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이런 진흙탕 싸움?...K팝 빌보드 경쟁
[김서나 기자의 핫 트렌드] 빌보드 순위에 집착하는 K팝, 무리수 난무
[김서나 기자] K팝에 빠진 전세계 음악 팬들 덕분에 많은 한국 가수들이 여러 국가의 다양한 음악 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빌보드(Billboard)’ 차트도 K팝 아티스트들의 침투가 잦아지면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은 과거의 위압감은 사라졌다.
이렇다 보니 빌보드 순위를 놓고 국내 기획사들 간의 자존심 대결이 점차 심화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낯뜨거운 편법까지 자행되면서 K팝의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
빌보드의 높은 벽, 시원하게 무너뜨린 싸이
빌보드는 매주 각종 서브 차트를 함께 발표하고 있지만, 싱글 곡 순위인 ‘빌보드 핫100’과 앨범 순위인 ‘빌보드200’이 메인 차트로서 갖는 무게감이 다르다.
이들 메인 차트에 입성한다는 건 가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보는 막연한 꿈일 텐데, 이를 한국 가수 최초로 실현해낸 주인공이 바로 ‘아시아의 별’ 보아였다.
한국과 일본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2009년 호기롭게 미국에 도전장을 낸 보아는 세계 팝시장을 먹어 치울 기세로 강한 비트의 힙합 곡 ‘Eat You Up’을 선보였으나 사실 기대만큼의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진 못했다. 하지만 앨범 ‘BoA’의 순조로운 판매에 힘입어 앨범 차트인 빌보드200에서 127위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해 원더걸스(Wonder Girls)가 국내 히트곡 ‘Nobody’를 영어로 리메이크해 핫100 싱글 차트에 76위로 진입했다.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미국 진출을 시작했던 보아와 달리 버스로 홍보 투어를 다니며 스파르타 강행군을 이어갔던 원더걸스는 사무실을 개조한 숙소 사용, 싱글 음반의 할인 판매 등 논란에도 휘말렸지만 어쨌든 영원히 남을 기록은 건졌다.
그런데 이러한 고군분투기가 무색하게 마치 제트기에 올라탄 듯 단숨에 빌보드의 벽을 넘어버린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신나는 비트와 재밌는 가사 그리고 한국어 가사를 몰라도 재밌게 볼 수 있는 뮤직비디오로 인기몰이를 하며 2012년 여름 전세계를 휩쓸어버린 강남스타일은 빌보드 핫100 2위까지 올라 7주를 버텨내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싸이는 명실상부한 월드스타로 우뚝 섰다.
특히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수가 폭발적인 추이를 보이면서 강남스타일의 인기를 확산시키는 에너지 공급원 역할을 했는데, 유튜브의 위력을 목격한 빌보드 측은 결국 핫100 차트에 유튜브 조회수도 반영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비록 강남스타일은 그 변경된 룰의 수혜를 입지 못했지만 이후 다른 K팝 아티스트들의 빌보드 침공이 수월해지도록 길을 터준 셈.

빌보드 순위와 맞바꾼 K팝 브랜드 이미지
싸이 이후 여러 가수들이 빌보드에 잇달아 입성하면서, 어느 정도 팬덤과 노하우가 준비된 중견 기획사라면 앨범 판매로 승부하는 빌보드200 차트만큼은 도전해볼 만한 목표로 간주되었다.
그러다 보니 기획사들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꼼수가 더해졌는데, SM엔터테인먼트가 글로벌 프로젝트로 구성한 슈퍼엠(SuperM)의 빌보드 점령기가 대표적 케이스.
슈퍼엠은 2019년 미국 데뷔 앨범으로 빌보드200 1위에 올라서고도 미국 음악계로부터 박수를 받지 못했다. 앨범 차트인 빌보드200은 원래 음반 판매량에 따라 순위를 매겼었지만, 실물 앨범의 판매 수치 외에 수록된 음원의 다운로드, 스트리밍 수치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음원 시대에 맞춰 집계기준을 업데이트했다. 슈퍼엠의 경우 음원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미미한 반면 음반만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는 점에서 의혹을 불러일으킨 것.
알고 보니 슈퍼엠의 1위는 부족한 음원 성적을 앨범 판매로 메꾸기 위해 8가지 버전으로 앨범의 가짓수를 늘리고, 국내 팬들이 SM 글로벌샵에서 온라인 구매한 수량도 합하고, 여기에 콘서트 티켓 등 관련 상품들과 연계해 파는 ‘번들’ 전략까지 동원한 결과였다.
사실 번들은 다른 팝가수도 시도해오던 상술이었지만 슈퍼엠은 빌보드 1위치고 너무 음원 성적이 저조한 바람에 논란이 커져버렸고, 이에 빌보드 측은 2000년부터 번들 판매를 허용하지 않기로 결단을 내렸다. 슈퍼엠은 원했던 성적을 거둔 대신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핫100 싱글 차트에도 마찬가지로 꼼수가 투입되었다.
핫100은 음원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수치, 라디오 방송(에어플레이) 횟수, 그리고 유튜브 조회수 등이 반영되는데, 여러 기획사들이 음원 가격을 대폭 할인하고, 한 곡을 여러 리믹스 버전으로 동시에 발표하는 상술로 차트의 허점을 노리고 있다.
최근 미국 시장을 겨냥한 신곡 ‘The Feels’를 내놓은 JYP엔터테인먼트의 트와이스(TWICE)는 음원의 예약 판매를 한달 동안 실시한 후, 총 6개 버전의 신곡을 동시에 발매했다. 여기에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4가지 버전을 추가하면서 이를 1+1으로 판매하는 방법까지 끌어 썼다.
스트리밍으로 가볍게 음악을 즐기는 대중에 어필하기보다는, 충성심으로 여러 버전의 음악까지 모두 다운로드해주는 팬덤에 기대어 결국 트와이스는 지난주 빌보드 핫100 차트 83위에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슈퍼엠의 경우처럼 K팝 아티스트로 인해 빌보드 차트의 집계 기준이 바뀌는 불명예가 또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K팝 브랜드가 지금의 위상을 갖추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빌보드 성적에 집착해 추태를 보이는 모습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훼손하고 팬들의 신뢰를 잃어간다면 세계 음악계의 주류에서 다시 밀려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빌보드 진입을 위해 꼼수를 쥐어짤 시간에 K팝 팬들을 계속 붙들어 둘 묘수를 고민하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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