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맞서 싸우는 ‘네오콘의 딸’ 리즈 체니
[신은철의 미국 정치 ‘스틸 컷’] 공화당내 딕 체니의 딸과 트럼프진영 대결 반트럼프→친트럼프로 돌아선 정치인과 대조 8월 와이오밍 예비선거, 리즈 체니는 생환할까
1·6폭동은 2020년11월 미 대선패배 결과에 불복한 도널드 트럼프 전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 인증을 진행하던 미 연방의회 의사당에 난입해 난동을 부린 사건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 1·6폭동 진상 규명을 위한 미 하원 조사위원회의 공개청문회가 개막돼 연일 미 국민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 청문회에 소환되는 증인 뿐아니라 조사위원회에 참여한 위원들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공화당 소속의 리즈 체니 의원은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녀는 애덤 킨징어 의원과 함께 조사위에 합류한 단 2명의 공화당 의원중 한명으로, 조사위 부위원장도 맡고 있다.
그녀는 시종일관 반트럼프에 서 있다. 그녀는 “트럼프 대통령이 폭도를 소환해 결집시키고 이 공격의 불을 붙였다”고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옹호하는 공화당 동료 의원들을 행해 “트럼프는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당신의 불명예는 영원할 것”이라며 정통 보수파 의원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아버지 후광’ 입은 정통 보수파
그녀의 부친인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외교·국방 권한을 위임받고 이라크전을 주도, 부시 행정부의 핵심 외교·안보 정책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런 연유로 재직 기간 당시에 진정한 네오콘의 실세로 꼽혔다. 공화당의 거물 딕 체니는 부인의 고향인 와이오밍에 정착해서 6선 하원의원을 역임하기도 했으며 여생을 그곳에서 보내고 있다.
맏딸 리즈 체니 공화당 하원의원(와이오밍 광역구·3선)은 부친의 권유를 받아 2012년에 와이오밍에 자리를 잡고 2014년 공화당 상원 예비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당시에 아버지와는 달리 “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여동생인 메리 체니가 2012년에 동성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대파의 공세를 막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렇게 가족을 저버렸으나 그녀는 상원 경선에서 이기지 못했다. 하지만 2016년 11월에 연방 하원의원에 선출됐고 2019년에는 공화당내 권력서열 3위인 하원 공화당 협의회 의장을 겸하는 등 네오콘의 딸답게 강경 보수 노선을 표방하면서 출세가도를 달렸다. 그녀는 미국총기협회(NRA)가 의원의 성향과 표결결과를 평가한 등급에서 A등급을 자랑하고 있다. 총기보유를 찬성하는 강경보수파라는 얘기다. 또한 네이트 실버의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는 의원 개개인의 ‘표결 스탠스와 현직 대통령의 입장 일치율’을 조사하는데, 그 집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리즈 체니의 스탠스 일치율이 92.9%에 달했다.
미운 털이 박힌 네오콘의 딸
와이오밍은 1968년부터 줄곧 압도적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리즈 체니 의원의 정치적 미래도 창창할 것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그녀는 트럼프의 탄핵을 지지한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10인에 속할 뿐 아니라 의사당 점거폭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의 부위원장을 맡았다. 게다가 특위에서 활동 중인 공화당의 애덤 킨징어 하원의원(일리노이 제16구·6선)과 다르게 재출마를 선언했다. 그러자 트럼프와 그의 지지층은 체니를 ‘이름뿐인 공화당원(RINO)’으로 몰아가며 그녀의 이름을 살생부에 올렸다. 그녀의 4선 연임을 저지하겠다는 목표다.
그들은 이미 체니에게 보복을 한 바가 있다. 하원 공화당이 지난해 2월에 비밀투표를 실시, 찬성 145명에 반대 61명으로 그녀의 협의회 의장 유임을 결정했으나, 트럼프는 엘리스 스테파닉 하원의원(뉴욕 제21구·4선)을 내세워 재투표를 성사시켰다. 스테파닉은 2014년 30세에 하원의원에 선출됐고 평소엔 온건하면서도 소신 있는 모습을 보인 인물. 그녀 역시 공화당을 여성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면서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았다.
스테파닉 의원은 1차 탄핵 당시에 트럼프를 노골적으로 옹호했다. 의사당 점거폭동 당일에는 하원 연단에서 연설하면서 선거음모론을 설파했고 펜실베이니아 선거인단 집계에 반대했다. 이처럼 온건 이미지를 버리고 트럼프 충성파로 거듭났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에는 푸틴이 바이든의 허약한 면모를 간파했다며 트럼프의 친 푸틴 발언을 옹호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녀는 지난해 5월에 134명 하원의원의 지지를 받아서 하원 공화당 협의회의장에 선임되었다. 친 트럼프세력이 리즈 체니를 몰아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오늘의 적’이 된 체니의 옛 동지
공화당내 이같은 역학구도의 변화는 와이오밍 하원 예비선거의 판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원래 스테파닉 의원처럼 트럼프를 경계했던 해리엇 헤이그먼이 트럼프의 지지를 받으며 하원 경선 출마를 선언한 것. 과거 헤이그먼은 인종주의자이자 외국인혐오자인 트럼프가 대통령 본선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래서 2016년 전당대회 당시에 대의원이 트럼프와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텍사스·재선) 중에서 한 명을 찍게 하려고 시도하는 등 트럼프의 본선 진출을 저지하려 했던 여성 정치인이다. 그런데 헤이그먼은 트럼프를 ‘내 인생 최고의 대통령’이라고 추켜세우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그녀를 지원하면서 체니를 제거하려 한다.
리즈 체니의 고립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케빈 매카시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캘리포니아 제23구·8선)는 의사당 점거폭동을 합법적인 의사 표현으로 규정하면서 체니를 고립시켰다. 한국의 시도당 격인 와이오밍 공화당은 체니를 동료 당원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또 체니처럼 강경 보수파지만 2차 탄핵에 찬성한 현역 의원이 당내 경선에서 초라하게 패배하기도 했다. 공화당 톰 라이스 하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 제7구·5선)은 경선 당시에 득표율 25%선도 돌파하지 못했다. 트럼프와 입장 일치율이 94.0%(파이브서티에이트 조사)에 달하기도 했던 의원이었는데도 당내 위상이 추락했던 것. 체니 또한 라이스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체니는 강경 보수파이자 네오콘의 딸로 헌정 질서를 수호하려고 노력했지만 지지층의 신망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반대로 스테파닉은 온건파였으나 트럼프를 의도적으로 지지하며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 체니의 옛 동지였던 헤이그먼 또한 트럼프의 환심을 사면서 연방 의회 입성을 도모하고 있다. 트럼프가 지금도 공화당의 역학구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체니는 살아날까...올해 8월 와이오밍 경선
체니 의원은 현역이지만 언더독 후보로서 예비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그녀에게 돌파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마크 고든 와이오밍 주지사(공화당·초선)가 2018년 예비선거 당시에 3만8951표(33.0%)를 득표해 트럼프의 지지를 받은 경쟁 후보를 9109표(7.7%포인트) 차이로 꺾은 선례가 있다. 정확한 투표자 수가 공개되지 않았으나 와이오밍 주무부(Department of State)에 따르면 민주당 등록 유권자 1만 명 정도가 당시에 당적을 변경한 것이 주효했다. 그런 연유로 트럼프는 체니를 제거하기 위해서 정당 경선 교차투표(crossover voting) 금지법을 지지했지만 와이오밍 주의회가 그 법안을 가결하지 못했다.
그러자 체니는 지난 주에 우편물을 보내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포스팅을 올려 공화당 경선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민주당 등록 유권자에게 알렸다. 미국 유권자는 한국과 다르게 절차를 밟아서 유권자로 등록해야 한다. 와이오밍 유권자는 경선 2주 전까지 우편물을 발송하거나 투표 당일에 부재자 투표용지를 신청하면 당적을 바꿀 수 있다. 민주당 지지층이 체니의 강경 노선을 싫어하면서도 특위에 합류해서 트럼프를 비판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만큼, 그녀의 전략은 충분히 합리적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전체 유권자 대비 공화당 등록 유권자의 비중은 70%에 달한다. 때문에 체니는 ‘트럼프가 폭도의 우두머리임’을 밝혀서 온건 보수파와 무당층의 지지를 받으려는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 그녀는 지난 6월 “(트럼프가) 오벌 오피스(미 대통령 집무실) 근처 어디든 다시는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라고 공언하면서 비판강도를 높였다. 마크 메도우즈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보좌관이었던 캐시디 허친슨이 지난 6월28일에 1·6폭동진상규명 조사위 공개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내 의사당 점거폭동 전후의 일을 증언했다. 그러자 체니 의원은 캘리포니아에 소재한 레이건 도서관에서 연설하면서 “미국이 지금껏 한 번도 직면한 적이 없었던 국내 위협(트럼프)을 마주하고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발적인 트럼프의 인질이 되었다며 공화당 지도부 및 선출직 정치인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공청회가 이어지면서 공화당내 고립무원에서 벗어나려는 체니의 노력이 성공할지 지켜볼만 하다.

현재 공화당 내부는 민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전직 대통령이 1850년대에 노예제에 반대하면서 탄생한 당을 구렁텅이에 빠뜨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에게 굴하지 않는 공화당 소속 정치인도 있으며, 특히 강경 보수파이자 네오콘의 딸인 리즈 체니가 선봉장에 서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언론과 정치 고관여층은 공화당의 와이오밍 하원 경선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과연 헌법을 수호하자는 목소리마저 패퇴할 것인가? 미국의 민주주의 또한 역사의 변곡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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