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한송이 꺾는 것이 곧 ‘멸종의 시작’이다
[조영학의 ‘내 이름은 붥덱’] 아름다운 자연은 가슴에 담고 사진으로만 간직해야 TV방송, 자연훼손·야생식물 남획 부추기고 있어
[조영학 출판번역가] 강원도 화천, ‘비수구미 마을’엔 아주아주 특별한 공간이 있다. 비수구미는 평화의 댐 근처의 오지마을이다. 가구 수는 셋, 일반인은 차를 타고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오지(7km의 임도를 걷거나 1.5km 산길을 넘어가야 한다)이나, 마을 이름의 뜻이 “신비로운 물이 빚은 아홉 가지 아름다운 고장”일 정도로 정취가 아름다워, 불편한 교통에도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별한 꽃 ‘광릉요강꽃’
사실 비수구미 마을이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이유는 특별한 꽃 하나 때문이다. ‘광릉요강꽃’,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다. 전국 야산을 샅샅이 뒤져도 300~400수밖에 못 본다는 이 귀한 꽃이 이곳에만 무려 3000촉 가량이 자라고 있다(그 중 매년 1000촉 정도가 개화한다고 한다). 5월 초 이곳에 가면 활짝 핀 광릉요강꽃과 ‘복주머니란(역시 멸종위기종이다)’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이곳 마을이장 장윤일 씨가 ‘평화의댐’ 건설현장에서 위기에 처한 꽃 대여섯 송이를 캐와 증식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멸종위기 최상위에 속하는 야생화가 그곳에서만 풍성하게 자라니 특별하고도 특별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야생화가 멸종 위기에 이르는 이유야 많겠지만 광릉요강꽃은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꿀샘’의 입구가 좁은 탓에 나비 같이 커다란 곤충은 접근이 거의 불가능하고, ‘타화수정’이라 그 복잡한 과정을 두 번씩 반복해야 한다. 더욱이 난초과 식물이 대개 그렇듯, 수정과 발아에 균류의 도움이 필요한 탓에 발아율이 2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멸종위기가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한 노릇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인간의 손이다. 발아가 어렵다 한들, 비수구미 마을처럼 식생만 맞는다면 어떻게든 식구를 불려가며 살아가련만, 귀한 식물일수록 비싼 값에 거래되기에 화초꾼, 약초꾼들의 마수를 피하기가 어렵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광릉요강꽃, 복주머니란 같은 화초가 여전히 한 촉에 10만~20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하나의 식물은 고도, 기온, 바람, 햇볕, 세월 등이 협력해 만든 창조물이라 일반인이 키우기는 쉽지 않다. 아까 지적했듯, 광릉요강꽃 같은 난초는 공생균의 도움까지 받아야 하기에 국립수목원 같은 전문기관에서도 증식에 쩔쩔 매는 형편이다. 비싼 돈을 주고 혼신을 다해 키워봐야 1~2년을 넘기기 어렵다.
7년 땅속에 있다 꽃 피우는 ‘엘러지’를 저렇게...
지난 해 초봄, 야생화 탐사 프로그램을 위해 포천 광덕산에 갔을 때였다. 모데미풀, 동이나물, 얼레지 등 아름다운 야생화들을 관찰하고 내려와 식당을 찾았는데 주인이 문 밖에서 나물을 다듬고 있었다. “그게 뭐예요?” 궁금해 물었더니 얼레지란다. 얼레지는 예부터 나물로 유명한 꽃이다. 옛날에도 트럭을 몰고 와 싹쓸이해가는 통에 멸종위기까지 몰렸다고 들었다. 그 후 정부의 보호정책과 계몽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싶었는데,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렇듯 대수롭지 않게 남획을 하고 있다.
매미가 애벌레를 거쳐 7년 만에 지상에 나왔다가 보름 정도를 살고 죽듯, 얼레지 역시 씨앗이 땅에 떨어지고 7년이 지나서야 꽃을 피운다. 그리고 역시 보름 정도를 살다가 시들고 만다. 그런데 꽃을 피우기도 전에 저렇게 뿌리까지 뽑아 장사밑천으로 삼다니.
사람들이 식물을 탐하는 이유는 주로 세 경우다. 예뻐서 데려가 키우려고, 귀하니까 비싼 값에 팔 생각으로, 그리고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기 위해서다. 첫 번째 역시 삼가야 하나 기껏 한두 송이이기에 큰 위협은 아닐 수 있다. 두 번째는, 귀한 식물일수록 개인이 취미로 키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귀한만큼 식생이 까다롭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질없는 기대를 접으면 화초꾼들도 더 이상 건드리지 않으리라 믿는다. 일반 가정에서는 원예화가 제격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세 번째, 식용, 약용이 제일 큰 문제다. 지금도 여전히 약초 애호 커뮤니티에서는 버스까지 대절해 몰려와 귀한 식물들을 불법 채집한다. 지난 해 가을 ‘정선바위솔’을 찾아갔을 때도 그랬다. 바위솔은 옛날 고택 기와에 잘 자라 와송이라고 부르던 식물이다. 그런데 지붕개량 사업에 밀려, 또는 암에 좋다는 이유로 남획되는 탓에, 이젠 보기 어려운 식물이 되고 말았다. 그날도 너럭바위에 수십 촉이 부락을 이루며 사는 모습을 확인했건만 다음날 지인이 찾아가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 인근에 야생화로 유명한 천마산이 있다. 예전에는 삼지구엽초, 가지더부살이, 천마, 삽주, 곰취 따위를 어렵지 않게 만났건만 해가 갈수록 확연히 줄고 있다. 곰취는 이미 10년 전에 자취를 감추었다. 야생식물이 아니더라도, 맛난 것도 몸에 좋은 것도 얼마든지 있건만, 굳이 한 종족을 멸종으로 몰아가며 먹어야 하는지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식용 위해 야생식물 마구 채취...TV방송이 부추겨
식물의 멸종에는 언론매체의 잘못도 크다. 어제도 저녁식사 시간에 TV를 보는데 약초꾼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우슬’을 찾았다며 기뻐하더니 뿌리 채 캐어 PD에게 선물하는 것이 아닌가! 우슬(쇠무릎)이 귀한 식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모두 불법이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73조 제1항에 따르면 소유주나 지자체의 허가 없이 임산물을 채취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런데도, <생생정보통>,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은, 자연훼손, 불법산행, 불법채취를 자랑하듯 여과 없이 보여준다. 심지어 귀한 산야초로 만든 담금주가 가득한 집을, 부러움의 시선까지 담아 소개하기도 한다. 이따금 허가를 받아 촬영을 했다는 자막을 띄우기도 하지만, 촬영까지는 모르겠지만 카메라 밖 자연훼손과 불법채취까지 허가받았을 리는 만무하다.
설령 허가를 받았다 해도 문제다. 자연을 보호해야 할 TV 방송이 오히려 자연을 훼손하고 야생식물을 남획하라고 부추기는 꼴이 아닌가. 결국 불법행위를 부러워하게 만들고 시청자들에게 그래도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셈이다. 진정한 자연인이라면 자연을 악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울 것이 아니라 자연에 동화하고 자연의 순리에 따르고 자연을 지켜주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꽃 한 송이 꺾으면 그게 곧 멸종의 시작이다. 자연은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고 사진으로만 간직할 일이다. 내가 어디를 가나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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