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군함 파견 요구 거부할 수 있을까
아카데미의 박수와 호르무즈의 군함 한국외교, 평화 논리만으로 괜찮을까
- 축제보다 먼저온 무거운 초대장 아카데미의 갈채(소프트 파워)와 트럼프의 파병 요구(하드 파워)가 교차했다. 한국은 화려한 시상식 드레스와 호르무즈의 갑판 사이, 그 주권의 간극을 메워야 할 숙명과 마주했다.
- 안보 수혜국에서 공급국으로 우리는 그동안 안보 질서 위에서 ‘저비용 수혜’를 누려왔다.이제 에너지 생명선의 당사자이자 실질적 역량을 갖춘 국가로서, 안보 책임을 요구받고 있다.
- ‘제3의 길’ 주권 외교 미국의 요구를 마냥 거부하기 어렵다. “우리의 에너지선을 우리가 직접 지킨다”는 주권 논리로 전환할 상황은 아닐까. 이란과의 관계에서도 ‘대리인’이 아닌 ‘당사자’로서 독자적 레버리지를 가질 수 있다.
- 한국 사회의 지혜로운 응답 희생의 위험은 분명 존재한다. 이 비용이 주권외교를 위한 ‘통과세’인지, 새로운 길의 ‘입장료’인지는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화려한 시상식과 무거운 초대장
“너무 늦게 나타나 미안하다”
한국에 경사가 났다. 16일 오전 미 LA에서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케데헌』으로 시상식 무대에 오른 한국계 캐나다인 매기 강 감독의 수상 소감이 한국 국민을 감동시키고 있다.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거머쥔 매기 강은 “나 같이 생긴 사람(한국인)이 나오는 영화를 너무 늦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이제 다음 세대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고 가볍게 조크를 날렸다.
이어 “이 상은 전 세계에 있는 한국인들을 위한 것”이라며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절제된 포효를 외쳤다. 주제가상까지 2관왕에 오른 한국은 이제 문화 강국으로 박수를 받고 있다.
전 세계가 한국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고 있는 이 화려한 축제 한복판에서, 우리는 역설적으로 가장 차갑고 무거운 ‘국제사회 책무’라는 논리와 마주하고 있다.

트럼프의 군함 파견 요구
그러나 같은 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으로 군함을 보내달라는 파병요구를 SNS에 공개했다. 거절의 대가가 무엇일지 가늠하기 힘든, 정중하면서도 서늘한 파병 요청이다.
트럼프는 중국, 일본, 영국, 프랑스에 한국을 포함시킨 5개국을 군함 파견 요청 국가로 지목했다. 지난 2004년 9월 노무현 정부가 자이툰 부대를 파견한 일이 연상된다. 진보 대통령이 당선될 때마다 ‘파병’이슈가 생기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진보의 가치가 국익이라는 현실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내밀한 균열을 우리는 이미 목격한 바 있다.
정식 요청이 도착했는지 확인되지 않지만, 이번에도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과는 달라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역할 요구, 경제에 긴급한 영향을 주는 에너지 자원의 안전 문제라는 점 등을 고려해 섣부른 판단을 해선 안된다.
표면적인 외교논리로는, 평화를 지향하는 헌법을 갖고 있는 나라가 원인과 목적에 동의하기 어려운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희생자가 다수 발생하고 있고, 전 세계 경제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데, 군함 파견은커녕 종전을 요구하는 국제 여론에 동참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지 모른다.
그러나 가혹하리만큼 현실은 평화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여지가 크지 않다. 기름값이 오르며 경제에 서서히 충격을 가하고 있고 서민 경제는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왜 한국인가, 왜 지금인가
미국이 콕 집어 이 5개국을 호출한 이유는 간단하다. 호르무즈가 봉쇄될 때 국가 생존이 흔들리는 ‘에너지 생명선의 직접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그 이유를 명확히 했다.
해군력이 강한 영국과 프랑스는 모항에서 중동까지 거리가 멀고 예산이 부족하지만 군함 파견 경험이 풍부하다. 일본은 자위대의 전력은 강하지만 헌법적 제약에 묶여 실제 충돌이 발생할 경우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
중국은 미국이 고도의 전략적 계산하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중국은 석유의 90%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조달한다”면서 “2주 앞으로 다가운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까지 (답을) 기다리는 것은 너무 늦다”며 중국방문 일정을 연기할 수도 있다며 압박했다.
이란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은 미국 주도 연합함대에 들어가면 이란과의 관계가 깔끄러워지고, 안 들어가면 에너지 안보를 미국에만 저당 잡히면서 ‘책임감 없는 국가’로 낙인찍히게 된다. 중국은 현재까지 조속한 종전을 요구하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한국은 지난 10년 넘게 아덴만 청해부대를 통해 실전 경험을 쌓았고 현재도 이를 운용 중이다. 표면적인 해군력의 총량을 넘어, 실제 작전의 지속성과 즉각적인 대응력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은 한국의 군사력과 방산능력을 활용하겠다는 뜻이지만, 한국은 이로써 ‘안보 수혜국’에서 ‘안보 공급국’으로 체급이 오르게 된다.
종속이 아닌 주권의 설계
파병 논의가 나올 때마다 우리 사회는 ‘미국에 대한 종속이냐’, ‘평화주의에 따른 파병 거부냐’는 이분법적 함정에 빠지곤 한다. 필자는 여기서 ‘제3의 길’로 주권외교를 제안한다.
제3의 길, 주권 외교란 거대 강대국이 짜놓은 판 위에서 놀되, 한국만의 독자적인 목적과 소통 방식을 가지는 ‘별도의 공간을 갖는 외교’다. 미국의 연합함대 구성에 참여하여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의리’라는 명분을 충족하되, 그 위로 “우리 유조선은 우리가 직접 지킨다”는 주권 국가의 실리를 쌓는 것이다.
‘미국이 지켜주는 바다’에서 벗어나 ‘우리가 우리의 바다를 갖는다’는 주권 보호다.
이렇게 하면 이란과의 관계에서도 새로운 레버리지가 생긴다. “우리는 미국이 시켜서 총을 든 게 아니라, 우리 경제의 목줄인 에너지를 지키기 위해 집주인으로서 함정을 보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란 입장에서도 한국 군함을 ‘미군에 끌려온 대리인’이 아닌 ‘자기 재산을 지키는 당사자’로 인식하게 되면, 불필요한 마찰을 피할 외교적 틈새가 열릴 수 있다.
종전 협상에서도 한국은 최소한 협정의 참관국이 되며, 중동 평화의 감시자가 된다. 이것이 이란에게 꼭 불리하지만 않다. 일방적으로 협정을 파기하는 나라를 견제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란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미국의 편’이 아니라 ‘공해(公海)의 수호자’다.
피해와 희생이 따를 수 있어
물론 이에 따른 비용과 희생이 가볍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일리 있다. 이란이 우리의 생각을 접수하지 않고, 미국의 동맹국으로 간주할 경우, 대치가 불가피하고 관계는 악화된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자이툰 부대 파병의 고통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파병은 여전히 트라우마일 수 있다. 자이툰 파병에 이라크 재건 사업 참여라는 약속을 받았지만, 실질적인 경제적 실익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번에도 경제적 효과가 기대보다 적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지상군 파병과 지금의 해군 지원은 질적으로 다르다. 지상군은 테러와 게릴라전에 노출되어 리스크 통제가 어렵지만, 최첨단 방어 시스템을 갖춘 구축함은 ‘움직이는 요새’다. 파병에 드는 유류비와 정비비는저렴한 편이다.
파견되는 군함의 역할에 따라 최악의 상황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젊은 군인들이 무고한 이유로 희생된다면, 국가 전체가 큰 충격에 빠질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미국이 설계한 안보 질서 위에서 저비용 안보수혜국이라 할 수 있다. 그 결과 독자적 외교역량은 약해졌다. 모든 것이 미국의 승인을 득하거나, 미국이 눈감아주는 전제하에 외교를 하는 식이었다.
군함 파견이 주권외교는 아니지만
한국이 국제 사회에서 계속 환호만 누릴 수는 없다.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부담을 요구받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해협의 우리 유조선 보호를 모른 체 할 수 없다.
매기 강 감독과 가수 이재의 아카데미 상 수상이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정점에 도달했음을 증명했다면, 원하지 않지만 한국의 ‘하드 파워’가 세계로부터 부름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아카데미의 화려한 드레스와 호르무즈의 갑판 사이의 거리가 곧 우리가 메워야 할 주권의 간극이다.
우리 외교 또한 독자적 길을 모색할 때다. 박수받은 만큼 새로 생긴 부담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 국익을 최우선 고려하는 글로벌 중견국 외교를 준비하자.
거기엔 비용이 든다. 하지만 그 비용이 주권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피할 수 없는 통과세(稅)인지, 혹은 우리가 가야 할 새로운 길의 입장료인지는 이제 우리 사회의 지혜로 답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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