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음악, 3개의 그림, 그리고 하나의 평화

[김효진의 팝, 그 빛과 그늘] 돈 맥클린의 ‘무덤’과 콜비츠의 ‘부모’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후안 마틴의 기타곡 바렌보임의 관현악단과 프리마첸코의 그림 서로 아무도 해치지 않는 세계를 바라며

마리아 프라마첸코, 우리의 군대 우리의 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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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과 부모

‘스타리 스타리 나잇(Starry starry nght)~’ 하고 시작되는 한 소절 만으로 아 ‘빈센트’구나 하고 알아채곤 하면서도, 대개는 그 가수의 이름을 몰랐다고 한다. ‘아메리칸 파이’로 연일 뉴스를 장식했던 윤 모씨의 해프닝이 있기 전까지는.

그 돈 맥클린(Don Mclean)의 1971년작 “American Pie” 앨범은 빈센트만 꺼내어 듣기엔 서운할 아름다운 곡들로 가득하다. 그의 명료한 음성은 때로 서정성 너머 비장한 슬픔에 가닿기도 하는데, 전쟁의 비극을 선연히 그려낸 ‘The Grave’가 바로 그렇다.

The Grave(무덤)

유튜브 동영상 The Grave - Don McLean | with lyrics (영어가사/한글번역)

전장의 부름을 받는 건 이제 갓 스물의 젊은이들. 곁의 동료들이 차례차례 스러져가는 절망뿐인 참호 속에서 살려달라고, 여기서 이렇게 죽고 싶지 않다고. 나는 용.감.하.지.않.다.고.

매번 유려하고 따뜻하게 읊조리던 돈 매클린이 이것만큼은 정말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터뜨리는 구절이다. 무엇을 위해 참혹하게 죽어가는가. 아니 그들을 그렇게 두는가.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판화 예술가 케테 콜비츠(1867~1945년)는 1차 대전 때에 자원 입대한 18살 막내아들을 잃는다. 비겁하지 말라는 부모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아들의 뜻을 꺾을 수 없었던 콜베츠는 이후의 인생이 죽음을 기다리는 삶에 불과했다고 말한다. 평생 반전과 평화를 위해 싸우며 걸작들을 남겼으나 그녀는 2차대전에서 이번엔 손자를 잃는다.

콜비츠의 작품 ‘부모’를 보면 앞뒤 맥락을 모르고도 바로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드러나지 않은 표정에도 지옥 같은 절망이 읽힌다.

케테 콜비츠, ‘부모’, 1923년.
케테 콜비츠, ‘부모’, 1923년.

아이들의 무덤은 결국 그렇게 우리 가슴속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반복되는 게르니카

지난 10월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내 병원 폭격으로 대략 500명이 사망했다. 그전 이스라엘 키부츠 사건 때에는 260명 정도가 죽었다. 대한민국의 필독도서 삼국지를 읽다 보면 몇 만 군사의 도륙은 주의를 기울여 읽을 대목도 아니다. 권력의 지도에서 무명의 인간은 숫자로 존재할 뿐이다.

역사가 숫자로 가벼이 놓쳐버린 개개의 삶은, 그러나 그렇게 함부로 잊혀질 일이 아니다. 그 일깨움을 마련해 주는 것이 음악, 미술, 문학 등 예술의 큰 역할이지 싶다.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유화, 349.3 x 776.6 cm, 1937년,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유화, 349.3 x 776.6 cm, 1937년,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

반전 메시지를 담은 가장 유명한 작품이라면 아마도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일 것이다. 스페인 내전 중 독일 나치는 프랑코 장군의 의뢰를 받아 무차별 폭격으로 게르니카 지방의 민간인들을 학살한다. 프랑코는 권력 장악을, 나치는 놀랍게도 무기 실험을 위해서였다.

이 비보를 접하고 피카소가 한 달 반 만에 그려낸 작품이다. 실물을 직접 본 사람들은 생생히 전해지는 처참한 고통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다고들 한다.

스페인 말라가 출신 기타리스트 후앙 마틴(Juan Martin)은 이 작품을 ‘음악화’한다. 한 단계 더 거치며 처절함은 한층 여과되었으나, 피카소란 거장의 대작도 피와 살이 터져나가는 현실에 비하자면 여전히 여리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우리의 정신을 끊임없이 일깨우며 다큐와는 다른 방식으로 영혼에 작동한다.

Guernica

Juan Martin’s Flamenco Guitar interpretation of Picasso’s GuernicaJuan

그러나 우리는 평화를 꿈꾼다

중동의 사람들에게 있어 종교적 신념은 매우 견고하고 이젠 생존과 결부되어 퇴로 없는 폭력의 직진 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 비극의 기록을 접고자 평화의 서문을 새로 써 내려가는 두 사람이 있다. 유태인 피아니스트이며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

바렌보임과 사이드는 괴테의 작품 제목을 따 ‘서동시집 관현악단(The West-Eastern Divan Orchestra)’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창단한다. 이 두 기획자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인 것도 놀라운데 관현악단원은 심지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레바논, 요르단 등등 중동 전역의 청소년 들이다. 중동의 복잡한 정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구성이 얼마나 용감한 시도인지 바로 알아챌 것이다.

West-Eastern Divan Orchestra

20th Anniversary CelebrationsThe 20th anniversary tour of the West-Eastern Divan Orchestra

바렌보임과 사이드 두 지성이 그려낸 냉철하고도 그윽한 무대 위에서 아이들이 무기 대신 악기를 든다. 어른들이 지난 역사의 독한 신념으로 서로 총구를 겨냥하고 있을 때, 아이들은 베토벤의 교향곡을 함께 연주한다. 그들이 보기엔 참으로 한가롭고 철없다.

그러나 그 철없음에서부터 평화의 싹이 틀 것이며 그 한가로움의 무목적성에서 잎이 자라나리라 믿는다.

난 쟤가 정말 맘에 안들지만 곡을 완성하기 위해 쟤의 연주에 귀 기울여야 한다. 다른 음, 다른 악기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화음이 만들어진다. 고향과 종교의 다름이 문제되지 않을, 더 큰 아름다움을 함께 꿈꾸게 된다. 이것이 평화가 아니고 무엇일까.

인류의 역사에서 티끌 없이 온전한 평화의 날이 단 하루도 없었듯 오롯이 절망뿐인 날 또한 없었을 것이다. 어떤 짙은 그늘에서도 희망을 길어올리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사랑하는 평화의 화가 마리아 프리마첸코. 2차대전에서 남편과 동생을 잃었음에도 증오에 굴복하지 않았던 사랑스러운 그녀의 그림을 소개하며 쓸데없이 길어져 버린 글을 마친다.

‘우리의 군대, 우리의 보호자’가 제목이지만, 군인들은 우크라이나 전통의상을 입은 평범한 젊은이들이며 커다란 꽃그늘 아래 눈부시게 아름답다.

평화를 기원한다. 그저 다만 그 누구도 서로를 해치지 않는 세계이길.

글쓴이

김효진 팝 칼럼니스트

김효진은 팝 칼럼니스트 입니다. 아직도 안 망했냐는 말을 4년 가까이 들으며 잠실에서 LP 바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시집 한 권과 여기저기 써낸 음악 에세이가 자꾸 늘어가는 무명작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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