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총리 북일정상회담 제안, 주목해야 할 이유

[고수석의 통일수첩]

문재인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사진= 교도통신/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사진= 교도통신/연합뉴스

[고수석 북한학 교수] 일본 제100대 총리로 선출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가 10월 8일 일본 국회에서 첫 연설을 했다. 그의 연설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2015년 일본 외무상으로 한일위안부 합의에 서명한 사람이라서다. 그래서 새로운 한일관계에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6900자 연설문 가운데 한국은 딱 두 문장만 언급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중요한 이웃 나라”라면서“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해서도 일관된 입장에 토대를 두고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하게 요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반면 북일 관계는 달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는 만남과 납치 문제 및 핵·미사일 문제의 포괄적 해결,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 청산, 북일 수교 등을 언급했다.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의 정책을 계승한 것이다.

일본은 왜 북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일까?

필자가 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딱 한가지 점에서다. 북한이 비핵화를 실현하고 제재가 풀리면 누가 경제 지원을 할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면 북한이 원하는 만큼의 지원을 누가 해 줄 것인가다.

한국은 남남갈등으로 경제 지원을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중국은 과거처럼 북한이 죽지 않을 정도만 지원할 것이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한중일에 맡길 것이다. 그러면 일본이다. 일본은 그동안 북한과 전쟁배상금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해 왔다. 대충 300억~400억 달러 정도로 알려졌다.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지원은 일본만이 가능하다.

그래서 북한은 일본과의 수교에 관심이 많다. 다음은 일본 입장이다.

일본 총리의 숙원 사업이 두 가지가 있다. 쿠릴 열도 남부 4개 섬(쿠나시르, 이투루프, 시코탄, 하보마이) 반환과 북일 수교다. 이 가운데 하나만 해결해도 일본 외교사에 길이 남을 총리가 될 수 있다. 쿠릴 열도 남부 4개 섬은 현재 러시아 영토로 돼 있다. 이 가운데 시코탄과 하보마이 등 2개 섬은 반환될 뻔하다가 답보상태다.

북일 수교도 마찬가지다. 일본 자민당의 실력자 가네마루 신(金丸信) 자민당 부총재가 1990년 평양에서 김일성을 만나 논의를 했지만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났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도 2002년, 2004년 평양에서 김정일을 만났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북일 수교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일본인 납치 문제다. 일본은 17명의 납치피해자 가운데 5명만 귀환했고 12명이 아직까지 미해결 상태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12명의 일본인 가운데 8명은 사망했고, 4명은 북한에 오지도 않았다는 입장이다.

북한 외무성은 10월 7일 리병덕 일본연구소 연구원 명의의 글에서 “납치 문제는 2002년 9월, 2004년 5월 당시 일본 수상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그리고 그후 우리의 성의와 노력에 의해 이미 다 해결됐으며 이것으로 완전히 끝난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일본인 납치 문제는 북일 관계의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다. 하지만 일본 내부에서도 납치 문제를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수교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함께 다루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기시다 총리 조건없는 북일정상회담 제안
북일 수교는 日총리의 숙원 사업 가운데 하나
일본인 납치 문제가 최대 걸림돌
일본의 300억~400억달러 경제 지원 바라는 北
한국은 남북·한일관계 개선 먼저 서둘러야

일본은 걸림돌만 해결되면 북한이 원하는 경제 지원을 할 수 있는 나라다. 북한은 일본이 필요로 하는 희토류 등을 공급할 수 있고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북일 수교가 되면 양국이 상생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재일동포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일본 만화·게임 등을 접하면서 자랐다. 일본에 대한 거부감이 덜하다. 일본은 그에게 역사적으로 거부하고 싶지만 부러워할 만한 선진국이다.

북일 관계가 속도를 내면 한국은 머리가 아파진다. 대신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북한이 한국에 의존하는 상황이면 북일관계 개선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김대중 대통령의 주선으로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하는 것처럼 되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개선 없이 북일관계가 앞서가는 경우일 때는 문제다.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전인수다. 북한과 일본의 국익이 맞으면 언제든지 가능하다. 필자가 그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한국보다 미국과 가까운 일본, 기술·돈이 한국보다 많은 일본, 한국보다 북한 정보가 많은 일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북관계·한일관계가 좋아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선견지명을 후배 대통령이 배워야 한다.

북한 시장은 한국의 독점물이 아니다. 일본이 돈을 들고 달려들면 북한은 문을 열 수 밖에 없다. 지정학적·정서적으로 가까운 중국은 북한이 거부할 수 없는 국가다. 한국은 무엇으로 승부할까?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글쓴이

고수석 북한학 박사

고수석 박사는 중앙일보 기자로 20여년 동안 통일이 한국의 성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통일․북한 분야를 취재했으며 고려대에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중앙일보에 ‘고수석의 대동강 생생 토크’, 중앙SUNDAY에 ‘평양탐구생활’을 기획연재했다. 저서로는『북한을 움직인 30인』, 『김정일과 IT혁명』등이 있다. 지금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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