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번째 부채한도 표결...바이든 안밀린다

[신은철의 미국정치 ‘스틸컷’] 공화당의 딜레마 ‘백인노동자 지지표’ 바이든, 인프라법 이어 ‘공화 약점’ 노릴 듯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을 방지할 법안을 30일(현지시간) 승인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을 방지할 법안을 30일(현지시간) 승인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신은철 칼럼니스트] 1981년 1월 20일 미국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공화당)은 취임사에서 “(미국)정부는 당면한 위기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입니다”라고 일갈했다. 공화당은 이날부터 지금까지 ‘비(非)국방부문 예산 삭감, 세금 감면, 친기업’을 골자로 하는 ‘작은 정부’를 집권비전으로 표방하고 있다.

곤혹스럽긴 민주당·공화당 똑같아

그러나 백인 노동계층을 지지층으로 끌어들이고, 또 코로나 대응에 엉터리로 일관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인해 공화당은 커다란 딜레마를 마주하게 됐다. 상·하원의원 전원이 코로나 부양책에 반대한 것처럼 재정보수주의를 고수하되, 백인 노동자들의 표를 얻고자 인프라 확충 같은 재정확장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지아 상원의원 선거(2021년)에서 승리해 상원까지 탈환한 민주당도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상원에서 정확히 50석을 확보하고 있는 그들은 단 한 명이라도 이탈하면 세금 혹은 예산 관련 법안을 단독으로 가결할 수 없다.

실제로 민주당에서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조 맨친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3선)은 본인이 원하는 삭감 액수를 밝히지 않았지만, 3조5천억달러 규모의 재정안을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상원 민주당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왼쪽)이 2018년 버렛 캐버노 대법원 지명자를 만나고 있는 모습. 사진=조 맨친 의원 트위터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왼쪽)이 2018년 버렛 캐버노 대법원 지명자를 만나고 있는 모습. 사진=조 맨친 의원 트위터

상황은 민주당이 조금 더 곤란하다. 조속히 예산을 편성해 연방정부 폐쇄(셧다운)를 방지하는 동시에,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가 닥쳐오지 않도록 부채 한도를 높여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예산안이 제때 통과되지 않을 경우, 정부가 헌법 54조3항에 따라 준예산을 집행할 수 있다. 국회 심사가 기한 내에 마무리되지 않을 때에는 정부원안이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의회 중심의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상·하 양원이 법안을 통과시켜 조세 정책을 수립하고, 심의·확정한 예산을 편성하며, 부채 한도를 설정해야만 연방정부가 기능할 수 있다.

예컨대 의회가 시한까지 예산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드라마 ‘웨스트 윙’이 묘사하듯이 연방정부는 폐쇄되고, 군인이나 경찰과 같은 필수인력을 제외한 공무원들은 강제 무급휴가를 떠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연방정부 셧다운이다.

연방정부 셧다운에 대한 우려는 빠르게 해소됐다. 지난 9월 30일(현지시간) 상원 65표 찬성, 하원 찬성 254표로 임시예산안을 통과시켰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했다. 시한이 12월 3일인 이 임시예산안은 아프간 난민의 미국 정착을 지원할 63억 달러를 포함한다.

부채한도 증액도 공화당 약점 이용할듯

관건은 법정 상한선인 부채 한도다. 세입으로 모든 예산을 충당할 수 없어서, 재무부는 부채 한도에 도달하기 전까지 채권을 매매해 부족한 자금을 확보한다. 단, 재무부는 한도를 넘어서는 자금을 자의적으로 마련할 수 없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의회가 늦어도 10월 18일까지 부채 한도를 높여주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만일 한도가 늘어나지 못한다면 재무부는 퇴직한 노동자 혹은 재향군인과 같은 자국 시민을 지원할 수 없다. 미국채 소유주에게 이자도 지불하지 못한다.

공화당은 지난 2011년 여름, 2013년 가을과 달리 요구 사항을 내놓지 않았다. 또 부채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중간선거 때 민주당을 비판하겠다는 정치적인 의도에서 한도 증액을 저지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19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재정적자를 발생시킬 인프라법을 지지했다.

역사적으로 의회는 2차 대전 이후 약 100차례의 부채 한도 표결을 실시했고, 표결 때마다 초당적인 지지로 한도를 늘렸다. 즉 양당은 부채 한도를 늘리는데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려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민주당은 초당적인 지지를 호소하며 공화당을 압박 중이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인프라법처럼 공화당에 압력을 넣을 수 있는 사안을 간파하고, 자신의 판단을 살려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공화당에 우호적인 경제계 단체도 한도 증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민주당도 험난한 싸움을 앞두고 있다. 연방정부 셧다운과 디폴트를 방지하는 동시에 조 맨친 상원의원을 설득해 3조5천억달러 규모의 재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켜야 한다. 또한 코로나 델타 변이로 인해 경기 회복세가 둔화된 지금은 공화당과 극한 대립을 펼치기에 좋지 않은 시기라는 점도 신경쓰인다.

그러나 민주당은 부채 한도를 함께 높이겠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믿는 구석도 있다. 부채 한도를 늘려야 공화당이 양원 다수당이었던 2017년 12월에 통과시킨 1조 5천억달러 규모의 감세안이 계속 실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간선거 멀어...민주당 단독처리, 불리하지 않아

설사 민주당이 공화당의 의도대로 부채 한도를 단독으로 늘린다 해도, 한도 증액의 여파가 민주당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확언할 수는 없다. 공화당이 41석을 빼앗긴 2018년을 비롯해 중간선거가 집권당에게 불리한 양상을 보였지만, 차기 중간 선거는 내년 11월에 실시된다. 그 사이에 다른 이슈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텍사스 공화당이 통과시킨 낙태법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라 있다. 민주당은 새로운 투표권법을 내놓았다. 현금 100달러의 백신 인센티브, 펜타곤을 포함한 공무원들의 백신 의무 접종 등의 코로나 대처 방안에 따른 결과가 여론에 미칠 영향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네이트 실버의 ‘FiveThirtyEight’에 의하면 바이든의 취임 254일차인 9월30일 현재 지지율은 44.9%로 38.7%의 트럼프보다 높다. 보수적인 기관의 조사 결과도 포함되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지지율이 낮다고 볼 수 없다.

바이든이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지지율은 얼마든지 요동칠 수 있으며, 차기 중간선거의 향방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 공화 양당이 부채한도 증액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있는 이유도 정치, 바로 중간선거에 있다.

글쓴이

신은철 칼럼니스트

신은철 칼럼니스트. 대학 시절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지만 미국 정치에 관심이 많았고, 중간선거가 실시된 2018년부터 블로그에 미국 정치글을 연재하고 있다. 프랑스와 같은 주요 유럽 국가들의 정치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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