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의 힘’ 확실히 보여주는 에르도안①

[신은철의 터키 정치 ‘스틸 컷’] 걸림돌이면서 지렛대인 튀르키예 대통령 미국과 러시아에 강온양면전략으로 이득 취해 어느쪽도 치우치지 않는 외교...내년 선거 ‘고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30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중에서 23개국이 핀란드·스웨덴 가입을 승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 9일 이들 2개국의 NATO 가입을 23번째로 승인했다. 이어 체코 상원 또한 가입안을 10일에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시켰다. 체코의 하원이 비준안을 이달 말에 가결하고 밀로시 제만 대통령이 가입안에 서명하면, 30개 NATO 회원국 중에서 24개째로 핀란드와 스웨덴의 가입을 승인하게 되는 것이다.

NATO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의 공언대로 핀란드와 스웨덴의 가입 절차를 빠르게 마무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이 지난 6월에 NATO 정상회담에 참석하자, 30개 NATO 회원국은 가입의정서에 서명해 최종 가입 절차(각 회원국 입법부의 승인)를 개시했다. 회원국중 스페인은 핀란드·스웨덴 가입안을 오는 9월에 의회 표결에 부치고자 한다. 포르투갈과 슬로바키아 역시 비준안을 9월에 가결하고자 하며, 그리스 또한 가입안을 수월하게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 30번째 회원국인 북마케도니아가 지난 2018년 NATO 정상회담에 참석하고 2020년 3월 말에 NATO에 정식으로 가입한 속도를 감안하면, 핀란드와 스웨덴의 가입 절차는 실제로도 신속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스페인은 그 당시에 가입안을 가장 마지막으로 승인했다.

걸림돌은 한국에서 ‘형제의 나라’라고 불리는 튀르키예(터키)다. 튀르키예는 합의 준수를 요구하며 핀란드와 스웨덴을 압박하고 있다. 모든 회원국의 입법부가 비준안을 가결해야 하는 만큼, NATO 수뇌부와 양국 정부는 터키 정부를 설득해야할 처지다. 친러 노선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헝가리 정부 또한 골칫거리라고 볼 수 있겠으나,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튀르키예의 유보사항을 언급하면서 표결을 질질 끌고 있다. 즉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핀란드와 스웨덴의 NATO 가입 이슈의 핵심 인물인 셈이다.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입지. 흑해로 통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막아버리면 러시아는 흑해함대를 이동시킬 수 없게 된다.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입지. 흑해로 통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막아버리면 러시아는 흑해함대를 이동시킬 수 없게 된다.

튀르키예가 왜 중요한가 유럽, 중동 안보와 직결되는 ‘지정학적 입지’

보스포루스 해협은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시절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요충지이거니와 이스탄불 시내를 가로지르며 지중해(에게 해·마르마라 해)와 흑해를 이어준다. 그런 연유로 러시아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차지해서 부동항을 확보하려고 로마노프 왕조 시절부터 튀르키예와 대립했다. 이에 튀르키예는 몽트뢰 협정(1936년)을 체결해서 보스포루스 해협 관리권을 위임받았다. 즉 민간 선박의 자유로운 항행을 평시에 보장하되, 전함의 흑해 진입을 전시에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았다.

이어 튀르키예는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중립노선을 표방했다가 전쟁후에는 대미 동맹을 강화했다. 예를 들어서 해리 S.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이 일명 ‘트루먼 독트린’을 1947년 3월 12일에 반포하고 총 4억 달러 규모 원조를 그리스와 튀르키예에 제공하면서 냉전 시대를 열었는데, 튀르키예는 1952년 NATO에 가입하면서 대미 동맹 대열에 나섰다. 이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핵탄두를 탑재한 채 모스크바를 타격할 수 있는 PGM-19 주피터 준·중거리 탄도미사일을 튀르키예에 배치하는데도 협조했다. 주피터 미사일은 쿠바 미사일 위기(1962년)의 핵심 쟁점이었으니, 미국 입장에서는 당시의 튀르키예를 서독과 함께 가장 핵심적인 유럽의 냉전 거점으로 삼은 것이다.

비단 냉전만이 아니다. 미국은 지금도 튀르키예의 핵심 동맹국중 하나다. 미국은 항공모함 해리 S. 트루먼호를 올해 3월에 에게해 북부에 파견했는데, 세브로 조약(1920년)과 로잔 조약(1923년)을 체결해서 (임브로스와 테네도스를 제외한) 에게해 일대를 장악하게 된 그리스와 협력해 러시아의 도발 행위를 대비할 수 있었다. 미국은 또 튀르키예 남부 아다나 주에 위치한 인지를리크 공군기지를 활용한다. 미국이 1951년 트루먼 독트린 원칙에 따라 미 공병대를 투입해 건설한 인지를리크 기지는 1954년에 튀르키예 공군과 협정을 통해 미군 기지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란, 이라크, 시리아와 인접해 있는 이점을 활용해 미국은 걸프전(1990년), 이라크전(2003년), IS 격퇴전(2015년) 당시에 마음껏 군사작전을 펼친 바 있다.

러시아가 중동에서 이란과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면서 미국을 견제하고 있는 만큼,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입지는 중동 정세에 지속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인지를리크 기지는 미국의 핵 기지다. 미국은 NATO식 핵공유협정을 튀르키예와 체결한 뒤에 B-61 계열 전술핵무기 50기를 인지를리크 기지에 배치해두었다. 튀르키예는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이라서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지만, 핵전쟁 발발 시 NPT에서 탈퇴하고 B-61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 바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생전에 언급한 바 있는 NATO의 ‘핵 공유 전략’이다.

에르도안의 눈부신 ‘등거리 외교’ 행보

에르도안 정부는 이같은 지정학적 입지를 적극 활용하면서 실리를 챙기려 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하면서 몽트뢰 협정을 발동해서 외국 군함의 보스포루스 및 다르다넬스 해협 진입을 올해 2월 28일부로 금지했다. 러시아 소속 북방함대 또는 태평양함대가 지중해를 지나 흑해에 진입해 흑해함대를 지원하는 것을 막아버린 것이다. 그러자 우크라이나는 이 참에 하푼 대함미사일 등을 쏘며 러시아로부터 크림반도를 탈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때문에 푸틴의 계산이 꼬였다. 흑해함대 지원을 위해 보스포루스 해협에 진입해 튀르키예를 공격하면 NATO와의 전면전을 불사해야 한다. NATO가 헌장 제5조를 발동해서 튀르키예에 대한 공격을 ‘NATO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푸틴 입장에서 시선을 발트 해로 돌려보면, NATO가 핀란드와 스웨덴을 가입시켜서 발트해 일대를 장악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러시아 발트함대의 운신의 폭마저 좁아지는데다 NATO 회원국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위치한 고립영토(exclave) 칼리닌그라드가 지정학적으로 더욱 고립된다.

이런 와중에 에르도안 대통령은 서방과 대립하며 러시아와의 밀월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에르도안은 러시아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S-400 지대공미사일 구매 협상을 2017년초부터 진행하더니, S-400을 2019년 7월에 배치해서 NATO와 미국을 자극했다. 또 미국 의회가 국방예산인 ‘2020년 국방수권법(NDAA)’을 통과시켜서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 판매를 금지하자, 인지를리크 기지 사용을 금지하겠다면서 미국을 압박했다. 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도 단절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주(駐)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2018년에 예루살렘으로 이전하자 트럼프의 행보를 역이용하면서 미국을 위협한 것이다. 트럼프가 지난 2019년 10월에 ‘전술핵무기 50기를 인지를리크 기지에 배치해두었음’을 털어놓아 기밀사항을 드러낸 것을 역이용한 것이다.

이같은 에르도안의 외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는 몽트뢰 협정을 발동해서 러시아 함대의 흑해 진입을 금지하면서도 대(對)러시아 경제제재에 동참하지 않았고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해서 수입하고 있다. 양국간 평화협상을 중재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주권 및 영토 보전과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강조하면서 푸틴의 전쟁 목표인 크림반도 합병 승인과 돈바스 독립 인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군사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지 않되 뛰어난 성능을 갖춘 바이락타르 TB2 무인정찰기(드론)를 판매, 우크라이나의 군사능력 강화에 일조하기도 했다. 또한 양국을 설득해 우크라이나 곡물수출을 재개하는가 하면 제2의 체르노빌 사태를 막으려고 노력하는 등 두드러진 존재감을 최근까지 계속 드러내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푸틴의 봉쇄선 때문에 2천만 톤에 달하는 곡물을 수출하지 못하고 있다가 63만 톤을 초과하는 곡물을 8월 1일 이래로 출항시켰다. 이집트,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튀르키예, 예맨 같은 국가들이 수입량 Top 10에 올라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우크라이나 곡물수출 재개는 식량위기에 처한 이들 국가들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에르도안은 푸틴을 설득해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 시찰을 성사시키며 또 다른 위기를 방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자포리자 원전이 유럽 내 최대 원전이기에, 국제사회는 원전 주위에서 벌어진 양국 군대의 포격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뿐만이 아니다. 에르도안은 이란의 테러시도를 적발하는 한편 이스라엘 국적기의 취항을 허가하더니 이스라엘과의 외교 관계까지 복원했다. 이스라엘은 2020년 미 트럼프 행정부 중재로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바레인, 모로코, 아랍에미리트(UAE)와 타결했고 협정을 확장해 중동 국가와의 공조를 강화했는데, 에르도안이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4개국은 ‘미국을 쫓아내고 이스라엘을 제거해서 중동 최강의 패권국으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이란을 경계하는 나라들이다. 푸틴과 이란이 협력위성을 발사하는 등 협력을 강화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개선한 것을 보면, 에르도안이 러시아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진정한 시험대는 2023년 튀르키예 대선 및 총선

에르도안은 미국으로부터 F-16 판매가 가능하다는 답변도 얻어냈다. 쿠르드족 관련 합의 사항을 준수하면 NATO 가입을 지지하겠다며 핀란드와 스웨덴을 압박하는데도 성공했다. 에르도안이 언급한 쿠르디스탄 노동자당(PKK)은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봉기한 무장 단체인데 핀란드, 스웨덴이 이 단체를 옹호하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운 것이다.

이처럼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어느 한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등거리 외교 정책을 능수능란하게 펼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앞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내년 6월18일 대선과 총선을 동시에 치를 국내 정치일정이 고비다. ‘독재자’ 에르도안의 외교 정책은 두개 선거를 통해 자국 국민들로부터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글쓴이

신은철 칼럼니스트

신은철 칼럼니스트는 대학 시절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미국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중간선거가 실시된 2018년부터 블로그에 미국 정치글을 연재하고 있다. 프랑스와 같은 주요 유럽 국가들의 정치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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