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알면 달라지는 것-①

[조영학의 ‘내 이름은 붥덱’] ‘여성의 침묵을 읽어내라’는 교수님 페미니즘 세계관이 축복이 되기까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신작 연극에서 선보인 극단 Y의 ‘탈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신작 연극에서 선보인 극단 Y의 ‘탈피’.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

몇 해 전 #MeToo 운동이 시작될 때만 해도 기대가 컸다.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도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커지겠구나 하고. 그런데 운동이 무르익기도 전에 백래시(backlash)가 터지더니 어느 순간 “페미니즘”은 금기어처럼 되고, 페미니스트조차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하고 운을 뗀다는 웃지 못할 얘기까지 전해진다. 여성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정치가가 여당 대표가 되고 급기야 “구조적인 여성 차별은 없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1970년대 말 미국에서도 페미니즘을 향한 백래시 광풍이 불어 대표적인 반페미니스트인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된 바도 있으니 어쩌면 피할 수 없는 단계인지도 모르겠다. 백래시란 그 자체로 페미니즘의 힘이 그만큼 강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페미니즘을 향한 반감이 대부분 오해나 몰이해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보려는 노력도 없이 억측과 편견만으로 페미니즘을 금기시하고 외면하는 것이다.

나는 60대 중반의 남성이며 이른바 4인 가족의 “가장”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페미니즘과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멀어야 당연할 것 같은 위치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난 페미니즘 덕분에 삶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30여 년 전에 한 번, 20년 전쯤에 한 번. 내가 겪어본 바로는, 페미니즘은 남성을 배격하고 배척하는 운동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휴머니즘을 대신하지 않으며 오히려 휴머니즘의 영역을 넓혀준다.

페미니즘을 가르쳐주신 은사님

1990년대 초 국내 영문학계에 포스트모더니즘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포스트모더니즘 관련 서적이 쏟아지고, 매년 전국의 학자들이 모여 포럼을 열기도 했다. 당시 석사과정에 있던 필자도 포스트모더니즘 세미나를 구성해 매주 동료 대학원생들과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

탈구조주의, 해체주의, 신역사주의…우리는 이름만 들어도 골치 아픈 개념들을 어떻게든 머릿속에 욱여넣기 위해 기를 쓰고 덤벼들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공부하며 이름만 알던 페미니즘과 본격적으로 만난 것은 ‘H 교수님’ 덕분이었다. 대학원에서 페미니즘 문학비평 강좌를 연 것이다. 여성이자 장애인으로 평생을 사신 분인데, 평소에도 신개념들을 연구해 학생들에게 전하려 애를 쓰셨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기호가 아닌 기호 너머를 볼 것을 주문했다. “우리가 텍스트에서 봐야 할 것은 작가의 의도가 아니라 작가의 무의식이에요.” 교수님의 주문은 특별했다. 작가가 글로 쓴 얘기가 아니라, 쓰지 않은/쓰지 못한 얘기를 끄집어내라는 것이 아닌가.

“빅토리아 시대는 지독한 가부장제 사회였어요. 그런 사회에서 여성은 글을 쓰는 동안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자기검열을 내재하게 되죠. 그렇게 검열되어 배제된 의미가 진짜 의미예요.” 교수님은 문학 분석가라면 그 목소리를 찾아내 대신 발화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난 곧바로 교수님의 훈련에 푹 빠져들었다. 맙소사, 억압된 목소리를 찾으라니. 침묵을 읽어내라니! 얼마나 멋진 말인가!

우리는 교수님과 함께 <Yellow Wallpaper>와 <Wide Sargasso Sea>, 토니모리슨의 <Beloved> 등을 읽고 수전 구바와 산드라 길버트의 <Mad Woman in the Attic>을 연구하며. 페미니즘이 세상/텍스트를 읽어내는 방식을 익혀나갔다. <프랑켄슈타인>의 몬스터가 다름 아닌 작가 메리 셸리 자신의 억압된 본능임을 배우고, <폭풍의 언덕> 내레이터인 흑인 여성 넬리 딘이 “백인 남성”의 시각으로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얘기를 얼마나 왜곡하고 배제하는지를 배웠다.

“넬리는 창밖으로 두 사람의 사랑을 엿볼 뿐이에요. 그 프레임 밖에 어떤 이야기가 억업되어 있는지 읽어내요.” <Yellow Wallpaper> 리포트를 냈을 때는 교수님이 나를 부르더니 “조 선생은 정말 페미니즘의 눈을 지녔다”고 칭찬까지 해주셨다.

축복이자 선물이 된 페미니즘

이런저런 이유로 박사학위를 포기하면서 그간의 공부도 모두 내려놓았지만 이미 내 영혼에 인두처럼 각인된 페미니즘 세계관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아니, 그건 내게 큰 선물이자 축복이었다. 그동안 문자/기호에 갇혀 있던 내 시야를 무한대로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내 삶은 페미니즘을 만나기 전과 크게 달라졌다.

그 후로 모든 것을 페미니즘의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 지방대학에서 대중문화를 강의할 때도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때 학생들과 <델마와 루이스>, <인더컷>, <몬스터> 등의 영화를 페미니즘 시각으로 분석하기도 했는데 그 결과는 지금도 내 블로그 어딘가에 실려 있다. 눈치 챈 이는 거의 없겠지만 2018년 출간한 번역 이론서 <여백을 번역하라> 역시 페미니즘의 방법론 위에 살을 붙여 만들었다. 난 번역 텍스트도 기호뿐 아니라 기호 너머의 여백/숨은 의미까지 번역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다만 내가 공부한 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페미니즘의 형식/방법론에 불과했다. 그 안에 정작 있어야 할 여성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난 그때 여성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 여성이 역사적으로 억압받았다고 하지만, 그저 소설 속에, 그것도 드러나지 않은 얘기라지 않는가. 지금 우리나라도 그런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같은 고민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저 여성 글쓰기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여성학 학자들이 채택한 분석이론을, 내 안경처럼 세상을 들여다보는 데 도용했을 뿐이다.

비록 그렇다 해도 난 페미니즘의 방법론을 모두가 배우기를 바란다. 방법론에는 계급/갈등이 들어있지 않으니 지금처럼 남녀가 배척할 이유도 없다. 그저 보다 넓은/열린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꼭꼭 숨은 의미를 찾아내고 소외된/억압된 침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다. 내가 그랬듯 누구에게나 멋진 선물이자 축복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 여러분의 삶도 크게 바뀌리라 믿는다. Feminism doesn’t bite.(페미니즘은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

그리고 10여 년 후, 내 삶은 또 한 번 크게 바뀌게 된다. 역시 페미니즘 덕분이다. (To be continued)

글쓴이

조영학 출판번역가

조영학 출판 번역가는 텃밭을 가꾸고 야생화를 찾아 이 산 저 산을 헤매는 일을 좋아하며, 20년 가까이 아내를 위해 밥상을 차리고 있다. 저서로는 <천마산에 꽃이 있다>, <여백을 번역하라>, <상 차리는 남자? 상남자!>(공저), <살아있는 동안 꼭 봐야 할 우리 꽃 100>(공저) 등이 있고, 번역서로 <나는 전설이다>, <스티븐 킹 단편집> 등 90여 편이 있다. 현재 서울신문, 한국일보에도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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