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팝DJ 바쁘게 한 음악들
[김효진의 팝, 그 빛과 그늘] 봄에는 많은 신청 ‘April’ 길었던 장마, ‘Rain’으로 달래고 가을엔 월마다 다른 음악들 인기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
음악을 듣는 데도 절기가 있고 마디가 있다. 라디오를 듣고 자란 세대는 그 말의 뜻을 바로 안다. 쾌청한 여름날에 축축한 비 노래나 캐럴이 흘러나오지는 않았으니까.
음악을 들려주는 입장에선 조금쯤 빤하고 지겨워져 버리는 일이지만, 다수의 낭만에 공감하며 매일 열심히 계절의 족보를 뒤진다.
봄
원래도 그랬지만 2023년 올봄 유독 많은 신청을 받았던 곡은 사이먼과 가펑클의 <April come she will>이었다.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영화 《졸업》사운드트랙 앨범에 <Scaborogh fair>, <The sound of silence> 등의 명곡들과 함께 실렸다. 2분이 채 안 되는 노래로 그 산뜻함이 더더욱 봄날에 딱이다.
April Come She Will
‘4월이면 그녀가 올 거예요
봄비로 시냇물 흘러넘칠 때’
사랑의 설렘을 담뿍 담은 도입부지만 이 노래의 가사는 6, 7, 8월을 거쳐 9월까지 이어진다.
‘9월에 나는 기억하게 될 거예요
한때 새롭던 사랑이 이제 시들어가는걸’
<April come she will>이 실은 사랑의 허무함을 그린 노래라는 걸, 매해 4월마다 들뜬 얼굴로 이 곡을 신청하는 단골 총각에겐 계속 비밀로 하려고.
똑같은 4월인데 달라도 너무 다른 명곡이 또 하나 있다. 12분이 넘는 딥 퍼플의 대곡 <April>. 심지어 대개의 사람들이 기다리는 ‘노래’ 부분은 8분이 지나는 동안 나와주지도 않는다.
어둡고 비장한 올갠으로 시작, 장중한 오케스트레이션을 서서히 마치다가 드럼이 터져 나오는 순간, ‘록 스피릿’을 가진 사람이라면 ‘캬~’ 하는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April
‘April is a cruel time
Even though the sun may shine’
4월은 잔인한 시절
태양이 빛난다 할지라도
T.S 엘리엇의 시 <황무지>를 떠올리게 하는 가사는 또 얼마나 멋지던지, 어디 가서 좀 잰체하기에 이만한 곡이 없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엘리엇의 시가 어쩌구저쩌구.
지금도 DJ들을 난감하게 하는 긴 곡인데 예전엔 4월마다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의아하기도 하고, 그나마 이제는 거의 잊힌 듯 4년간 딱 한 번 신청받았으니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
그렇다면 최근 몇 년 간 가장 인기 있었던 봄 노래는 뭘까. 적어도 작년까진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이었다. 봄날의 클래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글쎄, 두고 봐야겠지.
여름
여름엔 불쾌지수가 높은 만큼 아무래도 시티팝이나 보사노바같이 상큼한 음악을 많이 틀게 된다.
다만 장마철이 되면 비에 관련한 노래 신청이 늘기 마련인데 딱히 특정한 신청곡은 없으나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리오스카의 <Before the rain> 같이 ‘비’라는 단어가 들어간 곡들이 골고루 사랑받는다.
어린 시절 비 오는 날마다 흘러나오던 호세 펠리치아노의 <Rain>이나 유라이어 힙의 <Rain>은 이제 서서히 잊혀 가는 중이다.
Rain
유라이어 힙이라 하면 <July morning>이라고 이제는 잊힌 국내 히트곡이 하나 더 있다. 이 또한 10분이 넘는 대곡으로 7월만 되면 모든 팝 프로에서 반드시 한번은 들을 수 있었다.
딥 퍼플의 <April>도 그렇지만 이 곡도 대중적이진 않아서 일반 팝 청취자들은 ‘앗! 깜짝이야’ 하고 채널을 돌려버리기 일쑤였으나 DJ들은 꿋꿋이 숙제하듯 이 곡을 들려주었다. 비록 소수였지만 <July morning>을 듣기 위해 7월 1일 아침을 기다렸다는 둥, 딥 퍼플의 <April>을 듣지 않고 4월을 넘길 수는 없다는 둥 하는 음악세계 낭만쟁이들의 징징거림을 못이긴 척 하면서 들어줬던 거겠지.
<Summer time>도 한번씩 신청이 들어오는데 워낙 버전이 다양한 곡이다 보니 신청자에 따라 다른 선곡을 하는 재미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루이 암스트롱과 엘라 피츠제랄드의 듀엣 버전을 플레이 하지만 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니스 조플린, 때로 가스펠 느낌 물씬한 마할리아 잭슨도 좋다.
Summer time
가을
감성 넘치는 계절이라설까, 가을엔 달마다 대표곡들이 있다.
9월이면 그린데이의 <When september ends>, 10월이면 배리 메닐로우의 <When october goes>, 11월이면 건스 앤 로지스의 <November rain>. 특히 <November rain>은 11월에 어느 뮤직바에 앉아있어도 한 시간에 적어도 한번은 들었을 거라 장담한다.
November Rain
내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가을은 바바리(?)와 샹송의 계절이었다. 조르주 무스타키의 <Ma solitude>, 이브 몽땅의 <고엽>(les feuilles mortes)은 라디오 뿐 아니라 TV에서도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Les feuilles mortes
‘오 그대가 기억해 주었으면
우리가 친구였던 행복한 나날들을
그때는 삶이란 게 더 아름다웠지
그리고 그때의 태양은 지금보다 더욱 뜨겁게 타올랐었다네’
이브 몽땅의 쓸쓸한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고엽>의 가사는 프랑스의 시인 자끄 프레베르가 썼는데, 이 곡이 크게 히트함으로써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된다.
이브 몽땅도 마찬가지인데 1945년 주연을 맡았던 영화 ‘밤의 문’에서 직접 불렀던 이 곡이 영화 흥행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사랑받으면서 그는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이르게 되었다.
이후로도 <고엽>은 빙 크로스비, 에디트 피아프, 냇 킹 콜 등 여러 가수들에게 불리며 대중들로부터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왔다.
지금은 에릭 클랩튼 버전만 신청이 있을 뿐 이브 몽땅은 요즘 세대에 그냥 ‘이름 웃기는’ 옛날 가수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의 나도 처음 듣고 너무 웃기다 생각했더랬지. 아무튼 격세지감.
겨울
겨울은 물론 ‘캐럴’이지만 이 또한 예전 같진 않다. 분위기를 띄워보려는 상술이기도 했으나 12월이면 한 달 내내 거리에 캐럴이 흘러넘치던 시절도 있었다.
막대한 저작권 수입으로 머라이어 캐리의 ‘연금song’이라는 농담이 붙은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특히 그랬다. 1994년 발표된 해에 곳곳에서 빵빵 터졌던 기억이 있지만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시즌만 되면 끈질기게 부활한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Mariah Carey -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Make My Wish Come True Edition)”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by Mariah Carey (Make My Wish Come True Edition)Listen to Mariah Carey
얼마 전 브렌다 리(78세라니!)가 머라이어 캐리를 제치고 <Rockin around the christmas tree>라는 캐럴로 빌보드 1위에 올라 화제가 되었다. 1958년에 발표한 곡이 65년만에, 그것도 최강자 머라이어 캐리를 제치고 1위라니 나만 놀랐나? 회복될 기미가 없는 불경기 속이라 실없는 농담처럼 아무도 관심이 없네.
그나저나 머라이어 캐리는 정말 캐럴의 최강자일까? 1억 장이라는 역사상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한 싱글이 있다. 바로 빙 크로스비의 <White Christmas>. 사실 왬의 <Last Christmas>가 나오기 전까지 캐럴은 빙 크로스비 그 자체였다.
1942년에 영화 《홀리데이 인》에서 쓰였던 <White Christmas>는 2차대전 중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안겨주기도 했는데, 벽난로 앞에서 마리오리 레이놀즈와 함께 노래하는 장면은 몇 번을 보아도 더없이 평화롭고 따뜻하다.
Holiday Inn “White Christmas”
해마다 10월의 마지막 밤이면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전 국민이 듣다시피 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계절과 날씨에 맞춰 특정 신청곡들을 공유하는 건 대체로 40대 중반 이상으로, 아마도 라디오 세대들의 학습된 습성이고 낭만인 듯하다.
그러나 세대를 떠나 누구든, 어떤 순간 떠오르는 추억의 노래가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그런 음악을 들을 땐 기억 속으로 순간 돌아가 그때의 공기, 냄새까지 훅 끼쳐오게 마련이다.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쓸데없이 정교하고도 사소한 음악의 마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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