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이 다스리는 나라
[조영학의 ‘내 이름은 붥덱’] 폼페이우스, 라스푸틴, 민비 역사에 등장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우리 전략은 완전히 실패했어. 카이사르가 스페인을 쑥밭으로 만들고 다니는데 그냥 멍하니 앉아만 있잖아. 내가 보기엔 (폼페이우스가) 점괘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 새와 짐승 내장이 평상시에야 의미가 있다손 쳐도 그런 식으로 군대를 통솔할 수는 없지. 천재 지휘관이라고 큰소리는 치는데 솔직히 요즘은 갸우뚱한다니까.”
장복관을 추종한 폼페이우스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 『딕타토르』의 한 구절이다. 카이사르가 준동하자 키케로는 폼페이우스와 동맹을 맺고 그에 맞서지만, 서민 출신의 합리적인 키케로와 달리 덩치만 크고 무식한 귀족 폼페이우스는 미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치밀한 작전과 냉철한 판단이 아니라 장복관의 점괘에 따라 출정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키케로의 탄식에도 불구하고 결국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에게 대패하고 만다. ‘장복관(腸卜官)’이란 제물을 죽인 후 내장을 살펴 징조를 결정하는 일종의 무당이다. 제정일치의 시대이니 점괘를 따지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미신이나 무속이 판단을 흐리고 잘못된 결정을 하게 만든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라스푸틴, 제정러시아를 멸망으로
역사적으로 무속 의존도가 높은 지도자의 최고봉은 아무래도 제정러시아의 니콜라스 2세일 것이다. 니콜라스 황제는 헝가리의 마술사 해리 후디니를 숭배할 정도로 비합리적인 인물이었다. 막내 황태자 알렉세이가 혈우병으로 고생하자, 1907년 니콜라스는 ‘떠돌이 요승’ 그리고리 라스푸틴을 황궁으로 불러들인다. 라스푸틴이 실제로 황태자의 병을 고치자 니콜라스 황제와 알렉산드라 황후는 그를 총애하고 국정에까지 끌어들인다. 심지어 알렉산드라 황후는 “라스푸틴이 하는 일은 모두 성스럽다”고 선언하기까지 한다.
라스푸틴이 비선실세로서 제정러시아를 멸망에까지 이르게 한 결정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의 전쟁 비사일 것이다. 라스푸틴이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러시아군이 남부 전선에서 싸우면 승리한다고 황후에게 전하자, 니콜라이 2세는 장군, 참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의 계시를 따른다. 그 결과 러시아는 대패하고 서부 공업지대와 우크라이나까지 모조리 독일군에게 내주게 된다. 당연히 재정은 붕괴 직전에 몰린다. 라스푸틴은 방탕하고 음란한 인물이라, 황후와 공주들에게 마약을 먹이고 범했다는 얘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어리석은 지도자가 미신 또는 무당에 휘둘려 나라를 위기로 몰아간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네덜란드의 율리아나 여왕은 1948년 흐레이트 호프만스라는 무당을 불러들여 왕실을 위기로 내몰았으며, 고려 말 공민왕은 요승 신돈에게 전권을 맡겨 국정 농단을 초래하고 고려의 멸망을 재촉하였다.
먼나라 얘기 아냐... ‘망국의 왕비’ 명성황후
우리나라에도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갑자기 유명해진 인물이 있다.
명성황후, 즉 민비는 민씨 척족들과 더불어 가렴주구, 국고탕진,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가뜩이나 위기에 몰린 나라를 패망으로 이끈 인물이다. 그 횡포가 얼마나 심했는지, 심지어 분노한 구식군대가 반란을 일으켜(임오군란) 민비와 민씨 일가를 쫓아내기까지 한다. 13개월 동안 녹봉을 받지 못하다가 겨우 한 달 치 식량을 받았는데 그 중 20퍼센트만이 쌀이고 나머지는 모래였던 것이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이건만 많지 않은 군비까지 민씨 일가가 모두 착복한 것이다.

민비는 위기에 몰리자 충주 장호원으로 피신했다가 청나라의 도움으로 50여 일만에 궁에 돌아오는데 이때 여자 무당을 데려와 진령군이라는 군호를 하사한다. 7종 천민인 무당에게 군호를 내린 것은 조선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장호원에 피신해 있을 때 그 무당이 굿을 하고 환궁 날짜까지 예언해주었다는 게 이유였다. 진령군은 고종과 민비의 비호를 받으며 민비가 을미사변으로 목숨을 잃기까지 무려 12년간 국정을 농단하고 재정을 탕진한다. 심지어 국고가 텅텅 비어감에도 불구하고, 고종과 민비를 꼬드겨 금강산 1만 2000봉 모두에 쌀 한 섬, 돈 1000냥, 비단 한 필씩을 바치게 한다. 이유는 나라의 안녕이지만 그 와중에 진령군은 엄청난 착복을 저지른다. 신하들이 진령군을 내보내려 수없이 상소문을 올리지만 고종과 민비는 오히려 그 신하들을 내쫓고 더욱 더 진령군에게 매달리면서 나라를 나락에 빠뜨리고 만다.
한나라 수장의 미신 숭배, 망국으로 이어져
정재승 교수는 우리가 미신을 믿는 이유는 “미래가 불확실하기에 뇌를 속여 심리적 이득을 얻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요행을 통해 피하고 거짓 위안이라도 얻자는데 굳이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게 개인이 아니라 한 나라의 수장이라면 국가의 운명을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 더더욱 무당은 개인의 신념체계가 워낙 확고해 국가시스템을 망가뜨리고 만다. 그건 수많은 역사가 증명하지만 불과 몇 년 전 “비선실세와 국정농단”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직접 겪기도 했다.
“우리는 부활한 나라, 대한민국에 산다. 또 다시 추락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고종에게서 무엇을 배우지 말아야 하는가?” 『매국노 고종』의 저자, 박종인은 책의 결말에서 이렇게 호소한다. 국가의 지도자나 그 가족이 무속에 매달리면 어떻게 되는지, 폼페이우스가, 니콜라스가, 유리아나가, 공민왕이, 그리고 수많은 고종과 민비들이 실제로 보여주고 있건만, 우리는 과연 역사에서 뭐든 배우기는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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