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블리즈와 함께 ‘청순 걸그룹’ 시대 막 내린다

[김서나 기자의 핫 트렌드] ‘청순’ 아닌 ‘걸크러쉬’ 컨셉으로 몰리는 걸그룹들

러블리즈의 2016년 공연 모습. 사진=연합뉴스
러블리즈의 2016년 공연 모습. 사진=연합뉴스

[김서나 기자] 청순 컨셉을 대표해온 걸그룹 ‘러블리즈(Lovelyz)’가 소속사와의 재계약이 불발되며 7년간의 활동을 마무리하게 됐다.

물론 몇몇 멤버들은 해체가 아니라며 향후 완전체로서의 활동 가능성을 남겨두었지만, 각자 흩어져 다른 소속사를 찾아 나서는 마당에 이를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질 약속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대부분의 K팝 걸그룹들이 ‘걸크러쉬(Girl Crush)’ 컨셉으로 쏠리는 지금, 청순 걸그룹의 명맥은 이대로 끊어지는 걸까?

걸그룹은 청순? 이제는 옛말

시대별로 국민적 사랑을 한 몸에 받은 맑고 순수한 이미지의 하이틴 스타가 있어왔던 만큼 1997년 K팝 걸그룹 1세대를 연 ‘S.E.S.’도 당연하듯 그 길에서 출발했다.

2세대 리더 ‘소녀시대’ 역시 2007년 순백색 테니스 스커트를 입고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하며 그 뒤를 이었고, 이후 소녀시대의 인기 공식을 따르려는 기획사들이 유사한 컨셉으로 ‘에이핑크(Apink)’, ‘라붐(LABOUM)’, ‘에이프릴(APRIL)’ 등을 내놓았다.

러블리즈 또한 이 물결에 합류했는데, 2015년 세번째 앨범에 수록된 ‘Ah-Choo(아츄)’가 서정적인 멜로디와 사랑을 재채기에 비유한 간지러운 가사로 남성들의 팬심을 사로잡으면서 러블리즈는 걸그룹 3세대를 이끌어갈 유력한 후보로 떠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순정만화 재질의 러블리즈와는 조금 결이 다른, 친근한 이웃집 소녀와 같은 ‘여자친구’와 몽환적인 분위기의 ‘오마이걸(OH MY GIRL)’ 등이 각자의 영역을 넓혀갔고, 막내 멤버 예리를 충원하며 당돌하게 변신한 ‘레드벨벳(Red Velvet)’의 기세도 거세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16년 ‘트와이스(TWICE)’가 ‘CHEER UP(치얼업)’으로 남성팬들을 다 쓸어가면서 걸그룹 시장이 초토화되는 상황을 맞은 러블리즈.

이후 꿋꿋이 청순 컨셉을 고집한 덕분에 팬덤의 큰 유실은 막았지만 더 이상의 유입은 어려워지면서 러블리즈의 활동은 점차 위축되어갔고, 결국 아쉽게도 올해 소속사와의 계약이 만료된 여자친구와 같은 운명을 맞고 말았다.

지난 5월 라붐의 ‘상상더하기’가 갑자기 음원차트 역주행을 이뤄냈던 것은 회광반조였을까? 청순 걸그룹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느낌이다. 신인 걸그룹들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지만, 러블리즈의 자리를 대체할 소녀들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이름부터 ‘소녀’인 그룹들도 청순은 비껴갔다.

별자리 테마를 바탕으로 둔 ‘우주소녀’는 유닛 활동을 통해 컨셉을 다양화시켰고, 12명의 소녀가 하나의 세계관을 이뤄낸다는 스토리를 가진 ‘이달의 소녀’는 걸크러쉬 컨셉으로 이동했으며, ‘공원소녀’는 놀이공원이 아닌 밤의 공원과 달의 그림자를 노래했다.

이렇듯 러블리즈의 온실 속 화초와 같은 이미지를 외면하는 후배 걸그룹들이 상대적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기 무난한, 밝고 건강한 이미지의 트와이스 뒤로는 줄을 서고 있다. ‘위클리(Weeekly)’, ‘스테이씨(STAYC)’와 올해 데뷔한 ‘라잇썸(LIGHTSUM)’ 등이 이 카테고리에서 경쟁 중.

그나마 러블리즈 계열로 볼 만한 걸그룹은 러블리한 매력으로 열성적인 남성 팬덤을 거느렸던 ‘아이즈원(IZ*ONE)’이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프로젝트 그룹이었기에 2년여의 활동을 마친 후 뿔뿔이 흩어진 상황.

이제 멤버들이 각자 다른 모습으로 재데뷔에 나선 가운데, 주축 멤버였던 장원영, 안유진이 포함된 걸그룹 ‘아이브(IVE)’가 12월 1일 데뷔를 예고하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미리 공개된 컨셉 포토를 봤을 때 이들도 청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이브의 신곡 컨셉 포토. 사진=아이브 트위터
아이브의 신곡 컨셉 포토. 사진=아이브 트위터

기획사들의 청순 기피 이유는?

아이돌 기획사들이 청순 컨셉을 기피하는 이유는 있다.

보이그룹이 걸그룹보다 인기와 수익이 높은 데에서 보듯 남성팬보다 여성팬을 공략하는 편이 사업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걸그룹을 기획할 때도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리고 청순한 소녀보다는, 여성들이 부러워하고 닮고 싶어하는 언니 즉 ‘걸크러쉬’ 쪽에 맞추는 것.

남성에 비해 공감을 중요시하는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팬 커뮤니티에 참여해 팬들끼리 유대감을 쌓고 팬덤을 형성하는데, 그 결과 여성팬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의 관련 상품들을 많이 소비해준다는 장점 외에도 팬덤의 단결력으로 각종 인기투표에서 수치를 올려주고 온라인에서 컨텐츠를 재생산하며 오프라인 이벤트까지 진행하는 등 홍보 역할까지 자처해준다는 장점도 있어 기획사 입장에선 모래알 같은 남성 팬덤보다 여성 팬덤을 더 우대할 수밖에 없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가 한가지 더 있는데, 청순 컨셉은 해외 K팝팬들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강렬한 비트와 퍼포먼스를 중시하는 해외 K팝팬들에게 살랑살랑 청순코드가 먹힐 리 없다. 결국 청순의 길을 고집했을 때 공략할 수 있는 대상은 순정만화의 감성이 남아 있는 한국과 일본의 일부 남성들 뿐, 확장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걸크러쉬’를 대표하는 걸그룹은 바로 ‘블랙핑크(BLACKPINK)’. 과감한 의상과 강렬한 무대로 여성 팬덤을 모았던 소속사 선배 ‘2NE1(투애니원)’의 바통을 이어받은 블랙핑크는 멋진 외모와 퍼포먼스에 패셔니스타의 이미지까지 더한데다 해외 진출도 성공적으로 이뤄내면서 여성팬들은 물론 후배 여성 아이돌들의 아이콘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에 ‘(여자)아이들’, ‘있지(ITZY)’, ‘에스파(aespa)’를 비롯해 최근 등장하는 신인 걸그룹들의 대다수가 블랙핑크의 뒤를 따르는 중.

새로운 걸그룹을 런칭할 때 리스크가 적은 안전한 방향으로 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젠 쓰나미급으로 범람하고 있는 걸크러쉬의 레드오션 속에서 오히려 차별화되는 전략을 시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크 메탈’ 컨셉으로 리뉴얼하면서 해외에서까지 매니아 팬덤을 구축한 ‘드림캐쳐(Dreamcatcher)’나 깜찍한 키치 컨셉으로 여성들의 인형놀이 본능을 자극하며 팬덤을 쌓아 올린 ‘레드벨벳’과 같은 성공사례도 있으니.

그렇다면 러블리즈 팬들이 갈 곳을 잃은 이때 한발 먼저 ‘청순’을 선점하는 건 어떨까? 비록 글로벌 확장성에선 한계를 보이더라도 적어도 치열한 걸그룹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방법은 될 수 있을 듯하다.

글쓴이

김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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