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UN 동시 가입 30주년…너무나 아쉬웠던 순간

[고수석의 통일 수첩] 문대통령 UN연설 중요한 이유도 여기 있어

1991년 9월17일 유엔본부에서 안보리가 끝나 남북한 유엔가입이 확정된 뒤 노창희 대사(오른쪽)가 북한 대표부 박길연 대사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1991년 9월17일 유엔본부에서 안보리가 끝나 남북한 유엔가입이 확정된 뒤 노창희 대사(오른쪽)가 북한 대표부 박길연 대사에게 축하인사를 건네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고수석 북한학 박사] 오는 9월 18일은 남북한 UN 동시 가입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역사적인 날인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남북한 모두가 특별히 기념하지 않는다. 1991년 UN 동시 가입 이후 남북한은 순풍을 탔다. 그해 12월 13일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12월 31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 화려한 성과를 거두었다. 마치 독일처럼 통일이 손에 잡히는 듯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할까? 1992년 제1차 북핵 위기가 터지면서 그 빛이 바래졌다. 돌이켜보면 남북한 UN 동시 가입에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까지는 신(神)이 준 기회였다. 하지만 남북한 모두 아쉽게도 기회를 놓쳤다.

남북한 UN 동시 가입의 의미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그동안 치열하게 싸웠던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가 어느 쪽인가 하는 소모적인 논쟁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됐다. 둘째, 유엔 회원국이 됨에 따라 국제사회의 더 많은 관심 속에서 평화공존을 바탕으로 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유엔 가입은 남북한이 유엔의 기본 목적인 평화공존을 존중하면서 상대방을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 그 영향으로 남북기본합의서 제1장 제1조에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로 명시했다.

UN 동시 가입은 당시 냉전 해체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서독과 동독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고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은 차례로 붕괴됐다. 이에 북한은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반면 남한은 88올림픽과 북방 외교의 성과로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높여갔다. 그 여세를 몰아 노태우 정부는 1990년 9월 소련과 수교했고 1991년 1월 중국과 무역대표부를 교환했다. 북한은 ‘하나의 조선’ 정책을 고집하다가 체제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절박한 심정으로 남한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렸던 것이다.

UN 동시 가입은 신이 준 기회였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 UN동시가입+남북기본합의서 체결+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등 3종 세트에 샴페인을 서둘러 터뜨렸다. 남북한의 성과에 도취돼 잠시 ‘큰 것’을 잊고 있었다. 바로 미국이었다. 당시 독일에 코를 박고 있던 미국을 한반도로 옮기지 못했다.

UN 동시 가입 이후 남북관계 순풍
1992년 북핵 위기로 통일의 꿈 좌절
샴페인 보다 미국을 더 설득 했어야
이번 유엔 총회가 문 대통령에게 마지막
통일이 국제사회에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시길

남북한 교차승인, 즉 남북한의 어느 한쪽만 승인하던 나라들이 다른 한쪽도 정식으로 승인하는 일. 쉽게 말해 소련과 중국이 한국을,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각각 승인해 긴장 완화를 꾀하는 것이다. 한국은 소련과 중국과 수교를 맺었지만 북한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

북한은 1992년 1월 김용순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를 워싱턴에 보내 아놀드 캔터 미국 국무부 차관을 만나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북미 고위급 회담이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에 앞서 1990년 9월 일본 정치계 거물인 가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가 평양에서 김일성과 회담을 가졌지만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부족했을까. 신이 기회를 주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독일의 사례에서 배워보자.

1990년 7월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독일 통일을 선포하기 3개월 전이다. 핵심의제는 고르바초프를 지원하는 문제였다. 고르바초프는 뻬레스뜨로이카(개혁)에 외부의 재정적·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조지 부시 대통령을 설득해 G7이 소련의 개혁 운동을 지원하게 만들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100점이었다.

콜 총리는 통독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더 한다. 콜 총리는 제임스 베이커 미국 국무장관의 부인으로부터 회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베이커의 어머니가 산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6개국 수뇌들이 모두 서명한 편지 한 통을 베이커 장관의 어머니에게 보내자고 제안했다. 모두 찬성했다. 콜 총리는 편지를 받고 감동한 베이커 장관의 어머니가 편지를 액자에 넣어 고이 간직한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베이커 장관이 콜 총리에게 가졌을 감사한 마음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신이 준 통일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하는 콜 총리의 외교는 그런 ‘섬세한 센스’로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당시 독일의 주변국들은 통독을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통독이 가져 올 후과가 두려웠다. 이런 주변국들의 반대를 꺾어줄 나라는 미국이었다. 그래서 콜 총리와 외교담당 관리들을 미국을 제집 다니듯 드나들었다.

1991년 당시 한국 외교의 일선에서 뛰었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 후회하는 대목이다. 북한을 설득하는데 못지않게 미국을 한반도로 끌어들였어야 했다. 남북관계가 순풍을 타고 독일처럼 통일이 될 것으로 낙관했던 것이 신이 준 기회를 놓쳤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제76차 유엔 총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올 초 신년사에서 남북한 UN 동시 가입 30주년과 관련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이 국제사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남북은 손잡고 증명해야 한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국제사회를 설득하는데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서독 연방공화국 대통령이 통일 독일을 선포하던 날(1990년 10월 3일) 이렇게 연설했다. “독일 통일은 독일 민족의 분단의 종말을 의미할 뿐 아니라 유럽통합의 한 부분이다.” 통일을 유럽통합의 틀에 편입시켜 미국의 지지를 확보하고 프랑스와 영국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의 거대한 통일독일의 등장에 대한 우려와 경계심을 잠재운 명연설이었다.

이번 유엔 총회는 문 대통령에게 마지막이다. 남북한 UN 동시 가입의 의미를 되새기고 남북통일이 미국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명연설을 기대한다.

글쓴이

고수석 북한학 박사

고수석 박사는 중앙일보 기자로 20여년 동안 통일이 한국의 성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통일․북한 분야를 취재했으며 고려대에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중앙일보에 ‘고수석의 대동강 생생 토크’, 중앙SUNDAY에 ‘평양탐구생활’을 기획연재했다. 저서로는『북한을 움직인 30인』, 『김정일과 IT혁명』등이 있다. 지금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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