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테헤란 그리고 카불...또 미국을 흔들까

[신은철의 ‘미국정치 스틸컷’] 1968년 존슨, 1980년 카터 리더십 추락 미 대선 없는 해에 발생...바이든 행정부 ‘다행’

카터 대통령은 1980년 4월 테헤란 주재 미대사관에 인질로 붙잡혀있던 52명의 대사관 직원을 구출하기 위한 '독수리 발톱 작전`에 서명했다. 하지만 인질 수송을 위해 대기중이던 수송기에 텔타포스 헬리콥터가 추락, 장병 8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사진=위키피디아
카터 대통령은 1980년 4월 테헤란 주재 미대사관에 인질로 붙잡혀있던 52명의 대사관 직원을 구출하기 위한 '독수리 발톱 작전`에 서명했다. 하지만 인질 수송을 위해 대기중이던 수송기에 텔타포스 헬리콥터가 추락, 장병 8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해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 사진=위키피디아

[신은철 칼럼니스트] 탈레반의 신속한 카불 탈환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내외 언론사들은 탈레반의 향후 행보와 이해관계자들의 셈법 등을 쏟고 있고, 현재 주요 도시로 확산된 반(反)탈레반 시위에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국내 정치에 미칠 지도 관심사다.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실각이 각각 1968년의 남베트남 정부와 1980년의 이란 왕정 몰락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등장했다. 따라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46대) 역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39대)의 전철을 밟아 정치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있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그런데 미국내 여론조사 결과는 엇갈린다. CBS News/YouGov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의 대처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인 것과 별개로 67%의 미국인이 아프간 철군을 지지했다.

그렇다면 1968년 당시 베트남 전쟁과 1980년 미국 대통령선거 당시 이란 왕정 몰락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다를까. 이를 참고로 미국 국내 정치가 어떻게 진행될 지에 대해 힌트를 얻어 보자.

1968년 베트남 전쟁, 닉슨 당선에 영향

당시 린든 B. 존슨 대통령(36대)의 대외정책에 대한 평가는 좋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해병대원이 담배 라이터로 민간인의 오두막을 불태운 ‘캄넨 사건’ 등이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전황의 악화를 막지도 못했고 전쟁을 확실히 종결시켜 비난을 잠재우지도 못했다.

히피 세대의 등장과 반전 시위로 정치적으로 고전하고 있던 존슨 행정부는 더욱 궁지에 몰렸다.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 존슨이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인지도가 낮은 유진 매카시 상원의원(미네소타)을 상대로도 고전했다. 낙승을 자신했던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조차 6%p차 신승을 거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퇴역 장교, 정치인으로 구성된 베트남 전쟁 자문단이 1967년 12월과 달리 공습과 증파로는 전황을 바꿀 수 없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불리해지고 있던 존슨은 결국 불출마를 선택했다. 이후 밝혀진 바로는 집안의 내력인 심장병에 대한 우려와 ‘바비 케네디’라고 불리는 로버트 F. 케네디 상원의원(뉴욕)의 대선 출마가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존슨 미 대통령이 1968년 TV연설을 통해 자신의 불출마와 함께 베트남 폭격 중단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존슨 미 대통령이 1968년 TV연설을 통해 자신의 불출마와 함께 베트남 폭격 중단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위키피디아

이렇듯 베트남 전쟁은 1968년 대선을 달군 이슈였다. 그 해 여름 개최된 민주당 전당대회장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했고,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와 무소속의 조지 월리스 앨라배마 주지사는 반전 세력에 대한 백인의 반감을 부추겼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세력에 대해 보수층의 반감이 있었지만, 많은 미국인들은 쿠바 미사일 위기(1962년)의 공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월리스의 지지율은 한 때 20%를 돌파했지만 결국에는 가라앉았다. ‘캐스팅 보트’로서 당선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으므로, 20%는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관문이었다. 그러나 커티스 르메이 장군을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발탁한 게 악재로 작용했다. 르메이는 사전에 주의를 받았지만 기자들과 ‘핵무기 토론’을 벌였고, 월리스의 지지자들 중 핵전쟁을 원하지 않았던 이들은 닉슨 쪽으로 기울었다. 월리스는 최종적으로 13.53%를 득표한다.

1968년 미국 대선에서 주목해야 할 요인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남부의 선거 결과이다. 1960년대에 민권 정책을 둘러싼 민주당 내부의 갈등이 절정에 도달하자, 공화당은 인종통합에 반대하는 남부 백인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닉슨은 민권 이슈에 대해 말을 아낀 대신, 스트롬 서몬드 상원의원 같은 남부 정치인들이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라고 불리던 남부 백인을 설득했다. 참고로 서몬드는 1957년 반쪽짜리 민권법이 상정된 의회에서 24시간 18분 동안 필리버스터 연설을 했던 인물이다.

서몬드는 선거 연설에서 직설적으로 민권 이슈에 대해 보수적인 주장을 펼쳤다. 요약하자면, 민권법과 투표권법을 집행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 닉슨을 지지하라는 것이었다. 방법도 교묘했다. 닉슨은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흑인 집단에 범죄라는 이미지를 은연중에 덧씌우려 했다. 동시에 반전 시위 중단을 지지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법과 질서’(law and order)라는 구호를 채택했다.

오늘날에도 공화당의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이라는 명칭으로 유명한 닉슨의 이 전략은 멋지게 성공했다. 닉슨은 7개 남부 주의 선거인단 73명을 포함해, 총 301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함으로써 제37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1968년 미 대통령선거 결과. 빨간 색이 닉슨 후보(공화)가 이긴 주이고. 파란색은 험프리 후보(민주)가 승리한 곳이다. 짙은 적색은 월리스 후보의 표다. 사진=위키피디아.
1968년 미 대통령선거 결과. 빨간 색이 닉슨 후보(공화)가 이긴 주이고. 파란색은 험프리 후보(민주)가 승리한 곳이다. 짙은 적색은 월리스 후보의 표다. 사진=위키피디아.

1980년 이란 사태, 카터의 퇴장과 레이건의 등장

린든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내 부문에서는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16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32대)과 더불어 제일 굵직한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받는다. 그와 달리, 지미 카터 대통령(39대)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정치인이 종교를 언급하면 안 된다는 시대의 금기를 깨뜨린 것을 비롯해, 카터가 현대 미국 정치사에 남긴 족적은 절대 작지 않다.

카터가 1976년 대선에서 승리했던 비결은 가톨릭교도와 복음주의자의 높은 지지율이었다. 문제는 ‘기독교도 결집’이라는 전략이 결과적으로 현대의 공화당 지지 기반을 만들었다는 점이며, 이후 미국 정치의 전개에서 민주당에 두고두고 뼈아픈 대목이 된다.

닉슨은 남부 백인을 결집시키고자 민권 문제에 침묵했지만, 원래는 민권 보장을 지지하는 인물이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장례식에 참석했고, 교외 거주민에게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을 도울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재임중에도 국세청을 활용하여 인종분리 학교들이 세금 면제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만드는 정책을 지지했으며, 후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이 조치를 강화시켰다.

엉뚱하게도 이런 조치로 인해 기독교 보수파의 비난을 받은 사람은 닉슨도, 포드도 아닌 카터였다. 기독교 보수파는 ‘도덕적 다수파’를 만들겠다며 종교의 자유와 낙태 금지를 구실로 결집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1978년 1월 공화당이 미네소타와 아이오와 상원 선거에서 승리하는 등, 카터와 로널드 레이건이 맞붙는 대선 정국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중요한 결과를 만들고 있었다.

레이건은 공화당 대통령 경선에 참여하면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거룩한 전국의 십자군’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 자신을 복음주의자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법과 질서’ 및 ‘각 주의 권리’라는 메시지도 내세웠는데, 후자의 경우 남부 출신 민주당 정치인들이 수 십 년 동안 민권 보장에 반대하는 근거로 활용한 담론이기도 했다.

사실 레이건은 이혼 경력과 소원한 자녀들과의 관계 등 공화당 후보로서 약점이 명백했다. 또한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산모가 신체·정신적인 고통을 경험했거나 강간 혹은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일 경우 낙태를 허가하는 ‘치료낙태법’에 서명했던 전력도 있었다.

하지만 ‘카터 타도’를 목표로 궐기한 기독교 보수 진영에게 이러한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며, 무려 67%의 복음주의자들이 대선에서 레이건을 지지했다. 주이란 미국 대사관 소개 작전, 즉 독수리 발톱 작전(1980년 4월)의 실패 전부터 이란의 상황은 카터의 재선 가도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란 혁명 이후 원유 생산량이 감소하여 세계 유가가 급등하자, 당시 대일본 무역에 대한 반감과 맞물리며 백인 노동계층의 불만을 키우고 있었다.

레이건은 개인적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했음에도, 백인 노동자의 지지를 받았다. 그를 지지했던 백인 노동자들 중에서도 특히 자동차 노조 UAW에 가입했고, 디트로이트 교외인 매컴 카운티(미시간)에 거주하는 백인 노동계층이 큰 주목을 받았다. 카톨릭교도 인구가 많았던 곳이라 낙태금지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던 것이다. 이들을 일컫는 ‘레이건 데모크랫’(Reagan Democrat)이 1980년 이후에도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백인 노동계층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활용될 정도로, 당시 민주당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요약하자면 카터는 ‘독수리 발톱 작전’이 재앙으로 끝나기 전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2021년 아프간 사태...바이든, 카터 전철 안 밟으려

1968년 베트남 전쟁과, 1980년 이란 왕정 몰락 등은 미국 정치일정과 맞물리면서 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경우였다.

그렇다면 2021년 아프가니스탄 미군 철수와 탈레반의 재집권은 미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2021년은 1968년, 1980년과는 달리 미 대선이 있는 해가 아니다.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민심을 알아볼 수 있는 중간선거는 2022년 11월에 실시되며, 차기 대선의 윤곽은 제118대 의회가 개원할 2023년부터 공화당 후보들이 경선 출마를 선언하게 되면 드러날 것이다.

심지어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 사태 이전에도 이민과 연관이 있는 남부 국경, 식량과 백신 부족이 촉발시킨 쿠바 시위와 같은 난제를 마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사적 개입 등 쿠바계 이민자들이 원하는 조치를 추진하지 않았는데도, 취임 100일 후에도 50%를 웃도는 탄탄한 지지율을 유지했던 전례가 있다.

그리고 바이든은 확실히 카터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민간 항공사에 지원 요청을 하는 등 현지 인력을 귀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베테랑 외교관 출신인 윌리엄 번스 CIA 국장은 현지시간으로 8월 23일 극비에 압둘 가니 바라다르 최고지도자를 만나기도 했다.

동시에 바이든은 미국을 재정비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에 묻힌 감이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탈레반이 카불을 탈환한 후 24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한 가지 중대 발표를 했다. 개인당 평균 121달러인 푸드 스탬프 지원금을 10월부터 157달러까지 늘리겠다고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가 확산을 계기로 뉴딜 정책을 계승·발전시킬 준비를 해왔다. 취임 후 1조 9천억 달러 규모의 코로나 부양책을 통과시켰고, 직접 공화당과 협상한 끝에 상원에서 69명(민주 50+공화 19)의 지지를 받아 인프라법을 통과시켰다. 인프라법 역시 8년 동안 1조 2천억 달러를 지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대규모 재정안이다.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정부가 문제입니다”라는 말로 유명한 레이건과는 명백히 다른 입장이다. 바이든 정부의 움직임은 연방정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경기 회복, 취약계층 지원과 같은 당면 과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로럴드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정부가 문제입니다"라는 말로 미국민들을 사로잡았다. 사진= 위키피디아
로럴드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정부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닙니다. 정부가 문제입니다”라는 말로 미국민들을 사로잡았다. 사진= 위키피디아

바이든이 준비하고 있는 추가 재정안은 어쩌면 아프가니스탄보다 미국 국내에 더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민주당이 코로나 부양책을 통과시켰을 때처럼 단독으로 가결하려는 3조 5천억 달러 규모의 재정안은 3~4세 유아교육과정과 2년제 전문대학(커뮤니티 칼리지)의 무상화, 처방약값 인하와 같은 안을 골자로 한다. 현재 65세인 메디케어 가입 연령을 60세로 낮추는 조항과 젊은 미등록 이민자(드리머 구제), 재생에너지 요구사항과 같은 조항도 삽입됐다. 이미 지난 5월 말, 6조 달러 규모의 2022 회계연도 예산안이 발표된 상황이다.

따라서 차기 중간선거에서는 18세 이하 어린이의 빈곤율을 일시적으로나마 절반 이하 수준으로 낮출 코로나 부양책, 하드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확충할 인프라법 같은 국내 정책이 핵심 이슈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상원 선거가 실시될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은 상원의원 구성을 좌우할 격전지다. 바이든은 1월20일 취임 후 7월 28일까지 6차례에 걸쳐 펜실베이니아를 방문하여, 인프라법으로 창출될 일자리 중 90%가 고등교육(대학 학위)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비록 앨라배마 집회 연설 중 야유를 받았지만 트럼프조차 백신 접종을 권유할 정도로, 코로나 관련 이슈가 계속 미국 국내에서 주요 쟁점이 될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이러한 점들을 감안해보면 아프간 철군이 제2의 베트남 혹은 이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는 아직 이르다.

글쓴이

신은철 칼럼니스트

신은철 칼럼니스트. 대학 시절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미국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중간선거가 실시된 2018년부터 블로그에 미국 정치글을 연재하고 있다. 프랑스와 같은 주요 유럽 국가들의 정치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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