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명분’- 한국은 ‘실천’ 주고 받아야

[ 고수석의 대동강 도시락] 북한은 남북관계 회복을 원해 북한 내 친중파 세력의 입지 약화 식량은 준비하고 백신은 신중해야 정상회담은 ‘천천히 서둘러야’

북한은 식량난과 코로나 19위기로 민생고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인민생활 안정을 위한 특별명령서(추정)에 서명해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은 식량난과 코로나 19위기로 민생고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인민생활 안정을 위한 특별명령서(추정)에 서명해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고수석 북한학 박사] 북한의 대남(對南)정책은 항상 다목적용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과 북한의 복잡한 내부사정을 고려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북한의 복잡한 내부사정이란 미처 고려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책임을 피하려는 치열한 고민을 말한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과 언어는 복선적, 은유적, 이중적으로 점철된다.

최근 남북한이 합의한 남북통신연락선의 복원에서도 알 수 있다. 우선 양측 정부의 설명을 들어 보자. 청와대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남북간에 하루속히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를 다시 진전시켜 나가자는데 대해 뜻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북한도 비슷한 톤으로 “온 겨레는 북남 관계가 하루빨리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공식 발표로 보면 그동안 불편했던 남북관계를 회복하기를 바라며 먼저 남북통신연락선을 복원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언론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남북 정상회담 개최 논의중이라는 외신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논의한 바 없다”고 정리했다.

남북관계 회복 어떻게 이뤄질까

북한이 가리킨 방향은 남북관계 회복이다. 천천히 따져볼 대목은‘어떻게’할 것인가다. 먼저 북한의 사정을 살펴보자. 북한은 현재 유엔 제재와 코로나 국경봉쇄로‘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열린 조선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에서 “나는 당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해 각급 당조직들, 전당의 세포비서들이 더욱 간고한‘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언급했다.

북한은 국경 봉쇄 해제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지만 아직은 재개 여부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민위천+일심단결+자력갱생으로‘고난의 행군’을 버티는 북한이 내심 기대했던 것은 중국의 지원이다. 북한은 중국이 코로나 이후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원해 주는 것에 고마워하지만‘죽지 않을 정도만’지원하는 것에는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다.

중국의 지원은 북한 내부 친중파의 입지와 직결된다. 친중파는 김 위원장이 권력을 잡은 이후 부침을 거듭했다. 친중파는 장성택의 부침과 함께 하다가 북미 정상회담으로 권력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다시 기회를 잡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김 위원장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가 없었던 김 위원장은 그들의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남북관계는 파국을 맞았다.

북한은 남한에 어떤 명분을 줄 것인가

권력은 생물과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수시로 변한다는 뜻이다. 친중파는 중국의 지원이 있어야 입장이 견고해진다. 지난 2년간 친중파는 김 위원장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성과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은 다른 선택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새로 들어선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한국의 문재인 정부. 김 위원장에게 나쁘지 않은 기회가 온 것이다.

북한은 지금 식량이 심각하다. 김 위원장이 지난 6월 노동당 제8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지난해 태풍 피해로 알곡 생산계획이 미달한 것으로 해 현재 인민들의 식량 형편이 긴장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개발원(KDI) 북한경제리뷰 보고서(2021년 5월호)에 따르면 북한의 올해 식량 부족분이 70만~100만t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남북통신연락선의 복원은 이런 김 위원장에게 위기를 돌파하려는 다목적용으로 읽혀진다. 내부 세력 교체와 경제 위기 극복,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 등으로 현 난국을 타개하려는 복선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남북관계 회복에 한국의 ‘실천’을 기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도 인도적 지원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대북 지원 여건 조성을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고민은 북한에 그냥 식량 지원을 하면 국민의 저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도 남북관계 회복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한국 정부에 명분을 줘야 한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6월 북한이 폭파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 대한 북한의 사과를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백신 지원은 조금 고민할 필요가 있다. 8월 2일 기준으로 1차 접종률이 37.9%임을 감안해 신중해야 한다. 정확한 기준을 제시하기는 어렵지만 백신 지원을 고려한다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접종률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남북통신연락선의 복원은‘Again 2018’의 출발점이다. 남북관계의 발전을 위해 임기 말이라도 할 것은 해야 한다. 분수령은 8월로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이다. 예상대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한미연합훈련의 중단을 요구했다. 김 부부장은 지난 1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지금과 같은 중요한 시기에 진행되는 군사훈련은 북남관계의 앞길을 흐리게 할 수 있다”며 “남측의 결정을 예의주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질세라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연합훈련은 한미 양국의 결정”이라며 맞받아쳤다.

한미연합훈련을 앞두고 북·미가 신경전을 벌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코로나 4차 대유행으로 과거처럼 진행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예정대로 한미연합훈련이 끝나면 남북관계가 조금씩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9·19 평양공동선언 3주년과 연이은 추석을 맞아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지면 더할 나위가 없다. 아울러 10월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Again 2018’을 완성하게 된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천천히 서둘러라”고 말했다. 너무 성급하거나 공격적이면 호기를 놓친다. 지금 정부에는 남북관계에서 경험과 실력을 겸비한 베테랑들이 많다. 올림픽에서 값진 땀으로 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처럼 남북관계에서도 메달을 기대해 본다.

글쓴이

고수석 북한학 박사

고수석 박사는 중앙일보 기자로 20여년 동안 통일이 한국의 성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통일․북한 분야를 취재했으며 고려대에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중앙일보에 ‘고수석의 대동강 생생 토크’, 중앙SUNDAY에 ‘평양탐구생활’을 기획연재했다. 저서로는『북한을 움직인 30인』, 『김정일과 IT혁명』등이 있다. 지금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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