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흔들리는 30년집권의 꿈②
[신은철의 터키 정치 스틸 컷] 튀르키예 국민들, 에르도안 독재에 반발 내년 6월 대통령 선거에서 실각 가능성 유럽정세에도 큰 변수로 등장할 수도
튀르키예 국내 정치 구조는
튀르키예는 세계 18위 인구대국으로, 군부가 1997년 쿠데타를 일으켜 헌정 이래 최초의 이슬람주의 정부를 전복시킨 바 있는 내각제 국가였다. 그런데 집권 정의개발당(AKP) 당규가 의원직을 3연임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총리 4연임에 도전하지 못하게 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이 2014년 대선에 출마, 승리하면서 대통령이 됐다. 자신이 창당멤버였던 집권당의 당규를 피해 대통령으로 등극한 것이다. 나아가 2016년 군부의 쿠데타 미수사건을 진압한 에르도안은 대통령 임기 5년 중임제와 총리직 폐지를 골자로 하는 개헌안까지 통과시켰다. 특히 2018년 대선에서 승리, 30년 장기집권의 발판을 다졌다.
여기에 대통령이 부통령(신설)과 장관을 의회 승인 없이 직접 임명하고, 헌법재판관 15명 중에서 12명을 지명할 수 있고, 법률에 준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하거나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에르도안은 사실상 ‘제왕적 대통령’이 됐다.
우파일까 좌파일까...애매한 정치 성향
에르도안의 정치성향은 분명치 않다. 지난 2003년 총리시절 노동법을 개정해서 주 45시간 노동제를 도입하고 연장근무를 연 270시간 이내로 제한했다. 인종, 성별, 종교, 소속 정당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기도 했다. 언뜻 보면 그가 좌파로 보이지만 우파에 더 가깝다.
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이 세속주의(케말주의)를 계승하면서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 반해 에르도안이 주도하고 있는 이슬람주의 정파인 정의개발당은 우파로 분류해도 무방하다. 에르도안은 2003년 3월에 창당후 총리에 취임한 뒤 “강경한 이슬람주의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했고 서유럽식 민주주의와 번영을 약속했다. 중도 우파 성향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18년 2월에 6세 소녀에게 순교를 강요하기도 했고, 이슬람 율법을 언급하면서 금융이자를 죄악시 했다. 또 극우 국수주의 성향인 민족주의행동당(MHP)과 일명 ‘인민동맹’을 결성하는 등 지금은 우파 또는 강경 우파에 가까운 인물이 됐다.
강력한 라이벌의 출현.. 불확실한 재집권
외교에서 능수능란한 움직임을 보이는 에르도안 대통령은 그러나 국내에서는 위험한 실험을 벌이고 있다.
이 나라의 인구는 8556만명을 초과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1584만 명을 웃도는 인구가 이스탄불에 거주하고 있다. 튀르키예 수도인 앙카라도 인구 570만명을 초과하는 대도시다. 게다가 에르도안으로부터 탄압을 받고 있는 쿠르드족 1600만 명 정도가 튀르키예 남동부와 이스탄불에 거주하고 있다.
때문에 에르도안은 이스탄불과 앙카라를 장악하면서 승승장구해왔다. 3만 명이 공화정 초기에 새로운 수도 앙카라에 거주하고 있었으나, 이슬람교도인 아나톨리아 반도 출신 농민들이 정착하면서 도시의 인구를 늘렸다. 이스탄불도 마찬가지로 아나톨리아 농민이 정착, 이스탄불 현지 출신이 소수파로 전락했다. 즉 우파 유권자가 주요 대도시에 정착했기 때문에 여촌야도 현상이 튀르키예에서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런 구도에서 우파는 앙카라와 이스탄불 시장직을 25년 동안 독점했다. 에르도안은 2018년 대선 당시 이스탄불에서 50%를 득표해 무하렘 인제 공화인민당 후보를 13.1%p 차이로 앞섰다. 그런 연유로 에르도안은 “이스탄불에서 이기는 자, 튀르키예에서도 승리한다”라는 격언을 남겼을 정도로 이스탄불을 매우 중시해왔다.
그런데 이스탄불과 앙카라가 지난 2019년 지방선거에서 에르도안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겼다. 만수르 야바스가 야당인 공화인민당 소속으로 앙카라 시장 선거에 재출마해서 메흐멧 외즈하세키 집권 정의개발당 후보를 꺾었다. 야바스는 민족주의행동당 출신이며 튀르키예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인정받아 상을 받은 바 있는 인물이다. 즉 민족주의 성향 이슬람교도를 결집시킬 정치인이다.
심지어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은 취임 후 17일 만에 당선을 박탈당하고 재선거를 치렀지만 정의개발당 소속 비날리 이을드름 전 총리를 9.22%P(806,415표) 차이로 대파했다. 이마모을루가 재선거에서도 승리한 덕분에 공화인민당은 3대 대도시(이스탄불·앙카라·이즈미르) 시장직을 휩쓸었다. 이즈미르는 에게해 연안(튀르키예 서부)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며 이스탄불 및 앙카라와 다르게 공화인민당을 꾸준하게 지지한다.
이밖에도 메랄 악셰네르 전 내무장관이 이끄는 ‘좋은 당(İyi)’이 세속보수주의와 친유럽주의를 내걸며 중도 우파를 결집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서, 에르도안이 모든 우파 층의 지지를 받으리라 장담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여촌야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다 중도 우파와 쿠르드족이 범야권 후보를 대선 결선 당시에 지지할 경우 에르도안이 집권 연장에 실패할 수 있다.
이마모을루와 야마스가 경쟁자 될듯
이가운데 특히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은 ‘에르도안의 재선을 저지할 인재’로 꼽힌다. 에르도안처럼 흑해 연안의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난 이마모을루의 이름은 ‘이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런 연유로 쿠란 구절을 암송하거나 히잡을 착용한 모친과 함께 유세를 벌이는 등 공화인민당 소속 정치인으로는 파격적 행보를 보인다. 젊은 시절에 세미프로팀에서 활약했던 에르도안처럼 축구를 좋아하기도 한다.
이마모을루가 ‘에르도안의 재선을 저지할 인재’로 꼽히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올해 5월 에르도안의 고향이며 튀르키예 북동부 흑해 연안에 위치한 리제를 방문했을 때, 청중들은 “대선에 출마하세요. 리제가 당신을 지지합니다”라고 외치며 이마모을루를 뜨겁게 환영했다. 야바스 또한 에르도안을 여론조사상 두 자릿수 차이로 앞선다.

에르도안의 독재 본성...무너진 경제 신화
에르도안은 독재 권력을 휘두르면서 30년 집권 플랜을 스스로 망치고 있다. 그는 지난해에 헌법재판소에 쿠르드계이며 좌파 성향인 인민민주당(HDP) 해산을 청구했고 인민민주당 소속 시장 65명중에서 59명을 2020년 10월까지 구금하거나 사임시켰다. 한해 앞서 치러진 지방선거였는데, 당선자를 사임 압박시킨 것을 보면 에르도안이 어느 정도로 막 나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마모을루 역시 에르도안의 타깃이다.
하지만 튀르키예 유권자들은 대체로 군부를 혐오하면서 민주주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편이다. 어떤 유권자는 에르진잔(튀르키예 동부)에 머물고 있다가 1000km 이상을 달려 이스탄불로 가서 투표할 정도다. 많은 이스탄불 시민이 2019년 시장 재선거 당시에 자동차, 비행기, 버스 등을 타고 돌아갔다. 이마모을루는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1차 선거에서 0.16%P였던 격차를 9.22%P까지 벌릴 수 있었다.
특히 튀르키예 이슬람의 성지인 파티흐 구가 이마모을루를 찍었다. 파티흐(Fâtih)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메흐메드 2세의 이명이었으며, 그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모스크의 명칭 또한 파티흐 모스크다. 에르도안이 독재 권력을 강화하면서 자신의 기치(민주주의)를 내던지자, 이스탄불 시민들은 이마모을루를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한편, 에르도안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드러냈다.
경제문제도 에르도안의 재집권에 변수다. 지난 2003년부터 총리로 재직하는 동안 실업률을 확실히 내리진 못했지만, 수출을 10년 사이에 10배 가까이 늘리고 1인당 실질 GDP를 증가시키는 등 경제를 성장시켰다는 평가가 무색하다. 최근 식량 인플레이션이 악화되는 등 튀르키예의 경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식재료인 양파 가격이 무려 51% 상승했으며,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밀 수입이 격감했다. 튀르키예가 세계 3대 밀 수입국에 속하기에 식량 인플레이션 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다급해진 에르도안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설득해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을 재개시키면서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이런 경제위기를 정치 이슈로 활용하면서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2019년 지방선거 당시 ‘식량 테러’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위기의 원인을 반대파에게 전가하기도 했다. 물가가 급등했는데도 ‘이자= 죄악’이라는 이슬람 율법의 논리로 중앙은행장을 교체하고 금리 인하를 강행하는 무리수를 뒀다.
내년 6월 튀르키예 대선은 이마모을루가 출마하지 않더라도 야바스 앙카라 시장이 입후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악셰네르가 공화인민당 주도 야권 연합에 합류한데다, 정의개발당 창당 멤버인 알리 바바잔 전 경제부총리와 아흐메트 다우토을루 전 총리가 정의개발당을 탈당하고 신당을 창당한 뒤에 공화인민당 주도 연합에 합류했다. 즉 좌파 성향 세속주의 정파와 세속보수주의 세력이 에르도안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기 위해서 똘똘 뭉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마모을루가 출마하면 쿠르드족 또한 범야권 후보를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쿠르드족 2백만 명 정도가 이스탄불에 거주하고 있는데, 그들 중에서 128만 명이 이마모을루를 2019년 시장 재선거 당시에 지지한 바 있다.
공화인민당 주도 연합은 이미 친유럽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에르도안이 재집권에 실패한다면 유럽의 정세에도 큰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전쟁을 벌이고 있는 푸틴 입장에서도 악재가 될 수 있어 계산이 복잡해질 것이다. 향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구도에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집권 여부가 큰 변수로 부상할 날이 올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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