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바이든, 허약한가? 능수능란한가?
[신은철의 미국정치 ‘스틸컷’] 국내 언론, ‘허약한 리더십’으로 묘사 바이든은 매우 ‘능수능란’...위대한 업적 꿈꿔 한반도정책 입장 변화 ‘대표적 실사구시’
[신은철 칼럼니스트] 미국 동부시간으로 10월 7일, 미의회 상원은 임시예산안의 시한인 12월 3일까지 부채 한도를 4800억 달러 늘리는 안건을 찬성 50표, 반대 48표로 통과시켰다.
11명의 공화당 의원이 필리버스터 저지(토론 종결)에 동참했지만, 전체 표결에서는 단 한 명도 안건을 지지하지 않았다. 공화당은 10월 12일에 실시된 하원의 부채 한도 표결에서도 전원 반대표를 던졌다. 이 표결 결과는 부채 한도 증액을 둘러싼 양당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공화당이 끝까지 증액에 반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화당이 계속 반대할수 있을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보다 하루 앞선 10월 6일 JP모건 체이스은행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 등 재계 거물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이 자리에는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인 65세 이상 장년층을 대변하는 미국퇴직자협회(AARP)의 조 앤 젠킨스도 있었다. 모임이 끝난후,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켄터키/7선)가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뉴욕/4선)에게 임시 한도 증액을 제안했다는 점은, 바이든의 압박이 나름 효과를 거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걸 시작으로 바이든이 공화당을 더욱 강력하게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사회보장국에 따르면 도시권 노동자의 소비자물가지수(CPI-W)와 연동된 사회보장연금(Social Security)의 내년도 월 수령액이 올해 대비 5.9% 늘어날 예정이다. 뉴딜 정책의 대표 사례인 사회보장연금의 재원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에 영구 폐지하려 한 급여세(payroll tax)다. 즉 연방정부는 물가상승률 만큼 급여세를 인상해야 약 7천만 장년층에게 연금을 지급할 수 있다. 사회보장세라고도 불리는 급여세는 고용주와 직원이 각각 임금의 6.2%, 총 12.4%를 납부하는 세금이다.
지난 2020년 대선 당시, 바이든은 사별자, 극빈층, 초고령 퇴직자에 대한 혜택을 늘릴 수 있게 급여세가 부과되는 소득구간을 현행 최대 구간인 14만2800 달러에서 40만 달러로 확대하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요약하자면 바이든은 부채 한도를 초당적으로 높이는 동시에 대선 공약인 사회보장연금 확대를 이행하기 위해 공화당의 역학구도를 역이용하는 중이다. 공화당은 2020년 대선 당시 약 60%의 백인 노동계층의 지지를 이끌어낸 바 있는 트럼프의 전략을 물려받아 스스로를 ‘노동계급의 정당’으로 내세우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읽는 바이든의 정치인생
어찌 보면, 대단한 내공이 느껴지는 정치적 움직임이다. 그런데, 바이든이 이 정도의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1955년 학교 수업중 수녀였던 선생님이 “월터 롤리 경은 신사였다”는 문장을 다시 낭독할 것을 거듭 요구하더니, 말을 더듬으며 ‘부-부-부-부 바이든’이라고 부르자 분노해 학교를 뛰쳐나간 일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바이든은 어려서부터 말더듬 증세에 시달렸다.
하지만 바이든은 가족의 사랑과 자신의 의지로 말더듬증을 극복했다. 3학년과 4학년 학생반장을 지내는 동시에 스타 풋볼선수로 활약한 고등학교 시절, 바이든은 거울 앞에 서서 손전등을 얼굴에 비추고 저명한 작가들의 문장을 암기했다. 말을 더듬지 않고 가족을 소개한 졸업식(1961년)은 스스로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여기서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1970년에 델라웨어 주 뉴캐슬 카운티 의원, 즉 군의원에 선출된 바이든은 2년 후 당시 현역이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출신의 거물 J. 칼렙 보그스 의원(공화당/재선)을 꺾고 처음으로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30세 생일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972년 12월 18일에 첫째 부인 닐리아와 한 살배기 딸 나오미가 교통사고로 즉사한다.
연설과 논문 표절 논란으로 불명예스럽게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사퇴한 후 다시 의정 활동에 전념하던 1988년에는 뇌동맥류와 폐색전증 때문에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아내인 질 바이든이 아는 동네의사가 동맥류를 신경이 눌린 것으로 진단하는 바람에 정확한 검진과 수술이 지연되었고, 그 사이 좌뇌에 생긴 동맥류로 인해 척수액에 피가 고였다. 7시간에 걸친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그 동네의사가 소화불량이라고 판단한 폐색전증으로 인해 다시 월터 리그 군 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45세였던 바이든은 폐색전증 수술을 받았는데, 최악의 경우 평생 언어장애에 시달리게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7개월의 재활을 거쳐 상원으로 복귀했고, 특유의 솔직담백한 태도로 “일을 더 잘하기는 어렵게 되었다”는 말로 넘겼다.
수술의 후유증은 지금도 남아있다. 2020년 대선 유세 당시 말실수가 주목을 받았던 것처럼 바이든은 순간적으로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하거나 수의 단위를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총기 소지권을 없애려 한다는 디트로이트 공장 노동자의 비난에 “당신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쟁이요”라고 답했듯 상대의 말에 격하게 반응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바이든을 언변이 부족한 정치인이라고 보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그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밋 롬니 공화당 후보에게 1차 토론회에서 참패하며 대선의 판세가 급변하고 있었던 2012년 10월 11일, 부통령 토론회에서 42세의 젊은 나이에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폴 라이언에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어 롬니의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은 바 있다.
그리고 스스로가 대통령 후보로 나선 2020년 대선에서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CNN>의 1차 토론회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예측(56%)보다 더 많은 67%의 미국인이 바이든을 승자로 꼽았으며, 최종 토론회 평가에서도 53%의 바이든이 트럼프를 14%p 차이로 앞섰다. “바이든은 말을 못한다”라는 평가에는 부당한 측면이 있다.
밀어부치는 바이든...준비된 대통령?
“바이든은 의제가 없는 후보다”라는 평에도 문제가 있다. 백인 노동계층이 민주당으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하고,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공화당)의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이 맹위를 떨치고 있던 1970년대에 그는 상원의원이 되었다. 1980년대는 1920년대처럼 민주당이 단 한 번도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한 시기였는데도 말이다.
바이든은 줄곧 중도적인 이미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1990년대에 범죄처벌법안을 추진하되 여성들을 강력 범죄로부터 보호할 여성폭력방지법 제정에 앞장서고, 또 가톨릭의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의 사생활이라며 낙태 보장을 지지하기 시작한 것과 같은 과감한 면모도 가지고 있다. 2012년에는 동성혼 합법화 지지를 선언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 사태에서도 과감한 입장을 취했다. 바이든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계승·발전시킬 준비를 서둘렀다. 미 의회가 2020년 3월에 가결한 부양책보다 훨씬 큰 규모의 재정투입이 필요하며,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대책은 대규모 공공투자로 경제를 충분히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구상한 공공투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향후 4년 동안 7천억 달러의 예산을 제조업과 연구개발(R&D)에 투입하는 것과 같은 제조업 부흥을 골자로 하는 ‘Build Back Better’ 플랜이었다.
바이든은 대통령이 되고서도 연방정부 부서로 하여금 자국산 제품을 의무적으로 구입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 부양책을 6000억 달러까지 감액하자는 공화당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1조9 천억 달러 부양책을 민주당이 단독으로 가결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실제로 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이 부양책은 유아 빈곤율을 이전 대비 절반까지 감소시켰다.
78세인 바이든 대통령은 지금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그는 1조 8천억 달러 규모의 미국가족계획(American Families Plan)과 3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일자리 플랜(American Jobs Plan), 6조 달러 규모의 2022 회계연도 예산안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이 중 민주, 공화 양당이 협상한 1조 2천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법은 상원에서 찬성 69표로 통과되었다. 3조 5천억달러 규모의 재정안(Build Back Better Act)의 추진 방향에 대해 민주당내 주요 정파들이 논의 중이다.
이중 3조 5천억달러의 재정안은 린든 B. 존슨 전 대통령(민주당)의 ‘위대한 사회’에 버금가는 개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증세, 전기차 제조 같은 산업의 육성 외에도 자녀세액공제(child tax credit) 영구화, 유치원(pre-kindergarten)과 2년제 전문대학(community college)의 무상화와 같은 사회안전망 확충안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바이든의 목표는 이 재정안까지 통과시켜 뚜렷한 자신만의 유산을 남기는 것이다.
대외정책 역량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코소보 내전 당시 빌 클린턴 전 대통령(민주당)이 공습 중단에 대해서 바이든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외교분야는 전문성을 갖고 있다. 오바마가 바이든을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발탁한 배경에도 국내·외 정책을 두루 다뤄본 그의 경륜이 있다.
일본 중시? 아냐, 한국과 “같이갑시다”
최근 보여준 한·미동맹과 관련된 행보는, 한국 전문가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취임 전, 바이든이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이었기에 바이든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일본 중심의 현상유지 정책을 답습할 것이라는 전망이 절대다수였다. 심지어 ‘오바마 시즌2’로 불리며 과거 한일 위안부 합의 때처럼 미국이 한일관계에 있어서 일방적으로 일본의 손을 들어줄 거라는 우려도 존재했다.
하지만, 바이든은 미국 대선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던 2020년 10월 30일에 “Katchi Kapshida(같이 갑시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되는 한국 관련 기고문을 올릴 정도로 오바마와의 차별점을 예고한 바 있다. 그리고 결국 대통령에 취임한 후 미사일 지침을 해제하는 등 한·미 양국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요컨대 정치 명문가와 아이비리그 출신이 아니지만 거물 정치인으로 성장했고, 정계에 입문한지 반세기 만에 미국 대통령이 된 바이든은 비전과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국내외 일각의 과소평가와 달리 노회하고 능수능란한 정치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한국에서 쏟아진 바이든에 대한 평가에서 드러나는 관성적 편향을 돌이켜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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