, 그 빛과 그늘] 통기타 앞세대가 항유했던 음악들 첫 곡 ‘해 뜨는 집’부터 영화 내용 암시 벤 모리슨과 페티 스미스의 곡 ‘상큼 발랄’ 루 리드·니나 시몬, 우릴 울컥하게 만들고 Pale blue eyes로 완벽한 하루를 마무리!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포스터.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포스터.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본 사람들은 대개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이걸 왜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제목(퍼펙트 데이즈) 그대로다.”
“제목이 역설적이다.”

요즘 만나는 사람들마다 묻고 싶어진다. 당신은요?

내 세대에게 빔 벤더스는 청춘의 한 편린이다. ‘파리 텍사스’(1984), ‘베를린 천사의 시’(1987). 그 다정한 황량함을 기억한다. 1999년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으로 또 잠시 우리를 달뜨게 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오래 그를 잊었던가. 느닷없는 일본 영화로 빔 벤더스를 오랜만에 만난다.

사실 ‘베를린 천사의 시’의 엔딩 타이틀에서도 그는 일본 영화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를 언급했었고 그 이전 1984년엔 다큐멘터리 ‘동경’을 헌사하기도 했었다. 동경을 배경으로 한 지루하고, 그래서 결국 삶에 가까운 장면들이 어쩌면 그때 이미 예고되었었는지도.

‘퍼펙트 데이즈’ 영화에 대한 리뷰는 이미 차고 넘친다. 어떤 이들은 졸다 나오고, 어떤 이들은 울며 나와 투덜거리거나 혹은 찬사를 바친다. 이렇게 패가 갈리는 영화도 오랜만이다. 거기에 더 얹을 얘기도 없을 것이지만, 쓰인 음악을 몇 개 되짚어 본다.

새벽의 빗자루질 소리, 낡은 계단과 다다미방을 딛는 소리, 바람에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 그러나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으나 그 속에 음악이 없다. 음악은 주인공 히라야마가 카세트 테이프을 플레이할 때만 들을 수 있고 그가 툭 음악을 끌 때 페이드아웃도 없이 사라진다. ‘이게 현실이잖아’라는 듯이. 내가 짜증이 잔뜩 나있다고 갑자기 내 주변에서 신경질적인 고음의 현악들이 짜자잔 깔려지는 건 아니니까.

해 뜨는 집

‘퍼펙트 데이즈’엔 대중들이 알만한 곡들이 주로 쓰였고 그에 실망한 사람들도 있으나, 다분히 의도되었다고 본다. 우리가 보는 히라야마의 첫 아침엔 애니멀즈의 ‘House of the rising sun’(해 뜨는 집)이 흐른다. 혹은 튼다. 80년대 통기타 키즈들은 양희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첫 코드를 짚었지만, 그 이전 세대라면 단연코 ‘House of the rising sun’이다. 이 영화가 중년의 가슴을 뭉클하게 건드렸던 지점이기도 하다.

The House of the Rising Sun

Animals

‘해 뜨는 집’이라니 꽤나 희망차게 들리는 제목이지만 노래 내용은 암울하다.

원래 미국의 오랜 민요였으나 영국 밴드 애니멀즈의 편곡으로 전세계적 사랑을 받게 된 이 노래에서 ‘해 뜨는 집’은 대체로 교도소에 대한 은유로 본다. 아버지는 술과 노름으로 자신과 가족을 망쳤고 나 또한 희망 없는 인생, 하여 해 뜨는 집은 절망의 역설이다.

남자가 노래할 때 그 집이 교도소라면, 여자가 부를 땐 흔히 사창가로 그려진다. 히라야마의 단골 술집 여주인은 종종 손님들의 요청으로 이 노래를 부르는데 애니멀즈가 아닌 일본의 블루스 가수 아사카와 마키의 번안곡 버전이다. 사랑하는 남자에게 버려지고 고향을 떠나 집창촌까지 흘러들게 된 여자의 절절한 신세한탄.

이 첫 곡에서 나는 제목의 역설을 예감했다. 주인공과 아버지의 불화, 여사장의 실연까지 염두에 둔 선곡이라면 너무 앞서간 생각일까.

朝日のあたる家

노래: 야사카와 마키

소녀들에게 바치는 노래

Brown Eyed Girl

노래 Van Morrison

조카 니코가 그를 찾아왔을 때 같이 듣는 곡은 밴 모리슨의 상큼한 히트곡 ‘Brown eyed girls’이다. 청춘의 순수함이 그득한 노래로, 방황하고는 있으나 맑고 순한 느낌의 니코와 잘 어울린다.

반면 약간은 어둡고 개성이 강한 아야가 패티 스미스의 노래 ‘Redondo Beach’에 반응하는 장면에선 ‘정말 의도한 선곡들이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때 히라야마에게도 흥미와 호감의 표정이 스쳐간다. 패티 스미스에게 공감하는 어린 여자아이라니 나 같아도 끌리겠다.

패티 스미스는 미국의 펑크록 뮤지션이자 작가로 빔 벤더스, 밴 모리슨과는 동시대 사람이다. 특이한 외모의 이미지로 흔히 소비되고 있지만, 당시 열풍이 일었던 히피와 비트 문화를 한껏 받아들이면서도 랭보 등 옛 시인들의 글을 탐독하며 다양한 창작물을 만들어낸 매우 지적이고 매력적인 아티스트이다.

Redondo Beach

노래 Patti Smith

‘Redondo Beach’는 남자친구와 다투고 바다로 뛰어든 소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노래하고 있다. 패티와 싸우고 잠시 행방불명이 되었던 여동생을 걱정하며 만든 노래이지만 여동생은 다행히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울음을 삼키다 달려나간 아야에게도 별일 없기를.

Perfect Day

노래 Lou Reed

아야가 히라야마의 뺨에 입 맞추던 깜찍한 장면 이후에 그가 골라 튼 ‘Perfect Days’에서 나는 좀 웃었다. 1997년 영화 ‘트레인스포팅’ 에서 이 곡이 쓰였을 때 더없이 퇴폐적이고 나른한 느낌이 환각 상태에 정말 perfect하게 어울린다! 여겼었는데 ‘Just a perfect day~’ 로 시작되는 가사가 이렇게 귀엽게 느껴질 수가.

Feeling good

별다른 사건도 없이 심심하다면 심심하달 수도 있는 이 영화가 중년의, 특히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모두 ‘내 얘기’ 같다고들 한다.

루틴 속의 남자.
그러나 원래 나이 먹으면 루틴이 늘어간다. 내 몸에 딱 맞춘 틀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새로운 문화는 낯설고 젊을 때 즐겨듣던 음악을 반복해 듣게 된다.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면 산뜻한 설렘도 스쳐가곤 하지만 전처럼 뜨겁진 않다. 젊은 남자애들은 하나같이 철딱서니 없어 보인다.

나 이렇게 늙어가고 있구나.
세상에서 뒤처져가고 있구나.

그런데 주인공 히라야마가 ‘그래도 괜찮다’고 말없이 보여준다.
루틴은 정갈하여 아름답고 아날로그는 순수하다. 욕망에서 비껴난 이 소박한 일상이 바로 퍼펙트 데이다. 얼마나 좋아! 필링굿이라고!
그런데 왜 마음이 아프지. 왜 이렇게 쓸쓸하지.

Feeling Good

Nina Simone

It’s a new dawn 새로운 새벽
It’s a new day 새로운 날
It’s a new life for me 나를 위한 새로운 인생이야​
​And I’m feeling good 난 정말 기분이 좋아

니나 시몬의 음성은 씩씩하게 울려 퍼지지만 주인공과 함께 우리는 동요한다. 울컥울컥 치미는 무언가가 있다.

이 라스트 신이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걸로 알지만, 뛰어난 연기력과는 별개로 개인적으론 조금 힘겨웠다. 이렇게 격하게 보여주지 않아도 난 그 마음을 알았을 텐데...라는 느낌이랄까.

오히려 내가 울컥했던 건 <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가 흘러나오는 순간이었다. 이렇다 할 재미도 없어 보이는 반복된 하루 중에 역시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문장의 서두에서 나는 왜 그렇게 힘이 쭉 빠져버렸을까.

pale blue eyes

노래 The velvet underground(더 벨벳 언더그라운드)

Sometimes I feel so happy 가끔은 너무나 기쁘고
Sometimes I feel so sad 가끔은 너무나 슬퍼

나는 다만 이 두 문장이 ‘퍼펙트 데이즈’란 영화와 나의 인생을 수식할 뿐이라 느낀다. 당신의 인생은 어떠한가.

글쓴이

김효진 팝 칼럼니스트

김효진은 팝 칼럼니스트 입니다. 아직도 안 망했냐는 말을 4년 가까이 들으며 잠실에서 LP 바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시집 한 권과 여기저기 써낸 음악 에세이가 자꾸 늘어가는 무명작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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