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종전선언, ‘미국 설득’에 달렸다
[고수석의 통일수첩]
[고수석 북한학 박사] 문재인 대통령이 UN 총회에서 던진 ‘종전선언’이 이번에는 실현 가능할까?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9월 24일, 25일 담화를 보면 약간의 희망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김 부부장은 24일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에 대해 “흥미있는 제안이고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김 부부장은 “심각한 대립관계, 적대관계를 그대로 둔 채 서로 애써 웃음이나 지으며 종전선언문이나 낭독하고 사진을 찍는 것은 누구에게는 간절할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가 없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그러다가 하루만에 종전선언 추진에 전향적 태도를 보였다. 김 부부장은 25일 담화에서 “공정성과 서로에 대한 존중의 자세가 유지될 때 종전선언도 이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조건이 있다. 공정성을 잃은 이중기준과 대조선(북한) 적대시 정책, 온갖 편견과 신뢰를 파괴하는 적대적 언동과 같은 모든 불씨들을 제거하기 위한 한국의 실천을 제시했다.
김 부부장은 이중기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도 언급했다. 지난 9월 15일 문 대통령이 우리 군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참관하면서 언급한 ‘도발’이란 용어다. 김 부부장은 “우리(북한)의 자위권 차원의 행동은 모두 위협적인 ‘도발’로 매도되고 자기들의 군비증강활동은 ‘대북 억제력 확보’로 미화하는 미국, 남조선식 대조선 이중기준은 비논리적이고 유치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9월 17일 칼럼에서 언급했지만 문 대통령의 ‘도발’ 언급은 할 말을 한 것이다. 그런 입장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1999년 6월 제1차 연평해전 이후 1년 뒤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듯이 이번에도 비슷한 결과를 낳기를 기대해 본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에 김여정이 호응 남북정상회담 언급…조건으로 대북 적대정책 철회 요구 北, 종전선언 원하지만 미국 반대 알아 한국 외교 총동원해 미국 설득해야
다시 종전선언으로 돌아가면 북한은 오매불망 종전선언을 기대했다. 북한은 미국의 군사 공격에 대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두려워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미국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참수할 수 있다는 공포심을 가지고 있다. 과거 김일성-김정일도 미국이 24시간 자신들을 감시하고 언제든지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은 결사옹위를 강조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도 미국에 대한 두려움은 마찬가지다.
따라서 종전선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 주민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 ‘선물’은 경제건설에 전념할 수 있는 시작이 된다. 고위 탈북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북한은 경제지원보다 무역을 할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줘도 잘 살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한다.
종전선언이 꿈같이 이뤄지면 김 위원장은 할아버지 김일성, 아버지 김정일이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일을 해 내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기대했다. 하지만 빈손으로 귀국했다. 높고 높은 ‘미국의 벽’을 느낀 것이다.
문 대통령이 다시 종전선언을 꺼내면서 김 위원장은 다시 설레는 것 같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설마’하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과연 문 대통령이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의회를 설득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다. 김 부부장의 26일 담화에서도 그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등 의례적이고 상투적인 조건을 달았고 자신의 개인 견해라는 것도 강조했다.
종전선언의 관건은 미국이다. ‘비핵화’를 제쳐놓고 미국이 과연 종전선언을 할 것인가다. 종전선언의 ‘선언’은 국가나 단체가 자기의 방침이나 주장, 의견 등을 외부에 정식으로 공표하는 것이다. 비록 법적 구속력은 갖지 못하지만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약속을 지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추진하려고 했다. 하지만 미국 의회의 싸늘한 반응에 중도에 그만두었다. 미국 의회는 ‘비핵화’가 여전히 상존할 뿐만 아니라 종전선언에 따라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정치적 선언이더라도 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9월 22일 브리핑에서 “종전선언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열려 있다”고 밝혔다. 그 행간으로 보면 미국은 종전선언을 하기에 앞서 먼저 대화부터 하자는 뜻이다. 올해 초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까지 북미 대화가 없다. 미국은 종전선언을 위한 대화 과정에서 미국 의회를 설득할 만한 비핵화의 진전을 북한에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도 미국의 입장이 그렇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다. 회담에 앞서 확실한 약속을 받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으려고 한다. ‘하노이 악몽’을 재현하기 싫어서다. 김 부부장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반응한 것은 딱 한가지 이유에서다. 문 대통령에게 미국을 설득해 달라는 뜻이다. 김 부부장은 미국의 사정을 알면서도 실날 같은 희망을 가져본 것 같다. 남북정상회담을 언급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만큼 절실하다는 방증이다.
앞선 칼럼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남북관계는 결국 미국으로 귀결된다. 싫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북한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문 대통령의 설득력이 종전선언의 운명을 좌우하게 됐다.
한국이 독일 통일과정에서 가장 배워야 할 점은 ‘동방정책’에 앞서 ‘서방정책’이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북한을 움직이려면 미국을 먼저 움직여야 한다. 한국의 외교력을 총동원해 미국을 설득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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