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버지니아주지사 선거, 정치 쉽게 보면 안되는 이유
[신은철의 미국정치 ‘스틸컷’] 이번 선거결과에서 드러나 정치판세 변화는 내년 중간선거 결과 예단하면 안될 이유 많아
[신은철 미국정치 칼럼니스트] 미 정치에서 버지니아주가 갖는 의미
엘리자베스 1세의 별명인 ‘처녀 여왕(the Virgin Queen)’에서 유래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버지니아(Virginia)는 미국의 건국 이전에 가장 넓고 부유한 식민지였다. 그런 만큼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를 제외한 대통령 5명 중 4명을 배출했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는데, 이들에게는 노예 소유주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지 워싱턴(초대), 토머스 제퍼슨(3대), 제임스 매디슨(4대), 제임스 먼로(5대)이 그들이다.
1619년 영국 해적단이 포르투갈의 노예무역선에서 약탈한 아프리카인을 끌고 상륙한 후 플랜테이션 농업이 버지니아에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주정부청사 소재지 리치먼드는 1830년대부터 남북전쟁 이전까지 루이지애나의 뉴올리언스 다음 가는 노예무역의 거점이었으며, 남북전쟁 때 아메리카 연합국(남부 연맹)의 2번째이자 마지막 수도(남부 연맹의 첫 수도는 앨라배마의 몽고메리)로 지정됐다. 1865년 애포매턱스에서 훗날 대통령에 당선되는 북부군 사령관 율리시스 S. 그랜트 장군과 종전 협상을 벌인 남부연맹의 로버트 E. 리 장군은 버지니아 북부의 노예 소유주였으며, 남북전쟁중 흑인 자유민을 노예로 팔아넘긴 부대를 지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의 버지니아는 과거의 버지니아와 완전히 다른 주라고 할 수 있다. 혼혈을 포함시키면 흑인의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서며, 지난 40년 동안 워싱턴 DC의 교외지역인 북부(아마존 제2본사 공사를 진행 중인 알링턴 카운티도 북부에 속한다)가 제일 인구가 많은 권역으로 거듭났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개발되기 전의 라우던 카운티는 1990년 기준 3만 5천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작은 카운티였으나, 2020년 기준 42만 선을 돌파하며 급격히 성장했다. 미국 최대의 공항인 덜레스 국제공항의 소재지라는 장점을 살려 테크·정보보안·국방 산업을 유치했으며, 한국계, 파키스탄계와 같이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이 유입됐다. 그 결과, 1990년 기준 91%였던 라우던 카운티의 비(非)혼혈 백인 인구 비율은 53.7%까지 낮아졌다. 2010년에 71.4%였던 버지니아 전체의 비(非)혼혈 백인 비중 역시 60.3%까지 하락했다.
영킨의 당선, 이변일까 당연한 결과일까
인종이 다양해지면서 버지니아의 정치 지형이 확 바뀌게 되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44대)이 진보적인 백인도 포함되는 다인종 연합전선을 구축한 2008년을 시작으로, 민주당이 5차례의 미국 대선에서 버지니아의 선거인단(13명)을 독식했다. 연방 상원의원 2명을 싹쓸이를 했고, 연방 하원의원 11명 중 7명도 민주당 소속이다.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리 장군 동상 철거에 반대하며 일으킨 샬러츠빌(제퍼슨의 고향으로, 그가 직접 설계한 몬티첼로 저택이 있다) 폭동 이후, 2017년에 실시된 주지사 선거에서 랄프 노섬 주지사(민주당)가 8.93%p 차 압승을 거두었다. 주 하원 선거에서는 제94구의 제비뽑기 결과(버지니아는 양당 후보의 득표수가 동률일 경우, 제비뽑기를 하여 당선자를 결정한다) 덕분에 공화당이 최소 과반인 51석을 확보했지만, 민주당이 남동부 해안가의 도시 버지니아 비치(Virginia Beach)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때문에 총기규제가 쟁점으로 떠오른 2019년 25년 만에 처음으로 주의회 다수당이 되었다. 주 상원(40석) 및 하원(100석)에서 각각 21석(+2), 55석(+6)을 확보했던 것.
2020년에도 민주당의 상승세는 꺾이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46대)이 개표율 84% 상황일 때 역전하더니 격차를 3.88%p까지 벌린 오바마와 달리 10.11%p 차이로 압승했다. 2014년에 0.81%p 차 진땀승을 거두었던 마크 워너 상원의원(3선) 역시 상원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12.08%p 차로 제압했다.
그러나 2021년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는 2009년이후 처음으로 공화당이 활짝 웃었다. 공화당의 밥 맥도널 전 주지사가 17.36%p 차이로 압승한 후 12년 만이다. 글렌 영킨 공화당 후보가 지난 11월 2일에 실시된 주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다. 주지사 선거와 따로 실시되는 부지사 선거뿐 아니라, 주 법무장관 선거와 100석으로 구성되는 주 하원 선거 역시 공화당의 승리로 끝났다.
한동안 버지니아 공화당은 심각한 인물난에 시달리기도 했다. 오죽하면 2018년 상원 선거에 출마한 코리 스튜어트는 샬러츠빌 폭동을 주도한 대안 우파(alt-right) 제이슨 케슬러의 지지를 받는 인종주의자이기도 했다. 따라서 글렌 영킨은 공화당이 희망을 걸 수 있는 후보였다.
주지사에 당선된 영킨은 독실한 기독교도이자 말 농장 소유주다. 라이스 대학과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했고, 칼라일 그룹의 공동 CEO를 역임하는 등 탄탄한 경력을 쌓으며 4억 4천만 달러 정도의 순자산을 축적했다. 칼라일 그룹이 공화당 주류와 깊은 유대관계를 맺은 만큼, 이 시절 영킨이 자금을 기부한 공화당 정치인은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재선)나 밋 롬니 상원의원(유타/초선)와 같은 정통 보수 계열이다. 즉, 영킨은 트럼프를 싫어하는 온건 보수층에 대한 소구력까지 갖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면모가 영킨의 정치 행보에 자칫 독이 될 수도 있었다. 미국 시간으로 11월 16일, 한국으로 치면 도(道)당인 와이오밍의 공화당 중앙위원회가 찬성 31, 반대 29로 리즈 체니 하원의원(3선)을 공화당 소속으로 인정하지 않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처럼, 트럼프의 존재가 여전히 공화당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지지층도 11월 5일에 있었던 하원 표결에서 1.2조 달러 규모의 인프라법에 찬성한 공화당 의원에게 살해 협박을 하는 등 위협적인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민주당의 패배, 실언과 악재가 겹쳤다
하지만 민주당 후보인 테리 매컬리프 전 주지사가 학부모에게 “수업 내용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고 발언하는 바람에 논란을 자초했다. 버지니아의 학부모들이 노예제와 인종분리(segregation)가 국내 공공조직에 인종주의를 새겨두었다고 가르치는 비판적 인종 이론(CRT)의 교과서 수록과 교내 마스크 착용 조치에 반대하고 있던 차에, 학부모들의 교육 선택권을 쟁점으로 만드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라우던 카운티의 한 고등학교 화장실에서 터진 성폭행 사건 역시 범인이 트랜스젠더로 잘못 알려지고, 피해자가 여학생이었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교내 안전에 우려하는 상황으로 번졌다.
민주당 입장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 이후 민주당 진보 진영의 구호로 자리매김한 ‘경찰예산삭감(defund the police)’이 다시 핫이슈로 부상했다. 버지니아 북부의 알렉산드리아 시의회가 고등학교의 식당에서 발생한 싸움이 동영상으로 공개되자, 일시적으로 경찰을 재배치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영킨은 교육 문제를 집중적으로 언급했다. 이 전략은 학부모의 불안과 불만에 불을 지피는 동시에 비판적 인종 이론(CRT)이 수업에 활용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선언으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회·문화 보수파에 대한 소구력도 가지고 있었다. 즉, 교육 문제는 도시 교외지역뿐 아니라 트럼프 지지층이 거주하는 남부와 남서부 공략에 요긴하게 활용될 수 있는 카드였다.
1.2조 인프라법의 통과 지연과 최대 2조 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재정안(Builld Back Better) 논의가 교착상태에 빠진 점 역시 영킨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민주당과 바이든 행정부가 재정안의 개별 정책을 제대로 홍보하지 못했거니와, 중도진보진영이 인프라법 선결 통과를 요구한 반면 재정안에 대한 지지 선언 없이 인프라법 가결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강경 진보 진영의 주장도 충돌했다. 트럼프의 임기 때 심화된 민주당의 내부 분열이 다시 부각된 것이다. 좀처럼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원의 투표권법 논의도 흑인들이 투표장에 나설 의욕을 꺾어놓았다.
이런 원인과 배경에 힙입어 결국 영킨이 주지사에 당선됐다. 미국의 주요 언론들이 활용하는 에디슨 리서치의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대선 당시 6%p였던 양당 후보의 시골 지지율 격차가 27%p까지 벌어졌다. 흑인 인구 비율이 40%를 웃도는 리치몬드(도시)의 민주당 득표율이 80% 이하를 기록하는 등 민주당 지지층의 응집력도 약해졌고, 도시 교외지역에서는 매컬리프가 9769표 차이로 간신히 승리하는데 그쳤다.
아직 바이든에게 기회는 있다...중간선거 예단 불허
그렇지만 도시 교외지역은 2009년처럼 대거 공화당으로 이탈하지는 않았다. 이는 민주당이 2개 법안의 논의를 진전시키면서 메시지를 잘 관리했다면, 2013년이나 2014년처럼 접전 끝에 승리할 가능성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영킨이 트럼프와 지지층의 환심을 사려고 지속적으로 사회·문화 이슈에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면, 한국의 50대와 같은 스윙 보터인 교외 유권자들이 차기 선거에서도 공화당을 지지할지 장담할 수 없다. 더군다나 버지니아는 1985년부터 2021년까지, 단 한 번(2013)을 제외한 모든 주지사 선거에서 야당 후보를 지지했다.
또한, 민주당은 경찰예산삭감이 쟁점으로 떠오른 뉴멕시코 연방하원 제1구 재보선(2021년 6월), 방역에 대한 반감과 개빈 뉴섬 주지사의 낮은 지지율로 언론의 주목을 받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소환투표(2021년 9월)에서 승리했다. 버지니아와 같은 날에 주지사 선거를 치른 뉴저지에서도 한때 공화당의 대권 후보로 주목받았던 크리스 크리스티가 승리한 2009년과 달리, 필 머피 주지사(민주당)가 공화당 후보를 꺾고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1977년 이후 처음으로 재선에 성공한 뉴저지의 민주당 소속 주지사이다.
뉴저지는 월스트리트 중역과 같은 기업인들을 포함해, 부유한 미국인들이 거주하는 주이다. 이런 인구구성 덕분에 세금 감면과 절약하는 정부를 추구하는 공화당이 연방 하원이나 주 단위 선거에서 꾸준한 지지를 받았다. 그렇지만, 트럼프의 우경화와 상위 중산층 증세 정책(재산세와 같은 지방세 공제를 뜻하는 SALT공제의 혜택을 연 1만달러로 제한했다)으로 인해 중산층이 민주당으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2021년 선거에서는 뉴저지의 재산세율(2.42%)이 50개 주를 통틀어 가장 높다는 것(50개주 평균 재산세율은 1.07%)에 착안해 공화당이 2조 달러 재정안 충당을 위한 증세 문제를 부각시켰지만, 백만장자 증세와 같은 진보 정책을 추진한 머피 주지사가 재선에 성공했다.
요컨대 버지니아를 포함해 2021년에 실시된 주요 선거의 결과는 세금과 범죄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공화당의 전략이 과거와 같은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바이든은 2조 달러 규모의 재정안이 재정적자를 발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고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인 물류 적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민주당이 예정대로 2조 달러 재정안도 통과시킨다면, 바이든은 뉴딜 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는 목표에 다가서는 한편, 자신을 ‘노동자의 대통령’으로 내세우는 전략을 더욱 힘 있게 추진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지금은 버지니아 선거 결과만으로 바이든과 민주당의 2022 중간선거 참패를 예측하기에는 다소 이르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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