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을 지운다’...연임 너머를 꿈꾸는 바이든

[신은철의 미국정치 ‘스틸 것’] 바이든 인프라법 관철에 혼신을 다한 이유는 레이건때 뺏긴 백인노동자 지지...”다시 민주당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프라 법의 주요 내용. 사진=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인프라 법의 주요 내용. 사진=AP/연합뉴스

“블루칼라 청사진” 인프라법 통과

현재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상원에서 각각 50석 씩을 점유하고 있는데,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캐스팅 보트 권한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다수당으로서 안건을 독자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구도는 2022년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특히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위스콘신에서 상원 선거가 실시되기 때문에 쇠락한 공업지대를 뜻하는 ‘러스트 벨트’의 선거 결과가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미 러스트 벨트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예를 들어 그는 지난 1월 20일에 취임한 후에 7월 28일까지 6차례에 걸쳐 펜실베이니아를 방문했다. 지난 2월에는 미국노동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와 같은 주요 노동조합의 지도부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1.9조 달러 코로나 부양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바이든은 취임 99일차였던 지난 4월 28일 양원 합동회의 연설을 하면서 인프라법을 ‘블루칼라 청사진(blue-collar blueprint)’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1.2조 달러(1,424조원) 인프라법이 통과된 후에도 거듭해서 “넉넉한 임금을 보장할 블루칼라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의 발언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650억 달러 규모 광대역망(broadband) 개설과 75억 달러가 배정된 전기차 충전소 50만 개소 설치 사업등 연방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계약업체와 노동자들에게, 미국 노동부의 지역별 기준에 부합하는 임금을 보장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조의 역할이 중요한데, 2020년 기준으로 노조에 가입한 미국 민간부문 노동자 710만 명 중 20.6%가 공익사업(utility) 소속이다. 17%와 14.3%는 각각 교통·물류와 통신전자 부문에 종사하고 있다.

다른 노조 역시 1.2조 달러규모의 인프라법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85만 명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미국 철강노조(USW)는 지난 8월에 의회에게 자신들과 같은 노조가 공급을 책임질 것이니 조속히 1.2조 달러 인프라법을 통과시키라는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실제 미국 정계에서 손꼽히는 보호무역론자인 셰러드 브라운 민주당 상원의원(오하이오/3선)은 “미국산 강철과 철강을 활용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n) 조항이 포함되었다”며 1.2조 달러 인프라법의 통과를 반겼다.

공화당 내부 변화를 활용하는 바이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역시 1.2조달러의 인프라법 가결에 큰 역할을 했다.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 반대하는 공화당 주류와 다르게, 트럼프는 2016년 미국 대선 당시에 8천억달러에서 1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 확충안을 발표했었다. 대통령 시절에도 7차례에 걸쳐 ‘인프라 주간(infrastructure week)’을 선포했듯이 인프라에 관심이 많았다.

이런 트럼프에게 이끌린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공화당의 관점을 바꾸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서, 조시 홀리 상원의원(미주리/초선)은 총수입이 10억 달러 이상인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까지 인상할 법안을 지난 2월에 상정하기도 했다. 현재 최고령 상원의원(88세)이며 지난 9월에 8선 도전을 선언한 척 그래슬리 상원의원(아이오와)은 에이미 클로버샤 민주당 상원의원(미네소타/3선)과 함께 ‘테크 기업 규제법’을 발의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공화당의 역학 구도 변화를 노련하게 활용해 1.2조 달러 인프라법을 성공적으로 통과시켰다. 법안이 가결되자 “마침내 인프라 주간이 왔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법안 통과를 기념했다. 하원의 인프라법 찬성파 13인을 ‘사회주의 정책을 지지한 배신자’로 매도한 트럼프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했으리라 짐작된다.

2024년 재선에 나서겠다는 바이든

바이든은 민주당 예비 대통령 후보였던 2019년 12월에 건강검진을 받고 기록을 공개했는데, 대통령에 당선되면 매년 건강을 점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최근인 지난 11월 22일에 월터 리드 국립 군의료센터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이 그날 ‘에어포스 원’에서 기자들에게 전한 바에 따르면, 바이든은 2024년 미국 대선을 준비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2일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건강 상태가 좋으면 차기 미국 대선에 출마할 생각이며, 트럼프와의 재대결을 원한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바이든은 ‘재선 대통령’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1.2조 달러 인프라법을 추진한 목적은 뉴딜의 노동 정책을 계승·발전시켜 백인 노동자의 지지를 되찾겠다는 것이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자 노조 설립을 합법화했다. 최저임금과 사회보장연금도 루스벨트가 남긴 유산이다.

트럼프의 당선을 계기로 화제를 모은 백인 노동자의 보수화는 오랜 시간 동안 심각해졌다. 예를 들어 디트로이트 교외 지역인 매컴 카운티의 자동차 노조(UAW) 노동자들은 1960년대 후반에 인종폭동의 참화를 피해 디트로이트를 떠났다. 매컴 카운티의 도시 이스트포인트(Eastpointe)는 흑인 인구가 다수인 디트로이트와의 연계를 끊기 위해 1990년대 초반에 이스트 디트로이트였던 명칭을 변경한 곳이다. 그만큼 이 지역의 인종갈등은 백인 노동자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다. 때문에 민권 정책을 계속해서 지지하고 추진하는 민주당에 대해서 더 이상 자신들의 편이 아니라는 정서가 확산됐다. 백인 노동자들이 중산층이자 기독교도였기 때문에, 낙태 합법화에 대한 반대 여론도 확대됐다.

“레이건이 뺏어간 백인 노동자를 되찾겠다”

이런 정서를 노련하게 활용한 정치인이 이미 있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62년에 공화당에 입당하기 전까지 민주당 소속이었다. 그는 “제가 민주당을 떠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저를 등졌습니다”라고 강조했다. 1980년 전당대회 연설 말미에 직접 기도를 하는 등 독실한 기독교도라는 이미지를 내세우려 노력했다. 레이건은 ‘게으른 흑인’이라는 반감을 퍼뜨리기 위해 성명 80개, 주소 30곳, 전화번호 15개를 사용해 푸드 스탬프, 사회보장연금, 참전용사 지원금 등을 긁어모으고 그 돈으로 다이아몬드로 치장하고 캐딜락을 몰고 다니는 이른바 ‘복지여왕’(welfare queen)’의 존재를 언급하기도 했다. 흑인이 ‘범죄의 대명사’라는 사회적 인식을 교묘히 활용하면서 범죄 척결을 약속하기도 했다.

1981년 캐나다에서 마가렛 대처 영국총리와 자리를 함께 한 도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오른쪽). 사진=AP/연합뉴스 자료사진
1981년 캐나다에서 마가렛 대처 영국총리와 자리를 함께 한 도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오른쪽). 사진=AP/연합뉴스 자료사진

누적된 백인 노동자의 불만에 편승한 레이건의 교묘한 선거전략은 1980년대에 미국 선거에 새로운 현상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매컴 카운티의 자동차 노동자들이 1980년과 1984년 미국 대선에서 레이건을 지지한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민주당 지지층이지만 사회·문화 이슈에 보수적인 백인 노동자’를 일컫는 ‘레이건 데모크랫(Reagan Democrats)’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했고, 이 표현은 지금까지도 미국 대선의 대표적인 키워드로 꼽힌다.

백인 노동자의 보수화는 미국 선거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했다. 1993년 기준 백인 노동자 인구가 많은 연방 하원 지역구 71곳 중 36곳의 현역이 민주당 소속이었다. 하지만 20년 후에는 공화당이 59 대 11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21세기에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를 통틀어 백인 노동자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지율이 50% 미만이었던 사례는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2008년(45%) 한 번 뿐일 정도다.

바이든은 해리 S. 트루먼 전 대통령 이후 가장 노조 친화적인 미국 대통령이 돼 백인 노동자의 지지를 되찾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태다. 트루먼은 1946년에 석탄 광부들의 연금과 건강보험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고 1952년 철강 파업 당시에도 철강노조를 지지하는 등 노조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바이든에게는 팬데믹이 그 비전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9월 기준 전체 미국 노동자의 약 3%에 해당하는 440만명 정도의 노동자가 더 나은 근로환경과 임금을 요구하며 퇴직했다. 켈로그 노동자 1400명은 지난 10월 5일부터 파업에 돌입했으며, 임시노동자 처우 개선과 전반적인 임금 인상을 쟁취해냈다. 파업 당시 바이든은 파업 노동자 1400명을 영구 퇴출시키겠다는 켈로그의 방침을 직접 비판했다. 아마존 물류 노동자를 ‘앨라배마의 노동자’로 지칭하면서 그들의 노조 결성 시도를 지지한 적도 있다.

요컨대 1.2조 달러 인프라법에는 백인 노동자의 보수화가 한창 진행되던 1970년대에 워싱턴 정가에 입성했던 바이든의 원대한 비전과 목표가 담겨 있다. 바이든이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백인 노동자의 보수화를 멈출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고, 그의 향후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글쓴이

신은철 칼럼니스트

신은철 칼럼니스트. 대학 시절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미국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중간선거가 실시된 2018년부터 블로그에 미국 정치글을 연재하고 있다. 프랑스와 같은 주요 유럽 국가들의 정치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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